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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97화 (29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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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사과

297. 반성과 사과

스르릉

가볍게 붉은 독수리의 머리를 밀자 별다른 저항감도 없이 문이 열렸다. 열쇠도, 보안 장치도 없이 문 세 개로 침입자를 방비한 틸트론 왕가의 대담함과 바보 같은 행동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오빠, 메시지 잘못 읽은 거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음산한 게 함정 같아요.”

“파란 독수리 문에 넣어줄까?”

“저 혼자요?”

“그래.”

“싫은데요.”

“싫으면 조용히 하고 따라와.”

“메롱~”

문이 열리자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됐다. 상자에 금화가 가득 담긴 석실이 눈 앞에 펼쳐질 줄 알았는데, 어둡고 컴컴한 동굴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오빠, 으스스하지 않으세요?”

“나는 모르겠는데.”

“언니는?”

“아주 기분 나빠. 당장이라도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닐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야.”

“나도 그래 언니.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해서 짜증까지 날 지경이야. 그런데 오빠는 왜 그런 느낌이 없는 거지?”

“오빠는 사악한 힘을 물리치는 홀리멘탈 원형 방패와 블레이드가 있어서 그래.”

하린이 말처럼 용기사 사이먼의 홀리메탈 원형 방패와 블레이드에는 벽사파마(辟邪破魔)의 힘이 깃들어 있어 사악한 기운이 접근하지 못했다.

레전드로 업그레이드하자 벽사파마의 기운이 더욱 강해져 50레벨 이하 언데드와 유령, 악마형 몬스터는 방패와 블레이드를 꺼내기만 해도 꼼짝을 못했다.

“하린아, 많이 심해?”

“응.”

“하연이도 그래?”

“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에요.”

고개를 돌려 하린이와 하연이 표정을 살폈다. 농담이 아닌지 고운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 있었다.

“둘 다 바짝 붙어서 방패에 손 올려.”

“그러지 말고 안아주세요. 아니면 업어주세요.”

“하연아, 우리 셋밖에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 볼기 맞아도 창피하지 않겠지?”

“생각해보니 팔짱이 더 낭만적인 것 같네요. 호호호호.”

품에 안기듯 달라붙은 하린이와 하연이가 홀리메탈 원형 방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몸을 침습하던 사악한 기운이 단박에 사라지며 찡그렸던 인상도 밝게 펴졌다.

“오빠,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걸까?”

“죽은 원혼이 동굴에 가득 찼거나, 우리가 보물이라고 생각한 게 사실은 사악한 물건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면 안에 들어갈 필요 없잖아?”

“추측일 뿐이야.”

“설마가 사람 잡는 거 몰라?”

“여기까지 와서 확인도 안 하고 꽁무니를 빼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야. 뭐가 있는지는 보고 가야지.”

“찜찜해.”

“홀리메탈을 믿어.”

으스스한 동굴을 30분쯤 걷자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나왔다. 금화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나오길 학수고대했는데, 붉은빛에 휩싸인 리빙 아머 한 마리만 덩그러니 있었다.

제단처럼 생긴 5층 탑 위에 의자가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리빙 아머 한 기가 태연히 앉아 있었다.

그 아래로 또다시 부서진 리빙 아머와 히타룬 족의 해골이 잔뜩 쌓여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장면과 다른 건 괜찮아 보이는 방어구와 무기가 30개도 넘게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1만 년이 지나도록 형태를 완벽히 유지했다는 것은 아주 뛰어난 아이템이라는 뜻으로 양쪽 지휘관들이 사용했던 아이템 같았다.

「저것들만 팔아도 한밑천 잡겠네요.」

「하연아, 네 눈에는 아이템만 보이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이상한 리빙 아머는 보이지 않니?」

「리빙 아머는 오빠가 통제할 수 있잖아. 뭐가 문제야?」

「지금까지 봐 왔던 놈들과 다른 거 안 보여?」

「그러면 오빠가 놈을 상대하는 동안 언니와 나는 아이템 챙겨서 달아나면 되겠네.」

「뭐라고?」

「농담이야. 호호호호.」

「이걸 그냥...」

- 바르탄야의 지배자 100레벨 보스 몬스터 영혼의 구속자 리빙 아머 샤마르타가 나타났습니다.

「샤마르타면 틸트런 왕국의 마지막 왕인데. 어째서 놈이 리빙 아머가 된 거지?」

레오니는 샤마르타가 히타룬 족이 수도에 쳐들어왔을 때 궁전에서 죽었다고 했다. 이래서 기록은 100% 믿을 게 못됐다.

샤마르타는 히타룬 족이 수도에 침입하자 포털을 이용해 재빨리 바르탄야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왕족을 인질로 잡은 히타룬 족이 곧바로 바르탄야로 쫓아왔고, 결국 도망치다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오빠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100레벨이에요.」

「오빠, 어떻게 할 거야? 달아나야 하는 거 아니야?」

「놈이 우릴 봤어. 이미 달아나긴 글렀어.」

「그러면 쥬디와 도로시, 나나, 야냐를 소환해. 그래야 놈을 잡을 수 있어.」

「안 돼. 우리끼리 해결해야 해.」

「100레벨 보스 몬스터야. 이길 수 없어.」

「언데드야. 가능성 있어.」

「그래도...」

「애들 죽으면 살릴 수도 없어. 무조건 우리끼리 해결해야 해. 준비해.」

「알았어.」

놈을 잡지 못하고 전멸하면 쥬디와 도로시, 나나, 야냐를 영영 잃게 된다. 스탯과 생명력, 마나 10%를 잃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네놈은 어찌하여 짐의 왕관을 쓰고 있느냐?”

“나야말로 묻고 싶다. 샤마르타 행세를 하는 너는 누구냐?”

“나는 위대한 틸트런 왕국의 군주 샤마르타다.”

“틸트런 왕국은 1만 년 전에 멸망했어. 그런 나라는 이제 없어.”

“헛소리하지 마라. 틸트런 왕국은 아란테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자 가장 부유한 나라야. 누구도 틸트런 왕국을 넘볼 수 없어.”

“집도 없이 초원을 유랑하는 기마민족 히타룬에게 무너진 주제에 허세는....”

“히타룬... 으악!”

히타룬이란 말에 샤마르타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샤마르타에게 히타룬은 기억하기 싫은 트라우마였는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사악한 붉은 기운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오빠, 샤마르타의 몸에서 일렁이는 붉은 기운 영혼 같은데요?」

「하연이 말이 맞아. 이름도 영혼의 구속자잖아. 샤마르타가 오빠의 말에 고통스러워하자 놈에게 갇힌 영혼들도 괴로워하는 게 분명해.」

「하린아, 은하 접속하고 있는지 귓속말해봐. 없으면 빨리 들어오라고 문자 보내.」

「영혼 구슬로 샤마르타에게 갇힌 영혼을 빼앗으려고?」

「어.」

동굴에 들어왔을 때 하린이와 하연이가 음습한 기운에 고생한 건 모두 샤마르타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샤마르타는 바르탄야에서 죽은 영혼을 모두 흡수한 게 분명했다. 틸트런 왕국은 물론 히타룬 족의 영혼까지 흡수해 강대한 몬스터로 거듭난 것이었다.

샤마르타의 힘은 리빙 아머에 가둔 원혼이었다. 원혼을 빼앗으면 샤마르타의 힘도 약해질 게 분명했다.

은하는 아직 암흑의 군주 최종 스킬 영혼 흡수 및 소환 스킬을 익히지 못했다. 그러나 암흑의 군주 탈라한의 영혼 구슬에는 30% 확률로 영혼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영혼 소환 스킬을 익히지 못해 그동안 사냥하는 틈틈이 모은 영혼 1,500개를 사용하지 못한 채 보관만 있었다.

「은하 언니! 은하 언니!」

「하란이니? 무슨 일 생겼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목소리가 다급해?」

「사정 얘기는 조금 이따가 할게요. 언니. 지금 뭐하고 계세요?」

「베르니의 일기장 읽고 있어.」

「오빠가 소환할 거예요. 준비하세요.」

「자.잠깐만. 나 지금 팬티에 브라우스만 입고 있어. 바지하고 윗도리 좀 입을게. 1분만 기다려줘.」

「언니, 시간 없어요. 위에 그냥 방어구 입으면 돼요.」

「아.알았어. 소환해.」

‘은하 강제 소환.“

- 군주의 소환을 사용해 은하님을 강제소환하시겠습니다?

‘예.’

- 은하님이 모모님 옆으로 강제소환됐습니다.

“으아아악... 웁!”

장거리 순간 이동의 무시무시한 회전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은하의 입을 재빨리 손으로 틀어막고 샤마르타를 가리켰다.

히타룬 족에게 당한 충격이 1만 년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는지... 어둠 속에 갇혀 있어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려 1만 년이 지난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샤마르타는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영혼 구슬로 샤마르타가 흡수한 원혼을 뺏어야 해. 되는지 해봐.」

「알았어.」

은하가 암흑의 군주 탈라한의 영혼 구슬을 꺼내 샤마르타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샤마르타의 몸에 넘실대는 붉은 기운이 자석에 이끌린 듯 쭉 늘어나 은하 손에 들린 영혼 구슬로 오려 발버둥 쳤다.

「하린아, 하연아, 은하를 보호해.」

「알았어.」

「은하는 계속 영혼 구슬로 샤마르타를 겨냥해.」

「응.」

탈라한의 영혼 구슬만으로는 샤마르타에게서 영혼을 빼어올 수 없었다. 히타룬 족에게 나라가 풍비박산 나고, 목숨까지 잃은 트라우마에 몹시 괴로워했지만, 심대한 타격을 받거나 정신을 놓은 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놈에게 갇힌 영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버둥대기만 했다. 영혼을 뺏어 힘을 약화시키려면 강력한 타격을 줘야했다.

‘도발!‘

- 100레벨 보스 몬스터 영혼의 구속자 리빙 아머 샤마르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도발에 걸린 샤마르타의 방어력이 10% 하락했습니다. 흥분한 샤마르타가 모모님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크리사오르의 현신! 검은 회오리! 불새!’

크리사오르의 현신(하루에 한 번 30초간 공격력과 방어력을 2배 향상)으로 두 배나 커진 불새의 검은 회오리가 재빨리 다가가 샤마르타를 짐어 삼켰다.

- 샤마르타가 어지럼증에 걸렸습니다. 어지럼증으로 인해 40초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방비 상태가 발동해 40초 동안 데미지가 1.5배 들어갑니다.

- 홀리멘탈 블레이드의 중형 몬스터 데미지 105% 증가가 발동했습니다. 언데드와 악마형 몬스터 공격력 175% 증가합니다.

도발에 걸린 샤마르타가 고통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자 재빨리 다가가며 불새의 검은 회오리를 만들어 가뒀다.

- 은하님이 영혼 구슬로 샤마르타에게 구속된 영혼 39개를 흡수했습니다.

- 은하님이 영혼 구슬로 샤마르타에게 구속된 영혼 56개를 흡수했습니다.

- 은하님이 영혼 구슬로...

한발 빠른 공격에 화염 회오리를 피하지 못한 샤마르타가 어지럼증에 걸려 무방비상태에 빠지자 리빙 아머에 갇혔던 영혼이 빠져나와 암흑의 군주 탈라한의 영혼 구슬에 흡수됐다.

‘창공의 검! 파멸의 인도자!’

꽈르릉

최강 스킬 3개를 연속으로 쏟아내자 제단처럼 쌓인 돌이 먼지처럼 부서졌고, 동굴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샤마르타는 100레벨 보스 몬스터였다. 지독한 트라우마에 방심하다가 화염 회오리에 갇힌 것뿐이었다.

정신을 차리면 언제든 회오리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놈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틈에 구속된 영혼을 최대한 빼앗아야 했다. 그래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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