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신인 소설가 Joker U =========================================================================
지혁이 필명을 ‘조커 유(Joker U)’라고 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트럼프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이는 조커처럼, 자신 역시 소설가로써 출판사에 구애되지 않고 한 마리의 학처럼 고고한 활동을 하겠다는 일종의 상징성을 담아낸 것이다(‘U’야 지혁의 성인 ‘유’를 의미한다).
[ …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쪽지를 보내드립니다.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
그렇기에, 몰려드는 출판제안은 지혁에게는 그저 눈에 보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혁은 한번에 여러 작품을 연재하려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접었기 때문이다.
[ 후유가(後有歌) 100편 ]
작품설명 : 후유(後有), 유전윤회(流轉輪廻)의 생사(生死)가 끊기는 마지막 몸. 100번째 인생을 시작한 순간 직감했다. 이번 생이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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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게임천국 60편 ]
작품설명 : 접속기에 칩을 꽂기만 하면 최대 30개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미니게임천국을 즐기는 게임천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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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아.’
후유가는 일주일가량 굳건히 지키고 있던 1위 자리를 마침내 미니게임천국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의 작품이기 때문에 지혁은 전혀 상관없었다. 현재 베스트 1,2위는 미니게임천국, 후유가 순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미니게임천국은 후유가보다 더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편수는 절반 정도인데도 이미 조회수는 130만을 넘겼고, 즐겨찾기도 후유가를 앞질러서 끝없이 상승하는 중이었다. 후유가의 상승세조차 다소 이례적이다는 반응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미니게임천국의 인기는 정말 경이롭다는 표현밖에는 어울리는 것이 없는 듯하다.
‘이제 말해도 되겠어.’
언제까지 은서에게 글을 쓴다는 사실을 숨기고 다닐 수는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은서니까 빨리 말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물론 충분한 성과를 내고서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까지 와버린 것이기도 했다.
평소와도 다름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지혁과 은서 사이에는 묘한 기류 같은 것이 있었다. 지혁를 생각하는 은서의 마음과, 동생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지혁의 마음이 대립하지 못하고 대치구도를 만들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소설이 잘 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지혁은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운동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매일같이 2시간 이상 꼬박꼬박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은서도 깨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왔고,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가볍게 조깅을 하다가 도중에 PC방에 들러서 상태를 확인한 것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야간 알바생의 배웅을 받으며 PC방을 나선 지혁은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은서가 일어나서 아침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혁은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면서 들어가기에 앞서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드르륵.
“오빠, 어디 갔다와?”
“아… 잠깐 가볍게 달리고 왔어.”
“놀랐잖아.”
지혁의 예상과는 다르게 은서는 아침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새벽부터 조깅을 한 적은 없었던 지라 일어났는데 지혁이 옆에 없자 당황했던 것 같다.
‘차라리 잘 됐다.’
지혁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신발을 벗는데, 은서가 곧장 말했다.
“지금 바로 밥 차릴게.”
“아니, 잠깐만. 은서야 이리로 와봐.”
“…?”
지혁의 말에 은서는 머리 위로 ?가 떠오를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는 지혁을 쳐다보았다. 지혁은 그런 은서의 가녀린 손목을 잡고서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구닥다리 컴퓨터라 부팅되는데 시간이 걸린다.
“갑자기 컴퓨터는 왜?”
“사실 내가 예전부터 해오던 게 있거든. 그걸 보여주려고 그래.”
학교를 안다닌 지혁은 하루의 대부분을 이곳저곳 싸돌아다녔다. 물론 예전에 오래 일했던 피자집 알바를 위한 것이었지만, 은서는 지혁이 얼만큼의 시간을 알바에 투자했는지는 모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는데다 지혁도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해 오던 일? 그게 뭔데?”
은서의 물음에 답하려던 지혁은 ‘따라라랑~’ 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부팅되자 황급히 마우스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창이 올라가는 속도도 느렸지만 조급함 속에서도 차분하게 기다리자 마침내 웹사이트가 나타난다. 지혁은 곧장 웹소설 플랫폼에 접속해서 로그인을 했다.
“소설? 오빠 소설 써?”
“응.”
지혁은 그렇게 말하고 내 페이지로 들어가서, 조금 전에 보았던 소설 관리창을 띄워보인 다음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자 봐봐. 여기 이거 보이지? 이게 작품의 총 조회수고 이건 추천수. 그리고 즐겨찾기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들어서 연재될 때마다 챙겨보려고 해두는 거고….”
지혁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은서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옆모습을 바라보던 지혁은 곧장 정산에 관련된 페이지를 띄워보였다.
[ 정산 총액 : 9,635,199 ]
“그리고 이게 이번달 수익이야.”
“흐어~!? 960만원?!”
은서가 눈을 크게 뜨면서 고함을 치듯 말하는 순간, 지혁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는 곧장 자랑하듯 떠벌리기 시작했다.
“이게 다가 아니야. 여기 쿠폰 정산액도 340만원이고, 표기는 안되지만 얻고 있는 수익금도 존재하고, 후원금 정산도 또 따로 있어. 그것까지 다 합쳐서 생각해보면 예상 수익은 대략 2천만원 정도야.”
단발성 수익이 아니라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이지만, 은서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인 것 같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2천만원은 엄청난 거금이었다.
“2천만원….”
“자 봐봐. 이게 베스트 글이 뜨는 페이지인데, 오빠 소설이 1,2위를 하고 있어. 보여? 이 조커 유 라는게 내가 글을 쓸 때 쓰는 일종의 별명같은 거거든.”
놀란 모습을 보이며 중얼거리듯 말하는 은서에게 지혁은 추가적으로 자신의 소설이 사이트 내에서 가지는 입지도 부연설명을 했다. 그의 소설 두개가 압도적인 수치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장면은 선명하게 각인이 되었으리라.
은서는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지혁은 지금이 딱 적기라고 생각해서 곧장 말했다.
“그러니까, 학교 가.”
“오빠….”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니가 생각하는게 뭔지 알겠어. 그러나 오빠는 정말 괜찮아. 돈 걱정도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학교 가자. 응?”
“하지만….”
이 정도를 보여주었는데도 주저하는 건가. 지혁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럴 것 같기도 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한테 미안해서 그래?”
“…응.”
지혁은 잠깐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오빠도 소설이 좀 안정화되고 하면 검정고시 볼게.”
“진짜?!”
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보다 내가 검정고시를 본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는 것 같지? 꼭 이렇게 되길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사실 지혁은 원래 대학교를 진학할 생각이었다. 검정고시는 그저 그걸 위한 사전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 재능을 얻었는데 예술적인 부분으로만 갈고닦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학문의 권위자. 딱히 학교를 가지 못했던 사실이 앙금으로 맺혀있는 것도, 무언가를 공부하겠다는 열망도 없었지만 지혁은 그러한 타이틀을 가지기를 원했다. 알게 모르게 못 배웠기에 얻었던 불합리함 등은 때로는 낯부끄러움으로, 때로는 치욕으로써 지혁에게 다가오곤 했었으니.
지혁은 얼굴을 활짝 피면서 물어오는 은서를 다소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니면 둘이 같이 대학교까지 가도 괜찮겠네. 둘이서 같은 학번으로 신입생이 되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은데.”
“그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네.”
꿈이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등록금 때문에라도 대학교 생활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혁의 소설은 비상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더 유명해질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써는 확답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2천만원을 벌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생활을 꾸는 것은 사치스러운 생각이기도 하고.
“어쨌든 어때? 이제 좀 생각이 바뀌었어?”
지혁의 물음에 은서가 잠깐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그를 똑바로 마주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빠. 나 학교 갈게.”
드디어 만족할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혁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손을 뻗었다.
“잘 생각했어. 잘 할 수… 있지?”
“응.”
“우리 은서, 착하네?”
이제 걱정되는 것은, 학교생활을 순탄하게 보내지 못했던 은서가 학교생활을 다시 이어나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부분뿐이다.
그러나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은서의 모습을 보니, 일단은 믿어보기로 한다.
은서라면 잘할 것이다.
결론을 내린 지혁이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자, 은서가 눈을 살포시 감으면서 머리를 맡겨왔다. 그 적극적인 태도에 지혁이 살짝 당황했을 때, 지혁의 손길을 즐기듯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은서가 별안간 표정을 굳혔다.
“우리,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은서에 말에, 지혁은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당연하지.”
“혹시 이게 꿈이면 어떡하지?”
지혁 역시 불안함은 있었다. 자신이 신을 만났던 순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환상은 아닐까 걱정하곤 했다. 일찍 가장이 되었지만 그 역시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뿐이고 어리기에 부족한 부분도 많으며 아는 것도 적었다.
그러나 지혁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만 했다. 내면은 나약하더라도, 은서의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빠만 믿어.”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