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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공작
306.
The Age of Hero 유저 3억7천만 명(게임 시간으로 1년 사이에 1천만 명 증가) 중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었다.
2위 대한민국, 3위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로, 대한민국의 국민 게임이 아니라 중국의 국민 게임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그런 나라에 달랑 두 도시만 배정하자 유저가 NPC보다 많은 촌극이 벌어졌다. NPC보다 유저가 많은 건 문제가 될 게 없었지만, 인구 3,000만 명의 도시에 유저가 5,000만 명이나 되자 편의시설과 사냥터가 한참 모자랐다.
모자란 편의시설은 도시의 기능을 떨어뜨려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좁은 사냥터는 유저들의 싸움을 부추겼다.
일부는 일본과 한국 사냥터에 몰래 넘어갔다가 죽고 죽이는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박만수 박사와 환인이 고의적으로 좁은 곳에 몰아넣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상황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자 하연이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니를 만난 다음 날 아침 일찍 하린이와 하연이를 데리고 북동부 최대 도시 이듄으로 날아갔다.
이듄은 북중부 도시 아슈뉴르와 함께 중국 유저들의 스타팅 포인트로 중국 유저만 있어 우리가 한국인이란 게 알려지면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고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 로브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 포털을 타고 이듄으로 이동했다.
계획은 재빨리 도시를 빠져나가 이듄에서 서쪽으로 2,000km 떨어진 에이다 공작가로 날아가 은하와 쥬디, 세라, 도로시, 나나, 야냐를 소환하는 것이었다.
레오니가 준 편지도 있고, 연락도 해놔 에이다 공작을 만나 100레벨 보스 몬스터 여왕개미 베르나미와 부보스, 개미 몬스터에 관해 정보를 얻은 후 놈들을 처리하고 보상을 받은 후 집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100레벨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이제 식은 죽 먹기인 만큼 하루 안에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포털을 나오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인파의 파도에 묻혀 이리저리 휩쓸려 다녀야 했다.
도심을 벗어나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중국 유저들의 만행(?)에 1시간 넘게 지독한 악취를 맡으며 끌려 다녀야 했다.
「욱! 냄새! 얘들은 게임인데도 왜 냄새가 나고 지랄이야?」
「코 막아.」
「코 막아도 냄새나요.」
「냄새 안 나게 해줄까?」
「네.」
「한 방 맞으면 코피 때문에 냄새 못 맡을 거야. 가만히 있어. 안 아프게 부러뜨려줄게.」
「헉!」
1시간 넘게 지독한 악취를 참으며 끌려다닌 후에야 간신히 도심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듄을 벗어나서도 황금 가루다의 날개를 펼 수 없었다. 20~30m마다 중국 유저들이 몬스터를 잡고 있어 밤이 될 때까지 에이다 공작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야만 했다.
“반갑소. 에이다 공작이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오 자작입니다.”
“레오니에게 얘기 많이 들었소. 젊은 나이에 실력도 대단하고 포부도 크다고.”
“백작 부인께서 저를 좋게 보셔서 한 얘기입니다. 그만한 능력 없습니다.”
“레오니가 여자라서 그렇지 남자였다면 가문을 물려줬을 것이오. 그런 레오니가 극찬을 했소. 거짓은 없을 것이오. 그리고 능력이 없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을 것이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소? 레오니 말로는 어제 도착한다고 했는데?”
“집에 급한 일이 생겨 하루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레오니의 아버지 에이다 공작은 70대 후반의 노인이었지만, 겉모습은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20년 넘게 젊어 보이는 건 프리 스콜라라서였다. 지금은 검을 놓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부하들을 데리고 몬스터 토벌하러 다닐 만큼 정정했다.
기사와 마법사는 검과 마법을 익힌 수준에 따라 생명력의 차이가 심했다. 스콜라와 수습 마법사는 일반인보다 10년 정도 더 살았고, 나이도 조금 어려 보였다.
프리 스콜라와 정식 마법사는 최대 20년, 프로보스트와 마도사는 30~50년, 소드마스터와 아크메이지는 육체가 재구성돼 300년 이상을 살며 나이도 20대로 멈춰 죽을 때까지 젊음을 유지했다.
“레오니에게 듣기로 둘이 사귄다고 하던데... 맞는지 알고 싶소.”
“맞습니다.”
“레오니를 어쩔 생각이오?”
“아내로 맞이할 겁니다.”
“시푸아 백작이 있는데 가능하겠소?”
“아이가 태어나면 제거할 생각입니다.”
“레오니를 이용하다 버리려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
“환인께 맹세하건데, 그럴 일은 없습니다.”
공작과 자작의 계급은 3단계밖에 차이나지 않았지만, 권력은 대통령과 지방 시장만큼 차이가 컸다.
그러나 영지를 가진 귀족은 왕과 같은 위치로 작위가 높다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작위가 높다고 막말을 하는 건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반말하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나라가 크고 힘이 세도 한 지역을 다스리는 국가 지도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했다. 그것이 관례이자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하지 않는 방편이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로서 걱정은 하지만, 호의적으로 보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공작은 나와 레오니의 관계를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레오니가 자신의 아버지 에이다 공작에게 나와의 관계를 말하고 도움을 받고 싶어 했다.
나와 레오니의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에이다 공작이면 외부라고 할 순 없었다.
레오니를 품는 순간 장인과 사위가 되는 것으로 에이다 공작 가문과는 혈연으로 맺어지는 것이었다.
“진심이오?”
“네.”
“좋소. 나도 자작을 돕겠소. 레오니를 잘 부탁하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앞으로 잘 해보세. 사위.”
에이다 공작 가문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엄청났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결함이 많아 10대 공작 가문 중 말석을 차지했지만,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았다.
자작인 내가 황자들에게 손을 잡자고 하면 콧방귀를 뀐다. 그러나 에이다 공작이 손을 잡자고 하면 서로 손을 잡지 못해 안달을 낼 것이다.
크바시르와 남동부를 모두 차지해도 황자와 고위 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왕국 선포는 물 건너간 일이었다. 에이다 공작 가문의 영향력을 이용해 황자들과 손을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베르니아 공작님과 절친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맞네.”
“황제가 죽으면 크바시르를 점령할 생각입니다. 베르니아 공작님도 3황자가 황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동맹을 맺어주십시오.”
“베르니아 만으로는 많이 부족할 텐데?”
“21황녀를 밀고 있는 마메존 후작, 88황자의 외조부인 캐미언 공작과도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캐미언 공작은 장담할 수 없네. 그러나 베르니아 공작과 마메존 후작은 반드시 성사시키겠네.”
“감사합니다.”
“어차피 자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가문도 끝장이야.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지.”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할 베르니아 공작과 에이다 공작은 수도 크라쿠푸스의 황립 아카데미를 동문수학한 친구 사이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되는 게 세상이었지만, 베르니아 공작과 에이다 공작은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만나 술잔을 기울일 만큼 50년 넘게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이런 둘의 우정을 떠나서 베르니아 공작과 3황자의 상황도 동맹을 맺기에 아주 적합했다.
영지를 가진 공작 가문 셋과 후작 가문 다섯이 황태자를 다음 대 황제로 밀고 있어 3황자가 황태자를 밀어내고 황제가 될 확률은 매우 낮았다.
3황자가 취할 수 있는 길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잠시 생명을 연장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거나 왕국을 선포하고 싸우는 것 둘 중 하나였다.
3황자의 죽음은 베르니아 공작 가문의 멸망을 의미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으로 에이다 공작이 동맹을 제안하면 눈물로 반겨줄 것이었다.
마메존 후작과는 친하지 않았지만, 21황녀를 밀고 있는 마메존 후자의 영지가 수도 크라쿠푸스에서 3,0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로 350km밖에 안 돼는 대한민국에선 3,000km가 엄청나게 먼 거리였지만, 면적이 3,400만㎢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닌 아틸라 제국에선 3,000km는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88황자의 외조부인 캐미언 공작과는 견원지간이었다. 선조 때부터 앙숙으로 동맹은 고사하고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도 어려웠다.
“좀 더 깊은 얘기는 여왕개미 베르나미를 잡고 와서 하겠습니다.”
“알았네. 조심해 다녀오게.”
“네.”
성문까지 배웅 나온 에이다 공작을 뒤로하고 맨티스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호르빌 평야로 향했다.
에이다 공작 가문의 마크는 사마귀 맨티스였다. 상대를 한 방에 끝장내는 사나운 포식자 사마귀로 기사단이 착용한 갑옷과 방패에 날개를 활짝 편 사마귀가 아주 사납게 그려져 있었다.
“여기부터 개미 몬스터가 나오는 지역입니다.”
“동굴은 어디입니까?”
“300km는 더 가야 나옵니다.”
“반년 만에 300km나 전진한 겁니까?”
“속도가 점점 빨라져 그렇게 된 겁니다. 지난달까지는 200km밖에 안 됐습니다.”
“여기서부터 저희끼리 가겠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아닙니다. 저희도 가겠습니다.”
“공작님께는 저희끼리 간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돌아가셔도 문책받는 일은 없습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자작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우리를 호위해온 맨티스 기사단 단장 볼트론 남작은 프로보스트 중급으로 매우 뛰어난 기사였다.
그러나 지난번 개미굴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한 후로 사기가 꺾여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에이다 공작이 동굴까지 길 안내를 해주라고 명령해 이곳까지 왔지만, 겁에 질려 개미굴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는 쥬디가 알려준 것으로 개미굴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이곳까지 오면서 지휘부의 기억을 모두 읽으며 알게 됐다.
쥬디는 마도사에 다다르진 않았지만, 혜안 능력은 크게 발전해 소드마스터와 아크메이지에 도달하지 못한 기사와 마법사의 기억은 상대도 모르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또한, 100레벨 보스 몬스터의 기억도 읽을 수 있게 돼 놈들이 무슨 스킬을 쓰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혜안으로 읽을 수 있는 기억은 능력과 상관없이 10일로 한정돼 아쉬움으로 남았다.
“여기서부터가 호르빌 평야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바윗길을 따라가면 땅이 꺼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개미 몬스터가 수시로 출몰해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 길을 쭉 따라가시다가 숲이 나오면...”
볼트론 남작이 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걸 열심히 듣는 척만 했다. 쥬디가 볼트론 남작의 기억을 읽어 여왕개미 베르나미가 있는 동굴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 지 오래였다.
그리고 놈들의 크기와 주요 공격 형태도 모두 알아내 목 아프게 고개를 끄덕여 줄 필요도 없었다.
「큰오빠, 더 들을 것도 없어요. 제가 기사단장보다 더 잘 알아요.」
「그래도 열심히 설명하는데 듣는 척은 해줘야지.」
「예의가 너무 좋으셔.」
「흐흐흐흐.」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