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12화 (12/116)

00012  歌(노래 가)  =========================================================================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 여인의 시선이 쏠린다. 지혁과 얘기를 나누었던 여인이 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고, 나머지 두 여인은 반대 방향의 벽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승현은 꾸민 듯한 부드러운 음성을 내뱉으며 안으로 들어섰고, 지혁이 그 뒤를 따랐다.

우뚝.

다소 위풍당당한 느낌으로 들어가던 승현은 내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같더니 걸음을 멈췄다. 지혁이 그에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는데, 승현이 빠르게 걸어서 건너편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혁은 그의 뒤를 따라서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승현이 갑자기 지혁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 반대편 방향으로 턱짓을 하는 것으로 보아, 저쪽에 가서 앉으라는 뜻 같다. 지혁은 반쯤 앉으려는 자세로 힐끔 반대편 방향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방금 전 지혁과 대화를 나누었던 여인이 들고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하하하… 얘가 숫기가 좀 없어요. 이해해주십쇼.”

지혁이 승현의 만류에 결국 반대편으로 가자, 끝 쪽에 앉아있던 여성이 슬며시 몸을 일으켜서 앉은 모습 그대로 옆으로 슬쩍 옮겨 앉았다.

“…….”

지혁은 비켜준 자리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뒤에, 무릎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반쯤 고개를 숙인 느낌으로 손을 쳐다보던 지혁은 옆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눈을 차분하게 뜬 여인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뿐일까,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두 여성의 시선도 지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수줍음이 많으시네요? 이렇게 잘 생기셨는데?”

“쟤 이제 막 스무살 돼서 그래요. 잘 나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딩입니다. 술도 오늘 처음 마셨다고 하고.”

지혁은 어찌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제껏 여성들과 접촉을 해왔던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보니까 숙맥인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애당초 지혁은 학교에서도 좀 소심한 편에 속하는 부류였다.

“그쪽 오빠는 몇 살이세요?”

“아. 저는 스물 둘입니다. …분위기가 너무 시베리아인 것 같은데, 제가 먼저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승현은 분위기메이커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여인들의 허가가 떨어지자, 그는 즉시 노래방기기를 꾹꾹 눌러서 번호 다섯 개를 입력해넣었다.

[ 조응필 - 여행을 떠나자 ]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오!”

경쾌한 멜로디가 퍼져나오고 얼마 뒤 본격적으로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꽤 노래를 잘하기도 했고, 선곡도 신나는 곡이여서 그런지 어색함이 느껴지던 공간이 풀어지고 있었다.

한소절 부른 승현은 곧장 일어나서 무대앞으로 나가더니, 우리쪽을 쳐다보면서 오른손을 위로 쭉 뻗어 검지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황금빛 태양!”

그다음은 앞으로 손을 뻗는다.

“축제를 여느은~!”

이 형 노래 잘하네.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의 무대를 편안하게 감상했다. 엄청 잘 부른다고는 할 수 없는데, 노래에 맛이 있었다. 색이 있다고 해야하나. 승현은 알바가 끝나고 놀때마다 종종 노래방을 가자고 지혁에게 조르곤 했었는데, 지혁은 그때마다 절대 가고싶지 않다면서 뺐었다. 헌데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콘서트를 구경가는 느낌으로 따라가볼 걸 그랬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이미 여인들도 같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합창을 하듯 따라 불러주고 있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승현의 능력은 놀라웠다. 지혁은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승현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승현이 마이크 하나를 더 잡더니 지혁에게 건네주었다.

“유. 지. 혁!”

이 형 내 노래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뭘 믿고 내게 마이크를 넘기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혁은 아무래도 좋았기에 마이크를 받고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 달간 노래연습을 한 것이 이 순간을 위해서인 것 같았다. 승현의 앞에서 노래를 못 부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일종의 자존심 때문에 룸에 갔었던 것인데 그 선택이 정말 탁월했었던 것 같다. 미모의 여성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지혁은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을 쳐다보았다.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와…!”

시원시원하게 끝부분을 내지르자 여성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세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을 확인한 지혁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서 가사를 쳐다보았다.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에~”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에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지혁은 그가 하이라이트 부분을 노래하고 있을 때, 승현이 양손을 모으고서 입술을 삐쭉 내민채 촐싹촐싹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내야만 했다. 다행히 반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 여자들은 웃으면서 우리들의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렇게 첫 번째 곡이 종료되었다. 그러자 구석진 곳에 앉아있던, 나이가 가장 많아보이던 여인(그래보았자 20대 초중반 정도의 느낌이다)이 말했다.

“와아…! 두 분 다 노래 잘하시는데요?”

“아, 감사합니다.”

마치 뮤지컬 배우처럼 허리를 숙이며 다리를 꼼과 동시에, 한 손으로 반원을 그리며 아래로 휘저은 승현과는 다르게 지혁은 꾸벅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지혁이 보통이고 승현이 다소 오버하는 것이었다.

“아니, 진짜 놀랐어요. 특히 그….”

지혁은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급히 말했다. 그러고보니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유지혁이라고 합니다.”

“네. 유지혁… 씨. 노래 진짜 잘하시네요.”

그런가?

지혁은 막귀였다. 정확히는 음악에 대해서 관심이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노래나 듣고있을 여유가 없었던 삶이기도 했고, 애당초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달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지혁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정확한 판단도 서질 않았다. 왜냐하면 막상 노래를 해보니까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영상을 통해 확인한 다른 가수들의 노래도 보자마자 어떤 방식으로 부르는 건지 대강 감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한 게 아닐까, 저런 식으로 한게 아닐까.

한 달. 지혁은 오히려 그 시간이 길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어쩌면 나는 글쓰는 것과는 다르게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던 걸지도.’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근질근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앳된 외모의 여성이 털썩 주저앉은 승현의 앞에 놓여있는 노래방기기를 낚아챘다.

“잠깐! 죄송하지만 노래 할 때 하더라도 통성명은 하는게 어떨까요? 아직 저희 서로 이름도 모르는데.”

승현의 말에 여인들이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겠죠…. 저부터 할게요. 저는 이나희라고 하고 나이는 스물넷이에요.”

“저는 문하얀이라고 해요. 저도 스무살이에요.”

“서하린이에요. 나이는 스물 하나.”

지혁에게 노래를 잘 부른다고 나섰던 여인이 바로 이나희였다. 지금 막 얘기를 마치고서 곡을 고르고 있는게 문하얀. 지혁과 맨 처음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계기였던 여성이 바로 서하린이었다.

곧이어 문하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이 곡을 선택하고 무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승현은 슬금슬금 이나희에게 접근했고, 반대로 우리 쪽은 서하린이 말을 걸어왔다.

“사실 저희 연예인이에요.”

엥? 지혁은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서하린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셋이서 3인조 걸그룹이에요. 데뷔한지 1년인데 무명이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노래를 좀 잘하네.’

문하얀이라는 여성은 잔잔한 발라드곡을 골랐는데, 솜씨가 꽤 좋았다. 물론 대단히 뛰어나다고 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일반인 중에서는 잘 부르는 축에 속할 것이다. 뭣도 모르는 지혁이 이런 평가를 내려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오늘이 딱 데뷔 1주년이거든요. 팬도 없는 수준이라서 저희끼리 자축을 하다가 우울해져서 노래방이나 가자 한건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말투는 태연했지만, 지혁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데뷔를 했는데도 찬밥신세. 그녀들이 느낄 감정이 어떨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덕분에 기분은 좀 풀리네요. 언니랑 하얀이도 좋아하는 거 같고. 고마워요. 막상 노래방을 오기는 했는데 기운은 없었거든요.”

“아뇨, 저희가 뭘 했다고….”

서하린은 곧이어 문하얀의 노래에 거세게 호응해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혁은 이내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에 집중했다.

“건배!”

즐거웠다.

도중에 들어온 술잔을 다 같이 들어올려, 술이 넘쳐나도록 힘차게 짠을 하기도 하고, 술도 들어가고 노래도 여러곡 부르다보니 친해져서,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하린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마이크 하나로 노래를 부르고 있기도 했다.

“막 곡은 지혁이가 해!”

“네이~!”

맏언니인 이나희의 명령. 거역할 사람은 없었다. 이미 승현은 굽신대고 있었으며, 지혁 역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녀도 반쯤은 장난 식으로 한 말일 것이다.

[ The Two - Winter love ]

지혁은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곡을 골랐다. 개인적으로 룸에서 가장 많이 부른 곡이기도 했고, 지혁의 감성과 딱 맞기도 한 곡이었다. 다른 노래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있게 고를 수 있었다.

“나는 그댈 알고. 있습. 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낍…니다.

귓속말을 하는 것 같은 특유의 창법을 따라하는 건 그렇게까지 간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혁은 노력했고, 그에게 주어진 재능은 빠르게 습득이 가능하도록 지혁을 도왔다.

“하얀 눈꽃처럼~~~~”

그렇기에, 지금의 감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지혁은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주문했던 술은 진작에 동났고, 새로이 주문한 맥주도 거의 다 마셔가는 중이었다. 술집에서 마셨던 것과 비견될 정도의 양을 마셨기에, 지혁은 또다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보인다. 여자들의 눈은 이미 몽롱해져 있었다. 술에 취한 것인지, 노래에 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응…?’

그때 지혁은, 서하린이 자기 핸드폰을 꼭 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 핸드폰을 살포시 쥔 채 양손을 모으고선 지혁의 노래를 감상하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핸드폰은 화면이 켜져 있는 듯,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핸드폰이 노래방기기와 지혁의 하체 부분 정도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꼭, 영상을 촬영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 삶이… 조각나도, 그~저 단 한 사람! 오직 단 한 사람워어~!”

“꺄아!”

지켜줄게요….

그렇게 지혁의 곡이 끝나자, 노래방에서 녹음된 여성의 음성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며, 100점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혁은 던지듯이 마이크를 내려놓고서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적막이 흘렀다. 시간은 끝났는데, 누구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놀 힘도 없었다.

‘제기랄….’

지금은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다음에 또 오세요~!”

어찌어찌 노래방을 겨우 나왔다. 문하얀은 아예 기절했고, 서하린도 지혁이 반쯤 부축하다시피해서 나왔다. 그녀들은 노는 도중에 울음도 터트렸었는데, 잊고있었던 무명가수의 설움이 감정으로 변환되어 터져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마워요. 저희 같은 숙소 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마 이나희는 멀쩡했고, 그녀의 말에 승현과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 존대를 하고 있었다. 정신을 좀 차린 것으로 보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그럼.”

그렇게 그들을 태운 택시가 떠나고, 지혁은 고개를 뒤로 젖히다 문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전화번호!’

그러나 차는 이미 떠난 후였다. 지혁은 허망하게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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