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283화 (28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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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283.

“하연이가 말한 레오니가 시푸아 백작 가문 안주인이야?”

“어.”

“그녀를 이용해 백작 가문 힘을 흡수하려는 거야?”

“그래.”

“어떻게?”

“흡혈을 이용해서.”

“어제 내 팔 물은 그 방법?”

“어.”

“그거면 돼?”

“아니.”

“또 있어?”

“아틸라 제국은 여자는 작위를 물려받을 수 없어. 아들을 낳아야 레오니가 가문을 휘어잡을 수 있어.”

“제가 네 아이를 임신을 시켰단 얘기야?”

“그렇진 않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긴 했지만.”

“게임도 현실만큼 무섭구나. 게임은 밝고 즐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하아...”

레오니 얘기를 하자 은하가 한숨을 쉬었다. 한숨 쉬는 게 당연했다. 변호사는 일반인보다 더 많은 거짓과 위선을 접한다.

사건을 의뢰한 사람이 변호사를 속이기도 했고, 상대 변호사 또는 검사가 속이기도 했다.

또한, 거짓과 위선 속에 숨은 추악한 모습도 자주 봤다. 돈을 위해, 권력을 위해, 음심을 채우기 위해 가면을 뒤집어쓰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봐야 했다.

게임은 안 그럴 줄 알았다. The Age of Hero 소개 화면처럼 꿈과 희망, 모험, 사랑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현실만큼이나 추악한 모습을 보자 부풀었던 꿈이 모두 사라지며 크게 실망했다.

“The Age of Hero는 게임이 아니야. 현실의 축소판이야. 그래서 대기업과 폭력조직, 국가까지 뛰어든 거야. 다시 말해 두 번째 지구야.”

“두 번째 지구?”

“생각해봐.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사람들이 영화 매트릭스처럼 가상현실 속에서 산다는 거야?”

“매트릭스처럼 기계에 억압돼 살지는 않겠지. 그러나 많은 사람이 현실보다 The Age of Hero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그리고 지금은 아틸라 제국과 파르톤 제국, 6개국 연합, 아말 왕국의 힘에 눌려 중세 마법 시대를 살고 있지만, 힘이 생기면 완벽한 현대의 삶을 The Age of Hero에 재현하게 될 거야.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게임에서 생활할 거고, 현실보다 게임 속이 더 현실이 되겠지.”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한 건 4배 긴 시간을 살 수 있어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포츠와 게임에 광분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등등 작은 공 하나에 매년 수십조 원씩 쓰는 나라가 수십 개에 달했다.

그 자리를 The Age of Hero가 대신 할 것으로 생각했다. 10년 전부터 e스포츠(e-sports)의 규모가 커지며 게임 올림픽까지 열렸다.

그러나 The Age of Hero가 서비스하며 많은 프로게이머가 The Age of Hero에 투신하며 선수층이 얇아져 게임 올림픽은 1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The Age of Hero가 차지했다. 사냥은 물론 개인 간 결투, 단체 간 결투, 마상 전투 등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하며 많은 프로선수가 활동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1대1 데스매치 경기와 다대다 데스매치 경기는 매일 게임 채널에서 중계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또한, 작년 초부터 축구와 야구, 농구, 배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등 각종 스포츠도 리그를 만들어 중계했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최고 인기는 단연 축구였다. 현실보다 더욱 빠른 패스, 빠른 움직임, 강력한 슈팅, 화려한 곡예 등 현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멋진 모습에 축구마니아들이 The Age of Hero로 옮겨오는 추세였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5년 안에 세계 3대 축구리그인 EPL, 세리에A, 프리메라리가를 비롯해 메이저리그도 사라질 위기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실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대물 낚시, 깎아지른 만년설에서 질주하는 스키 등 차원이 다른 스포츠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면 그 가치가 실제 국가보다 작지 않을 거야.”

“너도 그 때문에 왕국을 건설하려는 거야?”

“맞아. 나도 부자가 되고 싶어서 그래.”

“왜?”

“무시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번 것만 해도 무시할 사람 없잖아?”

“맞아.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큰돈을 벌었으니까. 그런데 그거 알아? 세계적인 부호들과 비교하면 내가 번 돈은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하면 더욱 적은 돈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새 발의 피야. 강자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바닥이라는 얘기지.”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왕국을 건설하고 싶은 거야?”

“어.”

“그렇게까지 왜 욕심을 내는데?”

“우리 부모님이 왜 죽었는지 알아?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그리고 고아라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어.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 맞아.”

“나는 왜 전종명과 윤선숙에게 끌려가 그 오랜 시간을 고통받아야 했지? 그리고 왜 또 버려져야 했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아...”

“살아보겠다고 특전사 부사관에 지원했어. 그리고 5년간 열심히 복무했고. 그런데 국가는 나를 버렸어. 팔 다쳤다는 이유로. 내가 장난치다 다치다가 다쳤어? 훈련하다 다친 거잖아. 내가 부주의해서 다쳤어? 장비가 낡았는데도 바꿔주지 않아서 다친 거잖아. 그게 내 잘못이야?”

“아니.”

“내가 부자였다면 국가가 소모품처럼 쓰다가 쓸모없어졌다고 버렸을까? 아니 내가 부자였다면 특전사 부사관에 지원했을까? 지원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어. 더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래서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은 거야. 그 생각이 잘못된 거야?”

“아니. 맞는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겪은 고통의 깊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아니까. 하지만 부자가 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야.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알아.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그럴 생각도 없어. 다만 내가 바라는 건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짓을 당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결국 너도 누군가를 밟겠다는 뜻이잖아?”

“내 좌우명이 기소불욕 물시어인이야. 그런 일 절대 없어.”

“그러면 다행이고. 하지만 사람은 힘을 가지면 쓰고 싶어져. 쓴다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뜻이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네 좌우명 절대 잊지 마. 잊는 순간 너도 그들처럼 될 수 있어.”

“절대 그러지 않아. 죽어도 그들처럼 되진 않을 거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내 좌우명이었다. 그러나 은하 말처럼 힘을 갖게 되면, 그 힘을 쓰고 싶어지는 게 인간이었다.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보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걸 벽에 걸어두고 보기만 할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무를 베든, 나무토막을 자르든, 허공을 베든 무언가를 베고 싶어졌다. 보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시험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으니까.

하린이는 그걸 걱정했다. 내가 초심을 잃고 돈과 힘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마구 휘두를 것을.

‘모모 시큐리티를 통해 힘을 얻게 돼도 지금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 그러나 반드시 그럴 거야. 전종명과 윤선숙 같은 인간은 절대 안 될 거야. 그건 내가 살아가는 목표를 송두리째 잃게 만드는 짓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손발을 잘라내도 절대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반드시.’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해봤기에, 두 연놈을 자근자근 씹어 먹고 싶을 만큼 경멸하기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단, 누군가 나를 건들고, 내 사람들을 건든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 놈을 파멸시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게.

‘게임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게임이 The Age of Hero잖아. 현실에선 안 그러려고 하고, 게임에선 내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뭐야? 현실에서 억눌린 감정을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쏟아내는 거야? 정말 그렇다면 나는 마음은 짐승과 같고 겉은 착한 척하는 인면수심과 다를 게 없잖아?’

“은하 언니, 판타스틱 주식 매입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돈 빼내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주식 사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아.”

“얼마나 샀어요?”

“1,000억 원.”

“1,000억 원이요? 그것밖에 안 돼요?”

“돈 빼내는 게 어렵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너무 적네요. 그 속도면 올해 안에 11조 원 다 쓰지도 못하겠는데요?”

하린이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은하에게 ㈜판타스틱 주식을 얼마나 사 모았는지 물었다.

시푸아 백작을 살리고 받은 13조 원 중 2조 원은 영지에 투자하기로 해 따로 빼놓고, 나머지 11조 원은 모두 ㈜판타스틱 주식을 사기로 했다.

그러나 소리소문없이 돈을 빼내기가 쉽지 않아 일주일 동안 1,000억 원밖에 주식을 사지 못했다.

이 속도면 올해 안에 2조 원도 쓰지 못한다. 올해 안에 11조 원을 모두 투입해 주식을 사야 했다.

내년 초에 액면 분할할 가능성이 매우 커 올해 안에 11조 원을 모두 투자하지 못하면 지분 2.5%를 확보한다는 계획이 틀어졌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너와 얘기 좀 하려고 했어.”

“무슨 얘기요?”

“은행 한 곳과 거래를 하려고.”

“거래요? 어떤 거래요?”

“앞으로 The Age of Hero 통장에서 돈 빼낼 때 여러 은행으로 분산해서 빼내지 않고 한 은행에서만 빼내려고.”

“그러면 소문날 텐데요?”

“사전에 협의를 거쳐야지. 그 은행만 쓸 테니 입을 꾹 다물라고.”

“가능할까요?”

“모모 재단과 모모 시큐리티 등 제가 이름으로 하는 모든 사업 자금은 그 은행을 통해서 거래할 거야. 거래 규모가 엄청나서 너도나도 하겠다며 달려들 거야.”

“어디 은행으로 할 거예요?”

“XX 은행과 XXX 은행 두 곳 중 한 곳을 선택하려고. 어디가 좋겠어?”

“언니 생각은 어때요?”

“둘 다 비슷해. 차이가 거의 없어.”

“오빠가 결정해.”

“내가?”

“돈 주인도 오빠고, 가장도 오빠잖아. 당연히 오빠가 결정해야지.”

“으음... XX 은행으로 하자.”

“그럼 내일 은행장 만나서 업무 협약이 가능한지 타진할게. 너하고 하린이는 협의 끝나고 주거래 은행 조인식 할 때 그때 만나서 사인만 하면 돼.”

“아니야. 조인식도 은하 네가 해.”

“얼굴 드러내기 싫어?”

“어.”

“알았어.”

대외적인 업무는 모두 은하를 통해 처리할 계획이었다. 최대한 얼굴을 숨기고 막후 조종자로 남을 계획으로 이런 생각은 흑심을 품어서가 아니었다.

낯을 심하게 가려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게 불편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게임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번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찌라시 기자들이 개떼처럼 달라붙을 것이다.

그러면 전종명·윤선숙과의 관계, 군대에서 일어난 일, 정이슬과의 관계, 하린이와 하연이의 관계까지 모든 것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밝혀져서 좋을 게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범석 상사와 장명석 중령에게 부탁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주민 센터까지 세상에 있는 내 얼굴을 모두 지우도록 했다.

이름은 있지만, 얼굴은 없는 유령 같은 인물로 남게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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