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생일날의 너에게 =========================================================================
현재 지혁이 연재하고 있는 작품은 4개다.
왕(王), 미니게임천국 3부, 창연화(蒼蓮花), 건 힐러(Gun Healer).
완결된 작품도 4개다.
후유가(後有歌), 미니게임천국 1부, 2부,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
홈페이지 또는 어플리케이션에 하루에도 최소 십만 명의 사람이 접속을 하며 그 사람들 대부분이 돈을 내고 소설이나 수필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혁이 벌어들이는 돈은 엄청났다. 무려 수십억에 달하는 돈이 달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수준.
“입맛에 맞으십니까?”
“네. 맛있네요.”
아이러니하게도 그거와는 별개로 지혁은 최근 들어 한가한 편이었다.
녹음이 끝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니게임천국 3부는 이미 7부 능선을 넘어가는 지점까지 써가는 상태였고(물론 연재는 그리 많이 되지 않았지만) 그 이외에는 당장 하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좀 놀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지혁은 집에 틀어박혀서 그간 못했던 게임도 하고 만화도 읽는 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
침대에 옆드려서 베개에 턱을 박고 책을 읽는 지혁의 등 위에서 차현진이 손으로 꾹꾹 안마를 해주고 있었다. 지혁은 시원하다는 듯이 침음성을 흘렸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평일 오후. 지혁과는 다르게 아이펜이라는 플랫폼 자체의 인기가 폭등하고 있는 최근, 그녀의 일은 더욱더 바빠졌기 때문에 차현진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되기 조금 전에 찾아왔는데 명목상으로는 업무관련 보고를 위해서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지혁이 하기 귀찮아하는 잡일을 도맡아하고, 그의 컨디션을 관리해주는 것이었다.
지혁이 요리를 잘하고 나름대로 재미있다고도 생각을 한다지만, 매일매일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은 은근히 귀찮은 일이다. 더군다나 요리하고나면 뒷정리는 조상님이 해주나?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는 것을 보면 나중에 하지 뭐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정상이었다.
물론 안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 때 좀 몰아서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보면 은서가 지혁 대신 여러번 설거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최근들어선 그것도 없어져버렸다.
차현진이 지혁의 집에 들르지 않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혁이 스튜디오에 들를 일이 없어지자 이제 차현진이 그를 만나기 위해 날마다 그의 집에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음식을 만들어주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를 버리는 것 등의 잡일을 대신 해주는 것에 익숙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냥 앉아도 된다니까요.”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나선 것도 차현진이었다. 그녀는 배운 적이 있는 건지 상당히 잘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의 등에 앉아서 편하게 마사지를 하라니까 괜찮다고 한다. 올라타 있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무릎을 꿇은 상태로 엉덩이를 들어올린 자세를 취하고서 손 이외의 부분이 닿지 않게 거의 1시간 가까이를 계속해서 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모양새. 그럼 자기가 많이 힘들텐데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마도 지혁의 등에 차마 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와같이 차현진은 지혁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까지가 사고회로가 지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 청소를 할 때도 애먼 청소기 놔두고 직접 사온 청소도구로 일일이 쓸고 걸레를 빨아서 닦아 대길래 왜 청소기 놔두고 힘들게 그러냐고 묻자 청소기 소리가 그의 시간을 방해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이제 지혁도 차현진을 가끔씩 막대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시키면 거절하는 법이 없고 군소리없이 하니 때때로 흠칫흠칫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부려먹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차현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가자, 현관 쪽까지 나와 그녀를 배웅해준 지혁이 기지개를 폈다.
그녀가 아예 집안일만 처리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오늘은 확실히 지혁에게 보고하러 올만한 정보들을 가지고 왔다.
‘외국이라….’
외국에서 그의 홈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는 모양이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겠지.’
소설을 영문판으로도 올리는 순간부터 예상해왔던 일이다. 서부권부터 시작해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의 접속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은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생각을 좀 해보자.’
영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은 느끼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의 주변국들 중에 그런 나라들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익혀둔 것이기도 하다. 지혁은 타이핑을 하는 속도와 엇비슷하게 즉시번역을 해낼 수 있다. 굉장히 빠른 속도인 셈. 그러나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가 연재한 작품의 용량은 적지 않고, 여러 개의 말로 번역한다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까다롭고 성가신 일이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예전에 임유선에게 말한 적이 있듯이, 지혁은 특유의 번역체가 가지는 그 느낌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게 될 경우 그건 한국어의 뜻을 그대로 살려서 번역하려는 직역(直譯)이 아니라 각 언어의 특성이나 그 언어만이 가지고 있는 표현 등을 적극 활용하는 의역(意譯)으로 진행이 된다. 그것은 영어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
필연적으로, 다른 언어로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에도 지혁의 작가로써의 실력이 가미된다는 뜻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지혁은 결론을 내렸다. 유입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전체를 따지고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9명이면 외국인이 1명 정도인 느낌일까. 하려면 할 수는 있는 일이었지만 최근 녹음작업을 하면서 빡빡한 일정을 보냈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
지혁은 커피를 타서 식탁에 앉아 마시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빨리 생일날의 너에게의 출시일을 확정해야 사전에 공고를 하고 출시일을 앞당길 수 있다. 차현진도 은근히 그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좋아.”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고민하던 지혁은 무릎을 짚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PV가 공개되고 단숨에 실검을 차지했을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이펜에서 ‘글’ 이외의 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시작한다.”
공개된 시간은 10시. 공개되자마자 보기 시작한다면 정오가 되기 전에 다 볼 수 있다. 이미 수십번은 본 작품이었지만, 직접 공개되고 보는 것은 또 느낌이 다를 것 같아 지혁은 은서와 나란히 앉아서 대기하다가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곧장 영상을 틀었다.
“…….”
성공이다.
영상에는 이상이 없었다. 영상미야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성우들의 녹음도 고생한 만큼 적당하다 싶을 정도로 뽑혔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자막시스템도 완벽할 것이다. 이건 글과는 다르게 그가 할 수 있는 언어들을 모두 자막으로 제작해서 입혀두었기 때문에 타국에서 접근하기도 용이할 것으로 본다.
끄흑. 흑.
쳐두었던 커튼을 걷고서 품을 뒤적거렸다. 은서가 연신 눈물을 훔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미리 손수건을 준비해두었기에 건넸다. 여러번 보는데도 원작자인 자신의 마음이 불편할 지경인데 처음보는 사람은 오죽하랴. 이전에 성우 오디션을 진행할 때 성우들에게도 이것을 보여주었는데 남자 한 명 빼고 다 울었던 기억이 있다.
생일날의 너에게는 새드엔딩이다. 그래야 더 깊은 여운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왠지 보는 사람들의 눈물을 지나치게 많이 뽑아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슬 가볼까.’
약속이 있다. 상대가 주말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여 부득이하게 오늘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힐끔거리던 지혁은 옷을 챙겨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지?’
그는 자신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검은 슈트는 잘 어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벨소리가 울렸고, 나가보니 차현진이 서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지혁이 물었다.
“혹시 먼가요?”
“아닙니다.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백미러로 그를 쳐다본 차현진이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지혁은 핸드폰을 들어서 머리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떨린다.
이내 차현진이 몰아간 차는 근사한 음식점 앞에 멈췄다. 그녀가 밖에서 대기하겠다고 하자 지혁은 그냥 가보라고 했다. 일이 어찌 흘러갈지 그도 예상이 불가능했다.
“어서오세요.”
“아, 예약했는데요.”
“예약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박진형입니다.”
직원이 친절한 어조로 말했고, 질문에 답하자 곧장 손을 뻗는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내 활짝 열려있는 장지문이 보였다. 지혁은 직원의 손짓에 따라 거기가 약속장소임을 깨닫고 슬며시 신발을 벗은 후 내부로 들어섰다.
“…….”
“…….”
거기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예리다.
‘…왜 혼자지?’
세 명이 있어야 되는데.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슬며시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4인용 식탁이었는데 그녀는 구석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해.’
그런 생각을 하던 지혁은 용기내서 질문했다.
“저기 혹시 한예리씨 되십니까?”
“관심 없어요.”
…?
“예?”
“하.”
지혁이 뜬금없는 말에 멍청하게 묻자 그녀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탁하고 덮었다.
“저는 누구를 사귈 생각이 없어요.”
“…? 예. 그러신가요?”
어쩌라는 거지. 설마 지혁이 그녀한테 헌팅이라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분명 여기가 맞고, 그가 오늘 만날 예정이었던 것도 그녀가 맞다.
“…….”
뭔가 핀트가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지혁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지혁의 반응에 그녀는 잠깐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소란이 들려오면서 두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한 명은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한 명은 익숙하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신지? …설마.”
남자 중 한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하다가 문뜩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아보였다.
지혁은 그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안녕하세요, 박진형… 씨? 반갑습니다. 조커 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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