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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군주
274. 암흑의 군주
“오빠, 탈라한이 말한 것처럼 일기장에 정말 암흑 마법사 스킬이 있어.”
“몇 개 있는데?”
“다섯 개요.”
“줘봐.”
블랙 와이번 파스토랄의 주인 베르니의 일기장
종류 : 서적
등급 : 유니크
일곱 용기사 중 한 명이자 블랙 와이번 파스토랄의 주인 베르니가 어렸을 때부터 쓴 소중한 일기장
내구도 : 100/100
사용 제한 : 여자
특이 사항 : 일기장을 100번 정독할 때마다 스킬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음.
다섯 가지 스킬을 모두 익히면 히든 클래스 ‘암흑 사제’ 획득
암흑의 군주(스탯+3, 마법 공격력 20% 상승)
일기장이 진정한 주인을 찾으면 용기사 베르니가 사용했던 장비가 숨겨진 장소를 알려줌
히든 클래스 암흑의 군주 직업 스킬
1. 암흑 마법의 원류(초급) : 마법 공격력 20% 증가
2. 암흑의 반격(초급) : 데미지 10% 반사
3. 죽음의 대지(초급) : 반경 30m 안에 들어오면 능력치 20% 감소
1초당 데미지 500, 1분에 마나 3,000 소모
4. 암흑의 향연(초급) : 반경 30m 안에 들어오면 시야와 청각 20% 감소
악마의 속삭임에 현혹되면 10초간 공포에 빠짐
1분에 마나 5,000 소모
5. 영혼 흡수 및 소환(초급) : 영혼 구슬에 죽은 몬스터의 영혼을 흡수
성공확률 5%, 흡수한 영혼 모아 언데드 몬스터 생산
①30레벨 일반 몬스터 스켈레톤 - 영혼 5개
②50레벨 정예 몬스터 스켈레톤 기사 – 영혼 100개
③75레벨 정예 몬스터 듀라한 – 영혼 1,000개
④90레벨 정예 몬스터 데스나이트 – 영혼 5,000개
⑤100레벨 정예 몬스터 리치 – 영혼 50,000개
⑥120레벨 정예 몬스터 본 드래곤 – 영혼 1,000,000개
* 보스 몬스터는 정예의 10배 필요
* ①30분간, ②1시간, ③3시간, ④5시간, ⑤10시간, ⑥24시간 후 몬스터 소멸
하린이에게 일기장을 받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일기장에는 하린이가 말한 대로 암흑 마법사 스킬 다섯 개가 모두 적혀 있었다.
100번 정독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평판 포인트 없이 스킬을 배울 수 있어 최소 250만 포인트를 절약할 수 있었다.
스킬과 함께 베르니가 암흑 마법을 익힌 과정과 블랙 와이번 파스토랄을 길들인 이야기, 아틸라를 도와 제국을 건국한 내용까지 많은 것이 적혀 있었다.
평민의 딸로 태어난 베르니는 13살 때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었다가 숨이 끊어진 지 하루 만에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가 살아난 베르니는 암흑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승의 하루는 저승의 100년으로 베르니는 저승에서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마법을 배웠다.
이승으로 돌아온 베르니는 18살 때까지 정체를 숨기고 어른들 몰래 몬스터를 사냥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100년간 머문 저승에선 암흑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강자였지만, 이승에서는 파이어볼도 만들 수 없는 13살 꼬마 숙녀에 불과했다.
19살 달랑 편지 한 통을 써놓고 집을 나온 베르니는 20년 넘게 세상을 떠돌며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저승에서 익힌 암흑 마법을 마음껏 펼칠 실력을 되찾았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베르니는 지금은 10대 도시지만, 당시에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스노트라로 갔다.
당시 스노트라는 와이번 섬 데스페라도를 빠져나온 블랙 와이번들 때문에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혈투 끝에 무리의 우두머리 파스토랄을 제압한 베르니는 놈을 길들여 용기사가 됐다. 용기사가 된 베르니는 파스토랄을 타고 하늘을 마음껏 날며 아란테스 대륙을 종횡했다.
마음껏 하늘을 날던 어느 날 자신처럼 황금색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던 아틸라를 만났다.
최강의 적수를 만난 베르니와 아틸라는 호승심에 불타 온종일 하늘과 땅에서 싸우고 또 싸웠다.
하지만 결판이 나질 않았다. 백중지세였던 베르니와 아틸라는 서로의 무용에 감복했고, 평민과 농노 출신이라는 비슷한 처지까지 알게 되자 친구가 됐다.
아틸라의 친구가 된 베르니는 아틸라의 야망을 응원하며 제국을 건국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일기는 거기서 30년을 뛰어넘어 베르니가 쓸쓸히 죽기 직전 자신의 유품을 세상에 남긴다는 말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일기장과 유품을 얻게 될 거라고 끝을 맺었다.
“오빠, 왠지 슬픈 냄새가 나는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나도 그래.”
“언니는?”
“나라고 다를 게 있겠어?”
아틸라가 제국을 건국한 후 30년간 끊겨버린 일기장에는 얼룩과 손때가 가득했다. 몇 번이나 일기를 쓰려다가 흐르는 눈물 때문에 펜을 거둔 것으로 비어있는 열 장이 베르니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하연아, 아틸라 부인이 누군지 알아?”
“건국왕 말하는 거지?”
“응.”
“잠시만 기다려봐.”
하린이의 질문에 하연이가 인터넷 화면을 공중에 띄우고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들어가 건국왕이자 초대황제였던 아틸라의 부인을 찾았다.
“당시 아슈뉴르와 중부를 차지하고 있던 미슈린 왕국의 마지막 공주인 미슈린 엘로딘이야.”
“후궁에 베르니 이름 있어?”
“없어.”
“비슷한 이름도 없어?”
“응.”
“오빠, 권력 때문에 차인 것 같지?”
“그런 것 같다.”
“아틸라가 베르니를 이용한 걸까?”
“그야 모르지. 기록이 없으니까.”
“이용하지 않았다면 건국하고 헤어질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남녀 관계는 당사자밖에 모르는 거잖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돼.”
하린이 말처럼 아틸라가 베르니를 이용한 냄새가 솔솔 풍겼지만, 확인되지 않은 일로 남을 의심하면 안 된다.
악성 루머가 이런 것이었다. 정확한 사실도 모르면서 그럴 것이다.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해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을 생각하면 절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일기장에 떨어진 수많은 눈물 자국이 자꾸만 하린이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빠는 왕 돼도 아틸라처럼 여자 버리는 짓 안 할 거지?”
“내가 미쳤어? 그런 짓을 하게.”
“아틸라도 처음에는 베르니를 버릴 생각 하지 않았을 거야. 나라를 만들며 욕심이 점점 커져 생각이 바뀌었겠지.”
“아틸라 제국을 통째로 줘도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아. 나는 돈보다 너희가 더 소중해. 돈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아. 세상에 딱 한 명만 있고, 한 번 놓치면 영원히 다시 찾을 수 없어. 세상을 모두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어.”
“그 마음 변하면 죽여 버린다.”
“저도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헉!”
베르니의 일기장을 모두 읽은 하린이가 하연이에게 일기장을 넘겨줬다. 하연이도 주인이 아니었는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정독했지만, 퀘스트가 발동하지 않았다.
“쥬디하고 세라, 레이첼도 불러서 읽어보라고 할까요?”
“그래.”
NPC라고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하린이와 하연이처럼 양쪽 세상에서 다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한쪽에서만 도움이 되도 고마워할 일이었다.
쥬디, 세라, 미미, 마틸다, 레이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까지 읽었지만, 베르니의 일기장은 변화가 없었다.
“오빠, 은하 언니 읽어보라고 하는 건 어떨까?”
“은하 게임 안 해.”
“나하고 하연이에게 여러 번 하고 싶다고 말했어.”
“할 시간 없어. 맡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잖아.”
“은하 언니 혼자 오빠 일 다 하게 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언니는 책임자로 앉히고 관리·감독만 하게 해야 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언니 혼자 그 일을 다 하게 하려고 그래.”
“그렇긴 하지.”
모모 씨큐리티만 해도 규모가 300~400명은 넘어갈 예정이었고, 일을 하다 보면 법적인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거기에 모모 재단까지 설립하면 은하가 열 명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었다. 전담 법무팀을 꾸려야 법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법무팀을 꾸리면 우리만큼 많이 할 순 없겠지만, 시간이 제법 날 거야. 그리고 언니가 주인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해보고 안 되면 하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알았어.”
은하가 내 영지에 오는 순간 암흑의 군주와 상관없이 눌러앉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결혼식 이후 집에 걸핏하면 오려고 했다.
허태영 의원에게 우리와의 관계가 드러날 수 있어 놈을 제거할 때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막을 핑계가 없었다. 틈만 나면 접속해 집무실에 궁둥이를 붙이고 떠나지 않을 게 확실했다.
그건 또다시 얽힌다는 뜻으로 은하가 싫진 않았지만, 하린이와 하연이를 곁에 두고 오해받을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린이와 하연이가 억지를 부리자 더는 싫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극렬하게 반대한 걸 은하에게 말하거나 다른 통로를 통해 알게 된다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은하에겐 큰 빚을 지고 있었다. 내일을 돕는 것도 빚이었지만, 과거에 잡아주지 못한 빚, 잊지 못하면서 잊은 척하는 빚 등 갚을 수 없는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으면서 마음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전화해서 접속하라고 한다?”
“지금?”
“응.”
“뭐가 그렇게 급해?”
“내일 하나 오늘 하나 뭐가 달라? 질질 끌면 마음만 복잡해져.”
“알았어.”
은하가 암흑의 군주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줄 거면 빨리 주는 게 나았다. 질질 끌어봐야 하린이 말처럼 머리만 아팠다.
“오빠, 탈라한이 베르니 일기장에 용기사가 되는 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저는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오빠는 찾았어요?”
“여기 있잖아. 와이번을 잡아서 진심으로 굴복시키면 된다고.”
“이게 길들이는 방법이에요?”
“응.”
“이게 말이에요 방귀에요?”
“방귀?”
“말도 안 되는 말이잖아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같잖아요.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대체 뭐가 다른 거죠?”
“와이번과 코끼리 아주 많이 다르잖아.”
“뭐라고요?”
하연이 말처럼 와이번을 진심으로 굴복시켜 타고 다니는 것이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방법이나 다를 것이 없는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군대 있을 때 선임이 한 말이 기억났다.
“이게 뭐가 어려워? 이렇게 하면 되잖아. 아주 쉽지? 해봐.”
“.......”
선임은 나보다 3년이나 군대에 일찍 들어왔고, 나는 군대에 입대한 지 반년도 안 된 신병이었다.
K3 기관총을 순식간에 분해하고 다시 조립한 선임은 아주 쉽다고 떠들며 나도 똑같이 하라고 주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멍한 눈으로 선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것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와이번을 길들이는 일은 그것보다 백만 배는 어려운 일로 베르니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로 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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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