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270화 (270/320)

0270 / 0310 ----------------------------------------------

네크로맨서 탈라한

270.

“그뿐이면 이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아. 나는 스승님이 갖고 계신 일기장을 탐냈어. 그래서 부탑주 챈들러와 원로들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거야. 일기장을 가로채려고.”

“먹여주고 키워준 부모 같은 스승을 고작 일기장 하나에 배신을 해?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

“맞아. 나는 부모를 배신한 패륜아야.”

“패륜아가 아니라 너는 그냥 개야. 사람 물어뜯는 미친 개새끼라고!!”

미친 개새끼란 욕을 먹은 탈라한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스승을 배신했다면, 놈을 욕할 수 없었다. 사랑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로 나도 탈라한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아를 걷어다가 자식처럼 키워주고 마법까지 전수했는데, 일기장 하나 때문에 스승을 배신했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일기장이 세상을 뒤엎을 물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물건에 대한 욕심은 개인의 물욕과 탐욕일 뿐이었다. 물욕과 탐욕 때문에 부모를 배신하고 죽였다면 천륜을 어긴 것이었다. 그건 미친 개새끼나 할 짓이었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여자 친구를 인질로 잡은 삼 일 후 부탑주 챈들러가 조용히 불러 사람을 소개해주더군. 나중에 알았는데 서머닝 학파의 부탑주 커빈이었어. 둘 다 탑주 자리를 탐내 몰래 손을 잡고 있었어. 커빈의 도움으로 서머닝 학파의 아주 중요한 마법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었어. 그리고 귀중한 연구 자료가 든 책도 함께 넘겨받았고.”

“서머닝 학파 마법은 왜 알려준 거야?”

“스승님을 확실하게 옭아매려면 수제자인 내가 원수인 서머닝 학파의 중요한 마법 한 가지는 익히고 있어야 하잖아.”

“치밀하군.”

“엉성한 그물로는 스승님을 총애하는 아타나시오 탑주를 속일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커빈이 준 연구 자료를 스승님이 자주 꺼내보시는 책 창에 몰래 꽂아뒀어. 표지를 다른 것으로 바꿔서.”

“네 스승이 연구 자료를 본다고 내통자라고 할 순 없잖아?”

“스승님은 학문에 대한 욕구가 엄청났어.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이해할 때까지 잠도 안 자고 연구했어. 커빈이 넘겨준 연구 자료를 보면 눈이 돌아간 스승님이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에 매달릴 것을 챈들러는 알고 있었지.”

부탑주 챈들러는 탈라한의 스승 클레멘트를 서머닝 학파에서 침투시킨 스파이로 몰아 탑주 아타나시오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계획이었다.

아타나시오는 클레멘트를 차기 탑주로 생각해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칭찬했다. 그런 상황에서 클레멘트가 서머닝 학파의 스파이로 알려지면 아타나시오도 의혹의 중심에 서게 돼 탑주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챈들러는 이 틈을 타 탑주 자리를 차지하고, 탈라한은 그 대가로 지금의 내 영지를 받아 은둔하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다.

당연히 사람들 몰래 스승이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는 일기장을 빼내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떠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챈들러가 예측한 대로 일이 술술 풀렸지. 스승님은 내가 몰래 책상에 꽂아 둔 연구 자료를 다음 날 아침 발견하셨어.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연구 자료에 푹 빠져든 스승님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연구만 몰두하셨지.”

“책장에 없던 자료가 있으면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스승님은 천재셨어. 론아베리 사조보다 더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그러나 다른 건 둔재를 넘어 할 줄 아는 게 없었지. 오직 마법에 관해서만 천재였어. 그리고 연구에 집중하면 다른 건 생각하지도 못했어. 한 우물만 파는 지독한 천재였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다른 학파의 마법이잖아. 그건 의심했어야 정상 아닌가?”

“스승님은 마법 학파를 나누는 걸 극도로 경멸하셨어. 마법의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마나로 모두 같다고 생각하셨어. 그래서 서머닝 학파의 연구 자료든, 암흑 학파의 연구자로든, 누구의 연구 자료든 문제 삼지 않았어.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만 있다면 어느 학파의 마법이든 상관하지 않으셨지.”

클레멘트의 생각처럼 마법은 마나의 힘을 이용해 다양한 모습으로 형태를 바꿔 발현하는 것에 불과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누가 더욱 효율적으로 마나를 사용하느냐 그 차이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마법사는 없었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속한 학파의 이익 때문에 알면서도 억지를 부렸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보다 당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한민국 정당들처럼.

“석 달 넘게 서머닝 학파의 연구 자료를 파고든 스승님은 아주 놀라운 것을 만드셨지. 중급 불의 정령을 소환한 스승님은 언데드 몬스터인 듀라한의 몸에 정령을 집어넣는데 성공하셨어. 불의 정령을 품은 듀라한은 화염의 듀라한으로 변하며, 전투력이 3배나 껑충 뛰었어. 그뿐만이 아니야. 마나를 공급해 줘야 하는 단점이 남았지만, 언데드 몬스터의 한계인 시간을 극복했어.”

“정령과 언데드 몬스터를 합쳐?”

“그래.”

“대단하군.”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해. 역사상 이런 획기적인 마법을 성공한 마법사는 스승님이 처음이셨어. 론아베리 사조도 생각하지 못한 유일무이한 업적이야. 더 대단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또 있어?”

“스승님은 생명의 마법진을 화염의 기사 가슴에 부착해 마나 공급 없어도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셨어.”

“골렘의 강철 심장 같은 거야?”

“골렘의 심장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성능은 최소 열 배 이상이고, 수명도 100년은 넘게 사용할 수 있어.”

“대박이네.”

소환술에 관해 아는 게 없는 내가 들어도 탈라한의 스승 클레멘트는 천재의 범주를 몇 단계는 뛰어넘는 천재 위에 천재였다.

중급 불의 정령과 듀라한을 결합시킨 건 시작에 불과했다. 데스나이트, 리치, 본 드래곤 등에 상급 정령이나 정령왕을 집어넣는다고 생각해보라.

거기다 생명의 마법진을 새겨 100년 이상 움직일 수 게 만든다면 몬스터의 끝판왕 드래곤도 잡을 수 있는 부대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이놈 사기 치는 거 아니야?」

「혜안이 먹히지 않아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느낌상 거짓은 아닌 것 같아요.」

쥬디의 능력으로는 탈라한의 마법 저항력을 뚫을 수 없어 탈라한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혜안으로 관찰하며 사람의 심리상태를 누구보다 더 잘 꿰뚫게 된 쥬디는 말투, 행동, 표정만 봐도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일이었지. 그러나 부탑주 챈들러와 원로들, 스승님을 질투하는 교수들은 스승님의 연구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어. 탑주가 되는 것, 떨어질 콩고물에만 관심이 있었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너는 일기장에만 관심이 있었잖아. 안 그래?”

“맞아.”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라는 꼴이군.”

“.......”

탈라한의 스승 클레멘트가 연구 성과를 탑주 아타나시오에게 보고하러 가려는 순간 탈라한의 연락을 받은 부탑주 챈들러와 원로들, 교수들이 클레멘트의 연구실로 들이닥쳤다.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교수들이 마법을 날려 클레멘트를 공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천재 마법사 클레멘트는 반항도 한 번 못 해보고 챈들러 일당에 사로잡혔다.

그다음은 평소 우리가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모습이 연출됐다. 탈라한이 책장에 꽂아뒀던 서머닝 학파의 연구 자료를 증거로 챈들러 일당은 클레멘트를 서머닝 학파의 스파이로 몰아붙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탈라한도 탑주 아타나시오 앞에서 서머닝 학파의 마법을 보여주며 스승 클레멘트를 완벽한 그물에 빠뜨렸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클레멘트가 피를 토하며 말했지만, 명백한 증거와 증인 앞에 변론조차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탑주 아타나시오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수제자 탈라한의 증언에 더는 우길 수 없어 탑주 자리를 내놓고 홀로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로 떠났다.

탑주 아타나시오를 권좌에서 밀어낸 챈들러 일당은 클레멘트의 제자들과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참수했다.

또한,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은 모조리 잡아들여 고문하고 억지 자백을 받아 내는 등 아타나시오와 클레멘트의 흔적을 네크로맨서 학파에서 완벽히 지웠다.

스파이를 잡아낸 공로를 인정받은 탈라한은 신입 탑주가 된 챈들러로부터 큰 상을 받았다.

챈들러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탈라한을 죽이지 않고 상을 준 건 네크로맨서 학파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였다.

탑주와 부탑주, 원로, 교수에 속한 마법사들을 빼고도 네크로맨서 학파에는 많은 마법사가 있었다.

1,000년을 이어오는 동안 실력이 낮다는 이유로, 연줄이 없다는 이유로 중요 보직에서 밀려난 마법사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들도 제자를 받아들여 네크로맨서 학파의 80%는 이들이 채우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탑주 아타나시오처럼 이상함을 느끼고, 챈들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때문에 탈라한을 죽이지 않고 스파이를 잡아내 네크로맨서 학파의 위기를 구한 영웅으로 우대한 것이었다.

“사건이 정리된 한 달 후 챈들러는 약속했던 대로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함께 나를 이곳에 보내줬지.”

“이곳이 감옥이야?”

“그래.”

영지에 도착한 순간 챈들러 일당에게 제압당한 탈라한은 팔다리가 잘린 채 던전에 버려졌다.

“여자 친구는”

“잡혀 있는 동안 마음과 몸을 모두 빼앗긴 채 챈들러의 노리개가 되어있었지. 팔다리가 잘린 내 앞에서 챈들러의 남성을 입에 물고 나를 쳐다보더군. 크크크크.”

“인과응보야. 화낼 거 없어.”

“알아. 내 잘못이라는 거.”

동굴에 탈라한을 가둔 챈들러는 살아서는 절대로 던전을 빠져나올 수 없는 금제와 동굴을 벗어나지 않는 한 영원히 죽지 않는 금제를 걸었다.

700년 동안 탈라한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던전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들어보니 네가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왜 나가려는 거야?”

“약속을 어긴 챈들러의 후손들 그리고 제자들을 죽여 복수하려고.”

“이 새끼 양심도 없는 놈이네. 너 때문에 스승 클레멘트가 죽고, 탑주 아타나시오가 쫓겨났어. 그리고 너와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가족들도 모두 죽었고. 그런데 고작 챈들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복수하겠다고?”

“그들이 죽은 것은 운명이었어. 피할 수 없는 운명.”

“운명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야. 그들이 그런 운명을 타고 나서 그렇게 죽은 거야. 놈들 운명이라고.”

“지랄하고 있네. 할 말 없는 새끼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뭔지 알아? 어쩔 수 없다는 말이야. 무슨 일만 생기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조국을 배신한 것도, 민족을 배신한 것도, 매국노가 된 것도 모두 어쩔 수 없다고 하지.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뭐야? 바보야?”

“그것도 운명이야.”

“개똥 철학자 나셨네. 그렇게 잘나신 분이 이러고 있어? 운명을 꿰뚫고 계신 분이 왜 여기 있냐고?”

“복수할 운명이니까.”

“미친 새끼.”

“너도 이곳에 500년 동안 갇혀 있어 봐. 나처럼 될 거야. 생각할 수 있는 게 복수밖에 없으니까.”

“너처럼 바보같이 이용당할 일도 없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너처럼 되지는 않아.”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단정하지 마.”

“충고지?”

“글쎄?”

유저인 나는 탈라한처럼 저주에 걸려 던전에 갇힐 일은 없었다. 유저는 환인의 보호를 받아 오랜 시간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

저주에 걸린 아이템을 착용해 오랜 시간 아이템을 벗지 못하는 일도 있었지만, 700년 동안 던전에 갇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마법 족쇄에 묶여 감방에 갇힌 채 죽을 수도, 달아날 수도 없게 된다면 탈라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접속을 종료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빠져나올 수도 있지만, 가둔 상대가 공작이나 황태자, 황제라면 게임을 접어야 할 수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