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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 백작 부인
258. 레오니 백작 부인
“나나야, 잘 지냈어?”
“마님이 걱정해주셔서 잘 지냈어요.”
“야냐는?”
“영주님이 동생처럼 잘 해주세요.”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모두 마님 덕분이에요.”
“아니야. 내가 끝까지 돌봐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는 죽을 때까지 마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거예요.”
“정말 고맙다. 얘들아.”
레오니 백작 부인을 만난 나나와 야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나와 야냐에게 레오니 백작 부인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엄마라고까진 표현할 수 없지만, 시푸아 백작 가문에서 인간으로 대해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으로 나나와 야냐에겐 주인 그 이상의 감정이 있었다.
“자주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부인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나나와 야냐가 레오니 백작 부인을 만난 건 20일 만이었다. 백작 부인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 나나와 야냐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나나와 야냐가 여자라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시푸아 백작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뛰어난 인재를 백작 부인 마음대로 내게 줬다는 것은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나나와 야냐는 처음부터 레오니 백작 부인을 위해 길러진 인재로 백작 부인 개인재산이었다.
팔건 주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을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킨 돈은 모두 시푸아 백작 가문에서 나가 백작 부인 혼자 결정해 나에게 준 건 문제의 소지가 컸다.
하지만 진짜 나나와 야냐를 백작성에 데리고 오지 않은 건 레오니 백작 부인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어서가 아니었다.
완벽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데려오지 않은 것뿐이었다. 한창 충성도가 올라가는데 전 주인을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멍멍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로 전 주인에게 달려가 사정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척을 했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자꾸 머뭇거리며 현재 주인을 따라가려 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나나와 야냐를 레오니 백작 부인과 만나지 않게 한 것이었다. 레오니 백작 부인의 사정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충성도 100을 찍지도 않고 백작 부인을 만나게 한 건 마음이 흔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였다.
레오니 백작 부인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더 중요했기에 나나와 야냐까지 데리고 시푸아 백작성을 찾았다.
「감정이 많이 격해졌어요.」
「나에 대한 호감은?」
「아주 좋아요.」
「언제쯤 시작하는 게 좋을까?」
「지금 하세요. 나나와 아냐 언니로 인해 마음이 한껏 들떠있어요.」
「알았어.」
쥬디의 사인이 떨어지자 나나와 야냐에게 신호를 보냈다. 충성심이 아직 80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내게 완전히 빠진 나나와 야냐는 레오니 백작 부인을 향한 마음이 종잇장처럼 얇아진 상태였다.
여자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나나와 야냐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백작 부인을 떠난 것에 대한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다. 반가움의 눈물일 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레오니 백작 부인만 모르고 있었다.
「나나, 잘할 수 있지?」
「예.」
「야냐는?」
「저도 잘할 수 있어요.」
「좋아. 믿겠어. 시작해.」
「네.」
“마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그래?”
“이곳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말씀드릴게요.”
“아주 중요한 얘기야?”
“네.”
“알았어.”
나나가 백작 부인에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은근한 말투로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야냐도 눈을 빛내며 아주 중요한 얘기가 있는 것처럼 백작 부인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 나나 말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나나와 야냐의 확신에 찬 모습에 레오니 백작 부인은 아무런 의심 없이 본관 4층 끝에 있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레오니 백작 부인은 나나와 야냐를 내게 보냈지만, 완벽히 보낸 것은 아니었다. 나나와 야냐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을 굳게 믿어 스파이 역할도 충실히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나와 야냐가 레오니 백작 부인을 따른 지 15년이 넘었다. 15년을 곁에 두고 수족처럼 부린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한 번도 부인을 실망시키지 않은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15년을 믿었으니까.
사람의 가장 큰 착각은 사랑이, 믿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산이 변하고, 나무가 변하고, 강이 변하듯 사랑도 믿음도 변했다.
변하지 않는 믿음을. 충성을 받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충성도 100,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게임에서나 가능한 얘기였지 현실에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허망한 꿈이었다.
“무슨 얘기인지 해봐.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있어. 어떤 얘기를 해도 세어나기지 않아.”
“저희가 아니라 영주님이 하실 거예요.”
“남작님이?”
“네.”
“말씀하세요. 남작님.”
「잡히는 거 있어?」
「아무것도 없어요.」
쥬디가 아무것도 없다고 하자 레오니 백작 부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부인께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게 있다니요?”
“젊음에 관한 것입니다.”
“네에?”
젊음에 관해 말하지 않은 게 있다고 말하자 놀라 찢어질 것처럼 눈을 부릅뜬 백작 부인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왜 안 그렇겠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좋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부작용이 있어 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고, 저주를 걸었다면 괴물로 변할 수도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쓰나미처럼 밀려오자 레오니 백작 부인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벌벌 떨었다.
“그.그게 뭐.뭔가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침착하고 냉정한 레오니 백작 부인도 이 순간만큼은 진정이 안 되는지 목소리까지 심하게 떨렸다.
“부인께서 걱정하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안심하십시오.”
“정말인가요?”
“네.”
“그럼 말하지 않았다는 게 대체 뭔가요?”
“생명의 길이입니다.”
“젊음을 준 대신 생명이 줄어든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뭐죠?”
“몸은 젊어졌지만, 생명이 늘어난 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백작 부인의 남은 생명은 젊어지기 전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내일 죽을 수도, 모레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벌레도, 나무도, 물고기도, 사람도, 길거리에 널린 똥개도 자신의 생명은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했다.
강제로 흡혈하려던 계획을 바꿔 백작 부인이 피를 빨아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기로 했다. 생명과 젊음을 미끼로.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몸만 젊어진 것이지 생명이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여기까지만 진실이었다.
질병에 걸려 죽은 NPC는 40살 이전은 20년, 50살은 15년, 60살 이상은 10년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또한, 나이가 많아 자연사한 NPC는 10년, 외인사(外因死) 또는 변사(變死)로 죽은 NPC는 70살까지 생명이 연장된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 레오니 백작 부인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살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네.”
“어떤 방법이죠?”
“제 피를 나눠드리면 됩니다.”
“네?”
“제 피에는 생명을 연장하는 힘이 있습니다. 제 피를 부인께 드리면 갑자기 죽거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아!”
내 피를 주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말하자 레오니 백작 부인의 얼굴에 드리웠던 짙은 어둠이 사라졌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인의와 도덕을 부르짖던 사람도 자기 생명 앞에선, 이익 앞에선 얼굴을 바꿨다.
이러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위대한 성인(聖人), 성자(聖者), 위인(偉人)이라고 불렀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인류 역사상 몇 명이나 진정한 성인, 성자, 위인으로 추앙받았는지 생각해보라.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로... 위인전에선 찾기 힘들어도 생활 속에선 종종 찾을 수 있다. 진정한 의인은 몸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자기애가 강한 레오니 백작 부인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찾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제약이 하나 있습니다.”
“피를 나눠주시면 남작님 생명에 문제가 생기는 건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제 피를 그냥 드리는 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구하기 힘든 약이 있어야 하나요? 그걸 섞어야 효과가 있나요? 말씀만 하세요. 무엇이든 구해드릴게요.”
살 수 있다는 말에 레오니 백작 부인의 눈에 광채가 돌았다. 반짝거리는 눈이 광기에 휩싸인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아닙니다. 그런 건 없어도 됩니다.”
“그러면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하나요?”
“그것도 아닙니다. 부인의 피가 필요합니다.”
“제 피요?”
“네.”
“피를 섞어야 효과가 있는 거군요?”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뜸들이지 말고 말씀하세요. 애간장이 타서 죽을 것 같아요.”
“그게... 제가 부인의 피를 빤 다음 다시 넣어줘야 합니다.”
“피를 빤다는 건 직접 입으로 피를 흡혈한다는 말인가요?”
“네.”
“어렵지도 않은 일을 왜 그렇게 힘들게 말씀하세요?”
“피를 빨려면 부인의 몸에 상처를 내야 합니다. 그건 매우 불경한 짓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아요. 상처는 약을 바르면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뭐가 문제에요.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상처가 매우 아픕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에요. 참을 수 있어요.”
“정말이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인을 믿고 지금 부작용을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젊게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에 레오니 백작 부인은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며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머리를 싸매고 있었으니... 아니지. 목숨이 걸린 일인데 누군데 넘어오지 않겠어. 나도 넘어갔을 거야. 누구나 생명은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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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