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26화 (26/116)

00026  OTT 플랫폼 아이펜(OTT Platform ipen)  =========================================================================

지혁을 걱정케 했던 유일한 문제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지혁이 어리다는 것에 있었다.

그가 한 30살쯤 되었더라면 이제껏 열심히 글도 쓰고, 애니메이션 제작도 했다는 식으로 둘러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막 20살이 되었을 뿐이고 그런 그가 혼자서 말도 안 되는 퀄리티를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의 제작까지 해냈다는 것은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긴 시간 썩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소설처럼 한 번에 많은 양을 풀어낼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계적으로 접근을 하려고는 하나, 지혁은 곧장 자신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애니메이션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 딱 이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제가 제작한 홈페이지입니다.”

왼쪽에 은서가, 오른쪽에 차현진이 서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혁은 곧장 홈페이지로 들어가보았다. 공들여 만들어두었기에 홈페이지는 작은 오류도 없고, 깔끔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지혁은 차현진에게 충분한 설명을 곁들였다. 유저가 원하는대로 배경색과 글자색을 바꾸거나 크기, 간격, 장평 등을 조절하는 것의 프리함은 기본옵션에 지나지 않는다. 지혁이 직접 제작한 폰트들도 많았고 야간 모드, PC모드, 어플 모드 등으로 자유롭게 전환도 가능하게 해두었다. 지혁은 PC로 들어가서 시험삼아 올린 글을 읽어보는 과정을 보여준 뒤에, 그의 핸드폰에 어플을 깔아서 핸드폰으로 어떻게 볼 수 있는지도 확인시켜주었다.

“글을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자 신경을 많이 썼고요. 제가 핸드폰으로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 피로함 등을 개선하여 편의성과 가독성,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지혁이 그렇게 말하면서 차현진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지금의 각종 플랫폼들의 완성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현진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님?”

“아… 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도 될까요?”

지혁은 그뒤로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계정만을 생성할 수 있으며, 계정에 연동해서 이전에 글을 어디까지 읽었는지를 알려주는 책갈피의 기능을 설명함과 더불어 추천기능은 일부러 넣지 않았다(어차피 지혁의 소설만 연재될테니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는 말까지. 지혁이 룸에서 고심하면서 제작한 플랫폼의 시스템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이 찬찬히 이어졌다.

“그리고 만화와 영상의 시스템도 만들어두었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죠.”

이번에는 웹툰이었다. 지혁은 확대 및 축소, 밝기 등의 명암적인 부분, 핸드폰으로 볼 경우엔 1개의 페이지가 온전하게 들어차도록 설정하는 부분과 원한다면 확대를 고정해서 손짓으로 볼 수 있게도 가능하다는 등의 설명을 이어나갔다. 역시 핸드폰으로 만화를 볼 때 불편함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좀 크게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낸 종합본이었다.

“이것은 샘플이지만, 저는 만화도 그려낼 생각에 있습니다. 물론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시스템은 공개되지 않으며 관리자인 저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해뒀습니다.”

지혁은 올려둔 시험삼아 그려보았던 만화를 휙휙 넘기다가 창을 끄고서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영상입니다. 영상은 최대한 화질에 신경을 썼습니다. 화질조정은 불가능하며 무조건 최고화질로만 시청할 수 있도록 해뒀고요. 핸드폰의 경우엔 잠금기능도 따로 추가해 두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조정이 가능하도록 해뒀죠.”

그러면서 지혁은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중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아직 오디오 쪽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완성된 영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상미적인 부분은 자신있다.

설명은 대충 끝난 것 같다. 지혁은 얼이 빠진 것 같은 두 여성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플, 홈페이지 등에 접속을 하게될 경우의 대비도 다 되어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혁은 적당한 핑계를 원했고, 딱 좋은게 있었다.

“저는 누군가가 제 작품을 유출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례가 꽤 많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플랫폼이든 해킹 등의 방법으로 작품이 무료로 풀리는 경우들이 있죠. 저는 그래서 독자적인 방어 프로텍트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제가 제작한 OTT 플랫폼 아이펜(OTT Platform ipen)은 복사 등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제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경우엔 직접 필사를 해서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런 분들은 법적으로 대응을 해나갈 예정에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뿌리뽑을 수 없다. 불법공유자들은 어떤 방식이든 사용할 것이다. 개인이 직접 필사를 한 파일을 개인에게 거래할 경우 막을 방법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지혁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이리저리 퍼나르고 다닐 일은 없겠지.’

그게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는 또 있다.

말했듯 지혁은 자체적으로 시스템 프로텍트를 만들었다. 그 과정은 참 고생이었다. 맨 땅에 헤딩이었다고나 할까. 복잡하고 어려운 공부였고,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만 했다. 어쨌든 그 결과 국가단위의 전력이 와도 뚫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만한 것을 만들어내기는 했다. 물론 그것은 온전히 플랫폼 아이펜을 수호하는데 활용될 것이다.

“결국 이 플랫폼은 저의 각종 작품들을 모두 서비스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설명은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지혁이 그렇게 묻자, 차현진이 갑자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 뭐가요.”

지혁이 어리둥절해서 묻자, 차현진이 숙였던 상체를 일으키고는 말했다.

“저는 작가님께서 플랫폼을 제작했다고 하셨을 때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변명같겠지만 작가님의 글 솜씨는 역사에 남을 수준이고, 그런 작가님께서 다른 분야에 신경쓸 겨를이 없으셨을 거라는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억측이었습니다만….”

역사에 남을 수준은 과장이 좀 심하다.

물론 지혁 역시 자신의 글이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전국적으로 따져보면 그의 소설만한 인기를 누렸던 것들이 아예 없다고도 볼 수 없다. 나는 황족이다, 기억(Memories), 햇빛조각사 등의 시대가 낳은 대작들이 존재한다.

차현진이 얼버무리자 지혁은 계속해보라는 듯이 턱짓을 하며 살짝 식어버린 커피가 담긴 컵을 들어 올려 한모금 마셨다.

“오늘 올리신 공지글을 읽어보았습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와 무난한 일상을 겪어왔던 저로써는 작가님과 동생님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오셨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성하시어 위업을 달성하고 계시는 작가님의 위대함을 보다 더 절감하였고, 그렇기에 두 분에 대한 제 태도는 한층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현진은 평소 진지한 편이지만, 오늘의 진중함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플랫폼이 마음에 든다는 거죠?”

“…예.”

뭔가 할말이 잔뜩 있어보이는 차현진의 말을 끊으며 그렇게 묻자 그녀가 약간의 텀을 두고 대답했다. 그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보았고, 기분도 전혀 나쁘지 않았었기에 지혁은 빙긋 웃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                 *                 *

당장 플랫폼에 영상부터 올릴 일은 없을 것이다. 완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지는 않았을 터였다. 지혁은 다른 플랫폼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들부터 차근차근 업로드를 진행할 생각에 있었다. 그렇게 안정화가 되기 시작할때쯤이면 아마도 영상들의 오디오 작업도 완전히 마무리가 되어있을 것이다.

‘한….’

3~4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 제작 : 아이펜 스튜디오(ipen Studio) ]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을 돕는다는 설정을 도입할 생각이었다. 프로텍트를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엔딩 크레딧은 그렇게 해결할 계획에 있었다.

‘이전에 만들었던 아이튜브 아이디는 그대로 쓰면 되겠지.’

지혁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차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들어가세요.”

“주변을 돌면서 대기하겠습니다.”

이만 가도 된다는 뜻을 담아서 말하자 차현진이 그렇게 말해왔다. 진짜 그럴 것 같은 기세다. 차현진의 말에 룸미러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오래 걸릴 겁니다. 저희가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택시타면 됩니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부웅…!

그렇게 지혁과 은서를 근처 백화점까지 태워준 차현진의 차가 떠나고, 지혁은 왠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딱히 동정의 감정은 아닌 것 같은데, 지혁과 은서의 과거를 알게된 차현진의 태도는 극진한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빠. 가자.”

은서는 지혁이 만들었다는 플랫폼의 시스템을 확인하고서 나름대로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지어보였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만 그랬을 뿐이었다.

그래도 플랫폼을 제작했다는 것은 허용선 정도일 것이다. 은서나 차현진은 지혁이 개발한 프로텍트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도 체감하지 못하는데다가 아직 지혁은 그들에게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서와 차현진은 쉬이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시험삼아 보여준 영상은 그냥 어디선가 만든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둘 한테도 비밀로 해야되겠지.’

가상의 팀. 베일에 쌓인 그들의 존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 설정을 쓸 생각이다. 지혁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일테니까.

“사람이 별로 없네. 그치?”

지혁은 기분이 좋은지 그를 채근하는 은서와 함께 백화점 내부로 들어갔다. 당장 입을 옷도 없었다. 그래서 속옷을 비롯해서 각종 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들르게 된 것. 물론 겸사겸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것저것 사가면 더 좋다.

지혁은 품을 뒤져서 카드 하나를 꺼냈다.

“옷은 따로 움직여서 사자. 시간도 아낄겸. 그 뒤로 이것저것 사는건 같이 사고. 결제는 이걸로 해.”

“굳이? 오랜만에 오빠랑 데이트 기분이나 낼랬는데.”

지혁은 그에 짧게 덧붙였다.

“그래서 옷만 따로 사자고 하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여자속옷을 파는 곳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

“왜. 나랑 같이 가는건데 뭐.”

“아무튼. 1시간이면 되겠지?”

“알았어.”

“돈 아끼지 말고 사고싶은 건 다 사. 거기 들어있는 돈 다써도 되니까.”

“여기 얼마가 있는데?”

은서의 물음에 지혁은 잠깐 멈칫했다가 답했다.

“한 1억 정도.”

“이 오빠가 미쳤나봐! 무슨 옷 사는데 1억을 쓰래?”

은서는 지혁의 팔을 퍽퍽 치더니 어쨌든 잘 쓰겠다는 말과 함께 멀어져갔다. 지혁은 시간을 확인하고서, 그녀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양복은 있으니까 일상복을 좀 사면되겠지.’

어제 잠깐 들러서 몇벌 사기는 했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속옷은 물론이고 양말 등도 필요하며 모자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안녕하…세요.”

사실 브랜드같은건 잘 모른다. 지혁은 옷 따위를 사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사고 앉아서 쉬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냥 보이는 곳 아무대나 잡고 들어가니 여성 종업원이 인사를 해오며 다가왔다. 지혁은 잠깐 무심하게 슥 둘러보다가 연한 청바지와 티를 몇 개 집어들었다.

“계산하고 잠깐 탈의실 사용해도 되죠?”

“네?! 아, 네….”

지혁은 곧장 옷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이른 오전이라서 어차피 매장내에 사람도 없었다. 그 뒤로도 각종 색상의 양말 등을 꺼내고 모자도 하나 구입했다.

‘좀 많이 샀나?’

되는대로 막 집다보니까 무려 쇼핑백 4개분량이다.

“유… 63만 4천원입니다.”

지혁은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지혁은 가방들을 쓸어들고선 탈의실로 향해서 맨처음 골랐던 바지와 티로 갈아입었다.

‘괜찮나…?’

지혁은 아직까지도 바뀐 외모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판에서는 본래 그의 느낌이 은연히 풍기기는 하지만 솔직히 딴 사람 같았다. 거울을 볼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감사합니다.”

지혁은 종업원의 인사를 뒤로한 채 쇼핑백들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남은 시간동안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쉴 생각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네. 사이즈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응…?

말을 하고서 잠깐 아래를 내려다보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카드를 꺼내던 지혁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정면을 쳐다보았다.

“어?”

상대도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감탄성을 내뱉는다. 지혁은 멍하니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지혁과 여성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잠깐 뒤, 지혁의 입이 열렸다.

“문하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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