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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2화 (2/116)

00002  자각  =========================================================================

< 나를 그렇게 무능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해. 작정하고 한다면 시간을 되돌리는 일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지. 차원을 만들어낼 정도의 존재인데, 그거야 뭐 대수일까. >

<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니가 뭐 대단한 존재라고, 너 하나의 바램을 위해 거대한 차원의 시간을 되돌려야할까. 그곳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물질이 얼마나 많은데 인간 셋 살리겠다고 그들이 시간을 앗아 가야할까. 인간 셋 살리겠다고 정해진 법칙을 거슬러야 할까. 그건 차별이고, 이단이야. >

< 그래. 자칭 신이라는 존재가 사람 셋 살리지 못해서 이러나… 싶을 수도 있는데, 자존심을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 정도는 해줘야될 것 같은 상태로 보여서 말하는 거야. 상심이 큰 것 같은데 내게 힘을 받고서 미래를 바꾸는 일과, 과거의 일을 되돌리는 것은 너희들의 관점에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어도 나한테는… 그리고 세상의 섭리를 기준으로는 달라도 너어~무 다르다는 것이지. >

< 불공평해보여도, 나는 소환하는 존재 이외의 모든 것들에 공평한 편이야. 그리고 지금 말한 이러한 부분은, 소환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야하는 명확한 규칙이고. >

< 여하튼 나는 이 이상의 조건을 제시해줄 생각이 없고, 너는 선택을 해야만 해. >

< 어찌 할지. >

< 이제 마음은 정리했나보군. >

< 그럼, 바로 정산을 시작해볼까? >

< 이걸로 0포인트네. >

< 노파심에 말해두는 건데, 니 인생이 불행해서 혹은 니가 마음에 들어서 등의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네. 소환된 너는 특별한 존재이나, 그전까지의 너는 내게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일 뿐이었어. 너보다 더 불행한 인생도 많고, 흥미로운 녀석들도 훨씬 더 많아. 니가 여기 있는 것은 그저 우연이야. >

< 다시 만나는 일따위는 없을 거야. 너를 찾아갈 일도, 니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내가 개입하는 일도 없을 거야. 악인이 된다고 해도 그건 너희들의 기준일 수도 있고… 뭐 어쨌든 어떠한 인생을 살던 그것은 너의 자유고, 나는 관여할 생각이 없어. >

< 그저, 지켜볼 뿐. >

< 만나서 즐거웠어. 너는 썩 유쾌한 삶을 보여줄 것 같아. >

< 잘가려무나. >

스으으으윽.

“…헉!”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그러나 너무나도 생생하다. 방금 전까지 전지전능하다고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했던 여성과 있었던 일들은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병원.’

낯선 천장이었다. 밝은 낮. 병실은 고요했지만, 잡음들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건 내부에서의 소리가 아니라 굳건하게 닫혀있는 문 너머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활기였다.

‘나, 살아있는 건가?’

지혁은 손바닥을 들어 올려서 내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몸상태를 관조해본다. 멀쩡하다.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신의 말대로 그는 단지 의식을 찾지 못할뿐 몸상태는 깨끗한 불가사의한 현상에 빠져 있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유지혁이라는 인물로써 살아가게 된 순간. 그러나 마음은 왠지 모르게 공허하다.

< 시간은 건드릴 수 없어. >

단호하기 짝이 없었던 음성이 생각난다. 입을 꾹 다문채 생각을 정리하던 지혁은 이불을 걷어내며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드르륵.

“…어?!”

“안녕하세요.”

그때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무언가를 들고 들어오다 말고 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내려오다 말고 어정쩡한 자세로 있던 지혁은 바닥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그녀는 그런 지혁을 천천히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일단 누우세요.”

“예? 아… 화장실 좀 가고 싶은데요.”

“그… 그런가요? 혹시 엄청 급하신가요?”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유도 없이 깨어나지 않던 환자가 갑자기 일어나 있으니 당황한 것이 아닐까.

“아뇨. 그 정도는….”

“그럼 제가 담당선생님을 불러올 때까지만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듯이 입구로 내달려서는,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다급해 보이는 와중에도 문은 닫고 간다.

‘사실 급한데….’

*                 *                 *

지혁은 바로 퇴원했다. 몸상태가 이상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적응을 하는게 아니라 그저 생각할 시간이었다.

‘일주일간 깨지 않았다고….’

의사는 자신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이었다면서 열변을 토했다. 물론 지혁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뭔가 제안을 하는 것 같았으나 모조리 거절했다.

뭔가, 현실감이 없었기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에 시선을 둔다. 그저 언제나 볼 수 있었던, 볼 수 있을법한 모습의 거리.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떠나고… 차는 달린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가 정말 신을 만났던 게 맞나? 사실은 그 모든 것이 그저 내 망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치이이익.

버스에서 내리자 시린 공기가 밀려온다. 날씨는 짱짱하고, 햇빛은 강렬하다. 하지만 춥다. 히터가 빵빵하던 버스 안과는 다르게.

지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두 손을 점퍼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나있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흔한 이야기다.

교통사고가 있었다. 돈 걱정은 안해도 될 정도는 되는 집안이었고, 타있던 다섯 중 살아남은 것은 뒷좌석의 둘. 그나마 멀쩡한 것은 11살짜리 오빠 하나. 친척들은 장례식을 치르는 와중에도 그들에게 그리 살갑게 대하지 않았고, 재산을 탐냈다. 어느 정도 뺏겼고, 조금은 챙겼다. 젖먹이 둘이서 그렇게 살다보니 이런 상황까지 와버렸다.

힘겨운 삶이었다. 철이 일찍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세상을 너무 빠르게 알아야만 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허름하기는 해도 다 무너져가는 집에서라도 살아야 했고, 살고 있다. 대학교는커녕,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해가면서 살아가는 나날. 그런 인생이었다.

‘아. 알바.’

그러고 보니 일주일간 누워있었다면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리가 아파져 온다.

전봇대에 긁어낸 눈이 흙과 섞여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마침내 익숙한 집이 나온다. 오랜만이라는 느낌은 조금도 없다. 일주일을 퍼질러 잤다고는 하나, 지혁의 입장에서는 그저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솔직히, 일주일이나 지났다는 사실도 구형의 폰이 아니었으면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르륵.

“나 왔어.”

턱턱.

그 순간, 집 안에서 뭔가 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못쓰게 되어버린 동생이 집이 아니고서야 어디에 있겠냐만은.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 니 동생의 다리를 고쳐주는 것 정도야, 1포인트면 돼. >

분명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오빠, 왔어?”

덤덤한 어조로 물어오는 은서의 말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미간을 찌푸렸다.

‘…?’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다.

타다다닥.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가 활기차다.

처한 상황에 절망했어야 할 동생은 너무나도 잘 커주었다. 학교를 다니라는 지혁의 말을 들어먹지만 않는 것을 빼면, 착하고 똑똑한 완벽한 동생이었다. 지혁과는 유전자가 다른 것마냥 예쁘기도 하고. 지혁이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처럼, 그녀는 깨어있는 시간엔 언제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또 게임하고 있어?”

“돈 벌어야지.”

동생이 할 수 있는 돈벌이. 휠체어에 앉아 집에서도 가능한 것. 그건 게임에서 벌어들인 돈을 팔아서 현금을 얻는 일이었다. 하루종일 똑같은 사냥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 지겨울 법한데도, 수년간 그러고 있으면서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반대하기도 힘든 상황까지 와버렸다.

“밥은?”

지혁은 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냉장고를 열었다.

“먹었지.”

“…?”

뭔가 위화감이, 있다.

‘뭐지?’

냉장고에는 그가 샀을 리가 없는 식재료들이 들어있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잠깐동안 그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지혁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냉장고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집을 둘러보았다.

싱크대는 말끔하고, 방도 깨끗하다. 그리고 동생은 언제나처럼 휠체어에 앉아서….

“…….”

“…….”

잠깐 멈칫하고서 무언가를 생각하듯 우두커니 서 있던 지혁은 홀린 것처럼 동생의 옆으로 다가갔다.

“병원, 왔었어?”

자신은 일주일간 자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은 마치 하루만에 보는 것처럼 지혁을 대하고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했던 위화감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방금 깨달았다.

뚝.

그에 피아노를 연주하듯 바쁘게 춤을 추던 동생의 손가락이 딱 멎었다.

정적.

정확히는, 게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이 울린다.

잠깐의 시간이 있고서, 은서가 모종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오빠….”

지혁을 돌아본 은서의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혁은 ‘설마.’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휠체어를 떠나서,

다리를 직접 움직여서 땅을 밟고….

두 다리로 디디고 서서.

지혁을 쳐다본다.

“나, 나… 다리가 움직여.”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오는 은서의 두 눈가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 니 동생의 다리를 고쳐주는 것 정도야, 1포인트면 돼. >

알고 있었다. 그때의 그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저 자각몽 정도로 취급하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꿈이 아니라는 확신도 있었다. 다만 머리로 인식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한 다른 문제였을 뿐이었다. 비록 죽어버린 동생과 부모님이 살아날 수는 없지만, 신의 말대로만 된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삶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일 것이었기에.

그렇기에 쉬이 납득을 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앙…!”

아이처럼 울어젖히며, 자신의 힘으로 서서 지혁에게 안겨오는 은서는 품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저 정면을 바라본채로 동생에게 품을 내주고 있던 지혁은, 양 손을 천천히 움직여서 등에다 손을 가져다대었다.

들어 올려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안겨서 품안에 폭 들어오는 느낌은…

처음이었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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