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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당 족치기
301. XXX당 족치기
“허태영, 지난번에는 운 좋게 빠져나가더니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고 딱 걸렸네. 잘됐다. 아주 꼬시다.”
“허태영과 최순팔, 최도팔, 김향은 씨 윤간하고 죽인 놈들만 구속된 거야?”
“주조학과 정동양, 공무원, 기자, 실혜 건설 관계자도 구속됐어.”
“몇 명이나?”
“58명.”
“허태영이 뇌물 준 놈들은?”
“조사 중이야. 빠르면 이번 주 늦으면 다음 주에 구속할 거야.”
“거긴 몇 명이나 구속할 것 같은데?”
“20명쯤?”
“지난번처럼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는 건 아니야?”
“그렇게 되겠지. 위에 놈들이 꼬리 자르기에 들어갔을 테니까.”
마림 재단 게이트는 재단 이사장 이만철과 후계자 이은수가 정치인과 공무원, 검찰, 경찰, 언론 등에 광범위하게 금품을 살포한 사건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뇌물 금액이 크고, 많은 사람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보다 이은택과 정이슬의 살인, 마약, 폭행 등에 언론이 초점을 맞추며 뇌물수수와 이권 개입은 상대적으로 많이 축소됐다.
정이슬과 이은택의 엽기적인 행각도 원인이었지만, 대한민국 최고위층 입김이 크게 작용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림 재단 게이트는 몇 명이나 구속됐어?”
“159명.”
“생각보다 많이 구속됐네.”
“숫자는 많은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아”
“왜?”
“정치인과 검찰, 고위직 공무원 놈들이 이만철과 이은수에게 받은 돈은 대가성이 없다고 딱 잡아뗐어.”
“한두 푼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지. 그런데 검찰은 그들 말을 인정하고 있어.”
“진짜 인정하는 거야? 인정하는 척하는 거야?”
“당연히 후자지.”
“어이가 없다.”
“맞아. 어이없게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날 거야. 그리고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찰과 실무 공무원들만 중형을 때릴 가능성이 커.”
“국회의원과 장·차관 중에 징역형 받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받기는 받지. 집행유예라서 문제지.”
“대한민국 정말 너무 한다.”
“양심도 없지.”
많은 사람이 구속을 징역형으로 착각했다. 구속은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해 심문하기 위하여 법원 기타의 장소에 인치하는 강제처분을 말하는 것으로 최대 20일 안에 범죄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풀어줘야 했다.
은하와 내가 어이없어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TV에선 정치인과 공무원, 검찰을 포토라인에 줄줄이 세우면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대형 범죄 사건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국민 관심이 사라지자 증거 불충분과 집행유예, 꼬리 자르기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하고 있었다.
시민사회와 뜻있는 야당 인사 몇몇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지만, 언론을 장악한 정부의 힘 앞에 국민의 관심이 나날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되겠지?”
“허태영이 뇌물 준 건 마림 재단 게이트와 비슷하게 흐르겠지만, 실혜 건설에 엮인 놈들은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결국, 한 놈씩 패야 한다는 말이네?”
“그게 효과는 가장 좋지.”
이범석 상사가 신문사와 방송국 열 곳에 은밀히 보낸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자 마림 재단 게이트 사건 때만큼 여론이 들끓었다.
마림 재단 게이트만큼 국민 관심을 끈 건 윤간 후 불타 죽은 김향은, 최도팔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개에게 물려 죽은 이나미, 이나영 자매 때문이었다.
이은택과 정이슬이 저지른 사건만큼이나 끔찍한 일에 국민은 다시금 분노했고, 사건 관계자를 모두 구속하라고 외쳤다.
이러자 정부와 검찰도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녹슨 칼을 빼어들 수밖에 없었다.
뉴스가 나간 다음 날 허태영 의원과 실혜 건설 최순팔, 동생 최도팔, 서울지방경찰청 경무관 조주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 검사 정동양, 행정자치부 공무원이 3명, 서울시 공무원 6명, 지방 공무원 20명, 기자 8명, 김향은을 윤간하고 죽인 건설 용역 깡패들과 자매를 납치하는데 일조한 실혜 건설 직원들이 전격 구속됐다.
구속 다음 날 최순팔의 별장 뒷산에서 암매장한 자매의 시신이 나오며 신문사와 방송국에 전달된 내용이 사실이란 게 밝혀지며 국민의 성난 분노가 더욱 가열됐다.
그러자 불똥이 허태영이 상납한 뇌물에 쏠렸다. 마림 재단 이사장 이만철이 뇌물을 상납하고 자료를 꼼꼼하게 모은 것처럼 허태영도 뇌물을 준 사람, 금액, 시간과 장소, 건네주는 모습, 나눈 대화까지 치부책과 함께 USB에 모두 기록해 놓았다.
너무나 정확한 내용에 검찰도 모른척할 수 없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그러나 마림 재단 게이트 때처럼 잔챙이부터 한 명씩 소환하며 국민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를 기다렸다.
“은하야, 여러 명 묶어서 터뜨리기로 한 거 한 명씩으로 바꾸자. 그래야 놈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어.”
“알았어. 그런데 우리 쪽 소행인 걸 국정원이 알아차리면 어쩌지?”
“이범석 상사 그렇게 허술한 사람 아니야. 국정원 요원 십여 명은 가볍게 따돌릴 수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범석 상사님을 믿지 못해서 그런 말 한 거 아니야. 상대가 바짝 약이 올라 있어 걱정돼서 그래.”
“으음... 그러면 출장 보내야겠네.”
“출장?“
“이제까지 편의점을 통해 언론사와 방송에 자료를 보냈잖아. 국정원과 경찰에서도 지방 편의점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펼칠 테니까 해외에서 특급 우편으로 자료 보내면 걸릴 염려가 없잖아.”
“이범석 상사님은 군에서도 알아주는 군인이었잖아. 출입 기록이 남아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잖아?”
“국경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유럽으로 가면 되지. 그러면 알아낼 수 없어.”
“두세 번은 괜찮겠지만, 계속 해외로 나가면 주목받게 될 거야.”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돼. 미리 걱정할 거 없어.”
나와 하린이, 하연이가 해외로 나가 자료를 보내도 됐고, The Age of Hero 메일을 통해 언론사에 자료를 보내는 방법도 있었다.
The Age of Hero 메일은 환인이 정보 공개를 하기 전까진 들킬 염려가 없어 가장 안전하고 간편한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쓰지 않는 건 해킹을 염려해서였다. 수많은 해커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각국 정보기관과 글로벌 기업 정보팀, 국제 범죄 단체가 The Age of Hero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이끌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환인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3억6천만 명 유저를 돌보며, 30억 명이 넘는 NPC와 그보다 만 배는 많은 몬스터를 조종하는 환인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해 3년 넘도록 단 한 번도 해킹에 성공하지 못했다.
최고라는 이름이 붙은 해커들이 환인의 데이터베이스를 터는 것이 꿈이라고 공공연하게 외칠 만큼 환인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대응방법이 나온다.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순 없지만, 환인의 방호벽을 뚫을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래서 The Age of Hero 메일을 쓰지 않고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것이었다. 걸릴 것을 대비해.
하연이가 익명의 이름으로 이은수와 이은택, 정이슬에게 보낸 메일은 개인 간의 일로 걸려도 크게 문젯거리가 될 게 없었다.
얼굴 붉히며 욕설 몇 번 오가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언론사에 보낸 자료는 고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칼부림이 오갈 일로 죽어서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일이었다.
정부와 검찰은 국민의 관심을 허태영이 윗선에 상납한 뇌물이 아닌 철거 용역 깡패와 살인으로 돌리기 위해 허태영과 최순팔, 최도팔 사건에 검사를 50명 넘게 투입해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 달도 안 돼 최도팔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최순팔은 무기징역, 허태영은 10년 형을 선고했다.
김향은씨를 윤간하고 불태워 죽인 건설 용역 깡패들도 모두 사형이 선고됐고, 자매를 납치하고 감시한 일당은 10년형이 선고됐다.
수사관 안정준을 죽인 최도팔의 오른팔 이기출은 사형, 김향은씨 죽음과 자매의 행방불명을 무마해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 검사 정동양은 20년 형, 안정준 수사관의 죽음을 미결 처리하는데 도움을 준 서울지방경찰청 경무관 조주학은 10년 형이 선고됐다.
이 밖에도 실혜 건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행정자치부 공무원 3명과 서울시 공무원 6명, 지방 공무원 20명, 기자 8명은 5년에서 10년 형이 선고됐다.
검찰의 발 빠른 행동에 많은 국민이 박수를 보냈고, 그런 덜떨어진 국민 덕분에 허태영 뇌물 상납 사건은 마림 재단 게이트 사건처럼 잔챙이들만 엮으며 수면 아래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나 허태영과 최도팔의 1심 판결이 나온 지 일주일 후 여당인 XXX당 최고위원 김전태 의원의 혼외 아들과 무기 로비, 군 기밀 유출 사건이 터졌다.
3선의 김전태 의원은 장성 출신이자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XXX당의 간판이었다.
허태영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물이 스캔들에 휩싸이자 그동안 참아왔던 국민의 원성이 XXX당에 쏟아졌다.
문제는 야당 텃밭과 서울에서만 XXX당을 욕하는 게 아니라 여당 텃밭에서도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XXX당 전체를 욕했다.
김전태 의원 사건이 터진 지 일주일 만에 지지율이 10%나 빠졌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15%나 떨어지는 등 여당은 물론, 정부와 청와대의 지지율까지 동반 추락했다.
급히 수사팀을 꾸려 민심 수습에 나섰지만, 마림 재단 게이트와 허태영 사건에 이어 김전태 사건까지 연달아 터지자 성난 민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유럽 여행 제대로 했는데.”
“재미있게 다녀오셨다면 다행이고요.”
“언제 또 나가야 해?”
“짧으면 한 달, 길면 두 달 후에 나가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하지 마. 자주자주 보내줘. 아내와 자식들이 너무 좋아해. 입이 귀에 걸렸어.”
“그렇습니까?”
“걸핏하면 비상 걸려서 놀러 가기로 한 약속 펑크 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거기다 박봉이라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고. 너 아니었으면 가족들과 해외여행 죽을 때까지 못 갔을 거야.”
“제대하고 경호 회사 차렸잖습니까? 그때는 시간 좀 있었을 텐데요?”
“돈이 없는데 어딜 가? 그 흔한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봤다.”
“김상호 상사님과 박무윤 상사님, 정동일 상사님도 마찬가지겠군요?”
“그놈들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 나랑 마찬가지지.”
“다음에 나갈 때는 교대로 한 분씩 같이 데리고 가세요. 가족들도 모두 함께요.”
“정말 그래도 돼?”
“평생 부려먹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안 그렇습니까?”
“이게 부려먹는 거냐? 걷어 먹이는 거지.”
“잔뜩 먹인 다음에 잡아먹어야 먹을 게 있는 겁니다. 굶겨 놓고 잡아먹으면 먹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고맙다.”
“제가 고맙습니다.”
이범석 상사를 비롯해 김상호 상사, 박무윤 상사, 정동일 상사, 김영우 중사, 손필영 중사, 김동양 중사, 이연숙 중사, 박미향 중사 모두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능력은 출중했지만, 고지식한 사람들이라 세상이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9명 모두 힘들게 살아야 했다.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줄 때만큼 행복하고 뿌듯할 때가 없었다. 이들이 내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올바르지 않은 일을 요구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시키기 때문에 더욱 내게 충심을 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대가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과 최고의 장비, 최고의 시설, 최고의 연봉 그리고 럭셔리한 휴가까지 제공했다.
물길은 인위적으로 바꿔선 안 된다. 그러면 큰 재앙이 따른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해야지 억지로 따라오게 해선 안 된다. 강요는 배신을 낳고, 배신은 파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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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