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17화 (17/116)

00017  비상(飛上)  =========================================================================

“너무 재밌어. 진짜 가둬놓고 군만두를 먹이면서 글만 쓰게 하고 싶어.”

지혁의 입장에선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한 은서는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식기를 들어올려 싱크대에 내려다놓고선 입구쪽에 놓여있는 가방을 들어올렸다. 밥을 먹으면서도 지혁의 소설을 보는 것 같더니,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슥슥 매만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소설이 재밌어도, 외모관리는 여고생이 해야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보니 그 저번에 식당에서 봤던 애 있잖아?”

“누구? …아. 사인받아갔던?”

“응. 김찬욱이라고 나랑 같은 반이야.”

그것 참 기묘한 우연이네.

지혁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은서가 정리를 끝냈는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걔가 오빠한테 일러스트에 관해서 물어보라던데?”

“일러스트?”

뜬금없는 소리에 지혁이 반문하자 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확히는 표지. 자기가 표지그림 그려주면 표지로 써줄 생각이 있냐고 물어봐달래.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던데.”

표지라….

그간 팬들이 그려준 그림들을 번갈아가면서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던 지혁으로써는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퀄리티에 관계없이 팬의 마음, 정성이 감사했기에 지혁은 받는 그림마다 족족 작품설정에 올려두고 있었다. 미니게임천국은 수십장에 달하고, 후유가조차 10장 가까이 된다. 표지로 활용하는 것은 그것들 중에서 비교적 잘 그린 것들(지혁의 주관으로)을 선택하고 있었다.

물론 계속해서 그런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다. 최근 지혁은 그림을 익혀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팬아트는 뭐든 다 작품설정에 올려두고 있는데?”

“근데 팬아트로 받은 것들을 모두 표지로 등록하지는 않는다며?”

정말 그 김찬욱이라는 녀석은 지혁의 소설을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까지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보면.

“표지로 등록해도 괜찮을 것 같은 것들만 하고 있긴 하지.”

“그럼 그렇게 전할게. 어쨌든 팬아트를 받을 생각은 있다는 거지?”

“어. 잘 갔다와. 오늘은 만두 사오지 말고.”

그렇게 은서가 떠나자, 지혁은 조식을 마저 해치운 뒤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디.”

지혁은 곧장 플랫폼에 접속했다.

[ 후유가(後有歌) 397편(완결) ]

작품설명 : 후유(後有), 유전윤회(流轉輪廻)의 생사(生死)가 끊기는 마지막 몸. 100번째 인생을 시작한 순간 직감했다. 이번 생이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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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게임천국 1부 265편(완결) ]

작품설명 : 접속기에 칩을 꽂기만 하면 최대 30개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미니게임천국을 즐기는 게임천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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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게임천국 2부 180편 ]

작품설명 : 접속기에 칩을 꽂기만 하면 최대 30개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미니게임천국을 즐기는 게임천재의 이야기(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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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王) 180편 ]

작품설명 :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를 참칭(僭稱)하지 못한다.

조회수 : 2,03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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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고지가 코앞이네.’

솔직히 후유가가 조회수 천만을 넘길 것이라고는 지혁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혁의 관점으로 보면 후유가는 미흡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니게임천국에 비해 떨어지기는 해도, 후유가 역시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에 올라가는 조회수는 이제 10만 이하로 떨어져버렸지만 아직까지도 베스트 5위권을 간당간당 유지하면서 선방하고 있었다.

미니게임천국의 경우엔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1부의 경우 회당 평균 조회수가 5.5만을 넘길 정도로 미친듯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지혁 스스로도 황당하다고 느낄 정도인데, 평소 웹소설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미니게임천국에 의해 유입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소설계의 판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지.’

아직 지혁이 풀어낼 소설은 많이 남아있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볼만한 여건이 갖춰진다는 것은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예상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두 개의 편당과금 작품 미니게임천국 2부와 왕(王)은 지혁이 예상했던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부분유료로 했으면 2~3배의 성적을 거뒀을 것이 분명하지만 지혁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면 될 일이야.’

지혁은 머지않아 편당과금이 활성화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의 세계로 뛰어들 터. 당대에 연재를 하고 있을 작품이 무엇인지는 관계없다. 지혁의 작품을 재밌게 읽은 독자들 중 상당수는 소설가 ‘Joker U'의 이전 작품이 무엇인지 찾아볼 것이라고 생각되니까.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상대가 안 돼.’

조회수가 1500만이 다 되어가는 미니게임천국 1부와 이제 겨우 200만을 돌파한 왕(王). 허나 순수익만으로 따지고 들어가자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은 왕(王)이었다.

물론 지혁은 돈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공들여 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보지 않고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미래의 독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라는 작가 자체의 가치를 드높이는 전략을 세우고 움직여야한다.

‘왕. 너를 믿는다.’

미니게임천국에 비하면 왕(王)의 조회수는 동일편수임에도 150만이나 떨어진다. 그러나 지혁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미니게임천국 2부는 글솜씨가 훨씬 좋아졌다는 평이 종종 보일 정도로 잘 쓰여졌다. 당연히 지금의 지혁은 미니게임천국 1부를 집필할 때와는 실력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미니게임천국 1부를 재밌게 읽은 독자들 중에서 상당수가 넘어온 것에 의한 상승작용 때문에 미니게임천국 2부가 왕(王)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지, 장기적으로 보면 왕 역시 미니게임천국 2부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미니게임천국 2부는 330화정도가 끝인 것에 반해 왕(王)은 무려 1500편이 넘어가는 초장편의 소설이다. 이제 겨우 180화를 연재했을 뿐이고 시작이 느려도 착실히 팬층을 두텁게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누가 작가인지 모를 지경이군.’

특히 미니게임천국 2부에 비해 왕(王)의 서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서평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미니게임천국도 정말 재밌는 작품이고 자기도 재밌게 읽었지만, 왕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음달 수익이 기대되는걸.’

2월달의 수익은 5천만원이 조금 넘었었다. 1월의 2배정도 되는 액수. 허나 3월은 그것에 또 배 이상의 수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잠정적으로 액수를 추산하자면 대략….

“4억 정도.”

지혁은 새삼 편당과금의 위대함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혁은 정산쪽으로 들어가보았다가, 다시 연재작품을 확인하는 작품관리창을 들어가기를 반복하면서 성과를 꼼꼼히 확인해보고 있었다.

‘엉…?’

그때, 지혁의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마우스를 클릭해서 들어간 지혁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                 *                 *

초콜릿페이지라는 플랫폼은 작년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실패작 취급을 받았다. 지혁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1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올랐다. 무엇보다 초콜릿톡이라는 모바일 메신저 앱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 이외에도 이름난 작품들을 대거 영입하고 초콜릿톡과의 연동 마케팅 등을 선보이면서 입지를 다졌다. 물론 아직까지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으나,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

“아, 네.”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기는 하다. 오히려 지혁은 늦은 감이 있다는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초콜릿페이지에서 쪽지를 통해 컨택이 온 것을 확인했을 때 지혁은 그저 덤덤했던 것 같다. 당연히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 해도 되는 것인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혁은 바로 승낙의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그쪽과 전화로 연락을 하게 되었고 오늘 바로 시간이 된다는 말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계약을 진행해버렸다. 계약은 점심을 먹으면서 이루어졌고, 지혁은 자신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들을 뒤로한 채 식당을 빠져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고급음식점에서 밥을 먹어서인지 오히려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

여하튼 이로써 지혁은 두 개의 플랫폼에 동일한 작품을 동시에 연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저쪽에서 원했던 작품은 많았으나, 지혁은 ‘미니게임천국 1,2부’만을 계약했다.

‘판매가의 80%는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나오면서 지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보통 독자가 100원을 들여서 1편을 본다고 가정을 했을 때, 실질적으로 작가에게 들어오는 돈은 70원이다. 만약 지혁이 출판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출판계약을 통해서 출판사 밑으로 작가의 신분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경우, 이 70원을 가지고 얼마의 비율로 나눌지 협의를 하게 된다. 6:4면 지혁이 가지는 돈은 42원이 되는 것이고 7:3이면 48원이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판매가의 50%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엔 100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어서, 지혁은 50원을 가져간다는 조건이 된다. 수익금의 70%보다 판매가의 50%가 2원(2%) 더 많은 셈이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작가의 기준이었다.

지혁은 1인 출판사를 만들어서 출판했고, 초콜릿페이지는 그런 지혁의 출판사 아이펜에게 연락을 취한 셈이 되었다. 때문에 본래 지혁은 70원에 해당되는 금액 전부를 혼자 독식해야만 정상이다. 지혁 역시 그 조건을 생각하고서 미팅에 응한 것이기도 하다.

헌데 저쪽에서 10%를 추가로 양도해준다는 제의를 먼저 해왔던 것이다. 이것은 지혁의 입장에서는 놀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초콜릿페이지가 가져가야할 30%가 20%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 되니까.

‘인기가 워낙 많아서 그런 건가?’

원래 이런 식으로 일종의 규정과도 같은 수익의 일부를 떼서 넘겨주기도 하고 그러나?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겠어.’

물론 초콜릿페이지는 급부상을 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굳이 지혁을 영입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높은 위치에까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지혁이 그들의 성장에 날개를 부여해줄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좋아.’

어쨌든 돈을 더 많이 벌게될 일이다. 지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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