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4 신인 소설가 Joker U =========================================================================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생각해보면, 쉬운 길은 분명히 있었다. 하다못해 1포인트만 투자했다고 하더라도, 100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없이 살아온 지혁에게 있어서는 1억도 큰돈이었다. 그때 1포인트만 투자하는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혁은 그러지 않았다.
자존심, 고집… 등 이라기보다는 선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다. 은서의 다리에서 알 수 있듯이 알고 보니 포인트는 1개라도 굉장히 큰일들을 할 수 있었고, 허투루 사용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돈은 크지만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벌어들일 돈을 생각해보면 100억을 얻기위해 포인트를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포인트 따위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신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직접 노력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신이 주었던 차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웃차…. 하아….”
지혁은 바뀐 풍경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돌아왔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시간’ 이었다. 뭔가 현실감이 없어서 작은 화장실을 말없이 보고 있던 지혁은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어둠이 내려앉은 작은 방의 모습이 보인다.
지혁은 변기 위에 올려져있는 연갈색의 상자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곧이어 고양이처럼 발끝만으로 살금살금 이동한 그는 컴퓨터가 자리한 책상 옆에 살며시 상자를 내려놓고선 상자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곧이어 나온 지혁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검은색의 작은 USB였다.
‘휴우….’
< 이곳에서 무언가를 반입하는 것은 금지야. 가져올 수도, 가지고 갈 수도 없지. 물론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포인트만 있다면 안되는게 거의 없다고 봐도 돼. >
< 오케이. 그럼 왔다갔다 할때마다 10kg만큼 옮길 수 있는 걸로. 룰은 잊지 않았겠지? 반입가능한 물건은 한정적이야. 어디까지나 너의 노력이 가미된 물품들만 들고갈 수 있어. 직접 그린 그림이라던가, 도구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같은 것들만 반입이 가능해. 룸에서 나가면 이전에 룸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룸에서 다시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경우엔 지구의 시간으로 10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룸으로 이동할 수 없다고 했어. 이건 포인트로도 변경할 수 없는 절대룰이야. >
< 좋아. 물건 반입이 가능하게 설정… 81포인트야. >
지혁은 뒤를 힐끔 쳐다보고서 곤히 잠들어있는 은서를 눈에 담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서 주머니에 USB를 넣은 지혁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앉은 뒤에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은서야. 오빠 돌아왔어.’
지혁은 한동안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난날의 시간을 보상받았다.
* * *
아침, 등교하는 길.
공부에 영 소질이 없어서, 정확히는 공부를 싫어했기에 4년제 대학교에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였고 지하철만 1시간 반을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자취를 해야만 하는데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해서 어쩌다보니 그냥 통학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에서의 시간은 길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었다.
시대가 좋아져서 스마트폰이라는 것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도 하고, 다운받아둔 영화나 드라마도 보다보면 어느새 학교에 다와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대학생들은 이런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한다.
‘재밌는 소설 없나?’
어젯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드라마를 다운받아 두는 걸 깜빡했다. 아이튜브로 동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영상 다운만이 아니라 충전까지 잊어먹고 자버려서 배터리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는다. 종종 있어왔던 일이고, 이럴때는 배터리 소진이 느린 소설을 통해서 시간을 때우면 되는 일이다.
그는 곧장 장르소설의 메카인 소설 플랫폼 하나를 찾아서 들어갔다.
‘에이 씨 별 볼일 없네.’
베스트에 올라있는 글들은 대부분 이미 보았거나 초반부만 잠깐 보고 흥미를 잃은 소설들이었다. 안 본게 없었고 그는 늘 그의 흥미를 이끌만한 소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늘 뒤로 물러가기를 반복한다. 그를 즐겁게해주는 소설은 부족하고 그는 늘 배가 고프다.
평소라면 여기서 그만두었을 그는 결국 일반연재란을 돌아본다. 소설을 봐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뭐라도 찾아내야만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뭐야?”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소설 제목이 있었다.
후유가(後有歌) 30편
작품설명 : 후유(後有), 유전윤회(流轉輪廻)의 생사(生死)가 끊기는 마지막 몸. 100번째 인생을 시작한 순간 직감했다. 이번 생이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소개는 뭐 무난하네.’
하지만 편수가 너무 적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일단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후유가라는 소설은 연재를 시작한지 3일밖에 안됐고, 하루에 10개씩 3일간 연재를 한 작품이었다. 총 조회수는 2515. 헌데 즐겨찾기를 등록한 사람의 수가 무려 70명이다.
‘1화 조회수가 124명인데?’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다는 소리. 심지어 1화의 조회수가 124인데 2화의 조회수가 무려 119다. 잘 쓰여진 작품도 1화를 보고 빠져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 화인 30화의 조회수는 42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었지만, 처음의 강렬함이 더 크다.
대체 1화를 얼마나 흥미있게 써냈기에 이렇게 연독성이 뛰어난 걸까?
소설을 많이 접해보고, 이 사이트를 10년 가까이 떠돌아다녔던 독자인 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1화를 클릭해나가고 있었다.
[ 마지막편입니다. ]
“…어?”
그리고 깨닫고 나니, 이미 30화를 다 읽어버린 뒤였다.
[ 이번역은 ( …… ), ( …… )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
그때 들려오는 지하철의 음성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2정거장이나 지나쳤잖아!’
그는 낭패감을 느끼며 정신없이 내리는 와중에도, 즐겨찾기를 등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싸~ 오랜만에 인생작 하나 찾았다!’
* * *
[ 후유가(後有歌) 30편 ] / 작가 : Joker U
작품설명 : 후유(後有), 유전윤회(流轉輪廻)의 생사(生死)가 끊기는 마지막 몸. 100번째 인생을 시작한 순간 직감했다. 이번 생이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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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반응이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소설을 올려본 적이 있어야 알지.
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생한테는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돈으로 PC방에 왔다. 병원비를 내느라 가지고 있던 재산의 상당수를 탕진해버렸기 때문에 당분간은 자린고비로써 살아야만 한다. 하고 있던 편의점 알바와 고깃집 알바는 진작에 짤렸다. 연락도 없이 일주일이나 잠적했으니 당연한 일. 물론 지혁 역시 굳이 사정사정해가면서 알바따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지라 미련은 없었다. 다만 받을 건 받아야했기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정을 설명하고, 좋게좋게 마무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이제 겨우 3일 연재했을 뿐이다.
3년. 무려 3년이었다. 지혁은 룸에서 3년의 시간동안 오로지 글에 대해서 공부하고, 쓰는 것에만 열중했다. 주로 쓰는 것은 소설. 지금의 필체와 개념 등을 정립하고 작품에 대한 구상 등을 하는 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다.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져드는 솜씨를 가지는데 필요했던 시간.
1년.
지혁은 신이 악마의 재능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솜씨같은게 있을 리가 없던 자신이 이 정도의 글을 1년만에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거기다 그 1년이라는 것은 그저 글솜씨를 닦아내는 것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단어와 문장이 길게 나열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특정한 감정이나 물건, 상황 등을 지칭하는 단어 하나를 표기하는 방법이 수십, 수백가지가 존재한다.
1년. 지혁은 그 시간만에 한국어를 포함해서 8개의 언어를 완벽에 가까운 수준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8개의 언어 중 어떤 것을 골라서 쓰든 필력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 선까지 익혀둔 것이다. 물론 지혁이 한글 이외의 것으로 글을 쓰는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어 하나를 익히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기에 이거다 싶은 것들로 대강 선별을 해서 익혀둔 것이었다.
그렇게 1년동안 언어 자체에 대해 이해하고, 글솜씨도 다지는 등의 시간을 가지게된 지혁은 그 뒤로 2년하고도 4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면서 확실히 실력을 정립하고, 글을 뽑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총 21개. 그 중에는 30권 분량이 넘어가는 장편도 있었고, 한 권짜리의 짧은 소설도 존재했다. 그 중 하나는 단편소설 6개를 묶어서 만든 단편소설집이었다.
‘대부분이 장르소설이지.’
21개의 작품 중에서 15개가 장르소설이다. 그리고 2년의 집필 시간 대부분을 잡아먹은 것이 바로 그 장르소설이었다. 일반문학은 장편으로 집필을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애당초 4개를 다 합쳐봤자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USB를 잃어버렸을 때의 여파가 짐작도 가지 않았고, 그래서 이메일에 저장해 둔 것을 PC방에서 연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PC방비가 아까웠지만, 투자였다.
‘…역시 알바를 찾아보는게 좋을까?’
지혁은 12시가 지난 순간 4일째의 10편을 올려서 총 연재수 편수가 40화가 되도록 맞춘다음 팔짱을 끼고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은 사실, 실제로 잘 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글을 쓴 당사자인 지혁 본인조차도 빠져들어서 읽을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냉랭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성과를 내야 하는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겠다고 룸에서 다짐했던 것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당장의 생계가 있다보니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미트를 정해둘 필요가 있겠어.’
다시 룸으로 떠나서 새로운 재능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라도 찾아야만 한다. 그런 변화를 모색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견딜 것인가. 지혁은 그 시일을 확실히 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까지 일주일.’
오늘로써 4일째가 된다. 그리고 6일뒤면 100화를 연재한 상태일 것이다.
그쯤되면 뭔가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길은 빠르게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분명…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정도의 재능을 가지게 된다고 했었는데.’
< 됐어. 이것으로, 너는 뭐든지 잘할 수 있게 될거야. >
“…….”
혹시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지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년은 한 분야에서 최고에 올랐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권위자, 거장 등이 되기 위해서 천재라고 불리우는 인간들도 경우에 따라 십년 단위의 노력을 한다. 헌데 딸랑 1년 노력해놓고서 이 정도면 되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재능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보는 눈까지 좋아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집에 가자.”
어차피 3일 뒤에 나오는 결과물을 통해 결론을 내리면 될 일이다.
후줄근한 후드를 뒤집어쓴 지혁은 PC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