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의 재능-10화 (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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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음성은 여상했다. 평소와 전혀 다를바 없는 태연한 목소리. 그러나 지혁 본인은 그것이 꾸며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서 불편하여 오랫동안 일했던 피자알바를 그만둔지는 두 달 정도 되었지만, 민수연과 여자 알바생 둘이서 뒷담화를 하던 것을 목격했던 순간은 얼마전처럼 생생하다.

고기를 집게로 집어 달궈져있는 불판에 올리는데, 승현이 계속해서 채근한다.

“그러지 말고 말해봐. 니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아냐?”

그거야 승현이 지혁과 친하게 지내니까 승현에게는 별다른 말이 안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일은요? 지금도 계속 다녀요?”

“아니. 니 그만두니까 왠지 재미가 없더라고. 시간도 안가고. 그래서 그만뒀지.”

그렇다면야….

두 줄째의 고기를 올리며 불판에만 집중하는 것 같던 지혁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그냥 뭐… 고아랑 어떻게 사귀냐는 둥. 중졸이 주제도 모른다는 등 그런?”

“뭐?”

순간적으로, 승현의 표정이 야차처럼 굳어버린 것을 확인한 지혁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당시엔 화가 좀 났었는데, 차라리 지금은 그런 사람들인 걸 알아서 잘되었다 싶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미친년. 어이가 없네. 씨팔.”

욕을 찰지게도 하시는군.

지혁은 왠지 웃음이 나왔고, 주체하지 못해서 실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야. 뭘 쪼개노. 니는 화도 안 나냐 빙시야.”

“나죠.”

지혁은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싹 굳혔다.

보란 듯이 잘 살아주리라.

그 다짐은 지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지혁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무도 없는 룸에서 소설을 쓰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빨리 나올 수 있었음에도 굳이 장편을 10개나 채우고난 뒤에서야 다시 돌아온 것은, 물론 은서를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마음이 대부분이었지만 자신을 깔봤던 이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혁은 그들에게 감사한다. 이를 악물게 해준 것에.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이 좀 짜증났죠.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사실, 고등학교도 못간 것도 팩트.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하나 주장할 수 있는 외모도, 당시에는 없었다.

“야….”

“그래서, 독기를 품게 되었어요.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성공하겠다고.”

사실, 지혁이 룸에서 보낸 3년까지 포함한다면 그때의 일은 3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 되었다. 지혁의 기준으로는 그렇고, 시간이 약이라고 숨을 쉬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그때의 격앙되었던 감정을 온존하게 보존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룸에 들어갔던 당시만 하더라도 지혁은 민수연이라는 여자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던 상태였다.

“1년도 필요 없어요. 반년. 그 정도면 될 겁니다.”

이제 지혁은 의심하지 않는다. 올리는 소설의 조회수는 폭등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재능은 진짜였고, 이제 지혁은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3년이 30년 같았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서, 그저 정해둔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자고싶을 때 잘수도 있었다지만 혼자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3년을 버티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지혁은 그때 당시에 10년을 보고 룸에 뛰어들었었다.

의지력으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자부했었던 그의 입장으로써, 3년만에 다시 현대로 돌아왔다는 것은 솔직히 실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신의 힘을 빌려서 사는 이 삶이 일종의 치트키라는 생각은 있다. 그러나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똑같이 피나는 노력을 해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 수 있다. 부잣집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족한 것 없이 생활할 수도 있으며, 지혁처럼 불운한 과거를 겪을 수도 있다. 생각하다보면 끝도 없는 일.

룸에서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지혁은 감사하기로 했다. 남들이 멈춰있을 때 뛰어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또한 그냥 날때부터 뭐든 잘하게 된 것이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가지지 말자고.

지혁은 덤덤한 어조였지만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승현이 그런 지혁을 쳐다보고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눈동자를 굴리다가 깨달았다는 듯이 짝소리나게 박수를 치고서 말했다.

“아, 알겠다. 니 와꾸를 살려서 배우쪽으로 나가볼 생각이구나?”

이 인간이 진짜.

지혁이 딱 그런 표정으로 이를 갈며 한 대 때릴 듯이 몸을 움찔하면서 쳐다보자, 승현이 깨갱하며 꼬리를 말았다. 언뜻 보면 지혁을 칭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놀려먹으려는 의도로 말한 것이었다.

‘3년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지혁은 그동안 참 많은 것을 익혔다. 그저 글솜씨만 닦아낸 것이 아니라, 기초를 익혀나가는 시간이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필수적인 과정과도 같다. 그렇기에 지혁은 초기의 1년 당시에, 하루 평균 5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써보기도 하고, 문자도 익히는 등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에 이룬 성과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1년이라는 시간만에 그 많은 것들을 이뤄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 달.’

어느 한 분야에 있어, 수준급에 오를 수 있는 기간. 지혁은 그 시기를 한 달로 잡고 있었다. 이번에 3년이나 걸린 것은 그냥 이것저것 다 손대다보니까 늦어진 것이고,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굳이 룸에 의존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신이 지혁에게 내려준 재능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었다.

< 너에게 내려준 재능은 진짜지만, 공평하지는 않을 거야. 니가 원래 재능이 없었던 분야라면 익히는데 시간이 더욱 걸릴 것이고, 니가 두각을 나타냈을 분야라면 익히는 속도도 빠르겠지. 만약 이건 왜 이렇게 어려운 것 같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본래의 너는 그 분야에 재능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돼. 물론 하다보면 최고수준에 오를 수 있는 건 동일해. >

그렇다. 사실 1년이라는 시간이나 걸렸던 것은, 지혁이 글쓰는 것에 재능이 없었던 영향이 클 것으로 본다. 그 1년이 글솜씨를 닦아내는데만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쯧. 잘 생각했다. 그런거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 니 인생만 피곤하다.”

“그렇겠죠?”

까득 소리를 내며 소주를 깐 승현이 지혁의 앞에 놓여져 있는 잔에 꼴꼴꼴 술을 따랐다. 그러고선 술병을 지혁에게 건넸다.

“자.”

자신의 잔도 채워달라는 의미. 지혁은 술병을 받아들고 승현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몇 살 차이난다고 그러노.”

“그래도요.”

지혁이 손을 받치며 따라주자, 그는 피식 웃는 것 같았다.

“한 잔 하자.”

챙 하고 잔을 부딪힌 후에, 입가로 가져가보았다. 잠깐 고민하던 지혁은 이내 술잔을 과감하게 기울였다.

꿀꺽.

“…?!”

콜록콜록.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이런 걸 돈 주고 먹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괴상한 맛.

“어때?”

“존나 맛없는데요.”

“하하하!”

지혁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자, 승현이 크게 웃었다.

“상한 거 아니다. 원래 이런 거야.”

“그런 거 같네요.”

지혁은 밑반찬으로 나온 콘샐러드를 한숟갈 퍼먹었다.

“내가 고작 두 살 많을 뿐이지만, 원래 술은 아빠한테 배운다고들 하잖냐?”

“…….”

승현은 지혁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곧 군대를 갈텐데, 그 전에 니랑 술 한 잔 해보고 싶어서 불렀다. 니 동생이 성인이 되면 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해서 술 가르쳐주고.”

신기하다. 지혁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죽은 막냇동생에 관한 화제는 지혁에게 있어서 역린과도 같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현이 이렇게 말하는데 거부감 같은 것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승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의 지혁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의미일까.

“예. 고마워요.”

“영혼 없는거 봐라. 고마운 거 맞냐? 벌로 한 잔 더 받아라.”

지혁은 순순히 소주잔을 들어올렸다.

“내랑 니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냐? 나는 뭐 이런 독한놈이 다 있나 라는 생각 했었다.”

그랬었지. 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지혁이 술잔을 비웠다.

“크으….”

“처음 먹는 놈이 뭐 그리 빨리 마시노. 천천히 가자. 약속있나?”

“아뇨. 그냥….”

승현은 질 수 없다는 듯이 술잔을 기울이고서 탁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쉬는 날도 없이 점심때부터 새벽때까지 계속해서 일하는 거 보면서, 나도 나름대로 정신을 좀 차렸었거든. 나는 니처럼 돈이 궁해서 알바를 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니 사정 모를때는 이해가 안 되기도 했었다. 나는 그럭저럭 사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청춘을 즐기고 있는데, 너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 보니까 동기부여가 되었다고나 할까.”

처음 듣는 이야기다. 승현이 지혁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니.

“나도 스물 되자마자 아빠한테 술을 배웠는데 말야.”

승현은 잠깐 망설이는 것 같았다.

“삶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가장 힘들다고 하시더라고.”

삶이 숙제….

< 재능을 얻는 건 좋은데, 모든 분야를 잘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가지지 마라. 이건 충고가 아니라 경고야.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완전체가 되고자 재능을 가꾸는 것을 숙제처럼 여기고 룸에서 살다시피하게 되는 순간, >

< 너는 재능에 잡아먹히게 될거야. >

“그냥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에 적응하지 말라는 거 아닐까. 하하. 벌써 취했나보다. 내가 헛소리를….”

“아뇨. 도움이 됐어요. 고맙습니다. 형.”

승현은 때때로 날카로울 때가 있는 것 같다.

지혁은 오늘 나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지혁은 그렇게 승현과 술 두 병을 마시면서 고기로 배도 채운다음 술집을 나섰다.

‘이게 취한다는 걸까?’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직접 마셔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야, 2차가자. 노래방 고고.”

“노, 노래방이요?”

“그래. 생각해보니까 니랑 노래방은 한 번도 안 갔었네.”

그야 당연하다. 지혁은 노래실력이 형편없으니까. 애당초 살면서 노래방을 가본 적도 없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일. 지혁은 뭔가를 떠올리고는 흔쾌히 수락했다.

“가죠 뭐!”

그 후로 어떻게 노래방에 도착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지혁은 원래 술이 약한 것일까, 아니면 둘이서 마신 양치고는 좀 많았던 것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방 안에 도착해 있었다.

지혁은 승현을 보면서 말했다.

“저 화장실좀 갔다올게요.”

“오케이~”

손을 흐느적대며 승현이 말하자, 지혁은 곧장 문을 열고 화장실을 찾아서 들어갔다.

‘룸(Room).’

슈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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