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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93화 (29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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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탄야

293. 바르탄야

“노역마도 키워?”

“네.”

“남는 노역마 있으면 팔아.”

“전투마도 아니고 노역마를 팔라고요? 어디에 쓰시려고요?”

“마차에 석궁병을 배치했어. 그래서 말이 필요해.”

“좋은 생각이네요. 걷는 것보다 이동속도도 빠르고 달리는 마차에서 활도 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전투마가 아니라 노역마를 달라고 하세요? 노역마는 속도가 느려서 전투용으로 쓰지 않는데.”

“대신 힘이 좋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발이 너무 느려서 승용마와 전투마를 따라갈 수 없어요.”

“따라가면서 싸우려는 거 아니야. 수송용과 이동용으로 쓰려는 거야.”

“그렇다면 괜찮죠. 몇 마리나 필요하세요?”

“1,000마리.”

“1,000마리 모두 전투에 이용하세요?”

“영지에 말도 소도 거의 없어. 절반 이상은 운반용으로 쓸 거야.”

“그러면 황소도 500두도 드릴게요.”

“그래 주면 좋고.”

개틀링 석궁 마차를 개발 중이라는 것을 밝힐 필요는 없었지만, 마차에 궁수를 태우는 것까지 속일 필요는 없었다.

궁수를 마차에 태우는 전술은 아주 흔했다. 마법이 발달해도 대다수 병사는 마법의 마자도 몰라 여전히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싸웠다.

이 때문에 이집트의 전투 마차와 비슷한 형태의 이륜마차를 운용하는 귀족도 있었고, 마차에 궁수를 5~6명 태워 화살비를 뿌리는 귀족도 있었다.

”모두 얼마야?”

“왜 그렇게 돈을 주려고 하세요?”

“계산은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철저히 하라고 했어. 시세대로 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조만간 시푸아 가문의 재산이 모두 달링 것이 될 거예요. 달링도 아시잖아요?”

“시푸아 가문의 재산이 왜 내 것이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어.”

“우리 아이의 아빠잖아요. 우리 아이는 시푸아 가문의 가주가 될 거고요. 그러니 당연히 당신 것이죠.”

“내 것이 아니라 당신과 우리 아이 것이야. 나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아.”

“지금 그 말씀은 저와 제 뱃속에 든 아이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인 거죠? 그러면 저와 아이는 누구의 가족인가요? 설마 시푸아 백작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하아...”

“그러지 마세요. 달링이 그러면 저 살아갈 의미가 없어요. 지금이라도 아이와 함께 죽는 게 나아요.”

“알았어. 대신 한 푼도 안 받겠다는 말은 하지 마. 그러면 너도 곤란해져.”

“겨우 노역마 1,000마리에 황소 500마리 드리는 거예요. 큰 거 드리는 것도 아니에요. 절대 곤란 겪을 일 없어요.”

“마음대로 해라. 나도 모르겠다.”

“오늘 중으로 보내드릴게요.”

왕국을 만드는 일에 시푸아 가문의 부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레오니의 맹목적인 모습을 보자 미안해 마음이 점점 약해졌다.

누군가를 이용하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건 전종명과 윤선숙의 장기였지 원칙을 중시하는 나와는 반대되는 짓이었다. 그런데도 게임이라는 이유로 내가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 짓을 하고 있었다.

「하아...」

「큰오빠, 이제 와서 중단할 수도 없어요. 오빠도 아시잖아요?」

「알아. 그래서 더 짜증 나.」

「짜증 내지 마세요. 옆에서 부추긴 사람도 있었지만, 결정은 오빠가 한 거예요. 그러니 책임도 오빠가 져야죠. 책임질 사람이 짜증 내면 안 돼요. 그러면 곁에 있는 사람들 마음 불편해요.」

「알아. 모두 내 잘못이라는 거. 그리고 내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그 때문에 짜증 내는 거 아니야.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생각은 없었다. 내가 저지른 일인 만큼 끝까지 내가 책임질 생각이었다.

짜증이 나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연놈을 닮아가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전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 지휘관이 자기만 고귀하고, 고매하다고 유난 떨다가 부하들 다 죽이는 거니까요.」

「그런 말 해도 위로 안 돼.」

「위로한 거 아니에요. 사실을 말한 거예요.」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나는 개인이 아니라 수만 명의 목숨을 책임진 지도자야. 나 하나 욕먹는 건 감수해야 해. 그래서 그러고 있어. 하지만 양심에 찔리는 것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어.」

「알아요. 그래서 자책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나에게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개인의 입장과 지도자의 입장이다. 개인 입장에서 레오니를 이용했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도자의 입장에선 내 가족, 내 부하들, 내 백성을 살리기 위해 다른 나라를 이용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건 하지 않으면 욕먹을 짓이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이용하면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욕먹을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었다. 박수와 함께 영웅대접을 받는다.

반대로 이용할 수 있는데 이용하지 못해 국익에 해를 끼쳤다면 손가락질과 함께 퇴진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쥬디가 자책하지 말라고 한 건 이 때문이었다. 레오니를 이용한 건 지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일이 국민을 이롭게 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영주만 이롭게 한다면 그건 나만을 위한 일이었다.

현대의 국가가 국민을 위하는 구조라면, 중세 시대의 영주는 자신만 위하는 구조니까.

그래서 괴로웠다. 나를 위해 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찾았어요.”

“어디야?”

“크바시르 지하요.”

“크바시르 지하에 도시가 있어?”

“네.”

다음 날 아침 찾았다는 전언이 도착해 아침도 거르고 급히 시푸아 백작성으로 날아갔다.

레오니의 손에 이끌려 밀실로 들어가자 키스 세례와 함께 섹스를 요구했다. 상을 달라는 뜻으로 피를 빨며 자궁 속 깊이 하얀 액체를 가득 채워줬다.

세 번이나 찐한 사랑을 나누자 배부른 암고양이처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바르탄야에 관해 말했다.

“처음부터 크바시르 지하에 지은 거야?”

“네.”

“어떻게?”

“지하 공동에 지은 거예요. 그 위에 여러 도시가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현재의 크바시르가 된 거고요.”

“그러면 크바시르가 틸트런 왕국의 수도였다는 뜻이네?”

“아니요. 수도는 크바시르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초원에 있었어요. 바르탄야는 일종의 왕실 대피소였어요.”

“히타룬 족이 침입했을 때 그곳은 안 털렸어?”

“그에 대한 기록은 없어요.”

레오니가 밤새 황립 도서관 지하 고문서 보관실을 뒤져 찾아낸 지하 도시 바르탄야는 도시가 아니라 틸트런 왕실의 대피소였다.

고대의 유산 틸트런 왕국의 황금 왕관에 나온 설명처럼 왕국의 보물이 잠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려가는 방법은 알아냈어?”

“아니요. 내려가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내려가?”

“위치로 봤을 때 하수도를 타고 내려가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수도?”

“네. 이것 보시면 이해하시기 편할 거예요.”

레오니가 크바시르 지도를 탁자에 넓게 폈다. 마법 국가답게 지도는 평면인 아닌 입체로 땅속에 묻힌 상하수도 위치와 크기까지 아주 자세하게 내려왔다.

인구 3,0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답게 크바시르 하수도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대신 많은 인구를 수용한 도시답게 사람 4~5명은 걸어갈 만큼 하수도가 넓어 오물을 얼굴에 묻히며 기어갈 일은 없었다.

“맨홀을 열고 내려가면 사방으로 뻗은 하수도가 나올 거예요. 지도에 표시된 대로 남쪽으로 방향 잡고 계속 내려가면 돼요.”

“여기 끊어진 부분은 뭐야?”

“하수도가 끝나는 부분이에요. 하수도는 공동 옆을 흐르는 지하수를 타고 바다로 흘러가요. 지하수에서 공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 해요.”

“바르탄야는 지하 몇m쯤 있는 거야?”

“그건 문헌에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어요.”

“고생했어.”

“아니에요. 너무 두루뭉술한 정보만 드려 전혀 도움이 안 됐어요. 죄송해요.”

“너 아니었으면 바르탄야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했을 거야. 정말 고마워. 진심이야.”

진심이란 말 추호의 거짓도 없었다. 레오니가 없었다면 사라진 왕국 틸트런의 황금 왕관은 창고에 처박힌 채 영영 잊힐 수도 있었다.

또한, 레오니가 헌신적으로 찾지 않았다면 바르탄야를 찾지 못할 수도 있었고, 찾는다고 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레오니를 사랑하는 건 완벽한 거짓이었지만, 레오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100% 진심이었다. 그래서 레오니에게 항상 미안했다.

“가실 거예요?”

“어.”

“많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걱정하지 마. 너 두고 죽는 일 없을 테니까.”

“그 약속 꼭 지켜야 해요. 달링 없으면 전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알았어.”

“키스해 주세요.”

츄웁 츄웁

끝없이 매달리는 레오니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바르탄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밧줄도 챙기고, 식량도 챙기고, 물약도 챙기고, 야영 장비도 챙기고, 담요도 챙기는 등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팔찌에 바리바리 쑤셔 넣었다.

“바닥에 도착하면 소환할게.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어.”

“오빠, 우리도 같이 가.”

“혼자가 편해.”

“이번에는 멀리까지 날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크바시르에서 바로 내려갈 거잖아. 같이 가.”

“내려갈 때 위험할 수도 있어.”

“위험하면 더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으음...”

“이제 오빠가 우리보다 더 강하니까 우리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데리고 다녀봐야 귀찮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너무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 오빠 두고 한 말이었네.

“그런 뜻이 아니라 다칠까 봐 그런 거야.”

“나와 하연이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 오빠가 우리 무시하는 것처럼 생각돼.”

“알았어. 같이 가.”

“다시는 그러지 마. 오빠에게 짐 되는 것 같아 속상해.”

“어.”

포털로 이동할 수 없는 오지는 내가 홀로 이동한 후 군주의 소환으로 하린이와 하연이, 쥬디 등을 소환했다.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다가 마나가 모자라면 도발로 몬스터를 모으고 불새의 검은 회오리 한 방이면 순식간에 마나를 채울 수 있었다.

모두 마나 흡수 룬이 있어 가능한 일로 하린이와 하연이 둘 다 마나가 2만이 넘었지만, 황금 가루다의 날개가 1초에 마나를 50이나 소모해 7분도 날지 못했다.

시속 300km로 빠른 속도로 날아도 7분이면 35km밖에 날 수 없어 함께 움직였다간 1,000km를 가려면 열흘은 넘게 걸렸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포털을 타고 크바시르로 이동한 후 사람들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면 끝이라 홀로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홀로 가려는 건 하린이 말처럼 개구리가 된 내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서였다.

그렇다고 귀찮고 우습게 봐서는 아니었다. 어떤 어려움도 혼자서 극복할 수 있다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이었다.

‘하린이 말처럼 개구리 됐다고 너무 자만했어. 그래 봐야 뱀에게는 한 입 거리도 안 되는데. 에휴.’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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