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15화 (15/116)

00015  비상(飛上)  =========================================================================

그렇게 기분좋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지혁은 은서와 가볍게 거리를 산책하면서 휴식을 가진 후 집으로 복귀했다. 은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지혁은 차분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소리가 시끄러울 것 같아서 예전에 은서랑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으니까 마음놓고 글을 쓰라는 말로 지혁을 다독인 바 있다.

‘됐다!’

12시가 땡하자마자 지혁은 플랫폼에 접속했다. 연재를 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이 시작할 글은 두 가지. 미니게임천국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2부의 내용은 ‘미니게임천국 2부’라는 글로써 연재를 시작했다. 써놓은 걸 붙여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서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시작은 무료.

‘그 다음은….’

가장 잘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쓸때마다 실력이 늘기 시작했던 지혁의 입장에서도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마성을 가진, 뒤이어 쓴 작품들에도 뒤지지 않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금을 울릴만한 명대사도 많다고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뒤늦게 쓰여진 소설을 초월했다고도 생각되는 작품. 때문에 지혁은 이것의 연재순위를 뒤로 미룰까도 고민해보았지만, 그냥 그가 썼던 순서대로 연재를 시작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림 그리는 법을 더 빨리 익혀둬야 할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지혁은 새로이 연재를 시작하는 신작은 직접 그림으로 그려서 만화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혁의 마음에 든 작품이라는 뜻이다.

“흐읍. 됐나….”

결과는 내일 일어나서 확인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지혁은 컴퓨터를 끄려다 멈칫하고선 올린지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미니게임천국 2부를 확인해보았다.

[ 미니게임천국 2부 10편 ]

작품설명 : 접속기에 칩을 꽂기만 하면 최대 30개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미니게임천국을 즐기는 게임천재의 이야기(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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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엄청나네.’

다행히 반응은 폭발적인 것 같다. 지혁은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은서는 이제 지혁을 아침마다 깨우지 않게 되었다. 지혁이 새벽까지 글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 역시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10시에서 11시쯤에 잠을 청하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집에서 잠깐 공부하다가 아침이 되면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게 요즘 그녀의 일상이었다.

‘끄으으!’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편 지혁은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에 이불 옆에 놓여있는 낡은 책상을 바라보았다. 방식을 바꿨다보니 은서가 새로 장만했는지, 알록달록한 무늬의 밥상보가 반찬, 밥, 국 등이 있을 자리 위를 덮고 있었다. 아침을 차려놓고서 덮어두고 간 것이 분명하다.

지혁은 은서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 피식 웃으면서 밥상보를 들췄다. 아기자기한 반찬들과 식어있는 밥이 있었다. 지혁은 곧장 수저를 들어 밥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멍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뜩, 10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왠지 돌아와서는 나태해지네.’

룸에서의 지혁은 신경이 곤두서있으며,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서 활용하려고 한다. 정해둔 일과시간에 오차가 없도록 철저하게 지키며,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려한다. 신이 지혁에게 내려준 경고는 그 정도의 압박은 적용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기 때문일까. 지혁은 현대로 돌아오게 되면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열심히 했으니까 쉬엄쉬엄하자는 의미랄까. 딱히 나쁜 것 같지도 않아서 지혁은 마음가는대로 편하게 생각하기로 다짐한 상태였다. 시간에 충실한 삶이라는 것은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피곤한 것이었다.

식사를 해치우고 반찬을 냉장고에 집어넣은 뒤 설거지를 마친 지혁은 곧장 세안을 했다. 그러던 중 어제 글을 올렸던 것이 생각난 그는 칫솔에 치약을 짜서 입가에 가져가면서 작은 욕실을 나왔다.

‘어디 볼까….’

컴퓨터를 켰지만 부팅속도는 굉장히 느리다. 지혁은 돈도 생겼으니 컴퓨터부터 바꿔야겠다고 투덜대면서 치카치카 이를 닦으며 연재하고 있는 소설의 목록을 확인했다.

[ 미니게임천국 2부 10편 ]

작품설명 : 접속기에 칩을 꽂기만 하면 최대 30개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미니게임천국을 즐기는 게임천재의 이야기(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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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王) 10편 ]

작품설명 :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를 참칭(僭稱)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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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겠지.’

지혁은 예상한 결과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나자 다소 비릿한 느낌으로 웃었다.

미니게임천국 2부의 반응은 아주 격렬하다. 굳이 댓글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지혁은 댓글창을 들어가보았다.

[ 일하기싫다 : 으아아아아아! 다음편을 내놔!!! ]

[ 분수와소수 : 10편이 순식간에 사라지네 ]

[ 버스드라이빙 : 너무 재밌어서 미칠 것 같아요! ]

‘…….’

다시 뒤로 돌아간 지혁은 이번엔 신작 ‘왕’의 댓글을 들어가 보았다.

[ 꿀보다단귤 : 후유가나 미니게임천국도 대작이지만 이건 진짜 작가가 힘주고 썼다는 느낌이 든다. 세심하게 신경쓴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맥 하나하나가 절묘하게 그림을 그리듯이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소설의 경지를 넘어서, 완숙에 이르러야만 선보일 수 있을법한 공들여 조각한 조각품을 볼때의 경탄할만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고작 10편을 보았을 뿐이지만, 장르소설로써 남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전율했다. ]

[ 세탁온도 : 미니게임천국을 볼때만 하더라도 이 이상의 작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3화까지 본 순간 입을 벌리고 있었다. ]

무슨 영화평론가들처럼 글을 써놨네.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제목과 간략한 소개만 있었기에 접근성이 좋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혁은 그렇기에 더욱 더 마음에 들었다. 명품은 그 자체로 빛나는 가치를 지녔기에 스스로를 어필하지 않는다. 그러한 일념으로 이렇게 해둔 것이기도 했다. 지혁은 최소한, 왕만큼은 나서서 읽어달라 애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애착도 있고, 믿고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어차피 미니게임천국도 뛰어넘어 저 멀리 훌쩍 날아갈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아니라 확신. 지혁이 종미(終尾)에 쓴 최후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시대가 낳은 대작.

왕(王).

지혁은 이 소설 왕을 통해서, 소설이라는 것이 그저 필력에 의해서만 결정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불완전한 상태가 절대적인 경지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왕은 10개의 장편소설 중 3번째 작품에 지나지 않고, 지혁은 소설을 쓰면서 계속해서 실력이 늘기만 했지 줄어든 일은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왕은 뒤에 썼던 소설들과 동격 이상의 작품성을 가진 것이다. 왕을 집필할 당시보다 그 후의 지혁이 작가로써 더 완성되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확실히 이변이었다.

‘어쩌면….’

그저 지혁의 막연한 추측일 뿐이지만, 소설가로써의 전성기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혹자는 2부가 잘 되는 꼴을 못 봤다는 말을 하곤 한다. 1부가 대작일 경우 그 뒤의 후속작은 십중팔구는 망한다는 일종의 경험에서 유례된 것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는 부담감이나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하기 때문 등 다양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만약 같은 작가가 동일한 설정의 이야기를 1,2,3부로 계속 이어나가며, 이야기의 전개나 스토리 등의 부분에서의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상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3부가 망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역량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말 이외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물론 왕을 쓸 당시에 한계까지 힘을 발휘했다고도 해석할 수는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일.’

그리고 솔직히, 미니게임천국 2부의 성장세가 너무 엄청난 것일 뿐 왕 역시 다른 소설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고작 10화를 연재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이로써 4위까지 석권한 셈인가.”

하하. 지혁은 가볍게 웃으면서, 오늘의 베스트 소설 1위부터 4위까지를 훑어보았다.

[ TODAY BEST ]

1. 미니게임천국 2부 / Joker U

2. 미니게임천국 1부 / Joker U

3. 왕(王) / Joker U

4. 후유가(後有歌) / Joker U

뭔가, 혼자 다해먹고 있다는 기분이 좀 들기는 한다. 지혁은 확인을 마치고 의자 등받이 눕듯이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이 추세라면….’

미니게임천국 2부는 오늘 하루만에 조회수 30만의 돌파가 확실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부분유료가 아니라 편당과금의 형식이기에 초반부의 조회수는 수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머지않아 유료편수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결재를 통해 소설을 보는 독자들이 쏟아지면서 눈이 번쩍 떠질만한 수익이 생길 것이다.

지혁의 계산이 맞다면.

“굳이 홍보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지혁은 바보가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다.

1인 출판사라는 것은 보기에는 간단해보여도 꽤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한다. 그저 글을 쓰는 소설가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인식만 가지고 1인 출판사를 차렸다가는 십중팔구는 망하게 되어있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지, 출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과 수익을 공유하지 않을 욕심을 가졌다면, 그만한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혁의 경우엔 그 모든 제반사항을 뒤집어엎을 정도의 인기를 가졌기 때문에 최소한 마케팅적인 부분은 커버할 수 있다(설령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겠지만). 또한 다른 것은 몰라도 퍼블리싱은 할 줄 알아야만 했고 지혁은 그에 관해서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다. 3년의 시간엔 1인 출판사로써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냥 무작정 나 혼자 다 해 처먹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실패하지 않아야만 했기에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듯 많은 조사와 연구를 했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늘상 말하지만, 불안감은 언제나 있다.

게다가 지혁은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사회초년생에 불과하다. 뭐든 다 안다는 듯한 여유로움을 가질 수 없을뿐더러, 그런 것이 생긴다면 독이 될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도한 긴장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항상 긴장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두려고 하는 편이었다.

‘아직 편당과금의 시장은 좁아.’

이름난 스타작가들도 대부분이 부분유료의 판에 뛰어들어있는 현 상황에서 편당과금이라는 불확실성이 그득한 것에 몸을 담그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혁은 눈을 빛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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