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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24화 (2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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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릭.

문이 열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반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지혁은 은서에게서 받아든 가방을 현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에 보이는 그녀의 방에 슬쩍 내려놓았다.

“와 집 너무 좋은데요.”

김찬욱의 말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고프지? 금방 저녁해줄 테니까 놀고 있어.”

사실 제일 놀란 것은 은서같아 보였다. 지혁은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 집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은서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별 거 아닌 척을 하고 싶었기에 꾹 참았다.

‘솜씨를 좀 발휘해 볼까.’

지혁은 미리 오늘 입을 옷을 사둔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정장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덜컥.

“오빠….”

“응? 왜.”

슬며시 문을 들고 고개만 빼꼼 내민 은서가 지혁이 옷을 다 갈아입은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서는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예전부터 얘기는 하고 있었는데 오늘 딱 끝났거든. 아, 원래 집에 있던 물건 대부분은 버렸어. 너 놀래켜 주려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아직 완전히 정리가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 뭐… 딱히 필요한 건 없는데.”

지혁은 빙긋 웃으면서 은서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톡 치며 방을 나섰다.

“가서 놀아. 아, 냉장고에 음료수 사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라도 애들 갖다주라.”

지혁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이것만으로는 안 돼.’

은서에게 오기 전, 미리 갈비찜을 해두고 가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조금 더 힘을 줘서 음식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낀 지혁은 눈을 빛내면서 아까 구입하고 남은 재료들을 떠올렸다.

‘계란말이를 좀 크게 하고 된장찌개를 끓이자.’

결론을 낸 그는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룸에서 있을 당시에 그는 요리솜씨도 좀 키우는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 1년정도를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었다. 요리라는 것은 가짓수도 많고 동일한 이름의 요리라고 할지라도 레시피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1년만에 요리를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혁의 요리실력은 이미 일류급으로 올라있는 상태였다. 만들 수 있는 요리의 맛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식 쪽은 자신있다.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 아니야. 그냥 편하게 놀아. 나 요리하는 거 좋아해. 은서한테도 신경쓰지 말고 놀라고 했다고 전해줘.”

“아, 네….”

한창 요리에 열중하는데 김찬욱이 와서 물어왔다. 지혁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그리 바쁜 것도 아니고, 큰 문제는 없었다.

‘후유.’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어느덧 요리들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급하게 만든 감자볶음에 김치, 데운 갈비찜. 된장찌개도 거의 완성단계고 계란말이는 이제 만들기만 하면 된다.

‘밥도 다 됐고….’

…….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숨 돌리던 지혁은 문뜩 거실이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쥐죽은 것처럼 작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걸까? 요리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깨닫지 못했었는데, 고등학생 친구 셋이 만났다기에는 너무 고요하다.

의문이 생긴 지혁이 슬쩍 몸을 움직여서 거실 쪽을 쳐다보니, 셋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삭막한 세상이 다 되어버렸구만.’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리 풀어둔 계란물을 기름을 두르고 달군 팬에 시원하게 붓고 계란말이를 시작했다.

지혁은 비닐장갑을 끼고 그림처럼 완성된 계란말이의 커팅식을 끝내고서 계란말이가 담긴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고 받침대 위에 된장찌개도 얹었다.

“다 됐어 얘들아.”

지혁의 말에 저쪽에서 하나 둘 분주히 일어나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지혁은 밥그릇에 밥을 적당히 퍼서 양손에 두 개씩 한번에 네 개를 날랐다.

“밥 더 있으니까 혹시 부족한 사람은 말하고.”

“네. 감사합니다.”

석식을 먹었을테니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겠지만, 평소 이런 것을 먹는다는 식으로 일종의 과시를 하고 싶었기에 용을 좀 썼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와. 진짜 맛있어요.”

“그래?”

김찬욱이 찌개를 한숟갈 떠먹더니 감탄성을 내뱉었다. 지혁은 왠지 쑥스러웠지만 태연을 가장하며 답했다.

“형님 요리 진짜 잘하시네요. 사실 저 배 별로 안고팠거든요.”

“진짜? 왜?”

“석식 먹었으니까요.”

지혁은 고등학교를 안가봐서 석식을 언제 먹는지를 모른다. 물론 고등학생들이 저녁에도 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방금 김찬욱이 말하기 전까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질 않았다.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

“네. 근데 이거는 밥 한 공기 뚝딱이겠는데요.”

열심히 떠들어대는 김찬욱과는 다르게 두 여인은 말없이 먹는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지혁은 은서가 정신없이 갈비를 뜯는 모습을 보고있다가 문뜩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근데 아까 보니까 너희 셋다 핸드폰만 보고 있던데. 혹시 어색한 사이니?”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얘네가 행님 소설에 정신 팔려있으니까 저도 그냥….”

어, 엉?

지혁은 예상치못한 답변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지은 얘는 오늘 입문했거든요. 야자시간에 핸드폰 보다가 뺏겨가지고 크크크. 선생님한테 사정사정해서 겨우 찾아온 겁니다.”

“야아~”

한지은이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흠칫 놀라더니 뭐 그런걸 말하냐는 듯이 핀잔을 주었다. 사실 그러지 말라는 식의 애교와 비슷했다.

그러자 은서가 갑자기 급발진을 했다.

“야. 너 왜 계속 지은이 괴롭혀.”

“내, 내가 뭘….”

지혁은 그렇게 셋이서 투닥대는 것을 들으며 식기를 놀렸다. 여럿이서 먹어서 그런지, 룸에서 먹던 호화로운 식단보다도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행님.”

“아, 내가 치울게.”

“아뇨. 이거라도 하게 해주세요. 정말 맛있었거든요.”

그들은 정말 맛있었는지 지혁이 밥을 반정도 비웠을 때 이미 한 그릇씩 뚝딱한 상태였다. 저녁을 먹었다던 그들의 말 때문에 더 먹으라고 요구할 수 없었던 지혁은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식기를 정리하고, 지혁이 식사를 마치자마자 식탁을 치우는 것을 구경하듯 보게 되었다. 뭐, 지혁이 밥상을 차려줬으니 이 정도 뒤처리는 받아도 되는 것이긴 하다.

“그림 한 번 볼까?”

그러고 보니 아직 김찬욱이 주고싶다던 그림도 보질 못했다. 지혁의 말에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방쪽으로 향했다.

곧이어 조심스럽게 그림을 꺼내드는데, 지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잘 그렸네.’

물론 지혁이 직접 그리는 그림보다야 못하다. 하지만 이정도만 되도 엄청 잘 그린 편이었다. 어쩌면 김찬욱은 미술쪽에 소질이 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지금껏 지혁이 받아온 팬아트들 중에서는 원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 잘 그렸는데? 공손영이지?”

“네! 바로 알아보시네요. 감격했습니다.”

검후(劍后) 공손영. 후유가(後有歌)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캐릭터였다. 인기투표에서 무려 70%이상의 지분을 가질 정도. 주인공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의 대단한 인기를 얻은 그녀의 특징은 소도(小刀)라고 생각될 정도로 짧은 검과 허리까지 닿을 듯한 긴 생머리가 일정한 길이로 인해 끝부분이 선처럼 보인다는 것에 있었다. 후유가의 독자들이 보내준 팬아트 11개 중에서 주인공이 그려진 1개를 제외한 10개가 모두 그녀일 정도로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림은 어여쁜 여성이 풍성한 한복같은 옷을 입고 왼손에 작은 검의 검집을 잡은채 차분하게 서있는 느낌으로 그려져 있었다. 지혁의 마음에 쏙 드는 일러스트였다.

“이 정도면 바로 표지로 써줄 수 있지. 아니 그냥 고정표지로 써도 되겠어.”

“정말요? 와 감사합니다 형. 아~싸.”

김찬욱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주먹쥔 손을 붕붕 휘두르기까지 하는 모습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실 제가 미겜천을 특히 좋아해서 이하연을 그리고 싶었는데요. 이하연은 공손영과는 다르게 인물묘사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별로 없고, 후유가처럼 히로인의 임팩트가 뛰어나질 않다보니까 결국 고민하다가 공손영으로 결정했습니다.”

미겜천은 미니게임천국을 줄인 단어일 것이다. 댓글에서 종종 본적이 있는 것 같았기에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까 인쇄한 거 같은데, 파일도 가지고 있는 거지? 메일로 보내줘.”

“알겠습니다.”

지혁은 그림을 방으로 들고가서 책상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러고서 방을 나서는데, 김찬욱과 은서가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지혁이 다가오자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떨어진다.

뭔가 획책(劃策)하고 있군. 지혁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모른 척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시간이 좀 늦지 않았어? 늦게 가더라도 부모님한테 연락은 드려야되는 거 아니야?”

“아까 준비하고 계실 때 해뒀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지은이 갑자기 양손으로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연습장과 펜.

“사인해달라구?”

“네.”

오늘 내 소설을 봤다고 하지 않았나? 하루만에 내 팬이 되어버린 것인가?

지혁은 웃음이 나왔지만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고선 소파 앞 유리탁자에 쭈그려 앉아서 사인을 시작했다.

To, 지은

“행님 이게 두 번째 사인인가요?”

“음. 너한테 해주고 나서 다른 사람한테 해준 적은 없어.”

은서는 딱히 내 사인을 요구해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지은이 두 번째 사인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감사합니다.”

한지은은 다소곳하게 내가 건네는 연습장과 펜을 받아들고서는 그것을 조용히 가방에 넣는 기색이었다.

*                 *                 *

“그래, 다음에 또 놀러와.”

“저 진짜 또 올 겁니다. 너도 들었지?”

“어. 빨리 가기나 해. 지은이 꼭 데려다주고.”

“알았어. 갈게. 갈게요 형.”

문이 닫히고, 은서는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같아 보이는 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보던 지혁은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자 씨익 웃었다.

“기분 좋아?”

“응. 고마워 오빠. 사랑해.”

“징그러~ 떨어져!”

양팔을 벌려 안긴 은서를 내려다보며 지혁이 부러 장난을 치자, 정말 고마운지 평소같았으면 ‘뭐라고?!’ 등의 말을 하며 화내는 척을 했을 은서가 그의 요청대로 거리를 벌리며 아하하 하고 웃었다.

지혁은 그녀에게 집의 구조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진 뒤에 마지막으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널찍했고, 침대와 책상 두 개, 그 중 하나에 세팅되어있는 컴퓨터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쉬어. 나도 예정에도 없던 3부를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바빠질 것 같으니까.”

아까 얘기를 하던 도중 은서가 조심스럽게 미니게임천국 3부를 써주면 안 되겠냐는 말을 해왔다. 그 순간 지혁은 김찬욱이 미니게임천국을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고, 친구들 앞에서 은서의 기를 살려주자는 의미에서 흔쾌히 수락을 한 것이다. 차현진도 그렇고 주위에서 워낙 3부를 써달라고 사정들을 해대니까 결국 져준 것이다.

“고마워 오빠. 진짜.”

“간다.”

지혁은 문을 닫았다.

은서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었다.

'남는게 시간이니까.'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서 소설을 좀 더 이어서 써주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좀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만 은서도 예전부터 3부를 요구해왔기도 하니까 써주기로 한다.

"내일부터 바빠지겠군."

지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의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은서의 방에서 꺄악하고 환희에 가득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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