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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9화 (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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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니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생각해본 적 있어? 물론 우주가 넓다는 것은 대략적으로나마 밝혀진 사실이지만, 너는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을 할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지는 않았잖아. 그러니까 지구라는 작은 행성의 표면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우주 전체를 놓고 따지고 든다면 얼마나 하찮은 일이겠어. >

<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 왜 우주가 넓은 건 알면서, 외계인은 없다고 단정짓는 인간도 많은 걸까. 나는 그게 좀 황당했어. 자신들을 지성체라고 인식하는 인간들은… 심지어 너희의 경우엔 우주의 방대함을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외계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많았거든. 물론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겠지만, 우주의 크기를 막연하게나마 알게된 존재라면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우리 이외에 다른 생명체가 없는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 정도는 해볼 만도 하지 않겠어? >

< 맞아. 이곳에 불려온 소환자들은 참 많았고, 그건 너희의 기준으로는 외계인들이 전부였어. 지구에서 소환된 것은 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

< …그럼 이곳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

< 그래 맞아. 니가 여기를 마음에 들어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니 입장에서 보면 여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장소라고 생각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이 난다는 얘기겠지. 사실 일부러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말을 해준 것이기도 해. 나로써는 니가 재능을 사서 나를 재미있게 해주었으면 하거든. >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환이 가능한 만능의 공간으로 보일 테니까 수없이 많은 재능을 갈고닦을 필요가 있어진 너에게 이곳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긴 하지. 뭐, 굳이 포인트를 주지 않아도 니가 나를 만족할만한 제의를 해왔으니 여기를 지급하는 것 정도야 장난정도밖에 안 돼. 만약 니가 정말로 1만 포인트라는 거대한 힘을 재능을 사는데 쓰겠다면, 여기를 넘겨주는 것 정도야 그다지 어렵지 않아. >

< 니가 가진 포인트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지. 내가 지금껏 소환했던 존재는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으나, 그들 중 가장 높았던 녀석도 너의 절반도 채 되지않았어. 그렇기 때문에 뭐든 할 수 있고, 원한다면 불로불사의 몸이 되어 장생하는 것도,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할 수 있어. 그런데도 너는 그저 막강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재능을 원하고 있고, 그 재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 나는 그게 너무 재밌어. 솔직히 말하자면, 포인트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었거든. 니가 가진 포인트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많고, 나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으니까. >

< 너는 도전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인간이라서, 뭐든지 다 잘해진 상태로 간다는 게 아니라 재능을 가지길 원한 거잖아? 노력을 통해서 실력을 쌓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니 취지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반길만한 일이지만, 너는 나중에 이때의 선택을 후회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거야. >

< 그래. 룸은 니가 무엇이든 익힐 수 있는 공간이고, 그로 인한 패널티 같은 것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나는 룸의 과도한 사용을 권장하고 싶지는 않네. 그건 인간성과도 직결되는 문제거든. >

< 그저 조언을 하나 해주자면, 룸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재능도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시간을 멈춰서 그 재능을 갈고닦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그로 인한 댓가도 없으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야. 룸에 의존하게 되다가는 언젠가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분명. >

< 니가 만약 억년 단위의 삶을 살아간 존재라면, 인간이 100년의 시간을 알차게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어떤 식으로 보일 것 같아? 니가 만약 나라면, 10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시간개념이 다르다는 거야. 인간 하나의 삶은 말 그대로 찰나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거야. >

< 나니까 이런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한 번 쯤은 해보았으면 싶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그저 어떠한 분야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 숙련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말도 안 되는 특혜처럼 보이겠지만 막상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괴로움도 있을 거야. 1년? 아니, 몇 개월만 이곳에 있어도 괴로움이 밀려올 걸? >

< 다른 사람들이 룸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낸 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괴리감에 너는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 것인가. 20살인 니가 룸에서 천년의 시간을 보내면 너는 1020살인 걸까, 아니면 그저 20살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 중간인 한 510살쯤 되는 걸까? >

< 너는 언젠가, 그 사실을 고찰해볼 상황을 맞이하게 될 거야. >

지혁이 약속장소에 나가자, 캐주얼한 복장을 한 이승현이 먼저 나와 있었다. 그는 연갈색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연초를 피우다 지혁을 발견하고서는 손을 빼서 흔들었다. 지혁이 서둘러 다가가자,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새 더 잘생겨졌네.”

“어… 네. 근데 말투가 왜 그러세요?”

지혁의 말에 승현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색하나?”

“네. 많이.”

통화를 할 때 사투리를 사용하던 것과 다르게, 승현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느껴지는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근데 너도 좀 이상하다?”

“네? 뭐가요?”

승현이 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꼭 관찰하듯 위아래를 훑어보던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는데…. 딴 사람 같다고 해야 되나?”

지혁은 움찔했다.

“딴사람이요?”

“그래. 설명하기 좀 힘든데, 왠지 모르게 니가 아닌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드네.”

3년동안 룸에 있었던 지혁은 20살일까 23살일까. 최근, 신과 했던 대화를 곱씹어보는 과정을 겪고있는 지혁에게 있어서 이는 상당히 민감한 주제였다.

한 달 정도를 보지 못했었던 승현이 이럴 정도면… 항상 같이 지내는 은서는 어떨까.

‘…….’

지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가 아니면 뭐에요? 얘기나 해봐요. 말투가 왜 그런 건지.”

“아, 이제 사람들 있는데서는 서울말좀 써볼라고.”

“…갑자기요?”

지혁이 추궁하듯 묻자, 승현이 피고있던 연초를 가게 앞에 배치되있는 스탠드형 재떨이에 비벼끈 뒤에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여기서 궁상떨지말고 일단 들어가자. 춥다.”

화제를 성공적으로 돌린 것 같아 지혁 역시 수긍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딸랑딸랑.

하하하하!

초저녁인데도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손님들이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자마자 몰려온 후끈한 내부의 열기까지 조화를 이루자 정신이 없다. 물론 밖이 춥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감도 있기는 하지만, 계속 있으면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포근함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우리 쪽을 돌아본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두 분 이신가요?”

“네.”

“2층 창가쪽 괜찮으실까요?”

그러자 승현이 뒤를 돌아 지혁을 쳐다보았고,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여성종업원을 따라 계단을 올랐고, 그녀는 아래의 거리가 잘 보이는 2층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삼겹살 3인분 주시구요. 술 마실 거지?”

“음… 네, 뭐.”

“C2 하나랑 캬스 한 병 갖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 혹시 신분증 좀 보여주실 수 있으실까요?”

사실 술을 마셔본 적은 없었기에 거침없이 시키는 승현의 행보에 좀 당황한 지혁이었다. 지혁은 굉장히 공손한 어조로 물어오는 여성의 말에 지갑을 뒤적여서 민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녀는 민증과 지혁을 대조해보면서 꼼꼼히 확인을 하는 것 같더니 영업용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확인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혁은 물컵에 물을 따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종업원이 물러가고, 지혁은 곧장 물었다.

“근데 갑자기 연락을 다 하셨네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야. 알바가 니한테 관심있는 거 아니냐?”

…이 형은 뜬금없이 뭔 소리야. 오기 전에 낮술을 한사발 떠먹고 오셨나. 지혁은 알바생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동문서답하는 승현에게 말했다.

“갑자기 뭔 헛소리에요?”

“니가 좀 잘생겼냐. 야, 나도 좀 쌍판데기가 좀 쓸만하다고 자부하는데 니랑은 쨉이 안 되잖냐. 딱봐도 한 눈에 반한 것 같은데.”

지혁은 그런 승현의 반응이 굉장히 어색했다.

그는 이제껏 살면서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지혁은 사실 신을 통해서 외모를 뜯어고쳤다.

사실 포인트가 든다면 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재능에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갖다박은 것에 대한 보너스라는 의미로 갖가지 자잘한 혜택을 주었는데, 외모도 그 중 하나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잘생긴 인물로써 살아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 않겠는가? 지혁은 주제를 잘 알았다. 예전의 그는 주관적으로 평가해도 겨우겨우 괜찮다는 말이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평생 얼굴을 가꿔본 적이 없으니 대단한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포인트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공짜라는데 굳이 사양하진 않았다.

신에게서 외모를 뜯어 고친 것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든다. 과거에 찍은 사진부터 시작해서 나와 관계를 맺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까지도 왜곡되어, 지혁이 원래 지금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예 각인되는 형식. 그렇기 때문에 포인트도 5개나 잡아먹는 것이고. 승현이 이러는 것을 듣고 있자니 값어치는 제대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가다가 한번쯤 뒤를 돌아볼 정도의 외모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최근 들어서 조금씩 깨닫고 있다. 길가다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리면 여성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이곤 했으니까. 단지, 자기 얼굴을 자기가 볼 일이 없으니 지혁은 체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성형이라고 한들 여하튼 아직은 좀 적응은 안 된다. 게다가,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알바가 보자마자 반했다는 건 좀 비약이 심한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얘기나 해봐요.”

괜히 민망했던 지혁은 좀 강하게 쏘아붙이면서 물을 홀짝였다.

“아니, 아니야. 사실 둔해빠진 니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수연이나 정화도 은근히 니한테 마음 있었을 거다.”

정확히는 그런 설정이 된 것이겠지. 승현이 말하는 둘은 피자집 알바를 같이했던 누나들이었다. 둘 다 승현과 동갑인 것으로 안다.

지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머릿속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잘 지내려나?’

민수연. 지혁에게 있어선 첫사랑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는 모른다. 그의 기준에서 그녀는 예뻤고, 명문대학교에 재학중이기도 했다. 처지에 대해서 비관적인 편이었고, 현실에 충실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던 지혁이 어느날 갑작스럽게 고백을 했었던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일대의 사건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큰일이었다.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생각했을 정도.

‘난 너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

고백을 거절당할때의 멘트는 대충 이랬던 것 같다. 그 뒤로 친하던 사이가 급격히 냉각되어 서먹해졌고, 그 사실을 민수연이 다른 알바들에게 말했는지, 숙덕대는 경우가 많아졌다.

“…….”

좋게 끝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아직도 잊지는 못한 것 같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술렁이는 것을 보면. 물론 애틋한 마음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련…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형. 제가 왜 알바 그만뒀는지 알면서 그러기에요?”

“야. 나는 그거 안 믿었다. 니가 수연이한테 고백했다가 까였다는 소리듣고 귀를 의심했어. 아무리 걔가 나름 예쁘다지만 니랑 비교하면 한끗발, 아니 세 끗발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 솔직히 걔… 그냥 평범하잖아.”

그렇게 기억이 왜곡된 것이지, 고백할 당시의 지혁은 쥐뿔도 없는 남자였다.

“아 됐어요. 별별 소리 다 들었는데 무슨.”

“주문하신 요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무슨 소리?”

“그….”

그때 아까의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승현의 옆쪽에 고기를 내려놓았다. 머리가 찰랑일 정도로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치레를 하기까지. 지혁은 의례상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예를 표했고, 그러다 승현이 자신을 음흉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알바가 멀어져가는 것을 확인하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뭐에요 진짜. 적당히 좀 하세요.”

“봐봐, 내 말이 맞다니까. …알았어. 근데 별별 소리 다 들었다는 건 뭐냐? 빨리 얘기해봐 궁금하다.”

지혁은 슬쩍 일어나서 승현의 앞에 놓여져있는 고기가 담긴 접시를 가져오며 말했다.

“뭐, 여러 가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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