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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계획 그리고...
266.
“빨리 먹어. 밥 먹고 백작 부인을 만나러 가야 해.”
“오늘 하려고요?”
“어.”
“큰오빠는 추진력 하나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시작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시작하면 거침이 없네요.”
“칭찬이지?”
“욕이에요.”
쥬디가 말한 추진력은 레오니 백작 부인을 말한 게 아니었다.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를 품은 걸 말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건드리지도 않다가 손을 대자 끝장을 볼 기세로 덤벼드는 모습을 보고 놀린 것이었다.
“아침부터 이마에 혹 나고 싶어?”
“때리세요. 맞아도 할 말은 해야죠. 폭력에 굴복하는 건 비겁한 사람이나 할 짓이니까요.”
“세라하고 붙어 다니더니 못된 것만 배웠어. 쯔쯔쯔쯔.”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순진한 아이 다 버려놨잖아?”
“쥬디가 순진해요? 얘 저보다 더 발랑 까졌어요. 모르셨어요?”
“웃기고 있네.”
“진짜에요. 쥬디하고 은밀한 얘기 해보세요. 모르는 게 없어요. 그리고 이상한 것도 엄청나게 많이 알아요.”
“흐음...”
세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쥬디는 혜안 능력이 대폭 하향되기 전 이은택과 정이슬, 정치인, 검찰, 경찰, 기자 등 100명이 넘는 쓰레기의 인생 전체를 읽으며 알지 말아야 할 것까지 알게 됐다.
심지가 바르고 굳건해 악에 물들진 않았지만,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건 아니라서 성격이 조금 변했다.
음습하거나 괴팍해진 건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과격해졌고, 생각도 많아졌다.
그러나 나와 하린이, 하연이를 대하는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아 순진한 동생으로만 생각했다.
세라의 얘기를 듣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도 깊고, 뭐든지 잘해 간섭하지 않았다.
그것이 쥬디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머리가 좋다고 16살 소녀가 60살 할아버지의 연륜을 갖는 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천재라는 이유로 방관하고 있었다.
「쥬디야, 미안해.」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그동안 부려먹기만 하고 신경을 안 쓴 것 같아서.」
「부모도 큰오빠만큼 신경 써주지 못해요. 오빠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아니야. 신경 써준 척만 한 것 같아. 네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깊이 알려 하지 않았어.」
「세라 언니가 한 말 때문에 그러세요?」
「세라 때문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무관심한 것 같아서.」
「그런 거 없지만, 큰오빠가 저와 얘기하고 싶다면 언제나 오케이에요.」
「그래. 우리 앞으로 자주 자주 얘기하자.」
「네!」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자고 하자 쥬디가 밝게 웃으며 답했다. 쥬디와 얘기를 자주 했지만, 마음속에 있는 얘기는 해본 적은 많지 않았다.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오랜 친구 사이도 마음속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진 않는다.
쥬디와 나도 그래서 마음속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하듯이 쥬디에게도 할 생각이었다.
NPC와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비웃겠지만, 말 상대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면 돌멩이와 얘기하든, 멍멍이와 얘기하든 상관없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서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저 하늘의 별과 얘기해도 된다.
“그만 떠들고 올라가서 준비해. 시간 없어.”
“내가 말하면 짜증만 내고, 쥬디가 말하면 아무 말도 못 하고,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열 손가락 깨물어봐. 덜 아픈 손가락도 있고, 더 아픈 손가락도 있어. 너는 덜 아픈 손가락이고, 쥬디는 더 아픈 손가락이야.”
“그런 말이 대체 어디 있어요?”
“여기 있다.”
“정말 못됐어.”
“그만 떠들고 옷 갈아입고 나와. 계속 떠들면 너만 안아주지 않을 거야. 안아줘도 100년 후에 안아줄 거야.”
“헙!”
100년 후에 안아준다는 말에 놀란 세라가 손으로 입을 막고 침실로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갔다.
세라가 잔소리를 한 건 시끄러워 잠을 못 자서가 아니었다. 레이첼과 아이린, 아만다만 안아주고 자신은 안아주지 않아 심통이 나서 그런 것이었다.
나나와 야냐, 아라치도 그 때문에 화가 나 운동 내내 나를 째려보며,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심지어 동생 삼은 쥬디까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아침 시중을 드는 에밀리와 엠마도 표정이 싸늘했다.
유일하게 눈치를 주지 않은 건 유치원 수준 지능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미미뿐이었다. 남녀 관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미미만이 내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여줬다.
‘이러다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아주 중요한 얘기가 있어 일찍 왔습니다.”
“큰일이라도 났나요?”
“아닙니다. 부인께 긴히 드릴 말이 있어서 온 겁니다.”
“놀랐어요. 남편이 남작님을 공격한 줄 알고요.”
“시푸아 백작은 저와 부인과의 관계를 모릅니다. 그리고 아직 세력을 모으지도 않았고요.”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요.”
“부인은 10년 넘게 시푸아 가문을 이끄신 지장이십니다. 그때처럼 마음을 굳게 가지시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부인 뜻대로 될 것입니다.”
“남작님이 옆에 계셔서 너무 든든해요.”
시푸아 백작이 나와 레오니 백작 부인 사이를 의심하는지 쥬디가 매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이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레오니 백작 부인을 의심하는 건 아닌지 하루도 빠짐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시푸아 백작이 건강을 찾은 지 20일이 넘었다. 열흘쯤 되면 가문을 돌보는 일을 다시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0일이 지나도록 움직임이 없었다.
대신 다른 쪽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사교계에 얼굴을 다시 내밀고, 귀족 부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밤에는 17~18세 여자 농노들을 2~3명씩 품고 젊음을 마음껏 만끽하는 등 10년 넘게 끊었던(?) 유흥에 집착했다.
덕분에 레오니 백작 부인은 시간과 명분을 동시에 얻었다. 시푸아 백작이 건강을 회복한 다음 날부터 가문을 챙겼다면 레오니 백작 부인의 힘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푸아 백작이 노는 일에만 집중하자 가문을 떠받치는 가신들이 크게 실망해 레오니 백작 부인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다.
영악한 레오니 백작 부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탈하려던 가신들을 일일이 만나 회유하며 지지기반을 더욱 다졌다.
「백작도 함께 공략하는 게 좋겠어요.」
「어떻게?」
「불에 기름을 끼얹어주면 되죠.」
「좋은 생각이야. 역시 너는 내 꾀주머니야.」
「이왕이면 제갈량으로 해주세요. 꾀주머니는 너무 촌스러워요.」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여제갈 어때?」
「마음에 쏙 드네요. 호호호호.」
내일부터 세라의 몽환술로 레오니 백작 부인이 임신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쥬디는 시푸아 백작도 몽환술을 펼쳐 환락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레오니 백작 부인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지만, 백작이 건강을 찾은 이상 이탈세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레오니 백작 부인과 척을 진 시동생들과 친척들이 시푸아 백작에게 달라붙어 이간질할 게 분명해 그냥 내버려 두면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 확실했다.
시간을 벌고 이탈세력을 줄이려면 시푸아 백작이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술과 여자에 미쳐 날뛰게 해야 한다.
그래야 손쉽게 시푸아 백작과 친인척, 시동생들을 제거하고 시푸아 백작 가문을 날로 꿀꺽 삼킬 수 있었다.
“뒤에 계신 두 분은 믿을 수 있는 분들입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한나와 레아는 나나와 야냐도 아는 애들로 믿을 수 있어요.”
「나나, 사실이야?」
「저희 아래 있던 애들로 부인께서 깊이 믿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수준은?」
「한나는 마도사 하급, 레아는 프로보스트 하급이에요.」
「네가 보기엔 어때?」
「둘 다 부인을 깊이 따르고 있어 배신할 염려는 없어요.」
「야냐는?」
「저도 나나와 같은 생각이에요. 둘 다 저희처럼 부인의 은혜를 입어 쉽게 배신하진 않을 거예요.」
「한나와 레아 빼고 실력이 뛰어난 여자들이 더 있어?」
「10명 정도 있어요.」
나나와 야냐에게 한나와 레아에 관해 물어보자 확신을 갖고 말했다. 나나와 야냐가 내게 쉽게 넘어왔다고 허술한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
흡혈로 인해 내게 넘어온 것이지 흡혈이 아니었다면 둘의 마음을 차지하는데 10년을 걸렸을 것이다.
그만큼 둘은 뛰어난 인재로 사람 보는 안목도 낮지 않았다. 둘이 동시에 확신을 갖고 말한다면 믿어도 됐다.
「쥬디야, 레오니 백작 부인이 둘을 진심으로 믿고 있어?」
「나나와 야냐 언니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두텁게 신임하고 있어요.」
「둘도 내 편으로 만들어 놔야 안심할 수 있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죠.」
“밀실로 가시죠.”
“네.”
내가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레오니 백작 부인에게 밀실로 가자고 했다. 다른 사람이 레오니 백작 부인에게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신뢰하다 못해 사랑하는 백작 부인은 내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밀실로 갔다.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쥬디, 세라, 나나, 야냐, 밖에서 기다려.”
“네.”
“한나, 레아, 너희도 손님들과 밖에 있어.”
“알겠습니다. 마님.”
“네.”
호위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부인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말없이 얼굴을 바라보자 부끄러운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먼저 치료부터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침대에 누우세요.”
“급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잖아요?”
“편히 누워서 들으세요. 제법 긴 이야깁니다.”
“네.”
피를 빤다는 말에 수줍은 새색시가 된 레오니 백작 부인이 다소곳이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어제와 같은 짜릿한 쾌감을 기대하는지 풍만한 가슴이 심하게 아래위로 요동쳤다.
꿀꺽
의자가 아닌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자 놀란 백작 부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팔을 잡았다.
옷을 걷자 눈처럼 하얀 팔뚝이 드러났다. 천천히 입에 가져가며 백작 부인의 눈을 바라봤다.
팔뚝에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과 다가올 강렬한 쾌감에 들든 레오니 백작 부인의 눈동자가 태풍을 만난 돛단배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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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