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18화 (18/116)

00018  비상(飛上)  =========================================================================

“아, 오셨어요?”

“네.”

정장을 차려입은 30대 초중반쯤의 인상을 가진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혁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마주보면서 인사했다.

“아무거나 시키라고 하셔서,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켰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

사실 안 괜찮다. 아메리카노는 지혁의 입장에선 굉장히 쓴 음료였다. 그러나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니까, 지혁은 그녀가 손을 뻗어서 가르킨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지혁이 자리에 앉자,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4월의 수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벌써 5월이 되었다.

지혁이 신을 만나고부터 대략 4개월.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혁은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에 막 스무 살이 된 그가 그보다 12살이나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전문고용인으로 두고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다 무너져가는 집에서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아갔던 지난날의 지혁과는 너무 상반되지 않는가.

지혁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 상황이 많이 달라지는 것에 비해 지혁은 꽤나 한가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혁의 출판사 아이펜은 나날이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그가 혼자서 출판사로써의 일을 모두 해낸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준비를 다 해두었다고는 하나, 그는 혼자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지혁은 그렇게할 생각도 없었다. 모든 과정을 익혀둔 것은 어디까지나 초기 단계에서 약간의 오차나 문제도 발생하기 않도록 하기위한 탄탄한 밑거름과도 같은 것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기반을 다질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지혁은 자금을 모아서 사무실을 차렸다. 이사를 먼저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벌어들인 수익 전부를 과감하게 투자해서 작은 장소를 마련했고, 그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출판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인선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원수가 달랑 4명인 사무실 하나가 생겨났다.

눈앞의 여성은, 그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요.”

지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지혁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명이 출판사를 운용하되, 그들에게 주는 월급을 제외한 모든 수익이 그에게 넘어가는 구조였다. 또한 그의 출판사는 순전히 조커 유, 그의 작품만을 출판할 생각이므로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출판사의 일을 모두 해내면서 혼자서 일을 다 떠맡는 게 아니라 그의 작품만을 출판해주는 전담 출판사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 구조이니까 당연히 여러 가지 절차가 생략될 수 있었다. 작가와 컨택을 할 필요도 없으며, 출판계약 역시 필요 없다. 교정, 교열 역시 지혁이 쓴 모든 글에 완벽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불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자인, 편집, 기획 등의 부분이고 그것을 해줄 직원을 뽑는 과정이 필요했다. 지혁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게 공부를 준비를 해두었지만, 그것들을 붙잡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지혁은 지난 한달간 회사를 운영했고, 앞으로도 그의 출판사 아이펜을 전두지휘 하게될 전문고용인을 쳐다보았다. 사실상 그것은 지혁의 소설을 전담하는 전담팀의 대장과도 같다.

여하튼 차현진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꽤나 유능했다.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 …수필이군요.”

“네.”

“종이책으로 인쇄를 원하시는 거군요.”

지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은 룸에서 소설만 쓰지 않았다. ‘20살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어디까지나 지혁의 경험 등과 이제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점들을 종합해서 만들어낸 낙서에 불과하다. 다만 지혁은 단순히 장르소설만이 아니라 일반문학계에도 진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틈틈이 가다듬으면서 하나의 책으로 편찬되도 될만한 글을 짜둔 것이었다.

힘든 유년기를 보냈기에 지혁은 다소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다. 그것이 반영된 글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성과는 소설로 내고 있으니까, 수필은 그냥 도전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미니게임천국이나 왕처럼 초장편은 아니긴 해도 200편 내외의 작품 두 개를 넣어두었습니다.”

지혁은 이제 소설의 연재 속도를 조절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당분간 집필계획은 없다. 그럴 거였으면 룸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4월 한 달의 수익만 하더라도 10억에 달한다. 직원들 월급은 거기서 빼봤자 거기서 거기고, 그 돈의 대부분이 지혁의 통장으로 입금되리라. 그거면 당분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굳이 급하게 10편씩 연재를 하면서 돈을 쓸어모을 생각은 안해도 괜찮다. 소설당 하루 1~2편 정도를 연재하면서 완급조절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후유가와 미니게임천국은 미리 다 써둔 것이라는 설정이고, 왕부터는 차근차근 쓸때마다 연재를 한다는 식의 개념을 주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미니게임천국이 완결나면 후속작이라는 개념으로 연재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둘 다 동시가 아니라 하나씩 말이죠. 왕이랑 추가적인 작품 하나. 저는 그렇게 두 가지의 작품이 연재되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내 의도는 착착 먹혀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초콜릿페이지와 계약을 한 당일에 나는 왕에 공지를 띄웠고 그때부터 이미 연재속도를 조절해가고 있었다. 하루 2편. 워낙 써둔 분량이 많은 소설이니 2편씩 연재를 한다고 하더라도 연재는 내후년이나 되어서야 끝나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신 수필원고는 그것과는 별개로 종이책 출판을 추진할까요?”

“네.”

지혁은 그러면 된다는 뜻으로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자 차현진이 말했다.

“별개의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며칠사이 출판사로 조커 유의 인터뷰를 요청한 곳이 두 군데 정도 있었습니다. 어찌해야할지….”

“인터뷰는 제가 별도의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는 다 거절해주셨으면 합니다.”

지혁이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취재를 원하는 곳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지혁은 그런 모든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중이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별로 하고 싶지 않고, 귀찮을 뿐이다.

그렇게 차현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대강 상황을 정리한 지혁은 더 이상 업무적인 내용은 없을 것 같아 아메리카노를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누나. 사무실 분위기는 어때요?”

“그냥 뭐… 별 거 없어.”

띠동갑인 그녀에게 존댓말을 듣는 건 지혁으로썬 사실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최소한 공적인 부분에서는 철저하기를 원했다. 허나 반말이 나오진 않았다. 결국 지혁은 상호존대를 하는 것으로 그녀와 합의했다. 상관이 부하직원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아주 경우가 없는 건 아니라서 그녀는 쉬이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혁이야 본래 그렇다 쳐도, 그녀는 은근히 지혁을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일이 많은 것도 아니지 않나요?”

“이제 바빠지겠지. 작가님이 본격적인 일감을 가져와 주셨으니까.”

그간 그들은 좀 놀고먹었을 것이다. 후유가, 미니게임천국, 왕은 지혁이 어지간한 절차는 다 끝내놓았었으니.

말투는 투덜대는 것이지만, 그녀는 사실 돈만 주면 일이 힘들어도 상관없다는 주의였다. 워커홀릭이라고 해야 할지. 아마 그녀 휘하의 출판사 직원들은 고생을 좀 하게될 것이다. 정시퇴근을 하고 싶어도 그녀가 사무실에서 일에 빠져있으면 눈치가 보일테니.

게다가 우리 출판사는 지혁 본인, 조커 유(Joker U)의 글만을 출판하는 곳이다. 헌데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고, 나를 알고 있는 것은 그녀뿐이다. 이것은 은근한 권력으로써 여겨질 요소일게 분명하다.

나는 그녀를 제외한 직원들에게 정체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타다다닥.

지혁은 뭔가를 하는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가 편했던 거죠. 제가 뭐 월급을 떼먹는 것도 아니고. 저희 솔직히 페이 엄청 쌔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차현진 뿐만 아니라 출판사 직원들 전체에게 상당히 높은 봉급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그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싸장님.”

“안 어울려요.”

콧소리가 섞인 음성으로 딸랑거리던 차현진은 지혁의 단호한 음성에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지혁을 쳐다보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아메리카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더럽게 쓰긴 한데 은근히 먹을만 하다?

“저… 사장님. 아니, 작가님.”

“왜요?”

갑자기 말을 해오는 그녀에게 지혁은 고개를 들며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미니게임천국 3부는 정말 계획이 없으신가요?”

“…….”

미니게임천국은 2부까지 모두 완결이 나버렸다. 왕(王)과는 다르게 연재속도를 조절하지 않았기에 완결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오히려 완결이 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미니게임천국의 독자들은 아직 미니게임천국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3부를 외치는 그들의 댓글은 지혁도 간간히 반응을 살피기위해 플랫폼에 접속할때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혁은 3부를 집필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누나까지 왜 그래요. 말했잖아요. 사실 원래 1부에서 끝내려고 했다고.”

차현진은 미니게임천국의 팬이었다. 지혁이 그녀를 영입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그녀가 아이펜에 지원한 것은 순전히 미니게임천국을 재밌게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미니게임천국을 쓴 작가 조커 유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지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던 전례가 있었다.

“아쉬워서 그러지.”

안 그래도 은서가 미니게임천국 3부도 써주면 안되냐고 성화여서 지혁도 난감하다. 룸에서 3년을 쓰고와서 현실에서 미니게임천국 2부를 쓰느라 또 2달가량의 시간을 날려먹었다. 수중에 써둔 소설이 없는 것도 아니고 10개 이상의 작품이 남아있는데 굳이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작가가 끝내고자 한 순간 소설의 수명은 거기서 끝난 거에요.”

“…….”

지혁 역시 시청자로써, 독자로써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 등을 읽고나서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너무 재미있는데 후속내용이 없는 것에 안타까워했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만 한다. 미니게임천국은 그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늘여쓴 작품이다. 지혁은 질질 끄는 것이 없이 그가 재미를 느꼈던 순간 작품이 깨끗하게 마무리되기를 원했다. 이것은 작가로써의 신념과도 같았다.

‘물론 미니게임천국은 더 써도 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개방적인 설정 자체가 지혁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30개의 게임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10개의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해둘 것을 그랬다.

“그러니까….”

우웅-

지혁은 뭔가를 더 말하려 할 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것에 손을 들어 올려 전화를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당연히 은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보는 번호다. 지혁은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 콜렉트콜입니다. 상대방을 확인하세요.

“…!”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소리에 지혁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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