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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탄야
294.
“은하 언니는 데려갈 거야?”
“아니.”
“우리처럼 쓸모없어서 안 데려가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아이템 떨구는 페널티 있어서 안 데려가는 거야.”
“안 데려간 거 알면 많이 서운해할 텐데?”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알 수 없어. 위험해서 안 돼.”
“틸트런 왕족 대피소라고 하지 않았어?”
“1만 년 전의 일이야. 사람의 손길이 끊어진 지 오래로 몬스터가 차지하고 있을 게 분명해.”
“그래도 많이 섭섭해할 텐데?”
“내가 알아서 말할게.”
쥬디의 혜안 능력을 왕창 낮추는 대가로 도우미 아란이 준 특혜 죽어도 착용한 아이템을 떨구지 않는 효과는... 정확히 말해 착용한 아이템을 떨구지 않는 게 아니라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 중 가장 낮은 등급의 착용 아이템을 대신 떨구는 것임... 나와 하린이, 하연이 이렇게 세 명만 적용됐다.
만약 바르탄야에 강력한 몬스터가 있어 은하가 죽는다면 착용한 아이템 중 한 개를 무조건 바닥에 떨구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스탯과 생명력, 마나가 10%가 영구히 사라지고, 24시간 동안 능력치가 50% 감소하는 끔찍한 죽음 페널티도 받게 된다.
가혹한 페널티도 문제지만, 파티가 전멸하면 아이템을 회수할 수 없다. 그 아이템이 암흑의 군주 탈라한의 해골 지팡이와 영혼 구슬이라면 그땐 정말 대책이 없었다.
능력을 올려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아이템을 주운 몬스터가 사라질 수도 있었고, 넘을 수 없는 벽이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애들은?”
“우리 셋만 갈 거야.”
“왜?”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럴수록 쥬디와 세라, 도로시, 나나, 야냐는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팀에 큰 도움이 되는 애들인데.”
“안 돼. 보물 몇 개 얻자고 애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
군주의 소환은 내 곁으로 소환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스킬이 아니었다.
귀환 스크롤를 사용해 탈출할 수도 있지만, 스크롤을 찢는다고 바로 달아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귀환 주문과 마찬가지로 30초 동안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아야 스크롤이 적힌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 달아나는 용도로는 전혀 쓸모없는 아이템이었다.
우리야 죽으면 스탯과 생명력, 마나 10%를 잃는 것에 그치지만, 쥬디와 세라, 도로시, 나나, 야냐는 부활로만 살릴 수 있었다.
전쟁이나 피치 못한 상황이라면 아까울 것이 없지만,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부활을 보물 나부랭이를 얻는데 쓸 순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부활 스킬은 죽은 지 30일이 넘으면 살릴 수 없었다.
이 말은 시체가 없으면 살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은하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처럼 처리할 수 없는 고레벨 몬스터가 있다면 쥬디와 세라, 도로시, 나나, 야냐도 부활할 수 없었다.
“이해해줄 거지?”
“말했잖아. 앞으로 네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고.”
“그건 이해하는 게 아니잖아. 명령대로 움직이겠다는 뜻이잖아.”
“네가 말하는 건 다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까 따르겠다는 뜻이야. 오해하지 마.”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어.”
은하를 설득한 후 쥬디와 세라, 나나, 야냐에게는 잠시 수도에 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포털을 타고 크바시르로 이동했다.
‘쥬디는 알고 있는 눈치인데... 이해해주겠지.’
수도에 다녀오겠다고 거짓말을 하자 쥬디가 씩 웃으며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했다. 수도에 갔다 오는데 조심하라니... 내가 어딜 가는지 다 안다는 뜻이었다.
내 영지에서 서쪽으로 4,000km 떨어진 크바시르는 수도만큼은 아니지만, 아틸라 제국 10대 도시답게 아름다운 건물과 수많은 인파가 북적댔다.
또한, 주변에 평야 지대가 많아 식량이 풍부했고, 말과 가축 등을 키우는 큰 목장도 많아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쳤다.
「외곽으로 빠져서 내려가자.」
「오빠, 아무 맨홀이나 뚜껑 열고 들어가면 된다고 했잖아요. 아니에요?」
「맞아.」
「그러면 여기서 내려가면 되잖아요. 왜 힘들게 멀리까지 가요?」
「시내 한복판에서 맨홀 뚜껑 열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청소한다고 생각하겠죠.」
「우리가 청소부처럼 보여?」
「아니요.」
「쓸데없는 말 계속할 거야? 볼기짝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
「죄송해요.」
종달새처럼 쫑알대는 하린이의 입을 봉하고 말을 꺼내 타고 번화가를 벗어나 동쪽 평민 거주지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도로 내려갔다.
“윽. 냄새.”
“마스크 써.”
“네.”
마법 고글을 쓰고 들어간 하수도는 오물이 가득 차 있진 않았지만, 냄새는 아주 지독했다.
인벤토리에서 급히 냄새를 막아주는 마법 마스크를 꺼내 쓰자 그제야 숨 쉴 수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품에서 레오니가 준 크바시르 지도를 꺼내 우리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을 향해 이동했다.
하수도에 몬스터가 사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거머리와 파리, 쥐만 득실댈 뿐 위험한 몬스터는 없었다.
냄새나는 하수도를 2시간 넘게 오르락내리락 걷자 지도에 표시된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쏴아아 쏴아아
레오니가 말했던 것처럼 더러운 하수가 끝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구멍 속으로 떨어져 지하수를 타고 사라졌다.
“뭐가 이렇게 깊어? 아무것도 안 보이네. 언니는 보이는 거 있어?”
“아니.”
“오빠도 안 보여요?”
“어.”
하린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내밀어 무저갱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뻥 뚫린 구멍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하는 마법 고글을 쓰고도 30m가 보이지 않았다. 지하 던전도 어둡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 줄기 빛이 들어오거나,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곳곳에 있어 어둡긴 했지만,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밧줄 걸고 내려갈 거야?”
“무작정 내려가는 건 너무 위험해. 만득이 내려보내서 뭐가 있는지 확인한 후 내려가자.”
“그러다 만득이가 위험에 처하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가 위험한 것보다는 그게 나아.”
만득이도 NPC만큼 소중한 존재였지만, 죽음의 페널티를 받는 것보다는 녀석을 희생하는 게 나았다.
‘만득아. 밑에 뭐 있는지 알아보고 와. 동굴이 있으면 바로 알려줘.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돌아와야 해. 알았지’
‘키익 키익.‘
‘야임마! 최대한 조용히 벽에 붙어서 내려가. 오두방정 떨지 말고.’
‘꾸륵 꾸륵.’
머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만득이가 작은 날개를 힘차게 저어 뻥 뚫린 구멍 속으로 내려갔다.
만득이는 야행성으로 마법 고글을 쓴 우리보다 더 멀리까지,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크기도 작아 몬스터에게 발견될 확률도 낮았다.
‘키르륵 키르륵.’
‘몇m쯤 돼?’
‘캬르륵 캬르륵.’
‘알았어. 거기에 가만히 있어.’
30분쯤 초조하게 기다리자 만득이가 길을 찾았다고 알려왔다. 깊이는 대략 200m로 날개를 이용해 속도를 줄이며 내려가면 어렵지 않게 동굴에 닿을 수 있었다.
“만득이가 동굴을 찾았어.”
“바르탄야로 가는 길이야?”
“그건 몰라. 내려가 봐야 알 수 있어. 내가 먼저 내려가서 신호 줄 테니까 그때 내려와.”
“알았어.”
“오빠, 조심하세요.”
“어.”
마법 고글을 착용했지만, 30m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대낮에 보는 선명한 모습이 아닌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런 시력으로 빠르게 떨어지면 두 눈을 감은 것처럼 어둠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공포는 어둠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손을 뻗어 주위를 더듬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공포를 떨쳐버리고 황금 가루다의 날개를 활짝 펴고 수직으로 뚫린 시커먼 동굴로 힘차게 뛰어내렸다.
펄럭펄럭 펄럭펄럭
100m쯤 내려왔다고 생각되자 상체를 세우고 날개를 아래위로 내저어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키르륵 키르륵.’
동굴에 가까워지자 먼저 나를 발견한 만득이가 신호를 보냈다. 날개를 더욱 세차게 휘저어 속도를 줄여 동굴로 쏙 들어갔다.
‘잘했어.’
‘키륵 키르륵.’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전혀 없는 천연동굴은 세차게 지하수가 떨어지는 바로 옆에 있었다.
물 때문에 조금 가려지긴 했지만, 입구 넓이가 가로세로 3m 정도로 제법 커 밝은 곳이었다면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끝이 없는 무저갱 같은 수직 동굴은 너비가 30m가 넘어 만득이가 없었다면 어두워 찾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횃불로 신호 줄 테니까 천천히 내려와.」
「알았어.」
인벤토리에서 횃불용 나무를 꺼내 불을 붙인 후 동굴 입구에서 10걸음 안으로 들어가 좌우로 흔들었다. 입구에서 흔들다간 동굴로 날아드는 하린이, 하연이와 부딪칠 수 있었다.
“익사이팅 하네요.”
“재미있어?”
“네.”
“너도 참 별종이다.”
“헤헤헤헤.”
하린이와 하연이 둘 다 겁이 없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도 서슴없었다.
심지어 남자들도 두려워하는 번지 점프도 몇 번씩이나 한 강심장으로 균형 맞추는데 애를 먹어서 그렇지 하늘을 나는 건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런 겁 없는 성격이 어두운 수직 동굴에서도 여과 없이 나타나 흔들림 없이 안전하게 동굴에 들어왔다.
툭
드래곤의 어금니를 바닥에 던지자 메시지가 떴다.
- 98레벨 정예 몬스터 자이언트 용아병을 소환하시겠습니까?“
“네.”
- 98레벨 정예 몬스터 자이언트 용아병이 소환됐습니다. 소환된 자이언트 용아병은 24시간 동안 모모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후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름 : 자이언트 용아병
레벨 : 98
등급 : 정예
생명력 : 950,000/950,000
마나 : 50,000/50,000
공격력 : 10,000
방어력 : 2,500
마법 저항력 : 1,000
공격속도 : 250
이동속도 : 250
치명타 확률 : 25%
상태이상 저항력 : 500
“앞을 정찰해.”
“네.”
자이언트 용아병을 소환해 앞장세우고 동굴로 들어갔다. 만약을 대비해 드래곤 이빨과 드래곤의 어금니, 네크로맨서의 정수를 모두 가져왔다.
성을 지키거나 함락시킬 때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지만, 스탯과 생명력, 마나 10%를 잃는 것보다는 모아놓은 소환수를 몽땅 날리는 게 이익이었다.
소모품용 소환수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지금 죽으면 스탯을 20이나 잃고, 생명령은 1만5,000, 마나는 4천이나 잃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