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292화 (292/320)

0292 / 0310 ----------------------------------------------

틸트런 왕국

292.

“회전하는 의자는 이렇게 바닥에 페달을 설치해 밝으면 돌아가게 하는 거야.”

“그러려면 동력원이 필요합니다.”

“으음... 그러면 이렇게 하지. 수동으로 밟는 페달을 설치해서 밟아주면 돌아가게. 방향 전환은 개틀링 석궁의 손잡이로 대체하고.”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이십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자전거의 페달과 핸들을 그대로 좌석에 채용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중세 시대를 사는 래틀과 딜런에게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다. 자전거가 없는 The Age of Hero에선 생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인간 역시 자전거를 만들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언제까지 만들 수 있어?”

“일주일이면 됩니다.”

“말랑말랑한 젤리는 모자라지 않겠어?”

“이륜마차로 바꾸면 절반밖에 들지 않아 1,000대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규모로 한 달에 몇 대나 만들 수 있을까?”

“인원을 세 배로 늘려도 50대가 한계입니다.”

“늦어도 1년 6개월이면 800대 만들 수 있겠네?”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규모를 두 배로 늘리실 생각이십니까? 400대만 해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 텐데요?”

“다음 주 수요일에 시연회할 테니까 차질 없이 준비해. 그거 보고 결정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궁금한 거 없으면 그만 나가봐.”

“영주님께 충성을!”

이륜마차로 바꾸면 인원과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 개틀링 마차 부대를 두 배 늘려도 됐다.

그렇게 되면 비용 절감 효과는 공중으로 날아가지만, 전력이 최소 1.5배 늘어나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회의가 끝나자 욕실로 이동해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의 부드러운 손에 몸을 맡긴 채 따뜻한 물에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와 뜨거운 밤을 보낸 후 하린이와 하연이는 NPC들의 목욕 시중을 허락했다.

물꼬를 튼 마당에 못하게 막을 이유가 없다고 자신들과 같이 목욕할 수 없을 때는 NPC들의 시중을 받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회의하는 동안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는 먼저 씻고 게임 밖으로 나갔다. 은하는 일 때문에, 하린이와 하연이는 점심 준비로 자리를 비웠다.

“영주님, 에밀리와 엠마는 언제 안아주실 거예요?”

“아직 다른 애들도 못 안아줬어.”

“다른 분들은 장소를 정해야 하지만, 에밀리와 엠마는 욕실로 부르면 되잖아요.”

“내가 씻고 있는 욕실에 들어오면 무슨 짓 하는지 다 알아.”

“그럼 어때요?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레이첼, 많이 대담해졌다.”

“대담해진 거 아니에요. 하린 마님과 하연 마님, 은하 마님이 허락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감히 마님들 허락도 없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가 있겠어요.”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네.”

“누구누구 하라고 했는데?”

“에밀리와 엠마만요.”

“다른 사람은 말 안 했어?”

“다른 분들은 저희보다 위에 계신데 저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할 순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군.”

레이첼 말이 맞았다. 하린이가 레이첼에게 나나와 야냐, 세라, 아라치, 도로시, 미미를 안을 수 있게 해주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레이첼이 내 총애를 받아도 아직은 농노였다. 신분을 벗어나기 전까진... 벗어나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얘기 언제 들었어?”

“어제요.”

“그러면 오늘은 안 돼.”

“왜요?”

“어제 얘기했는데 다음 날 곧바로 실행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네가 하린이 입장이라면 기분 좋겠어?”

“아니요. 많이 나쁠 거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하면 화가 나 참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야.”

“그럼 언제가 적당할까요? 에밀리와 엠마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한 달.”

“한 달이나요?”

“1년 넘게 기다렸는데 한 달을 더 못 기다려?”

“알았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할게요.”

“얘기 끝났으면 어깨나 마저 주물러. 피곤하다.”

“영주님, 얘는 어쩌죠? 많이 화난 것 같은데 그냥 놔둬도 될까요?”

“그러고 싶어?”

“아니요.”

“으음... 오늘은 아이린부터 시작해. 지난번에는 엠마부터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영주님.”

레이첼이 어깨를 주무르며 물 밖으로 고개를 빼죽이 내밀고 있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시작하라는 말이 떨어지자 가슴과 음부를 억지로 가린 작은 천을 훌러덩 벗은 아이린이 점프하듯 욕조로 뛰어들었다.

첨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빠, 없어요.”

“셋 다 없어?”

“네.”

“틸트런 왕국에 관한 내용도 없어?”

“네. 비슷한 왕국 이름도 없어요.”

“알았어.”

“이제 어쩌죠?”

“레오니에게 물어볼게. 거긴 자료가 있을 거야.”

하린이와 하연이가 어둠의 상인 사이트와 히어로 에브리, ㈜판타스틱 홈피를 모두 뒤졌지만, 고대의 유산·틸트런 왕국·지하 도시 바르탄야에 관한 기록 중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망할 단계는 아니었다. 레오니에게 물어보면 알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시푸아 백작 가문은 아틸라 제국과 시작을 같이한 가문으로 보유한 장서만 10만 권이 넘었다.

그리고 각종 특이한 자료도 산더미처럼 보관하고 있어 우리가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죄송해요. 고대 유산과 틸트런 왕국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지하 도시 바르탄야에 관한 기록은 없어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거야?”

“네.”

믿었던 시푸아 가문에도 지하 도시 바르탄야의 이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대 유산과 틸트런 왕국의 자료는 찾을 수 있었다.

틸트런 왕국은 황금 왕관에 나왔던 대로 1만 1,000년 전부터 1만 전까지 융성한 상업 국가로 현재의 크바시르부터 내 영지 너머 검은 오크 왕국의 타오르는 불꽃 부족의 땅 일부를 차지했었다.

동서 대륙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 틸트런 왕국은 교역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국가로 상업과 마법이 고르게 발달했었다.

크기는 아란테스 동쪽 6개국 연합 중 가장 큰 편에 속하는 비투빈 왕국과 비슷했고, 땅도 비옥해 많은 국가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천년만년 지속할 것 같던 틸트런 왕국은 히타룬 족의 기습 한 방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부유한 삶을 지속하자 부패와 향락이 왕국 전체를 뒤덮었다.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과 농노까지 나태와 게으름에 젖어들었다.

이 때문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국방력은 끝없이 추락했다. 무기의 질은 아란테스 대륙 최강이었지만, 지휘관과 병사 모두 게으름과 향락에 빠져 임무를 다하지 않아 전설적인 군대 당나라 부대만도 못한 오합지졸이었다.

오합지졸로 변한 틸트런 왕국을 동쪽 초원의 기마민족이자 약탈민족인 히타룬 족이 기습했다.

초원을 떠돌며 살던 히타룬 족은 1,000년 만에 위대한 전사가 나타나 부족을 하나로 모았고, 그 힘의 첫 번째 희생자가 틸트런 왕국이었다.

여명과 함께 10만이 넘는 기마가 기습하자 단번에 성벽이 무너졌고, 3일도 안 돼 수도와 왕궁까지 모두 불타오르며 허무한 종말을 맞고 말았다.

고대 유산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왕국을 대표하는 유물을 말하는 것으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틸트런 왕국의 황금 왕관도 그중 하나로 왕관이 없으면 정식 국왕으로 대접받지 못해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말 그대로 멸망한 왕국의 유물로 왕국이 사라지며 가치도 함께 사라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 어디 가서 지하 도시 바르탄야를 찾지?”

“수도에 있는 황립 도서관에는 있을 거예요.”

“거기에도 없을 수 있잖아?”

“지하에 아주 오래된 고서만 따로 모아 놓은 고문서 보관실이 있어요. 거기에는 3만 전 기록도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곳도 있어요? 처음 듣는 얘긴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대다수 귀족도 몰라요. 저도 아버지께 들었어요.”

고문서 보관실은 현실의 유서 깊은 도서관에도 하나씩 있어 아란테스 대륙 최강의 국가 아틸라 제국 황립 도서관에 있는 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없으면 이상한 일로 중요한 자료는 모두 지하에 따로 보관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출입제한 구역 아니야?”

“몇몇 귀족에게는 출입을 허락했어요. 시푸아 가문도 그중에 한 가문이에요.”

“자료를 갖고 나올 수 있어?”

“아니요. 보는 것만 가능해요.”

“나도 같이 가.”

“찾는데 한 시간이 걸릴지 하루가 걸릴지 알 수 없어요. 집에서 편히 쉬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세요. 반드시 찾아낼게요.”

“알았어.”

레오니 말대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 따라가 봐야 시간 낭비였다. 그리고 황립 도서관에 둘이 가는 건 입방아에 오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시푸아 가문에 들락날락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판국에 연인처럼 밖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 눈에 띄면 이상한 소문이 날 수도 있었다. 시푸아 백작을 제거할 때까지는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시푸아 가문에 말 목장 있지?”

“네.”

“말이 얼마나 있어?”

“4만 마리 넘을 거예요.”

“그렇게 많아?”

“새끼와 조랑말은 뺀 숫자에요. 그것까지 다 하면 5만 마리 넘어요.”

“엄청나네.”

키우는 말이 5만 마리가 넘는다는 레오니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The Age of Hero의 주요 교통수단이 말과 마차, 두 다리란 걸 고려하면 말이 많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시푸아 백작 가문의 영토는 한반도보다 컸다. 딸린 식구도 300만 명이 넘었다. 5만 마리가 아니라 10만 마리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시푸아 가문의 병력 15만 명 중 기병이 2만이었다. 말을 2~3마리씩 몰고 다니는 몽고군의 기준에서 보면 말 5만 마리는 한참 모자란 수였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