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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282.
“쥬디는 이번에 편입된 농노 중에 불순한 생각을 하는 놈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잡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누굴 의심하는 거예요?”
“곤잘레스와 짤츠 남작.”
“칼 구스타프 남작은요?”
“부랄 두 쪽밖에 안 남은 놈이 뭘 할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렇긴 하죠.”
“그놈들 빼고도 또 있을 거야.”
“기득권층이요?”
“그래. 쥐꼬리만 한 권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놈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스파이보다 그쪽이 더 많겠네요.”
“못해도 100배는 되겠지. 찾아낸 놈은 모두 철광석 광산으로 보내. 안 그래도 영지가 6배로 커지며 철광석이 많이 필요할 텐데, 이 기회에 왕창 충원하자.”
“그러다 철광석 광산 미어터지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짤츠 남작 영지에 있는 석탄 광산에 처넣으면 되지.”
“알았어요.”
내게 영지를 넘긴 남작들은 농노는 모두 놔두고 평민들만 데리고 새로운 영지를 떠나거나, 거지가 되어 정처 없는 방황 길에 올랐다.
사고 친 농노는 땅과 상관없이 노예로 팔기도 했지만, 대다수 농노는 땅과 함께 팔아 4명의 영주 모두 농노를 한 명도 데려가지 않았다.
쥬디에게 불순한 생각을 하는 농노를 잡아내라고 한 건 내 밑에 온다고 불이익을 당해 불만을 품어서가 아니었다.
주인이 바뀐다고 농노의 삶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아주 지독한 영주 밑에 들어가면 모를까 귀족은 열에 아홉은 모두 조르주 준 남작 같은 놈이라 달라질 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불순한 생각을 품은 놈을 찾아내라고 한 건 스파이를 심어놓고 떠난 영주가 있을 수도 있어서였다.
노포크 남작은 가족 모두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스파이를 심을 수 없었고, 칼 구스타프 남작도 엄청난 도박 빚에 영지를 빼앗겨 무일푼으로 영지를 떠나 스파이를 심고 싶어도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곤잘레스와 짤츠 남작은 불만을 품고 스파이를 심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레오니가 더 좋은 영지로 옮겨줬지만,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던 영지를 하루아침에 뺏긴 것이나 다름없어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곤잘레스와 짤츠 남작 빼고도 내게 불만을 품을 사람은 많았다. 농노 중에도 경비병으로 근무하거나, 영주 가족 밑에 붙어 권력의 단맛을 본 놈들이 아주 많았다.
이런 놈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농노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작은 권력을 보검처럼 휘둘러 사리사욕을 채웠다.
그러나 이들은 내 영지 병사들이 도착하면 모두 무장 해제돼 농사꾼으로 돌아가야 했고, 손금이 닳도록 손바닥을 비비던 놈들도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 집에서 빈둥대야 했다.
전임 영주 밑에서 근무한 병사와 일꾼은 쥬디의 혜안을 통해 인간성을 확인한 후 다시 채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조르주 준 남작에게 영지를 넘겨받았을 때 병사와 관리들의 모습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게임 시간으로 1년 6개월 동안 바꾸고 바꿔서 부정부패를 차단할 수 있었지, 처음 본 모습은 악취가 진동했다.
다른 영지도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기에 능력이 아까웠지만,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병사를 뽑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밀려난 놈들 중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획책하거나, 피해를 줄 놈들이 있을 수 있었다.
사람은 오랫동안 누렸던 권리를 뺏기면 화를 내고 저항한다. 그것이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부당하게 취한 이득이라도 불같이 화를 내며 억울해했다.
그래서 쥬디에게 잡아내라고 한 것이다. 피해를 예방하고, 광산에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
“하린아, 래틀에게 대장간 규모 세 배 이상 늘리게 해. 딜런에게는 석탄 보관할 창고 몇 동 지으라고 하고.”
“알았어.”
짤츠 남작 영지에 큰 석탄 광산이 하나 있었다. 석탄 광산은 철광석 광산보다 열 배 이상 많았지만, 각종 금속 생산에 없어서는 안 돼 전략물자에 속하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세라는 몽환술로 농노들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 열심히 하면 평민으로 될 수 있다는 꿈도 함께 심어주고. 그래야 안정을 찾고 충성심도 빠르게 오르지.”
“영주님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불안과 욕망을 부추기는 서큐버스지,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천사가 아니에요.”
“못하겠다는 말이야?”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할 자신이 없다는 얘기예요”
“밥값 못하면 어쩔 수 없지. 내일부터 피 안 빨아줄 수밖에.”
“아니에요. 잘할 수 있어요. 레오 자작 영지를 희망과 꿈이 있는 드림랜드로 각인시킬게요.”
“이름만 거창하고 성과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왜 맨날 나만 뭐라고 해요?”
“네가 반응이 가장 확실하니까. 살짝만 건드려도 반응이 재깍재깍 나와서 아주 재미있어. 흐흐흐흐.”
“아우~ 못됐어. 영주님은 인큐버스보다 더 나빠요.”
“이제 알았어?”
“내가 미쳤지. 이런 사람을 좋아하다니. 나 분명 돌은 게 확실해. 미친 거야!”
미신이 팽배한 아란테스 대륙에서 꿈만큼 무지한 농노들을 휘어잡는 좋은 수단은 없었다.
여기에 조나단의 정신 교육 훈련 캠프까지 더하면 2~3달이면 충성심을 40~5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린아, 몬스터 사냥 끝나면 골렘을 모두 집 짓는 일에 투입해.”
“알았어.”
“얼마나 걸릴까?”
“한 달이면 될 거야.”
영지가 늘어나며 농노 37,000명이 편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7,000명 많은 44,000명이 영지에 합류했다.
37,000명 중 절반을 내 영주성 근처로 이동시킬 계획으로 이탕가 산에서 넘어온 5,000명을 더해 20,000명이 살 집을 호숫가에 조성 중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농노가 7,000명 많아 1,000채는 집을 더 지어야 했다.
집 짓는데 골렘을 모두 투입하라고 한 건 두 달 후면 추운 겨울이 와서였다. 눈이 유난히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부는 지역이라 천막에서 자다간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인부 수십 명이 며칠은 매달려야 할 터다지기를 스톤 골렘은 10분이면 끝냈고, 50명은 매달려야 운반할 수 있는 목재도 혼자서 가볍게 2개씩 끌고 왔다.
골렘은 먹는 시간, 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없이 일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자동화 기계와 같아 5마리를 모두 투입하면 건장한 남자 농노 4.000~5,000명을 투입한 것만큼 효과가 있었다.
“나는 사냥하고 노닥거리는 게 게임의 전부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건 회사보다 더 복잡하고 스케일도 크네. 모든 유저가 다 이러는 건 아니지?”
“작위를 가진 유저는 나 하나밖에 없어. 이런 일 하고 싶어도 못하지.”
“어떻게 영주가 된 거야? 기존 영주를 잡고 차지한 거야?”
“아니. 3주년 이벤트에 당첨됐어.”
“헉! 온 국민이 찾아 헤매던 유저가 제가 너였어?”
“어.”
“왜 말해주지 않았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비밀이 새어나갈 확률이 줄어들어서 그랬어.”
“하린이와 하연이만 아는 거야?”
“어. 미안해! 말해주지 못해서.”
“아니야. 네 말이 맞아.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지켜질 확률이 높아져. 그리고 이렇게 알려줬으니 됐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내가 왕이라도 된 것처럼 명령을 내리고, NPC들이 명령을 받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은하가 많이 놀랐는지 NPC들이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찰싹 달라붙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유저의 절반은 작은 길드에 들거나 친목 단체에서 활동해 우리처럼 수직적인 명령체계로 움직이지 않았다.
10대 길드를 비롯한 대형 길드, 조직 폭력배를 만든 길드는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사냥과 적대 길드와의 전쟁 등이 주요 업무였다.
우리처럼 영지를 경영하고, 병사를 양성하고, 집을 짓고, 농지를 개간하는 일은 해본 적도 없었다.
“영지 면적이 얼마나 되는 거야?”
“4,000㎢ 정도 될 거야?”
“헉! 제주도보다 2배 이상이나 크네. 나는 잘해야 양천구 정도 크기인 줄 알았는데, 정말 크다.”
“전에 크기가 600㎢ 정도야. 서울만 했어.”
“와~ 상상 이상이다. 왕국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렇지.”
“귀족은 다들 이렇게 영지가 커?”
“백작부터는 대한민국보다 영지가 커.”
“저.정말?”
“어.”
“대체 아틸라 제국 크기가 얼마나 되는 거야 얼마나 크기에 백작 영지가 우리나라보다 클 수 있어?”
“아틸라 제국이 러시아보다 2배 커. 러시아가 1,700만㎢가 조금 넘으니까 3,400만㎢쯤 되겠네. 그걸 1,000개가 조금 넘는 귀족 가문과 황제가 소유하고 있어. 그래서 백작부터는 영지가 아주 클 수밖에 없지.”
“대단하다.”
황제가 소유한 땅은 전체의 10분의 1로 340만㎢가 안 됐다. 나머지 3,060만㎢는 귀족들이 소유한 땅이었다.
이걸 1,000으로 나누면 한 가문당 3만㎢가 돌아간다. 한반도 전체 면적 22만㎢와 비교하면 7분의 1밖에 안 돼 왕국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작았다.
그러나 남작 영지는 1,000㎢가 안 됐고, 자작은 1만㎢ 이하로 후작부터는 왕국이 아니라 제국이라고 해도 될 만큼 넓은 영지를 갖고 있었다.
작위는 피라미드 구조로 황제 아래에 공작이 10명 있고, 그 아래에 후작이 32명, 백작이 89명, 자작 213명, 남작 659명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영지를 가진 귀족 숫자였고, 영지가 없는 귀족은 이보다 1,000배는 많아 100만 명이 넘었다.
또한, 그들에게 딸린 가족까지 모두 합치면 1,000만 명이 넘어 전체 인구 10억 명 중 0.01%가 귀족이었다.
피라미드 구조답게 남작 전체의 힘이 자작 전체의 힘보다 약했고, 자작 전체의 힘이 백작만 못했다.
백작 역시 후작만 못했고, 후작은 공작만 못했다. 그러나 어디나 예외가 있듯이 몇몇 백작 가문은 후작 가문보다 힘이 컸고, 후작 중에는 공작보다 힘이 큰 가문도 있었다.
시푸아 백작은 더욱 예외로 땅은 후작 가문만큼 넓었고, 재산과 무력은 공작 가문과 맘먹었다.
“그런 큰 힘을 가진 귀족들을 제압하고 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지금 힘으로는 어림도 없지. 그래서 시푸아 백작 가문의 힘을 흡수하려는 거야. 시푸아 가문의 힘을 5분의 1만 흡수해도 작은 왕국은 건설할 수 있으니까.”
“아틸라 제국이 건재한데 왕국을 건설할 수 있어?”
“조만간 큰 변화가 올 거야.”
“어떤 변화?”
“전쟁의 서막이라고 들어봤지?”
“응.”
“게임 시간으로 내년 말쯤 황제가 죽을 거야. 그러면 전쟁이 시작돼. 그때가 왕국을 건설할 기회야.”
“황제가 죽을 거란 건 어떻게 알았어?”
“도우미 아란이라고 있어. 게임 시작할 때 많이 도와준 요정인데 환인이 보냈어. 더 정확히 말하면 환인이라고 할 수 있지.”
“환인이 알려줬다는 거야?”
“대충 그래.”
“환인이 정보도 줘?”
“거래했어. 그래서 알게 된 거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차차 알게 될 거야.”
하연이가 자리를 비웠기에 망정이지 옆에 있었다면 미주알고주알 떠들며 내가 환인의 아들 환웅이라고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얘기로 민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돌 맞을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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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