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31화 (31/116)

00031  성우 오디션  =========================================================================

“그래서, 오디션을 봐야할 것 같다고요?”

한창 미니게임천국 3부를 쓰던 지혁은 갑작스럽게 걸려온 차현진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요즘 그녀와 지혁의 화제는 ‘생일날의 너에게’에 캐스팅될 성우들에 관한 것이었다.

- 네.

뜬금없이 웬 오디션?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요? 저번에 얘기가 끝난 것 아니었나요?”

임유선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고 그녀와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자 성우지망생 중 뜻이 있는 한 명을 데려와달라고 말했다. 지혁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사실 그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차출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공개적인 오디션을 열 경우 작품을 개봉하기도 전에 이래저래 유출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솔직히 좀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혁은 누가 되었든 기본은 할 수 있게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혁이 요구하는 수준도 딱 그 정도였다. 물론 지혁의 입장에서의 기본은 어지간한 실력파 성우급은 된다는 것이 문제면 문제겠지만 말했듯 그는 자신이 있었다.

- 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머뭇거리는 걸까. 차현진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처음이라 지혁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얼마전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일때도 그렇고, 첫 만남때 당당하던 차현진은 최근 쭈구리가 된 것처럼 움츠러들어 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 생일날의 너에게는 시대에 남을 명작입니다. 주관적인 평이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일날의 너에게는 소설이 아니라 영상입니다.

“네.”

소설과 영상의 파급력은 차원이 다르다. 글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의외로 상당히 많아서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읽지 않는 이들도 꽤 많다. 그러나 영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고, 많은 관심을 받는 것도 당연한 수순일 터였다.

- 생일날의 너에게가 완성되어서 영화로써 배포되었을 때, 선생님의 후유가나 미니게임천국, 왕 등의 작품 이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겠지.’

그건 지혁도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 그럼 성우진이 모두 신인이라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왜죠?”

지혁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신인들을 사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 물론 연기력에 문제가 없다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임유선 씨도 그렇고 그녀가 소개해줄 다른 누군가 역시 검증이 되지 않은 성우지망생들에 불과합니다.

“…….”

- 모든 것이 뛰어난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우쪽이라면 특히 문제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 선생님 역시 타격을 입으시겠지만 성우들 역시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겁니다.

지혁은 차현진의 말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러나 지혁은 바보가 아니다. 차현진이 우려하는 바는 알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혁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다. 지혁은 그 누가와도 만족할만한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런 식의 방식을 채택한 것이고, 설령 그 결과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혁이 어떻게 그녀의 조언을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뜩 얼마전 차현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다만 저같은 사람이 작가님을 보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

…할 수 없지.

의기소침한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니 지혁은 그를 믿고 따르는 미녀 팀장의 기를 살려줄 필요성을 느꼈다.

“말씀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기는 하네요.”

-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임유선 씨한테 의사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 데려와달라고 해주십시오.”

- 여자 캐릭터들의 캐스팅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임유선 씨는 일단 믿고 가보죠. 순전히 제 감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왠지 잘할 것 같아서요. 물론 팀장님의 불안도 이해하기 때문에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녹음을 모두 엎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 다른 사람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연 여자들의 경우에는 새로이 사람을 뽑아야 할 것 같기는 하네요.”

- 임유선 씨한테 문의해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다행히 납득한 것 같다. 지혁은 그렇게 차현진과의 통화를 끊고서 이어폰을 낀 채로 음악을 들으며 다시 소설을 쓰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혁은 이내 신경질적으로 파일을 꺼버리고서는 의자에 기댔다.

룸에서 13년간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현실에서까지 일에 치이면서 살아야할까?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지만….’

열심히 놀자. 아니, 여유를 즐기자.

그러려면 어찌해야할까?

‘…….’

지혁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을 빠르게 지웠다.

여자친구를 사귀어보고 싶다. 지혁은 그런 열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러려면 애니메이션이 빨리 개봉되어야 하고, 애니메이션에 삽입한 지혁이 직접 작사, 작곡을 했으며 부르기까지 한 곡들이 알려져야 된다. 그러려면 임유선과 남자 성우를 빨리 키워서 작품을 완성할 필요가 있었다.

우웅-

[ 차현진 팀장님 : 임유선 씨가 내일 괜찮으신 시간대가 언제인지를 여쭤봅니다. ]

‘해보자.’

지혁은 곧장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그럼 이 시간부로 생일날의 너에게의 최종적으로 캐스팅 결정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며, 관련된 사항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크리 크지는 않은 지혁의 작업방. 네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가 있으니 다소 복잡하다는 느낌은 있다. 지혁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먼저 남자 주인공 김창현 역에 이승권 씨.”

“네!”

그렇게 긴장 팍 하고 대답할 필요는 없는데.

“아들 김승준 역에 이태형 씨.”

“네.”

“그리고 그 이외에 조연과 엑스트라를 도맡아서 하시게 될 분이 최재현 씨가 되겠습니다.”

남자쪽은 그렇게 정리가 되었고, 다음은 여자 쪽이다.

“여주인공 홍가인 역에 임유선 씨. 그리고 그 이외에 모든 여성 캐릭터에 김지혜 씨.”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우 캐스팅은 끝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시 한 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원작자이자 총괄 디렉터… 감독인 유지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자주 보시게 될 차현진 팀장님입니다.”

생각해보니 아직 차현진에게는 마땅한 직책이랄 것이 없었다. 지혁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짝짝짝짝.

소개가 끝나자 다섯 명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박수를 쳤다. 지혁은 손을 들어 멈추게 한 뒤에 곧장 말을 이었다.

“그 이외에도 저는 오디오 부분에 지분이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간간히 나왔던 삽입곡이나 OST등은 전부 제가 작사, 작곡했으며 부른 것도 접니다.”

“…!”

놀란 것은 오디션을 통해 뽑힌 성우들만이 아닌 것 같았다. 차현진도 이건 예상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제 자랑을 하려고 이런 사족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작품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낼 때까지 여러분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것도, 사전에 공고를 했었죠? 장난이 아니니까 혹시 지금이라도 노력할 자신이 없다면 돌아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잠깐 말을 끊고 나갈 시간을 주겠다는 듯이 기다리던 지혁이 컴퓨터를 조작했다.

“홈페이지 아이펜입니다. 원작 소설이 올라가게 될 것이며, 음원들도 공개가 될 장소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영상도 여기서 상영이 되겠죠. 음원은 무료로 배포할 생각이지만, 소설과 영상은 각각 2천원의 가격을 받을 생각입니다. 구입은 결재를 통해서 홈페이지 내에서만 사용가능한 코인으로 하는 방식을 채용할 겁니다.”

여기서 소설은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전편을 구입했을 때의 가격을 의미한다.

“여러분들도 여기에 가입하셔야 됩니다. 스텝으로 직위가 고정될거며 여러분들의 정보는 여기에도 실리게 될겁니다. 가입을 하시면 제가 직위조정을 한 뒤에 그에 관한 프로필 양식을 보내드릴텐데, 그것을 작성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될 것이니까 사진은 최대한 신경써서 예쁘고 멋있게 나오도록 찍는게 좋겠죠?”

지혁의 농담에 슬며시 웃는 사람들이 보였다.

“계약서도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작성하게 될 겁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페이에 차이는 존재합니다. 생일날의 너에게는 주인공 남녀, 그러니까 홍가인과 김창현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하지만 설령 자신이 엑스트라 역을 도맡아 한다고 해서 기여도가 낮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108분짜리 영상에 성우는 고작 5명을 쓰는 것이니까 한 명 한 명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애당초 지혁이 돈을 받아야할 지경이다. 아무런 경력도 없는 그들을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절을 받아야 마땅한 일. 물론 지혁의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제가 굳이 몇몇 엑스트라들을 녹음해둔 이유도 짐작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사실 성우로써의 자질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성우라고 부를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들을 선택했습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지혁은 결코 기죽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안 될 일에 목매달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생일날의 너에게에 걸맞은 성우들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의 시간을 가질 것이고, 그 과정을 거치면 여러분들은 이미 한 사람의 성우로써 활약할 준비가 되어있을 겁니다.”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안다. 실제로 실력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불안해야 정상이다. 지혁은 그런 다섯 명의 예비 성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기에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좁쌀만큼이라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아보였다.

“저희 아이펜 스튜디오는 생일날의 너에게 이후로 또 다른 작품을 하게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할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번 기회에 열심히 노력해서, 그때는 굳이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성숙한 성우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말했듯 본격적인 일정은 내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될 겁니다. 오늘 오디션 보느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깜짝.

지혁은 성우들이 우렁차게 인사한 것에 놀라서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었다. 이곳은 방음이 잘되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아파트였다.

그러자 대부분 지혁보다 나이가 많은 성우들이 찔끔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와, 지혁은 실없이 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연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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