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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86화 (28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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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영과 실혜 건설

286.

“허태영이 저지른 비리가 이게 전부야?”

“마림 재단과 이은택 부모로부터 받은 돈 빼고도 불법적으로 모은 정치자금이 엄청나게 많아요. 각종 이권 사업에 끼어들어 챙긴 커미션도 상당하고요. 그리고 기업들로부터 뇌물로 받은 부동산도 여러 개 있고요.”

“부동산을 뇌물로 받아? 어떻게?”

“아주 간단해요. 허태영이 산 것처럼 조작하면 되니까요.”

기업이 임원이나 직원 이름으로 땅을 산다. 그 땅을 허태영에게 판다. 터무니없이 싸게 팔거나, 판 것처럼 위장하면 됐다. 그렇게 넘겨받은 땅이 강원도와 경기도에 20만 평이 넘었다.

“그것들도 모두 준비해. 한꺼번에 터뜨리자.”

“네.”

“그런데 강성명에게 받은 자료는 어디 있어?”

“내연녀 집에요.”

“내연녀도 있어?”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놈이 내연녀는 없겠어요?”

“하긴.”

여당 3선 의원인 허태경은 자신과 정치색이 다른 사람은 상대가 국회의원이든, 재야인사든, 교수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이 미친개처럼 달려들어 물어댔다.

그것도 앞뒤가 맞는 말이 아니라 무조건 물어뜯는 것으로 말도 안 되는 원색적인 비난과 거짓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일은 더럽게 안 했다. 3번이나 국회의원을 하고도 발의한 법안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적었고, 자신이 속한 위원회와 국정감사에도 자주 빠져 같은 당 의원에게도 빈축을 샀다.

그러면서도 해외연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다녀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안 가본 곳이 없었고, 재벌들 만찬에도 뻔질나게 드나들며 뒷주머니를 챙겼다.

무능과 저질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될 만큼 썩어빠진 놈이었지만, 지역구가 워낙 XXX당 텃밭이라 3번이나 연속으로 국회의원을 해 먹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 때문에 야당과 시민사회에선 어디 어디 지역구는 XXX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고 야유를 쏟아냈다.

“오빠, 허태경만 터뜨리지 말고 놈과 친한 국회의원 3~4명도 함께 터뜨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은하 언니에게 찝쩍댈 놈이 줄어들죠.”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이번에 4~5명 터뜨리고, 두세 달 후에 또 그만큼 또 터뜨리는 거야. 내년까지 계속 그렇게 터뜨리면 은하와 우리를 신경 쓸 여력이 없겠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게 아니라 XXX당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는 안 될 거야. 대한민국은 보편타당하지 않은 특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니까.”

“슬프네요.”

보편타당한 생각이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져들 수도 있어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라면 다양한 생각을 갖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했다.

그러나 여기서 보편타당한 생각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노약자를 우대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기초 질서를 지키고, 일제 강점기에 분노하고,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고, 잘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는 걸 말했다.

누구나 공감할 내용으로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과 행동을 달리하는 사람은 많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독재자 편에 서고, 가족을 위한다는 핑계로 더러운 정치인의 하수인이 되어 나라를 팔고, 국민을 팔아먹었다.

이런 사람이 보편타당하지 않은 특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건전한 생각은 하는 대다수 국민이 이들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내연녀 주소하고 서류 어디 있는지 알려줘.”

“오빠가 가게요?”

“아니. 이범석 상사 보낼 거야.”

“진짜죠?”

“어.”

더는 직접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나서야겠지만, 모모 시큐리티가 있는 한 직접 나서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하연이가 적어준 허태영 내연녀 주소와 전화번호, 서류가 있는 금고 위치를 이범석 상사에게 넘겨줬다.

“누굴 보내실 겁니까?”

“김영우와 손필영, 김동양을 보낼 거야.”

“문제없겠죠?”

“걱정하지 마. 셋 다 입이 무겁고 믿을 수 있는 동료야. 너도 알잖아?”

“네.”

쥬디의 혜안을 통해 김상호 상사와 박무윤 상사, 정동일 상사, 김영우 중사, 손필영 중사, 김동양 중사, 이연숙 중사, 박미향 중사, 장명석 중령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었다. 자신 또는 가족이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나 역시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가 적의 수중에 떨어지면 가차 없이 친구와 동료를 배신할 것이었다.

이건 불가항력적인 일로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비밀을 발설하고, 동료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 열흘에 한 번씩 훈련을 핑계로 쥬디와 대면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서.

허태영의 내연녀 김가윤은 올해 23살로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17살 때 꿈을 안고 지방에서 올라와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꿈을 접고 허태영의 첩이 되어야 했다.

김가윤은 인물도 반반하고 몸매도 훌륭했지만, 연기와 노래, 예능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오직 꿈 하나만 믿고 도전한 것으로 대형 기획사는 물론 중형 기획사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대형기획사쯤 되면 얼굴만으로 뜰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대중에게 어필할 자기만의 매력이 있거나, 뛰어난 춤 실력, 대중을 휘어잡을 가창력 등 무언가 하나는 확실한 무기가 있어야 했다.

이런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도 스타가 되지 못한 천재가 셀 수 없이 많아 얼굴과 몸매만 믿고 덤비는 지망생에게 투자하지 않았다.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 천신만고 끝에 22살에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생 끝에 기획사에 들어가자 금방이라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가윤이 들어간 기획사는 이름만 기획사일 뿐 실제 하는 일은 매춘이었다.

이름뿐인 기획사는 연예인 지망생을 데뷔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유혹해 돈 많은 놈에게 몸을 팔게 하는 곳이었다.

김가윤도 데뷔라는 감언이설 속아 6개월 동안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돈 많은 재벌 2세와 방송가 사람들에게 술도 따르고, 몸도 팔아야 했다.

그들을 만나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장의 말에 속아. 더 정확히 말하면 꿈을 버릴 수 없어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믿는 척 행동했다.

그러다 허태영을 만났다. 인연이었는지 허태영은 김가윤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김가윤도 끌려다니는 게 지겨워 허태영의 내민 손을 잡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김영우와 손필영, 김동양이 한 일이야. 나는 시키기만 했어.”

“작전 짜고 감시하느라 고생한 거 다 압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빵빵하고 늘씬한 여자 실컷 구경하고 좋았어. 앞으로 자주자주 나가야겠어. 회춘한 기분이야. 흐흐흐흐.”

“형수님께 그대로 전해도 됩니까?”

“야! 너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너 우리 마누라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하는 말이야? 그 말 들어가면 그날이 제삿날이야.”

“상사님이 하신 얘기지 제가 한 말 아닙니다.”

“너 계속 그럴 거야?”

“하하하하.”

“이런 놈을 전우라고 믿고 있었다니... 회장만 아니면 꿀밤 한 대 때리는 건데.”

“상사님이 때리는 꿀밤은 언제든지 맞겠습니다.”

“내가 미쳤냐?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에게 맞아 죽을 일 있어?”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는 거다.”

김가윤의 주소를 넘긴 지 일주일 만에 이범석 상사가 강성명에게 받은 자료를 빼내 왔다.

일주일이나 걸린 건 김가윤이 집에 꼭 처박혀 밖에 나돌아다니지 않아서였다. 사람을 믿지 않는 허태영은 김가윤이 밖에 나돌아다니는 걸 무척 싫어해 허락 없이는 나갈 수도 없었다.

몰래 침입해 꺼내오려고도 했지만, 밤낮이 바뀐 김가윤은 밤에는 돌아다니고, 낮에는 도우미가 있어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일주일 동안 잠복하며 틈을 노리다 허태영과 김가윤이 밖에서 저녁 약속을 잡자 순식간에 들어가 자료를 빼내 왔다.

“이건 뭔가요?”

“치부책이겠지. USB는 그것과 관련된 자료일 테고.”

김가윤의 집에는 강성명에게 받은 자료 말고도 국회의원과 정부 요직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장부와 USB도 같이 들어있었다.

“이거 받으세요.”

“뭔데?”

“보너스입니다.”

“일할 때마다 이러면 버릇 나빠져. 그러지 마.”

“싫으면 상사님은 받지 마십시오. 김영우 중사와 손필영 중사, 김동양 중사에게 전달만 해주세요.”

“허허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하하하하.”

“고마워!”

“제가 고맙습니다.”

300만 원씩 넣은 봉투 4개를 내밀자 이범석 상사가 한 번 튕겼다. 예의상 한 번 튕기는 것이 대한민국 관례였다.

장난기가 동해 이범석 상사 이름이 적힌 봉투만 빼자 아이처럼 울상을 지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월급쟁이에게 가장 기쁜 일은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아내 모르게 주는 보너스였다.

통장이 아닌 현금으로 주는 보너스만큼 월급쟁이를 기쁘게 하는 일은 세상에 없었다.

“새로 입사한 대원들 살 집도 조만간 공사가 들어갈 겁니다.”

“모모 시큐리티 사원들 집을 다 지어주려고?”

“네.”

“돈이 많이 들 텐데...”

“우리 멤버와 중령님까지만 단독주택이고, 모모 시큐리티로 들어온 사람들은 빌라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살 집이면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잖아?”

“직원 복지 차원에서 해드리는 겁니다. 그래야 동료라는 의식이 강해지죠.”

“그렇긴 하지.”

무조건 충성을 요구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 짓이었다. 목숨 걸고 싸우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남겨진 가족도 돌봐줘야 한다. 그래야 목숨 걸고 내게 충성한다.

대한민국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전몰군경, 순직군경, 순직공무원, 무공·보국 수훈자, 4월 혁명 사망자 등 국가유공자와 유족에게 연금과 생활조정수당, 간호수당, 보철구 수당, 사망일시금 등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름만 거창할 뿐 창피할 만큼 초라한 수준이었다.

제2연평해전으로 죽은 전사자 6명에게 4억4,100만 원에서 4억4,700만 원이 일시보상금 지급됐다. 유족에게는 매월 68만6,000원에서 82만1,000원이 연금으로 지급됐다.

하지만 이중 정부가 지급한 보상금은 3천만 원이었다. 4억 원은 국민이 모금한 성금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적과의 교전 중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에게 2억 원의 사망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보상금을 크게 늘렸지만, 여전히 낮은 금액이었다.

20~30대 젊은 청춘들이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킨 대가가 고작 2억 원이란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고, 연금도 금액이 너무 낮아 혼자서도 살 수 없었다.

내가 군대 있을 때도 이런 모습을 여러 번 봤다. 훈련 중 심하게 다치거나 죽어도 가족에게 돌아가는 돈은 창피한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군인들이 개하고 같다고 개값이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자식들이 결혼할 때까지 보살펴줄 계획이었다.

그 첫 번째가 사택 제공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허름한 사택이 아니라 40평 이상의 고급 빌라로 전기료, 수도료, 난방까지 모두 공짜로 해줄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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