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8 On Air, Challenger Yoo =========================================================================
‘이렇게 하면 되나?’
승현과의 통화를 끝내고 2시간 정도를 추가로 일하던 지혁은 목을 좌우로 꺾다가 작업중이던 모든 창을 종료해버렸다. 아직 여유가 있고, 이번에는 연재속도도 더딘 편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이렇게 빡세게 준비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 lel 랭크 / 음악 ]
채널명 : Challenger Yoo
뚫어져라 모니터화면을 응시하던 지혁은 이내 중얼거리면서 손을 움직였다.
“모르겠다.”
방송시작 버튼을 누르고서는 곧장 게임을 킨다.
예전에 승현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개인방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흥미가 동했었으나 그동안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조금 전 승현과 통화를 하다보니까 다시 떠올라버린 것이다.
마침 게임을 할 생각이기도 했기 때문에 지혁은 시험삼아 방송을 켜본 것이었다.
‘사람들이 보기나 할까?’
심지어 지혁은 마이크 세팅도 안 되어있다. 말 그대로 그냥 그가 게임하는 화면만 송출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그냥 호기심이 생긴김에 일단 켜보자는 뜻에서 방송을 시작한 것이니까 누가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쿵!
게임이 잡히고, 금지할 챔피언을 밴(Ban)하고 자신이 플레이할 챔피언을 픽(Pick)하는 밴픽의 시간이 되었다. 렐(lel - legend league)은 플레이어 10명이서 5명씩 팀을 나눠서 대결하는 5vs5 형식의 게임이고 픽창부터 같은 팀원들끼리는 대화도 할 수 있고, 아이디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멤버는 쌔네.’
작년에 압도적인 피지컬로 세계대회를 제패한 위대한 라이너 테이커(현재 랭킹 2위)가 1픽, 그 아래로 지혁을 제외한 셋 중 두 명이 프로선수고, 한 명은 좀 유명한 아마추어 유저였다.
‘라인도 안 겹치고.’
밴이 끝나고 테이커 선수가 칼같이 야사오를 픽한다. 바람의 검을 사용하는 검사 챔피언. 2픽에 위치한 지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적 1픽의 초상화에 카드마술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정글용 챔프인 리쿠신을 잡았다. 특성 세팅이 끝나고 채팅창을 무심결에 살펴보던 지혁은, 시청자가 세 명이나 들어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ddinghun : 와 진짜 챌린저 유네 ]
[ 남자a : 멤버 살발한거 봐라ㅋㅋㅋ 테이커에 임푸에 아이콘에 ]
[ ddinghun : 카드마술사 고른거보니 적 1픽은 앱도인가 본데? ]
‘그렇겠지.’
사실 카드마술사를 뽑았기에 앱도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카드마술사가 그의 주픽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랭킹 1,2위는 둘다 미드 라이너들이다. 작년에 한국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을 달성한 ST소속의 프로게이머 테이커와 소속된 팀이 없는 앱도. 최상단에 위치한 1픽이 가장 점수가 높고, 최하단에 위치한 5픽이 가장 점수가 낮은 것이 렐의 랭크 시스템인데 또 여기서 퍼플팀이냐 블루팀이냐에 따라서 상대를 예측할 수 있다.
랭킹 2등인 테이커가 퍼플팀 1등으로 게임이 잡혔다는 것은 블루팀 1등이 현재 랭킹 1등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아마추어 절대고수인 앱도라는 뜻이 된다. 같은 원리로 치면 지혁이 랭킹 4등인데 퍼플팀 2픽으로 잡혔다는 뜻은 저쪽 2픽이 랭킹 3등인 머프트라는 뜻이었다. 지혁도 각 팀의 2픽까지 그런지는 확실히 모르는데 왠지 적 2픽이 원거리 딜러 캐릭터를 뽑는 것 보니 그 생각이 맞는 것도 같다.
만약 지혁의 가정이 들어맞는다면 지금 이 게임은, 랭킹 1위부터 4위까지가 총집합한 극천상계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랭크게임이라는 뜻이 된다.
‘시청자 수가 빠르게 느네.’
확인해보니 화면에 게임의 로딩창이 떠오르는 순간 이미 시청자수는 10명을 돌파해 있었다. 아마도 보기드문 랭커의 개인화면을 보고자 하는 것 같다. 예상대로 적의 2픽은 머프트 선수였고, 그 이외에도 수준높은 유저,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긴장감 속에서 픽이 끝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 가쿠디아 : 수준 레전드네;; ]
[ 82103 : 와 저걸 피해? ]
[ 파란색동전 : 텔 2개에 테이커 로밍에 앱도의 합류궁까지ㅋㅋ 6분만에 봇에서 5:5 싸움 열리네 ]
[ 속이꽉찬휴지통 : ㅋㅋㅋㅋ클라스 봐라 다들 ]
경기는 굉장히 치열했다. 초고수들만이 운집해있는 게임이라서 그런지 잔 실수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운영도 굉장히 빡빡하게 돌아갔다.
그 와중에 지혁과 정점 테이커 선수가 환상적인 케미를 선보이면서 미드라인에서의 소규모 전투, 국지전 등에서 이득을 취하며 게임을 꾸역꾸역 이끌어나갔으나, 랭킹 1위인 앱도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몫을 다 해냈고 나머지 팀원 셋이 상대팀에게 계속해서 킬을 허용함으로써 전황이 굉장히 불리해졌다.
[ aiw83 : 와 한타수준 미쳤다 ]
[ 오후한시 : 우리랑 같은게임 하는거 맞음? ]
[ 낡은손톱깎이 : 쌍방 펜타킬ㅋㅋㅋㅋ ]
[ 고구마튀김 : 방금 5킬씩 먹은 테이커와 머프트의 캐리대결이다 이건 ]
게임은 장기전으로 흘러갔고 최후의 대결이 펼쳐졌다.
결과는 아쉽게도 패배. 분전했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시작되고 45분만에 게임이 종료된 시점에서 지혁의 KDA(킬/데스/어시스트)는 12/1/10. 5vs5 대규모 교전에서 상대 원딜러에게 올킬을 허용했을 때를 제외하면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 렐은 팀게임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뭐야….’
이런 활약을 펼치고 지면 잠깐 현자타임이 와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 지혁은 게임의 승패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팀게임이므로 지혁이 아무리 잘해도 지는 경우는 있을 수밖에 없다. 지혁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이 판에서 지혁이 못한 부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차피 다음게임 이기면 그만이고, 지혁은 마음먹고 게임을 주구장창한다면 언제든 랭킹 1위를 찍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혁은 멘탈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그를 당혹시킨 것은 다른 쪽이었다.
[ 시청자 수 : 1537 ]
아무것도 안하고 방송을 키고서 그냥 게임만 했을 뿐인데 시청자 수가 천명이 넘었다. 순전히 ‘챌린저 유(Challenger Yoo)’의 이름값으로만 이뤄낸 결과였다. 아직 방송을 시작한지 1시간도 되지않은 시점, 채팅은 굉장히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특히 방금의 명승부를 복기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이래도 되나?’
간간히 질문이 올라오기는 하는데,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하면서 잘들 논다. 지혁은 의아함이 생겼지만 지금 당장 없는 장비를 마련할 수도 없고, 하고싶지도 않았기에 오늘은 그냥 얌전히 게임이나 하기로 한다.
그 뒤로 무려 여섯 판을 해서 전부 이기는 엄청난 위업을 보인 지혁은 방송을 종료하기 전에 랭킹을 확인해보았고 그의 랭킹은 테이커를 제치고 2등이 되어있었다.
지혁은 메모장을 켰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시험삼아 켜본 것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봐주실 줄은 몰랐네요.
다음에 올때는 마이크 챙겨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뽀루루 : 꼭 와요 ]
[ 개굴읫 : 리쿠신 개잘하시네여 ]
그렇게 방송을 종료한 지혁은 잠깐 오늘의 방송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재밌는데?
처음 게임을 했을때와 같은 충격. 지혁은 첫 방송에서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지혁은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은근 관심종자의 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나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가진 실력을 인정받고 싶으며, 재능을 인정받고 싶고, 작품을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소설이야 이제 독자적인 분야에 도달했다고 생각되니까 더 이상 큰 욕심은 나지 않으나, 아직 그에게는 도전하지 않은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하는 쪽도 생각을 해봐야겠어.’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그저 취미생활 정도로만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지혁의 관심을 더 모으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게임을 많이 하기도 했고,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 * *
다음날이 되었다. 지혁은 일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어제 방송을 그렇게 종료한 후에 급하게 전자상가로 가서 마이크를 구매해왔다. 오늘은 말을 하면서 방송을 해볼 생각이었다.
On Air.
[ Koni : 떴다리 ]
[ 공공장소예절 : 1빠 ]
[ 뚝배기깨졌죠 : 1빠 ]
[ 세이굿바이 : 와! 아침방송! ]
어제 즐겨찾기를 등록해둔 시청자들이 있었는지 곧장 인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잠깐 그것을 보고 있던 지혁은 곧장 랭크게임의 매칭을 시작했다.
‘긴장되네.’
잠시 목을 가다듬기 위해서 ‘큼’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실시간으로 반응이 올라온다.
[ 엄석대 : 와! 기침! ]
[ 이중인격 : 진짜 마이크 준비해 왔네ㅋㅋ ]
“안녕하세요. 챌린저 윱니다.”
[ 난말로안해 : 목소리 좋다 ]
[ 귀여운릴리 : 캠도 켜주세요 ]
캠은 별로 키고 싶지 않다.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첫인사 이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그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 귀여운릴리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아… 귀여운릴리님 만원 감사합니다.”
소설로 벌어들이고 있는 돈이 많아서 굳이 방송으로까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물론 돈이야 많으면 좋으니 주면 감사히 받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간단히 소통을 하던 중 게임이 잡혔고, 지혁은 가볍게 1승을 챙겼다.
“두 판만 더 이기면 1등이네요. 한 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lel) 챌린저 유 1등 달리기. 2승하면 랭킹 1위 ]
방송을 그렇게 바꾸니 확실히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같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2천명을 돌파하는 것을 확인한 지혁은 웃음을 머금으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안풀렸다. 그 뒤로 한 판을 더 이겼으나 무려 2연패를 박으면서 단숨에 1위와의 격차는 3게임으로 벌어졌다. 지혁은 이를 악물고 다시 게임을 플레이해나갔고, 그 뒤로 4승 1패를 하며 총 전적 6승 3패를 달성했다.
그결과 마침내, 지혁의 랭킹이 1위가 되었다.
‘히엑. 만 명이 보고있는데?’
아까 언뜻 7천명을 돌파한 건 확인을 했었는데 게임에 열중하는 사이 시청자가 만 명을 넘어버렸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목표했던 1위를 찍어서 기쁘네요. 다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벌써 끝이냐, 이제 들어왔다, 일반이라도 한 판 하고가라 등의 다양한 반응이 있었지만 지혁은 곧장 방송을 종료했다.
‘재밌다…!’
그저 애니메이션 제작만이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줄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제대로 키워볼까?’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내일은 아마 방송을 키기가 힘들 것이다. 당장 해야할 일이 많으니까.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지혁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