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39화 (39/116)

00039  순항(順航)  =========================================================================

“야. 얘기좀 해봐라.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아침 일찍 부대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승현이 나왔다. 지혁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까 형의 부대로 연결이 됐는데 아까 그분이 전화를 받았고 무슨 일이냐고 막 묻길래 형한테 말해줄 것이 있다고 했거든.”

“근데?”

“그 분이 막 별 것도 아닌 일로 전화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타이르듯이 얘기를 하고 그러는 거야. 애 취급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기분이 좀 나빠져 가지고 정체를 밝혀버렸지.”

아마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또 상황이 달랐다. 사실 다소 충동적인, 감정적인 결정이었다.

“야, 그거 너무 도박 아니냐. 중대장님이 우연히 너를 알아서 다행이지….”

장르소설이라는 부분을 놓고 따진다면 조커 유라는 작가의 인지도가 높은 건 맞다. 그러나 그냥 전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조커 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게 정상이다.

“딱히 그런 건 아닐걸?”

최근에는 좀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그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혁은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둘은 국밥집에 들어섰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국밥을 주문했다.

지혁이 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어제 보니까 형 최근에 인터넷 못한 것 같던데.”

“야, 말도 마라. 컴퓨터 할 시간같은 것도 없지만, 있어도 눈치보여서 맘대로 못한다.”

그 정도란 말인가?

“그럼 직접 보여주는게 더 빠르겠네.”

지혁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어서 어딘가에 접속한 후에 이승현에게 건넸다.

“뭔데 이게.”

“내가 만든 홈페이지야. 내 작품만을 연재하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었거든.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신작 두 개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도록 다른 플랫폼과 계약을 안했어. 그래서 여러모로 좀 화제가 됐었지. 실검도 막 올라가고 난리도 아니었어.”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이승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로? 와… 대박이네.”

역시 실검(실시간 검색어)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은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승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홈페이지를 구경하는 것 같았고, 지혁은 가볍게 말했다.

“그래서 그분이 알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 홈페이지의 서비스를 시작한 게 얼마 전의 일이라서.”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2주.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타 플랫폼에서 지혁의 작품을 보던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거나 신뢰를 하지 못했던 그들도 사용자가 폭주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서버, 편의성이 극대화된 시스템 등에 이끌려서 결국 아이펜에서 소설을 결제해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하게된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펜은 지혁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였다. 캘린더 시스템을 메인화면에 도입해서 연재가 되는 시각이나 진행되는지 여부 등을 사전에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이벤트 같은 것들도 공지가 되니까 편리하다는 말들이 많았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건 힐러와 창연화가 아이펜에서만 연재가 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아이펜의 어플을 다운받은 사람들의 숫자도 10만+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지혁은 출판사에 각종 지시를 내리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도면밀한 체크를 진행중에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불길처럼 솟아올랐던 사람들의 관심은 조금 가라앉아 이제 전화기가 불나는 일은 줄어들게 되었다. 지혁은 어디서 무슨 요청이 오든 대부분은 거절하는 방향으로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딱히 정체를 숨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서서 나 좀 봐 달라, 내가 조커 유다 설치고 다닐 생각 역시 없다.

‘이제 영상만 완성하면 돼.’

이 정도면 밑바탕은 끝났다고 본다.

머지않아 ‘생일날의 너에게’를 정식으로 개봉해서 이슈화하고, 아이펜이 단순히 소설만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다양한 부분들이 제공되는 곳이라는 점을 부각한다면 더욱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과정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로 지혁은 지난 2주간 굉장히 바빴다. 지혁에게 탈탈탈 털렸던 성우들이 태도를 확 바꿔서 지나치게 성실해진 이후로 녹음작업은 굉장히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지혁은 미니게임천국 3부도 집필하는 중이었고, 심지어는 생일날의 너에게의 웹툰판도 제작을 하는 중이었다.

생일날의 너에게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순간 드러날 분야는 다음과 같다.

원작 소설, 웹툰, 영상, 음원.

물론, 등록되는 모든 창작물은 지혁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들로만 구성된다.

“돈도 많이 벌고 있어. 형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벌고 있을 거야. 타 플랫폼은 떼가는게 좀 있거든. 근데 여기는 내가 만든 홈페이지이기 때문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전부 내 통장으로 입금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물론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로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도 않아.”

그때 국밥이 나와서 잠깐 대화를 멈춘 지혁은 뜨끈한 국물을 한숟갈 뜬 뒤에 말했다.

“근데 요새 어때? 살만해?”

지혁의 물음에 승현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말도 마라. 지옥이다. 지옥.”

그렇게 힘든가?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승현이 말했다. 침울해지는 그의 표정을 보던 지혁은 문뜩 생각이 나서 말했다.

“저번에 형이 방송 한 번 해보라고 했잖아. 그래서 해봤는데 꽤 재밌더라고.”

“오, 방송 해봤냐? 반응이 어떻디.”

최근에는 바빠서 방송을 할 틈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성우들이 죽을 쑨 한 달 때는 그나마 여유가 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 틈틈이 방송을 했었다. 물론 자주는 못켰다.

지혁은 한 번 레전드 리그 랭킹 1위를 찍은 뒤로 내려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2위와의 격차는 늘어나지도, 좁혀지지도 않는 상황. 그 상징성 때문인지 그가 방송을 키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방송을 보러 들어온다. 그러나 지혁의 방송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간간히 말을 하면서 게임을 할 뿐이었다.

“내가 방송을 키고 1위를 찍었거든. 그래서인지 요새는 키기만 해도 많이 보는 거 같아.”

“어? 야. 결국 1위 찍었냐? 개쩌네.”

그 이외에도 지혁은 승현과 한창 잡담을 나누었다. 특히 승현이 직접 겪은 각종 설움이나 경험 등을 풀어나가는 것을 묵묵히 듣는 것이 주였다.

“…하는 거야. 와 진짜 그때 식은땀이 그냥….”

신이 나서 열심히 떠들어대던 승현이 별안간 말했다.

“야, 니 폰으로 보면 공짜로 볼 수 있냐?”

“…어. 실컷 봐.”

승현이 소설을 보고싶어하는 것 같자 지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배를 채우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가 계속 핸드폰을 힐끔거렸으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힘겨운 생활을 했다는데 그의 즐거움을 뺏을 수가 없고. 지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승현은 희희낙락하면서 미니게임천국 3부를 읽어나가는 기색이었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수저를 뜰때도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기껏 나와준 승현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지혁은 오늘도 녹음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그의 부대와 지혁의 집이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혁은 아침밥을 먹고 식당을 나섰을 때 가봐야 한다는 말을 전했고, 승현은 살짝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해를 해주었다. 지혁은 그가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고, 미리 잡아둔 호텔로 그를 데려다주었다. 비싼 방으로 잡았기 때문에 승현은 호화로운 시설에 굉장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체크인 과정까지 끝내고 나서야 해수욕장이 보이는 호텔에서 나선 지혁은 택시를 타고 이동, 아슬아슬하게 10시까지 스튜디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당히 빨라.’

사람들은 생각이 없지 않다.

아무리 기본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들 그것은 지혁의 기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 길을 걷고자 정했다면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성우들은 성우지망생이었던 이유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최근 빠르게 실력이 증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싹쑤가 있다고 해야 할까 재능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지혁이 요구하는 대로 상당히 잘 따라오고 있었다.

‘오히려 이게 더 괜찮은 거 같기도 하다.’

만약 계속해서 방치했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지혁은 그들의 행태를 따끔하게 지적했고, 그 날을 기점으로 작업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변했다. 심지어 그때 때마침 실시간 검색어 사건도 겹쳐가지고, 지혁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위상이 올라간 것도 영향이 있었다.

그런 배경들이 한데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 모양인지 지혁의 예상보다도 빠른 속도로 녹음이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전체 분량의 3%는 해치운 것 같다. 그때의 일이 계기가 되어서 가속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지혁이 지금 당장 요구하는 것은 생일날의 너에게의 녹음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기도 했기 때문에 녹음이 진행되는 과정은 굉장히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3주 정도면 다 마무리가 될 것도 같은데, 그때까지만 좀 참죠.”

쉬는 날 없이 매일 스튜디오에 출근하는 것은 지혁도 나름대로 고역이었다. 성우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만을 터트리지 않는다. 실제로 불만이 없을 수도 있다.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가장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노력한만큼 성과가 나타나니 재미도 있을 터였다.

“내일도 그렇지만 완성될 때까지 녹음은 정상진행됩니다. 빨리 하고 쉽시다.”

대기하듯 서있는 성우들에게 짤막하게 공지하고서 일어난 지혁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차현진이 차를 대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지혁이 가니 그녀가 문을 열어주었고, 지혁은 익숙하다는 듯이 탑승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차가 이동하자, 지혁은 곧장 차현진과 업무적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무실에 박혀있어도 지혁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그는 이렇게 퇴근길에 차현진에게서 일의 진척도나 상황 등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운전하면서 잘 말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그리 어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NBC에서 창연화를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다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NBC면 공중파 3사 중 하나가 아닌가.

“…벌써요?”

“미리 침을 발라놓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제 고작 14화가 연재되었을 뿐이었다. 전체로 피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양. 언젠가 있을 일이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접촉을 해올 줄은 몰랐다.

지혁은 드라마의 제작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디엔가 맡기기는 해야할 일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조금 보류합시다. 너무 이른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깍듯이 대답한 차현진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한예리가 선생님의 팬이라고 한 것 때문에 낮동안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한예리? 순간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지혁은 잠깐 눈동자를 굴리다가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냐는 듯한 느낌으로 물었다.

“그 한예리요?”

“네.”

유명 기획사 소속의 걸그룹 멤버이자 각종 드라마의 주연배우를 도맡아하는 잘나가는 여자연예인. 그것이 지혁이 알고 있는 한예리였다. 아이돌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며 청순한 외모로 전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했다. 지혁 또래의 남성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지혁 역시 여자연예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라고 생각해온 인물이었다.

얼떨떨했다. 현실감이 없는 느낌이랄까.

그때 차현진이 지나가는 어투로 물어왔다.

“만나보시겠습니까?”

그게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예리인데?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지혁이 다소 놀란 어조로 묻자 차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저쪽이 갑자기 이런 이슈를 만들어낸 것은 창연화의 여자주인공 자리를 탐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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