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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96화 (29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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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계승자

296.

우리 눈앞에 있는 리빙 아머는 틸트런 왕국 왕족 대피소인 바르탄야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게 분명했다.

하연이 말처럼 강력한 몬스터가 있었다면 리빙 아머는 고철 덩어리로 변한 채 여기저기 조각나 흩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속단할 순 없었다. 녀석은 외곽 순찰조로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마나가 떨어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다.

저 멀리 첨탑만 아스라이 보이는 바르탄야까지 가봐야 알 수 있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인지 대박인지.

주변에 마나가 떨어져 기능이 멈춘 채 수면 모드로 대기하고 있는 리빙 아머가 있는지 찾았다.

공동은 넓이는 대략 3km가 넘었고, 높이는 500m쯤, 길이는 15km쯤 됐다. 허허벌판이면 한눈에 찾을 수 있지만, 굴곡도 많고, 풀도 많아 발품을 팔아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먼저 주변에 몬스터가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한 후 찾아야겠다. 여기 있어. 둘러보고 올게.”

“조심해.”

“조심하세요.”

“어.”

황금 가루다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라 5km를 전진했다.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어 방패를 가슴에 바짝 붙인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아갔다.

다행히 몬스터는 없고, 토끼와 족제비 등 작은 동물들만 커다란 새가 덮치는 줄 알고 놀라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좌우에도 몬스터가 있을 수 있어 최대한 갈지자를 그리고 돌아오며 몬스터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폈다.

하연이의 예측이 맞았는지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가 없자 나와 만득이는 중앙, 좌측은 하린이, 우측은 하연이가 맡아 리빙 아머가 있는지 수색했다.

3시간의 수색 끝에 리빙 아머 13마리를 찾아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팔찌에 보관했다.

몬스터가 없자 마나를 채울 수 없어 리빙 아머를 고칠 수 없었다. 그리고 황금 가루다의 날개도 사용할 수 없어 뚜벅이로 다녀야 했다.

「오빠, 왕궁 파손 상태가 아주 심해.」

「얼마나?」

「절반 이상 무너졌어.」

「오래돼서 허물어진 거야?」

「일부만 그래.」

「일부만 그렇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오래됐지만, 싸운 흔적이 곳곳에 있어.」

「히타룬 족이야?」

「너무 오래돼서 그것까진 알 수 없어.」

「근처에 아무것도 없어?」

「살아 있는 건 없어. 들어와.」

「알았어.」

은신 스킬이 있는 하린이가 홀로 반쯤 허물어진 바르탄야로 들어가 몬스터가 있는지 살폈다.

바르탄야는 내 영지성의 100배쯤 되는 큰 성으로 5m가 넘는 성벽 속에 3층짜리 집 세 채와 하인들이 쓰는 건물 한 동, 병사들의 숙소 세 동이 있었다.

대피소가 아니라 휴양소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건물로 집 주변은 아름다운 정원과 연못이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쯤 무너져 내린 폐허 위에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무성한 잡초, 뼈만 남은 말과 사람 시체, 부서진 리빙 아머만이 남아 있었다.

“오빠, 리빙 아머 살릴 수 있는 거 찾을까요?”

“그건 보물 찾은 다음에 하자.”

“네.”

리빙 아머도 골렘처럼 복원 기능이 있어 마법진이 살아 있으면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옷이 절반 넘게 부서지면 복원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마나가 들어 포기하는 게 나았다.

“만득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지 찾아봐.”

“키륵 키륵.”

우리보다 시작이 훨씬 뛰어난 만득이가 부서진 건물더미를 돌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지 찾았다.

그러나 눈 씻고 찾아도 내려갈 곳이 보이지 않자 부서진 건물 잔해 속으로 들어가 통로를 찾았다.

“작은 게 이럴 때는 써먹을 만하네요.”

“개똥에 약에 쓸데가 있다고 하잖아. 흐흐흐.”

“만득이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제깟 놈이 싫으면 어쩔 거야? 내게 종속돼 있어 도망갈 수도 없는데.”

“도망은 못 가도 오빠 열 받게는 할 수 있죠.”

“어떻게?”

“머리에 오줌 싸면 되죠.”

“뭐라고?”

“호호호호.”

만득이는 내게 귀속된 몬스터로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혼을 내고 괄시해도 하린이가 말한 것처럼 행동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하린이와 자주 어울리면 하루가 다르게 장난기가 점점 늘고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머리에 오줌 싸는 거 아니야?’

“캬르릉 캬르릉.”

“알았어.”

무너진 돌무더기 아래를 한참 헤맨 만득이가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찾아냈다. 자이언트 용아병이 돌을 드러내자 금세 지하로 내려가는 넓은 계단이 나타났다.

“오빠, 내가 들어가서 살펴볼게.”

“숨을 곳이 없어서 안 돼. 용아병과 리빙 아머 앞장세우고 들어가는 게 나아.”

하린이의 은신 스킬 조용한 발걸음은 지속 시간이 40초밖에 안 됐고, 다시 사용하려면 60초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65레벨 이상 몬스터에겐 은신 상태가 발각돼 숨을 곳이 없는 지하 통로에선 사용하나 마나였다.

용아병 한 마리와 리빙 아머 세 마리를 앞세우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본채가 아닌 좌측 건물에서 발견됐다.

보물 창고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만득이가 무너진 잔해를 다 조사해 발견한 단 하나의 계단이라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대피소가 맞는지 지하는 아주 튼튼해 무너진 곳이 없었다. 지하 1층은 생필품 창고와 식료품 보관소였는지 녹슬어 형체만 남은 각종 생필품과 딱딱하게 굳은 밀가루, 마르다 못해 미라가 된 고기가 있었다.

지하 2층은 안 쓰는 집기를 모아뒀었는지 녹슬고 말라비틀어져 형체만 남은 가구와 의자 등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런 것들 속에 공통된 게 하나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리빙 아머와 해골만 남은 시체들이었다.

싸움이 치열했는지 해골과 리빙 아머가 계단 입구부터 3층으로 내려가는 커다란 철문 앞까지 가득했다.

“우리가 내려온 동굴 말고 다른 길이 또 있나 보네. 그것도 아주 넓은 길이. 그러니까 말까지 타고 내려왔겠지.”

“포털을 이용했을 수도 있어.”

“포털은 한쪽에서 막으면 넘어올 수 없어.”

“막기 전에 넘어와 포털을 점령했나 보지.”

포털은 외나무다리와 같아 반대편에서 길을 터주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리 침투시킨 스파이와 별동대를 투입해 포털을 장악하는 동시에 자신의 포털은 적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린이 말처럼 우리가 내려온 길이 아닌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선 대피소라고 말할 수 없었다.

대규모 기병이 난입할 수 있는 곳을 대피소라고, 그것도 왕실 대피소로 만들 바보는 없었다.

히타룬 족 수뇌부가 바르탄야가 있다는 걸 알고 미리 별동대를 파견해 포털을 점령했거나, 왕족을 인질로 잡아 쳐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커다란 철문이 최후의 보루였는지 철문 주위에 부서진 리빙 아머가 300기가 넘었고, 죽은 히타룬 족은 그보다 10배 이상 많은 5000구의 해골이 녹슨 무기와 함께 뒤엉켜 있었다.

“오빠, 철문 부서진 것으로 봐서 털린 것 같은데요?”

“그래도 왔으니 구경이나 하고 가자.”

해골을 밟고 3층으로 내려갔다. 비스듬히 아래로 뚫린 내리막길을 100m 넘게 걷자 100평 정도의 넓은 석실이 나왔다.

이곳도 철문 앞과 마찬가지로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뼈다귀가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사각형의 석실에는 가로 3m, 세로 5m의 문이 내려온 방향을 빼고 세 방향에 하나씩 있었다.

“여기가 보물 창고일까?”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안 그랬다면 히타룬 족이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왔을 이유도 없고요.”

하연이 말이 맞았다. 이곳까지 내려오는 동안 해골바가지를 1만 개 넘게 봤다. 막대한 피해를 보면서도 끝까지 달려들었다는 건 반드시 찾아야 하는 물건이 있다는 뜻이었다.

1만 명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뺏고자 했다면 절대 보통 물건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물건이 분명했다.

“셋 다 보물창고는 아니겠지?”

“그럼요.”

“그럼 두 곳은 함정이겠네?”

“네.”

“셋 중 어떤 게 보물 창고로 가는 문일까?”

“왼쪽 문이 파란 독수리잖아요. 전 그쪽인 것 같아요.”

“너무 뻔한 거짓말 아닐까?”

“그래서 왼쪽 문이에요. 뻔해 보이는 걸 역이용한 거니까요.”

“흐음...”

틸트론 왕가의 문장은 파란 독수리로 왼쪽은 파란 독수리, 가운데는 검은 독수리, 오른쪽은 빨간 독수리가 문에 그려져 있었다.

하린이 말처럼 생각이 두 번 비틀었다면 파란 독수리가 맞았다. 그러나 아니라면 위험이 가득한 곳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하린아, 네 생각은 어때?”

“황금 왕관이 알려주지 않을까?”

“왕관이?”

“응.”

“그럴 수도 있겠네.”

하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 독수리가 그려진 문에 다가갔다. 틸트론 왕국의 계승자가 되며 왕국의 모든 유산은 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리빙 아머도 내가 다가가자 충성을 맹세했다. 모두 틸트론 왕국의 황금 왕관의 효과로 보물을 숨겨둔 문도 반응할 게 분명했다.

- 이 문은 함정입니다.

손바닥을 문에 대자 함정이라는 메지가 떴다. 하연이를 향해 집게손가락을 쭉 펴서 얄밉게 좌우로 흔들어준 다음 중앙의 검은 독수리가 그려진 문에 손을 댔다.

- 이 문은 함정입니다.

고개를 끄떡이며 마지막 남은 우측의 붉은 독수리가 그려진 문에 손을 댔다.

- 이 문은 틸트론 왕국의 보물이 잠들어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이야.”

“틸트론 왕가 정말 단순 무식하네요. 파란색 반대가 빨간색이라고 어떻게 그걸 진짜 문으로 할 수 있죠?”

“생각을 두 번 비트는 거나 단순하게 가는 거나 다를 게 뭐가 있어? 거기서 거기지.”

“가위바위보도 머리를 굴리는데 일국의 보물을 숨기면서 파랑의 반대는 빨강 이렇게 정하는 게 제정신은 아니죠.”

“그게 뭐가 중요해? 뭐가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지. 안 그래?”

“오빠도 틸트론 왕가와 같은 단무지였군요? 그래서 망국인 틸트론 왕국의 계승자가 된 거예요. 그렇죠?”

“단무지에 볼기 맞아 볼래? 피멍 들 때까지?”

“우이씌.”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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