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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37화 (37/116)

00037  순항(順航)  =========================================================================

평소라면 10시 근처에 출근했겠지만, 오늘은 좀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어제 퇴근길에 물어보니까 차현진은 집에서 7시 반쯤에 나선다고 했고, 지혁은 지나치게 이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중요한 날이니만큼 그녀와 같이 출근하기로 한 것이었다.

은서를 태워서 가다가 학교에 떨궈줘도 되었을 텐데 오늘은 하필 개교기념일이라서 아직도 자고 있다. 잠깐 그녀의 방을 열어본 지혁은 슬며시 문을 닫은 후에 넥타이를 매만졌다.

‘직장인이 된 기분인걸.’

아침 일찍부터 정장을 입고 출근을 준비하고 있으려니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룸에서 보내던 시간에 비하면 그리 바쁜 것도 아니다. 거기서는 잠자고 밥먹고 볼일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작업에 할애했을 정도였으니까.

집을 나서니 차현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회사로 이동했다.

“잠깐 들렀다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지혁이 말한대로 문단속을 제대로 해두었는지도 볼 겸 지혁은 차현진을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게 하고선 스튜디오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자 열려있는 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지혁은 슬며시 가보았다. 그에게 반발심을 가지고 일부러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왠지 느낌상….

그리고 지혁은 작업실 내 소파에 누워서 자고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임유선이었다.

그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네 명도 이곳에서 밤을 새기라도 한 것인지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관찰하듯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구석구석을 살피던 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 이거의 반만 했으면.’

만약 그랬더라면 그렇게 심하게 대하지도 않았을 텐데. 왠지 기특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극단적인 변화에 골치가 아파오는 느낌이라 이마를 짚던 지혁은 이내 몸을 돌려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팀장님.”

“네!”

차현진이 놀란 듯 큰 목소리로 대답하자 이미 출근해있던 다른 직원들이 흠칫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후다닥 지혁의 앞으로 달려왔고, 지혁은 차현진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차현진이 알겠다고 직접 움직이려고 하기에 지혁은 그녀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왜 지혁이 이른 시간에 출근하였는가. 그녀와 작업해야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평소의 차현진이라면 거리낌없이 직원들을 부려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혁과 관련된 일이니까 자기가 직접 해야 한다는 느낌 때문에 이러는 것일 터.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지혁은 그녀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혁의 의사를 전달받은 차현진이 휘하 직원 중 아무나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지시를 내렸다. 8시부터 하는 대형마트가 인근에 있었다. 직원이 차현진의 지시에 따라 사온 담요들을 가지고가서 성우들에게 덮어준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끝났나요? 어디 한 번 보죠.”

지혁이 그러는 사이 차현진은 그의 수필을 홈페이지에 성공적으로 등재한 것 같았다. 이미 여러번 검사를 끝내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되는지 확인은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지혁은 차현진과 함께 그녀의 자리에서 점검을 해보기 시작했다.

“PC로는 일단 이상없네요.”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지혁은 핸드폰을 꺼내서 어플리케이션의 작동까지 세심하게 확인하고 난 뒤에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작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지혁이 이름값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제작한 홈페이지에 소설도 아닌 수필을 떡하니 올려놓고서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이건 결재를 통해 1000원이라는 값을 지불하고 봐야하는 유료가 아니던가. 물론 예전에 공지했던 대로 오늘부터 아이펜에서 두 개의 신작이 독점연재 될 것이라는 말을 해두기는 했으니 홍보효과는 누릴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에 연재하고 있던 연재처의 작품들을 옮겨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진행은 차현진이 하고 지혁은 옆에서 지켜보는 방식이었다. 물론 거기다가 핸드폰으로 일일이 확인해보는 작업을 거치는 것은 덤. 이미 완결이 나버린 후유가, 미니게임천국 1,2부와 현재 연재중에 있는 왕(王)까지. 지혁의 홈페이지는 화가 아니라 권 단위로 결재되도록 설정을 해두었기 때문에 묶어서 연재하면 되었고, 그렇기에 많은 분량이기는 했지만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당연히 유료였다.

“다음으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이미 공개되있는 작품을 동시연재의 개념으로 옮기는 작업이 끝나자 차현진이 물어왔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차현진이 곧장 USB 하나를 컴퓨터에 꽂아 넣었다.

지혁의 신작 2개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작품 등재를 하다말고 차현진이 뒤를 돌아보며 물어왔다.

“표지는 어떻게 하면…?”

“아, 제가 메일로 보내뒀습니다.”

그러자 차현진이 자신의 메일에 접속한다. 지혁은 미리 세 개의 일러스트를 보내두었기 때문에 곧장 파일이 떠올랐다. 지혁은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면서 어떤 소설의 일러스트인지를 말해주었다. 글씨는 없고 그림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봐서는 뭐가 뭐랑 연결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개의 신작, ‘건 힐러(Gun Healer)’와 ‘창연화(蒼蓮花)’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건 힐러는 게임판타지로, 건 힐러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이었다. 그의 총은 적한테는 데미지를 박아 넣지만, 아군한테 사용할 경우 회복을 시켜주는 특이한 특성이 있었다. 단편(10권 이하)이기 때문에 화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창연화 역시 마찬가지. 창연화는 특이하게 역사소설이었다. 조선시대 배경의 궁중극으로써 평범하게 갈등, 불화 등이 있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의 소설이었다. 사실 이것은 약간 드라마 업계를 겨냥한 제작이기도 했다. 공개되면 군침을 흘리는 제작사들이 많을 것이다.

두 개 다 공개는 1화씩. 완결때까지 하루 1편씩만 연재할 생각이었다. 물론 왕(王)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펜은 권 단위로 결재를 하는 방식이지만, 이렇게 끊어서 결재할 수밖에 없을 때는 추후에 권 단위의 결재로 변경되었을 경우 지불한 금액만큼을 차감하도록 설계해두었다.

“그럼 마지막이네요.”

“네.”

차현진이 아까 일러스트를 다운했던 메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지혁이 보낸 텍스트 파일 하나가 있었다.

[ 미니게임천국 3부 ]

아직 전권을 다 쓰지는 못했다. 이제 3권을 쓰고 있는 실정. 그러나 하루에 한편씩만 연재하기 때문에 넉넉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니게임천국의 등록까지 완료하고나니, 이미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겨있었다.

“저는 그럼 녹음하러 가보겠습니다.”

“네.”

차현진이 할 일은 아직 남아있다. 신작 2개는 아이펜에만 독점연재를 하겠지만, 미니게임천국 3부는 기존에 연재하던 다른 연재처에도 연재를 할 생각이었다. 그건 차현진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제 일은 지혁의 손을 떠났다. 남은 것은 얼마나 반응이 있을까 하는 것.

‘그리 많지는 않을지도.’

새로이 연재하는 신작 두 개는 지혁이 직접 영어판으로 써둔 것도 존재한다. 설정 란에서 언어설정을 가능하게 해둔 것이다. 기본설정은 한국어지만 거기서 영어로 바꾸면 영어로 쓰여진 글이 나타나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글을 여러개의 언어로 직접 바꿔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많은 언어를 익혔었지만, 막상 영어로 쓰다보니까 너무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을 깨닫고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인 영어로만 집필을 한 것이었다.

단순히 건 힐러와 창연화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올리는 소설들은 모두 그럴 것이고, 심지어는 오늘 올린 수필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영상에는 여러 가지 자막을 첨가하면 좋지.’

다만 애니메이션 자막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만든 모든 애니메이션 영상에는 그가 익힌 언어들의 자막을 입혀둔 상태였다. 소설과는 다르게 대사만 작업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영상의 설정 부분에서 다양한 언어의 자막을 입힐 수 있도록 시스템 설계를 해둔 상태이다.

‘언제 잤길래 아직 한 명도 깨지 않은 거지?’

스튜디오로 올라간 지혁은 10시 반을 넘어가고 있는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다섯 명이 깨어날 기색이 없자 고심 끝에 그들을 깨우기로 했다. 늦게까지 연습한 것은 칭찬해야 마땅할 일이나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문제다.

지혁은 소파에서 자고 있는 임유선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흔들었다.

“…헉!”

그녀는 부스스한 느낌으로 일어나서 지혁을 쳐다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분들을 깨워주세요.”

“네.”

임유선이 후다닥 일어나서 꿈나라에 빠져있는 성우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들 전원이 담요를 덮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지혁을 힐끔 쳐다보는 기색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그녀가 덮었던 담요를 차분하게 접고 있던 지혁은 그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체했다.

곧이어 그들 다섯이 지혁의 앞에 섰다. 그는 갠 담요를 옆자리에 얹으면서 말했다.

“늦게까지 노력하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밤을 새면서 다음날 일정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하지는 마십시오.”

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을 짚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특훈의 성과를 한 번 볼까요?”

녹음이 시작되었다.

“김지혜 씨? 톤이 너무 격앙되어 있습니다.”

밤을 새서 연습을 했다고 하루아침에 큰 변화가 있을 리는 없었다. 지혁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실제로 점검을 해보니 별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지혁은 어제와는 다르게 적절한 조언을 섞어가면서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었고, 지혁은 배달음식을 시켜서 그들과 같이 어울려 먹으면서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나갔다. 끊임없이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성우들도 태도를 확 바꿔서, 대기시간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적 받은 것을 계속해서 되새기면서 연습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뭐가 부족한지 확인해보려는 기색이었다. 특히 앞서나가고 있는 임유선은 그들에게 좋은 자극제로써 작용하는 것 같았다.

성우들은 지혁을 어려워하는 기색이었으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하관계가 분명히 성립되었고 지혁을 만만히 보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혁은 녹음을 계속해나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6시가 되자 지혁은 작업을 종료했다. 우렁차게 인사하는 성우들을 뒤로하고 스튜디오를 나선 지혁은 잠깐 주위를 둘러보다가 차현진이 없음을 깨닫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

사무실이 왠지 좀 어수선한 느낌이다.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를 받고 있던 차현진이 그를 발견했는지 급히 통화를 마무리하는 기색이었다.

“죄송합니다. 여섯시가 된 줄도 모르고.”

“아뇨, 괜찮습니다. 근데 무슨 일 있나요?”

지혁의 물음에 차현진이 말했다.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지혁은 그녀를 따라 아까 작업을 했었던 그녀의 자리로 이동했다. 곧이어 그녀가 인터넷을 켜더니 손가락으로 한 부분을 가리켰다.

[ 실시간 검색어 ]

1. 미니게임천국 3부

2. Joker U

3. 아이펜

4. 무리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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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

7. 한예리

8. 건 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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