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7 / 0310 ----------------------------------------------
베르니의 후인 김은하
277. 베르니의 후인 김은하
“늦었어. 조금 있으면 해 떨어져. 집에 가자.”
“오빠. 차 한 잔만 마시고 가자.”
“일기장 안 볼 거야?”
“차 한 잔 마시고 가도 늦지 않아.”
“나 집에 가서 할 일 많아. 오늘 중으로 결재해야 할 서류도 열 개나 있고.”
“알았어. 가면 되잖아. 조르기는.”
“적당히 해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오빠! 화났어? 미안해! 내가 기분이 들떠서 그만... 이해해 줄 거지?”
“한 번만이야.”
“고마워. 헤헤헤헤.”
밥 먹은 거 소화하자며 1시간 넘게 상가를 돌아다녔는데, 또다시 차를 마시자며 찻집으로 나를 끌었다.
수다는 집에 가서도 얼마든지 떨 수 있는데, 찻집에 가자고 하니 참았던 짜증이 확 밀려왔다.
지금은 여자보다 더 수다스러운 남자도 많아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가 3시간 넘게 조잘대는 모습을 보자 사라진 게 아니라 수다스러운 남자들 덕분에 수면 아래로 잠시 내려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수다를 떨려고 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자식을 바르게 키우려면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 과감하게 회초리를 들고 휘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잘못한 걸 자식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 부부 사이도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참고 받아주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건 하린이와 하연이를 망치는 길이었다. 선을 넘으면 혼내야 한다. 그래야 집안이 평안했다.
“파티원 은하 소환!”
- 군주의 소환을 사용해 유저 은하님을 모모님 옆으로 강제소환하시겠습니다?
“예!”
- 은하님이 모모님 옆으로 강제소환됐습니다.
“우웩.”
“언니, 괜찮아요?”
“어지러워 죽을 것 같아. 속도 니글거리고. 우웩.”
“언니, 여기 앉으세요. 처음에는 누구나 그래요. 5분쯤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고마워.”
헛구역질을 해대는 은하를 하린이와 하연이가 부축해 침실로 데려다 눕혔다. 은하는 장거리 이동이 처음이라 멀미약을 먹고도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멀미약을 먹고도 구토와 어지럼증이 심하면 방법은 하나 참는 것밖에 없었다. 몸이 상태 이상 효과(?)를 벗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오빠, 언니 좀 달래줘.」
「내가?」
「그래.」
「네가 해.」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한 거 안 보여?」
「네 말처럼 5분 지나면 괜찮아.」
「진짜 이럴 거야?」
「알았어. 하면 되잖아.」
“다리 쭉 펴고 편하게 누워. 배 쓰다듬어 줄게. 그러면 속이 빨리 가라앉을 거야.”
“아.알았어.”
하린이의 협박에 은하를 침대에 똑바로 눕힌 후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배보다는 가슴을 쓰다듬어 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지만, 그건 가슴을 만지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어 부담이 적은(?) 배를 쓰다듬었다.
쓰윽 쓰윽
옷 위에서 배를 쓰다듬자 손과 옷이 마찰해 쓱쓱 소리가 났다. 제대로 쓰다듬어주려면 살과 살이 부딪쳐야 했다. 그래야 내 체온과 기가 배에 스며들어 빠르게 안정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옷 속에 손을 넣는 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로... 마음은 은하의 부드러운 배와 배꼽을 만지고 싶지만... 이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연아, 너는 마실 시원한 음료수 좀 가져와. 나는 일기장 가져올 테니까.”
“알았어.”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본 하린이가 속마음을 꿰뚫고 핑계를 대고 하연이와 함께 자리를 피해줬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침실을 나가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둘만 있는 건 지난 번 은하 생일 때 이후 처음이었다.
결혼식 날도 잠깐 대화했지만, 하린이네 친척과 다현이네가 근처에 있어 둘만 있던 건 아니었다.
“솔직하게 대답해줘. 내가 그렇게 싫어?”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
“유부남이니까.”
“유부남 아닐 때도 그랬잖아?”
“결혼은 안 했지만, 이미 하린이와 결혼을 약속했어. 친근하게 대하는 건 너에게도 하린이에게도 상처만 주는 일이야.”
“너 내가 다른 남자 만나길 바라는 거야? 그런 거야?”
“.......”
“왜 대답이 없어?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어도 된다는 뜻이야? 다른 남자가 내 몸을 만지고 입술을 탐해도 된다는 거야?”
“싫어. 그 꼴 죽어도 보기 싫어. 상상만 해도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
“그런데 왜 그래?”
“왜 그러냐니?”
“내가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싫으면서 왜 밀어내냐고.”
“나는 하린이와 결혼했어요.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결혼했으면서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나는 안 되고, 하연이는 되는 거야?”
“뭐라고?”
“하연이는 매일 끌어안고 자잖아. 모를 줄 알았어?”
]
“그.그건...”
“하연이는 그래도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야? 왜?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다른 남자 품에 안기는 거 화가 나서 못 참는다고 했잖아.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나는 왜 안 되는 건데?”
“.......”
내가 하린이, 하연이를 동시에 끌어안고 자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사자인 나와 하린이, 하연이 이렇게 셋만 아는 일이었다.
은하가 알고 있다는 건 하린이와 하연이가 말해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은하를 끌어들이겠다는 뜻도 됐다.
“내가 투기라도 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까 봐 그러는 거야? 내가 하린이와 하연이를 못살게 굴까 봐 그런 거야? 내가 너를 들들 볶을까 봐 그런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정확한 이유를 말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그래야 나도 포기할 거 아니야.”
“하아... 미안해서 그래. 너에게 못 할 짓이니까. 나는 네가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길 바라. 그래서 그런 거야.”
“다른 남자 품에 안기는 건 상상만 해도 화가 난다고 했잖아? 그런데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맞아. 말이 안 돼. 그런데 내 마음이 그래.”
“그럼 뭐야? 다른 사람 주긴 싫고, 가지자니 미안하니 혼자 살라는 말이야? 그게 네가 원하는 거였어?”
“아니야.”
“뭐가 아니야? 네가 지금 말했잖아. 네 마음이 그렇다고. 그건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든지, 수녀원에 들어가라는 말이잖아.”
“하아...”
내가 은하에게 하는 말은 말하는 족족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말로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은하를 남 주기는 아깝고, 가지기는 별로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갖고 싶은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상충돼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물어봐.”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아니.”
“내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
“어.”
“진심이지?”
“어.”
“그러면 다시는 밀어내지 마. 좋아하면서 밀어내는 건 정말 나쁜 짓이야. 한 번만 더 그러면 나 정말 상처받아서 무슨 짓 할지 몰라.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이제 예전처럼 내가 시키는 거 다 해줘. 해줄 거지?”
“어.”
고등학교 때 은하가 해달라는 건 다 들어줬다. 주말에 함께 있자고 생떼를 쓰는 것과 여행 가자는 요구는 들어주지 못했지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 노력했다.
옛날처럼 다 들어줄 순 없지만... 금전적인 건 더 많이 들어줄 수 있겠지만...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해주는 것만큼은 들어줄 생각이었다.
마누라 얘기를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여자들이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내 얘기를 귀담아들으라는 말로 혼자보다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맞았고, 집안의 평화를 위해선 자잘한 요구는 모두 수용하는 게 맞았다.
“가슴 쓰다듬어줘. 울렁거려 죽을 것 같아.”
“알았어.”
배를 쓰다듬던 손이 가슴에 안착했다. 은하의 요구대로 젖가슴이 닿지 않게 목 아래 가슴을 살살 문질렀다.
“정말 이럴 거야?”
“내가 뭘?”
“쓰다듬어 주려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네가 원한대로 하고 있잖아.”
“창피해서 그런 거야?”
“아.아니.”
“제가야, 너 얼굴 빨개졌어. 네가 여자고 내가 남자 같다. 남자인 내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지 알려줄게. 잘 따라와.”
알려준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하가 내 손을 잡아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배와 배꼽이 느껴지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르르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팔 전체에 느껴졌다.
부드러운 감촉을 음미하기도 전에 정처 없이 끌려간 손이 몽실한 가슴에 닿았다. 감전된 것처럼 손이 멈칫멈칫하자 은하가 억지로 손을 눌러 젖가슴을 쥐여 줬다.
손바닥 가운데에 힘이 잔뜩 들어간 작은 젖꼭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손바닥에도 말랑말랑한 가슴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더 강하게 느끼고 싶어 손바닥을 활짝 펴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말랑말랑한 젖가슴이 손에 가득 차자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흐윽.”
은하의 콧소리에 왼손도 반응해 비어 있는 오른쪽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깨질 것을 두려워해 살포시 감싸며 다섯 손가락을 놀렸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커졌지?”
“느껴져?”
“어,”
“마음에 들어?”
“그때나 지금이나 다 좋아. 나 이 느낌 다시 느끼고 싶었어. 매일 생각났어.”
“정말?”
“어.”
“그런데 나를 밀어낸 거야?”
“미안해서.”
“이제 다른 남자에게 가라는 말 하지 않을 거지?”
“다시는 안 해.”
“키스해줘.”
은하의 촉촉한 입술에 떨리는 내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잠깐이지만 예전에 느꼈던 그 느낌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쪼옥
입술이 멀어지려 하자 은하가 내 목에 팔을 둘러 도망가려는 입술을 잡아끌었다. 그리곤 오랜 기다림을 보상받으려는 듯 입술과 혀를 빨아댔다.
추웁 쭙쭙쭙쭙
“헥헥헥헥. 이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까봐 겁났어. 이제는 마음이 놓여. 네가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거라는 걸 알게 돼서.”
“불행해질 수도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없는 것 그것보다 더 불행한 게 있을까?”
은하 말이 맞았다. 사랑하는데 같이 있을 수 없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었다. 그건 고문이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고난이 있겠지만, 살아보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건 엄청난 불행이었다.
서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불행해질 것을 걱정하는 건 바보들이나 할 짓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