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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영과 실혜 건설
285.
“그런 유명한 업체가 조폭이라고요?”
“처음부터 철거로 큰 회사야. 회장이 최순팔이라고 하는 놈인데 그쪽 업계에서는 무자비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놈이야.”
“사람이 있는데도 불도저로 밀어버립니까?”
“그런 일은 다른 철거 용역도 다 하는 일이야.”
“사람이 있는데 건물을 밀어버린단 말입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법이 언제 돈 없는 사람 편들어주는 거 봤어? 항상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편이었잖아.”
“그래도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보니까 그렇지.”
아틸라 제국 귀족들이 농노를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서민을 개·돼지로 취급했다.
사람으로 보지 않고 노예로 여기며 돈벌이용과 선거철 투표용지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강간, 협박, 방화 등 할 수 있는 짓은 하나도 가리지 않고 하는 아주 비열한 놈이야.”
“지금은 1980년이 아닙니다. 2020년입니다. 아직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TV에서 못 봤어? 철거 용역 깡패들 경찰 보호받으면서 건물 부수고 사람들 두들겨 패는 거?”
“봤습니다.”
“철거민들이 억만금을 달라고 버티는 게 아니야.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는 살 수가 없어 먹고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거야. 놈들은 철거와 재개발로 엄청난 이익을 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두들겨 패서 쫓아내고, 법적 책임을 묻고, 민사 소송까지 걸어. 그런데 경찰은 폭력 사태를 방관하며 용역 깡패 새끼들 편을 들고 있지. 이게 나라야?”
“하아...”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용산참사) 이후 TV에선 철거 용역 깡패들이 건물을 부수고 철거민들을 쫓아내는 일을 보기 어려웠다.
용산참사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끔찍한 사건으로 과잉진압과 안전대책 소홀 등이 원인이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이런 모습은 TV에 더는 내보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방송을 금지한 것인지, 국민보다는 소수의 기득권자를 위한 정부가 들어서 막은 것인지, 더는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방송할 게 없어 TV에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용산참사 이후 철거 용역이 날뛰는 모습을 TV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재개발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용산참사와 비슷한 모습이 연출됐다.
2010년 8월 25일 뉴스위크지는 교육, 건강, 삶의 질, 경제적 경쟁력, 정치적 환경 등을 평가해 세계 최고의 나라 100개국의 순위를 발표했다.
1위부터 10위까지 북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복지국가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당당하게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국민은 믿지 않았다. 1970년에 벌어질 일이 2010년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고, 부의 편중은 나날이 심해져만 갔으니까.
“하연아, 허태영 자료 가져와.”
“네, 오빠.”
이범석이 나가자 허태영 자료를 가져오게 했다. 태블릿PC를 가져온 하연이가 170개 폴더 중 허태영이라고 쓰여 있는 폴더를 열었다.
170개 폴더는 쥬디가 혜안 능력이 떨어지기 전 조사한 국회의원 35명, 고위직 공무원 19명, 검찰 38명, 변호사 8명, 경찰 29명, 언론인 31명, CEO 7명, 교수 3명의 기억으로 하린이와 하연이가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폴더를 열자 허태영과 실혜 건설 최순팔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관계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 최순팔이 옆에 화살표 표시된 검사하고 경찰은 뭐야?”
“허태영과 함께 실혜 건설을 돕는 놈들이에요.”
“부장 검사와 경무관도 최순팔을 돕는 거야?”
“네.”
“무슨 이유로? 친척이나 학교 선후배야?”
“아니요. 오롯이 돈이 목적이에요.”
“썩어도 제대로 썩었네.”
“이놈들만 그런 거 아니에요. 태블릿PC에 저장된 170명 모두 다 이 모양이에요. 더한 놈도 있고요.”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일까?”
“개판 되려고 그러나 보죠.”
“네 말이 맞다.”
실혜 건설 회장 최순팔을 돕는 놈은 국회의원 허태영만이 아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경무관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 검사도 있었다.
그 외에도 행정자치부 공무원이 3명, 서울시 공무원 6명, 지방 공무원 20명, 기자 8명도 최순팔과 실혜 건설을 위해 사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이놈들 엮어 넣을 만한 확실한 증거 있어?”
“2년 전에 도곡동 재개발하며 시끄러웠던 것 기억하세요?”
“잘은 모르지만, 대충은 알아.”
TV에선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선 한 달 넘게 시끄러워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무리한 강제 철거로 100명 넘게 크게 다치고, 실종자도 2명이나 있던 사건으로 야당과 시민사회가 벌떼같이 일어나 정부를 성토했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철거민이 잘못한 거라고 발표하더라. 웃기지도 않아서.”
“허태영과 부장 검사 정동양이 언론에 압력을 행사했어요. 경무관 조주학도 사건을 그렇게 몰아갔고, 기자들도 철거민 잘못으로 기사를 도배했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죠.”
“그걸 지금 밝히겠다는 거야?”
“실혜 건설이 강제 철거한 지역만 100여 곳이 넘어요. 그 와중에 저지른 불법도 수천 건에 달하고요. 그런데도 처벌받지 않았는데 도곡동 재개발이라고 처벌받겠어요?”
“그러면 뭐로 엮겠다는 말이야?
“살인.”
“살인 사건이 있었어?”
“네.”
“몇 명이나?”
“4명이요.”
“왜 지금껏 소문나지 않은 거야?”
“신고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사람도 교통사고로 죽었으니까요.”
“정확히 말해봐.”
내곡동 재개발 지역도 다른 재개발 지역처럼 오래된 집이 많아 10년 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조합장이 선출됐고, 건설사도 선정했다. 순조로울 것 같던 재개발은 철거가 시작되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파트와 함께 보상금을 약속했던 조합장이 철거가 시작되자 안면을 바꾸고 본색을 드러냈다.
처음 약속했던 보상가의 절반을 제시한 것이다. 아파트를 받기는커녕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조합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성난 주민들이 무효를 주장하며 개발을 반대하자 조합장은 사업을 중단하면 지금까지 발생한 비용 50억 원을 주민들이 물어내야 한다고 협박했다.
얼굴을 가린 용역 깡패 100명이 마을에 들어와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경찰들은 뒷짐을 진 채 멀리서 구경만 했다.
법에 호소하고, 언론에 호소하고, 국회에 도와줄 것을 호소했지만, 실혜 건설과 허태영의 막강한 돈과 힘 앞에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세입자에게 약속했던 돈도 차일피일 미루며 지급하지 않아 철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도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주민과 세입자가 500명이 넘었다.
“세입자 중에 혼자 사는 여자와 여자아이 둘만 사는 집이 있었어요. 혼자 사는 여자는 당시 35살로 이름은 김향은, 2년 전 남편이 운영하던 작은 공장에 불이나 남편도 죽고 공장도 파산해 홀로 살고 있었어요. 여자아이 둘은 이나미, 이나영으로 나이는 각각 13살과 15살이었어요. 아빠는 5년 전 교통사고로 죽고, 엄마도 1년 전 계단에서 굴러 3개월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자매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죠.”
“그런데?”
“김향은은 용역 깡패들에게 윤간당한 후 불을 질러 죽였고, 이나미와 이나영 자매는 최순팔의 동생 최도팔이 한 달 넘게 강간당하다가 최도팔이 키우던 맹견 다섯 마리에 물려 죽었어요. 죽은 아이들은 최순팔 소유의 춘천 야산에 묻혔고요.”
김향은은 밤늦게 식당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가 술에 취한 철거 용역 깡패들에게 잡혀가 윤간당했다.
밤새 김향은을 윤간한 용역 깡패 10명은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김향은을 집에 던져놓고 불을 질렀다.
하체가 피범벅이 된 채 김향은은 기절한 채 불타 죽었고, 불이 옮겨붙으며 스무 채 넘게 타 돈을 받지 못해 남아 있던 일곱 가구도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나야 했다.
이나미, 이나영 자매를 우연히 본 최도팔은 깡패들을 시켜 자매를 납치해 춘천 별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곤 한 달 동안 자매를 성폭행하며 욕심을 채웠다. 변태 성욕자인 최도팔은 자매를 동시에 안는 것만으론 만족하지 못하고 자매를 밧줄에 묶어 공중에 매달아 놓고 물을 잔뜩 먹이고 오줌을 싸게 하고, 비디오를 찍는 등 악마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추악한 짓을 해댔다.
한 달째 되던 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탈진해 쓰러진 자매를 지하실에 감금한 최도팔은 볼일을 보러 잠시 별장을 비웠다.
죽을힘을 다해 지하실 문을 열고 나온 자매는 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자매를 기다린 건 투견으로 키우는 핏불테리어(Pit Bull Terrier) 다섯 마리였다.
낯선 자매를 발견한 핏불테리어는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달려들어 자매를 물어뜯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최도팔이 본 건 살점이 반밖에 남지 않은 자매의 처참한 시체였다.
“한 명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
“김향은의 죽음과 이나미, 이나영 자매의 행방불명을 수상하게 여긴 수사관 안정준이에요.”
“경찰도 죽였어?”
“이들의 죽음을 파고들자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였어요.”
김향은의 죽음과 화재 그리고 곧바로 발생한 이나미·이나영 자매의 행방불명에 이상한 낌새를 차린 수사관 안정준은 철거 용역 깡패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건을 파고들었다.
안정준이 뒤를 캔 건 이유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3년 전 부천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어서였다.
불이 나 2명이 죽고, 1명이 행방불명 된 사건으로 이때도 여자만 셋이 죽었고, 철거 용역과 시행사도 실혜 건설이었다.
똑같은 패턴의 사건이라고 직감한 안정준 수사관은 집요하게 철거 용역 깡패들을 따라다녔고, 한 달 만에 술에 취해 김향은을 강간하고 불태워 죽였다는 진술을 듣게 됐다.
그리고 이나미, 이나영 자매도 최순팔의 동생 최도팔이 납치했다가 암매장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술에 취해 떠든 놈을 족쳐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안정준 수사관은 범행에 가담한 용역 깡패들을 한 명씩 만나 술주정이 아닌 사실이란 걸 확인했다.
최순팔의 별장과 핏불테리어까지 확인한 안정준은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차를 몰고 급히 서울로 돌아오던 중 뒤따라온 덤프트럭에 밀려 강으로 빠져 익사했다. 안정준의 죽음은 뺑소니 사건으로 처리된 채 미결로 남았다.
“허태영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최도팔의 오른팔이었다가 밀려난 강성명이 죽기 직전 허태영에게 사건 자료를 넘겼어요. 허태영은 이걸 빌미로 최순팔에게 막대한 돈을 뜯어내고 있고요.”
“부장 검사 정동양과 경무관 조주학은 사건과 무슨 관계인데?”
“정동양은 김향은씨 죽음과 자매의 행방불명을 무마해줬고, 조주학은 안정준 수사관의 죽음을 미결 처리하는데 도움을 줬어요.”
“영화 찍어도 될 시나리오네.”
“찍기만 하면 대박이죠. 시나리오가 정말 탄탄하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막장도 이런 막장은 없네. 시청자들이 아주 열광하겠어.”
“최순팔이 조사하면 더 심한 일도 나올 거예요.”
“더한 것도 있다고? 그만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형사가 나오는 영화는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러나 실혜 건설 사건은 누구도 진실을 모른 채 사건이 파묻힌 새드 엔딩이었다.
그것도 사회악인 조직 폭력배 두목과 동생, 행동 대원들, 타락한 국회의원과 검사, 경찰, 언론, 공무원까지 모두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추잡한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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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