00042 생일날의 너에게 =========================================================================
박진형은 지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상당히 놀란 것 같아 보인다. 그를 쳐다보던 지혁은 악수하던 손을 놓고서 말했다.
“왜 그렇게 보시죠?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사실은 지혁이 잘생겨서 이런다는 것을 잘 안다. 능청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아, 아뇨…. 제가 생각하던 거랑 좀 달라서… 일단 앉으시죠.”
그가 안내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 지혁은 한예리와 대각선 자리에 앉았었는데, 맨 안쪽에 이름모를 사내가, 그 옆에 박진형이 앉았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한예리의 옆에 앉게 되었다.
“자, 작가님?”
방금 전의 당당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말까지 더듬으면서 물어온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헌팅이 아니라서 죄송하네요.”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태도를 확 바꿔서 사과한 그녀의 변명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혁이 스무 살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같았다(지혁은 그 대목에서 팬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나이도 모른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생각을 했고, 역시 예전의 그것은 언론플레이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글이 너무 재밌어서 연륜있는 장년인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녀는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이런 곳에서조차 또래 남자가 접근하면 그저 번호나 따가려는 심산인 줄 아는 그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한예리 정도면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지혁 역시 길거리를 다닐때마다 수시로 번호를 요구하는 여성들 때문에 화가 나서 신경질을 부린 적이 있었다.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지혁은 다소 딱딱하게 말했다. 일부러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예뻤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하지만 예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차원이 다르다보니 지혁도 남자인지라 절로 조심하게 된다. 서하린도 상당히 예쁜 편이었는데 한예리는 그보다도 더했다. 최근 차현진을 보면서 다들 비슷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는데, S급에 속하는 연예인을 직접 보니까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아주 잘 알겠다. 차현진도 어디가서 꿀릴 외모는 아니지만 한예리에 비하면 모자랐다.
여하튼 지혁은 사과를 받아주었고 잘 해결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자 그의 앞자리에 앉은 박진형이 말했다.
“…어. 작가님이 이렇게 잘 생기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40대 남자가 그렇게 말해봤자 감흥은 없다. 단지 옆에서 한예리의 시선이 계속 느껴지는 것이 신경쓰일 뿐이었다.
“근데 정말 그… 조커 유 작가님이 맞으신거죠?”
이번 물음은 옆에서 들려왔다. 아직까지도 반신반의하는 듯한 한예리의 기색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지혁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서 조커 유에요?”
“네, 뭐… 조커 유의 유는 제 성을 따서 붙인게 맞긴 합니다.”
지혁은 한예리의 질문에 그가 대답하는 사이 박진형이 물을 따라준 물컵을 받으며 감사인사를 한 후에 곧장 한모금 홀짝였다. 긴장되서 목이 탔다.
‘진짜 존나 예쁘네.’
순전히 서하린을 위해서 리플라워를 살려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혁이다. 허나 그러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버릴 정도로 한예리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다. 사실 리플라워의 해체가 이루어지기 전에 일을 진행한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겸사겸사의 느낌이었다. 굳이 그녀들이 아니었어도 영상을 위해서 작곡 능력은 익혀야 했으리라.
“제가 연예계에서 생활도 좀 오래한 편이고, 특히 대형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연습생들도 많이 보고 했는데, 작가님은 그런 애들도 명함을 못 내밀 거 같네요.”
박진형이 다소 호들갑을 떠는 느낌으로 말했고, 지혁은 대화의 중점이 그의 생김새가 되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짤막한 인사로 대화를 끊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장지문이 열리고 직원이 음식을 갖고 안으로 들어왔다. 세팅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지혁은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가 한예리와 눈이 맞았다. 속으로는 움찔했지만 그는 태연을 가장하며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작가님께서는 대외적인 활동을 일체 거부하신다고 들었거든요. 인터뷰 요청도 모두 퇴짜를 놓으셨다고…. 이유가 있을까요?”
박진형이 직원들이 문을 닫으며 물러가자 그렇게 물어왔다.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지혁은 가볍게 답했다.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랄까요.”
“그럼 하실 생각이 없는 건 아니시거나 정체를 숨기고 막 그러실 생각은 아니시라는 거군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나서서 알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박진형 씨나 한예리씨가 가수로써 음악으로 세상에 다가가듯, 저는 작품으로써 사람들에게 접근하고자할 뿐입니다.”
지혁의 말에 박진형이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싱글벙글 웃어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혁은 그의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요리는 맛있었다. 워낙 고급진 곳이라서 그런지 하나하나가 수준급이었다. 지혁은 입이 즐겁다는 생각을 하면서 펼쳐진 진수성찬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그는 입이 짧은 편이었기 때문에 하나를 여러 번 먹기보다는 한 번씩 다 건드려보는 식으로 식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다. 은연중에 옆에서 계속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같은 건 아닐 것이다. 한예리는 선글라스조차 벗고 그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벼운 이야기를 하면서 사담을 나누다가 불현 듯 중년남성이 말했다.
“창연화. 이미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접촉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다. 그냥 드라마를 제작자는 방송사는 전부 연락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혁이 연재했거나 하고있는 작품 중에서 창연화만큼 드라마에 최적화되어있는 소설은 없다. 애당초 창연화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길 겨냥하며 쓴 작품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희 NBC를 밀어주십시오.”
이런 자리를 만들었으니 요런 제안이 오는 것도 당연한 수순. 지혁은 쉬지 않고 움직이던 젓가락을 잠깐 멈췄다.
탁.
아니, 아예 내려놓았다.
한예리가 예쁜 건 예쁜거고, 지금은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조건은 팀장님한테서 전해 들었습니다.”
지혁은 그를 쳐다보았다.
“장르소설계에서의 명성이야 어찌되었든 제 작품이 2차 창작물로 제작되는 경우는 자체제작하여 오늘 공개한 생일날의 너에게를 제외하면 공식적으로는 처음있는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NBC측에서 제시한 조건은 좋더군요.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실이다. NBC는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른 곳에 비해 대우가 파격적이었다. 아마 이변이 없었더라면 지혁은 NBC를 선택했을 것이다. 어차피 지혁의 입장에서는 어디가 되었든 상관이 없다.
지혁은 짧게 덧붙였다.
“움직임도 가장 빨랐고요.”
“하하. 그만큼 작가님의 글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좋게 웃는 그를 보던 지혁은 옆을 힐끔 쳐다보았다. 관심없는 척 하는 것 같지만, 한예리의 젓가락질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그녀 역시 주연을 맡게될 테이니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사안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지혁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한예리라는 인물을 직접 보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계약건에 관해서는 알 바 아니었다는 뜻이다. 물론 작품을 망치게 두지는 않았겠지만 그건 명분이고, 실질적인 목표는 한예리도 보고 사인도 받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니 약간의 욕심이 생긴다.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지혁이 스무 살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그를 조커 유라는 스타작가와 매칭시킬 수 없었던 것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한예리는 그와 마찰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지혁이 그녀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이미 전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다.
사실 오기 전까지는 팬심 정도였는데, 막상 직접 보고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그녀의 관심을 끌고 싶고, 내 자신을 어필하고 싶어진다.
“제가 저번 달 동안 소설로 벌어들인 수익은 38억원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더욱 늘어나겠죠. 무엇보다 제 소설은 언제든지 볼 수 있고, 현재도 계속해서 새로운 독자분들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회성 수익이 아니라는 뜻이죠.”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최소한 박진형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눈치를 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저는 드라마 제작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 얻을 수익이 아니라 작품성입니다. 저는 NBC가 창연화를 제 기준에 맞게 제작해주실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근거는 있었으면 합니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신있냐는 뜻이었다.
지혁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중년남성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계신 한예리 씨를 창소이 역에 캐스팅할 거고, 또한 최고의 팀으로 제작에 임할 것입니다.”
은근슬쩍 그녀를 걸고넘어지는 것을 보니, 그들은 창소이에 이미 한예리를 찜해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얘기가 다 끝난 모양이다.
‘한예리 정도면 괜찮긴 하지.’
대단한 연기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연기 초창기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나름대로 괜찮은 연기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흥행보증수표와도 같다. 이름값이 보통이 아닌지라 그녀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본 시청률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었다. 지금 중년남자가 하려는 말도 이것일 터.
한예리를 이미 캐스팅한거나 다름없으니 최소한의 시청률을 보장된 것.
하지만 한예리는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에 비하면 솜씨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기준점을 확립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면 지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원작자로써 조건 하나를 걸겠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닐 것이다. 애당초 지금 상황은 지혁에게 칼자루가 쥐어져 있는 것이었다. 창연화를 원하는 곳은 널렸고, NBC는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물론 그들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겠지만, 여차하면 드라마 제작을 포기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주도하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니까,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정도의 일일 뿐이다.
“무엇인가요? 경청하겠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지혁은 곧장 답했다.
“몇 시간 전에 공개된 생일날의 너에게는 제가 총감독으로써 모든 것을 세세하게 확인하고 검토해서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각본도 제가 썼고 제작에도 직접 참여했으며 OST의 경우 아예 모든 곡을 제가 직접 작사, 작곡해서 불렀습니다. 성우들의 녹음에도 대부분을 기여했죠.”
지혁에게 관심은 있었을 테니 오늘 뭔가가 공개된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직접 보시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게… 끝인가요?”
딴에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막상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지혁은 미약하게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제 조건을 가볍게 생각하시는 군요.”
어투에 뼈를 담았기 때문일까, 셋이 동시에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행위에 있어 저는 지독히 까탈스럽습니다.”
그렇게 말한 지혁은 다짜고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놀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에 안들어서 썼던걸 다 지우고 새로 쓰다보니 이 시간까지 붙잡고 있었네요. 자고 난 뒤에 쓰려다가 코멘트 보고 힘을 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 어제 1화부터 코멘트를 다시 한 번 읽어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개중에는 예리하신 코난 분들도 있었으며, '이건 좀….' 이라는 생각이 드는 다소 황당한 주장(대표적으로 근친)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비판과 비난, 의견 등이 있었고, 재밌게 읽으면서 오타는 고치고 오류가 있으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억지다, 개연성이 없다,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등의 반응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최소한 현재(40화)까지는 지금의 제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에 가까운 글을 써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쓴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글, 전개 등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네요. 저 자신은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칠간 계속 투베에 올라있는 것을 보며 당황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흥적으로 손가는대로 쓸 수 있는 편한 소설을 쓰자는 느낌으로 무작정 지른 것이여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확인했을때 최신화에 코멘트가 10몇개씩 달려있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확인하면서도 약간은 부담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묵묵히 1차 목표인 60화까지 열심히 달려보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 급하게 올리는 경우가 아닌 이상 나름대로 성실히 검수를 한다고 하는 편이라서 오타는 제가 실제로 잘못 알고 있는게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