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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256. 첫날밤
“으음...”
“깼어?”
“몇 시간이나 잔 거야?”
“3시간.”
“깨우지 그랬어?”
“술 취한 사람을 왜 깨워? 푹 자게 놔둬야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술이 약하진 않았지만, 평소에 자주 먹지 않았고, 점심도 거른 채 급하게 먹자 술기운이 올라와 잠이 들고 말았다.
“첫날밤부터 소박 마출 뻔했네. 미안해.”
“괜찮아.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니까 소박맞을 일 없어.”
“내가 왜 너를 소박 맞춰? 평생 업어줘도 모자란데.”
“그 말 진심이지?”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 알아.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
“바보!”
사랑은 언제나 가슴 졸여야 하는 것인지 결혼식을 올렸는데도 하린이는 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정말 바보였다. 가슴을 열어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내가 얼마나 많이, 깊이,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하린이 없이는 살 수 없었다. 하린이가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린이가 없다면 나도 없었다.
“내가 너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알아?”
“응.”
“그런데 왜 불안해해?”
“오빠도 불안하지? 내가 없어질까 봐?”
“어.”
“나도 마찬가지야.”
“바보!”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가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떠나는 건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하면 두려웠다. 사랑이 떠날까 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두려웠다. 우리처럼. 바보니까.
“어른들은?”
“1시간 전에 가셨어.”
“욕하겠다.”
“할머니하고, 엄마 빼고 모두 취해서 오빠 올라간 것도 몰라.”
“그래?”
“응. 오빠만 많이 마신 거 아니야.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아서 소주를 두 병이나 드셨어. 아빠와 고모부, 이모부, 삼촌들은 4~5병씩 마셨고. 모두 취해서 오늘 무슨 말 했는지도 기억도 못 할 거야.”
“병나시는 거 아니야?”
“모두 건강하셔. 하루 술병으로 고생하겠지만, 이틀 지나면 쌩쌩해질 거야.”
“그러면 다행이고.”
내가 침실에 올라올 때 이미 어른들이 취해 있었다. 취한 상태에서도 기분이 좋아 2시간이나 더 마셔 인사불성이 되어 완전히 뻗었다.
이럴 것을 대비해 하린이가 대리운전 업체에 요금을 세 배를 주기로 하고 미리 연락해놨었다.
어른들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낸 하린이와 하연이, 은하, 다현이, 민지, 수영, 연아는 음식을 치우고, 설거지하고, 집을 청소하는 등 내가 잠든 사이 엉망이 된 집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은하는 갔어?”
“하연이와 같이 다현이 방에 있어.”
“아직도 술 먹는 거야?”
“응.”
“집에 언제 가려고?”
“오늘 자고 갈 거야. 내가 그러라고 했어.”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고?”
“응.”
“남자친구 있다고 했는데. 외박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당연히 싫어하겠지.”
“그럼 집에 보내야지 왜 재워?”
“괜찮아. 그 남자친구 이해할 거야. 마음이 우주만큼 넓거든.”
“자기 여자가 외박하는 걸 이해해주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같이 있다면 모를까 절대 이해하지 않을 거야. 어서 보내.”
“오빠, 바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미련한 곰탱이도 오빠보다는 눈치가 빠를 거야. 사람이 이렇게 눈치가 없지? 대단해.”
“내가 왜 곰탱이야?”
“몰라!”
하린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낮에는 은하가 그러더니 이제는 하린이가 이러고 있었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오늘은 결혼한 날이었다. 여자들은 결혼 전날과 당일 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무조건 예쁘다, 잘한다,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신부의 다운된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신혼 첫날밤은 화끈한 천국이 아니라 찬바람이 쌩쌩 부는 지옥이 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술에 취해 잠을 잤고, 하린이와 여자들은 뒤치다꺼리하며 쉬지도 못했다.
심지어 신혼여행도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으로 미뤄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었다. 당분간은 마당쇠가 되어 하린이 마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무병장수하는 길이었다.
“내가 먼저 씻고 올까? 아니면 같이 씻을래?”
“같이 씻어.”
와락
“꺄악! 뭐하는 짓이야?”
“신혼 첫날 밤은 남자가 여자를 안고 침실로 들어가는 거라고 했어. 아까는 술에 취해 그러지 못했으니까 욕실이라도 그렇게 해야지.”
“흥! 이제 와서?”
“이제라도 하는 게 어디야? 한 번만 봐줘.”
“하는 거 봐서.”
“네, 마님!”
하린이를 두 팔로 번쩍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전 주인은 욕실에 애착이 컸는지... 짓기만 하고 사용해보지도 못했지만... 5~6명은 들어갈 커다란 욕조에 누우면 하늘이 보였고, 유리창에 붙어 있어 팔당호도 한눈에 보여 목욕하는 게 아니라 힐링을 하는 공간이었다.
쏴아
하린이를 안은 채 물을 틀자 따뜻한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콸 쏟아졌다. 따뜻한 물이 욕조를 가득 채우는 동안 몸을 씻기 위해 하린이를 살포시 내려놓고 팬티와 면티를 벗겼다. 그러자 하린이도 내 옷을 벗기고 품에 안겼다.
품에 꼭 안은 채 엉덩이를 더듬자 양손에 비누 거품을 잔뜩 묻힌 하린이가 내 몸을 골고루 문질렀다.
나도 비누를 넘겨받아 하린이의 몸에 거품을 잔뜩 내며 가슴과 엉덩이를 살살 문질렀다.
서로의 몸을 미끈거리는 비누 거품으로 구석구석 문지르자 짜릿한 쾌감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졌다.
솟구치는 욕망에 비누 거품을 잔뜩 묻힌 채 몸을 섞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첫날밤이었다.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첫날 밤을 그렇게 보낼 순 없었다. 성난 욕망을 억지로 참고 비누 거품을 씻어내고 욕조로 들어갔다.
“아, 따뜻해.”
“뜨겁지 않아?”
“응. 딱 좋아.”
하린이를 품에 안고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갔다. 나는 조금 뜨겁다고 느꼈는데, 여자는 남자보다 뜨거운 물이 몸에 더 맞는지 하린이는 온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등을 욕조에 기대며 하린이의 등을 끌어안았다. 하린이는 나와 같이 목욕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리고 이렇게 품에 안긴 채 욕조에 누워있는 것도 좋아해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30분은 이렇게 욕조에 누워 하늘도 보고, 팔당호도 보며 아픈 머리를 식혔다.
“시푸아 백작 건 해결되면 호주로 신혼여행 가자.”
“싫어.”
“왜?”
“The Age of Hero에 더 좋은 휴양지가 얼마나 많은데 힘들게 호주까지 가? 시간 낭비야. 안 가.”
“그래도 한 번뿐인 신혼여행인데 남들처럼 비행기도 타고, 자동차도 타고, 걷기도 해야지.”
“누가 요즘 촌스럽게 비행기 타고, 차 타고 여행을 다녀? 모두 The Age of Hero의 휴양지로 놀러 가는 거 몰라?”
“그래?”
“응.”
“어디로 가는데?”
“토르게르드와 헤르모그로 가장 많이 가.”
“거기에 뭐가 있는데?”
“토르게르드 앞에 섬이 다섯 개 있는데, 하와이보다 경치가 더 좋고, 해변도 아주 깨끗하고 예뻐. 그리고 파도도 끝내주게 좋아 서핑하는 사람도 많대.”
“서핑도 할 줄 알아?”
“아니. 구경하는 거 좋아해. 그리고 헤르모그는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아름다운 숲과 호수가 연달아 있어. 호수에 비친 산이 정말 멋지대. 바비큐 파티하면 끝내줄 거야.”
“외진 곳이면 몬스터 있지 않아?”
“둘 다 없어.”
“그래도 현실이 낫지 않을까?”
“나는 현실이건 가상이건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어디를 가든 오빠와 하연이만 옆에 있으면 되고.”
“알았어. 그렇게 해. 나는 네가 좋으면 다 좋아.”
“고마워! 헤헤헤헤.”
The Age of Hero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으로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을 게임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한 모험을 즐기기 위해 The Age of Hero를 했다.
그리고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The Age of Hero에 접속해 여행을 떠났다.
환인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휴양지를 만들었다. 오롯이 여행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게임머니만 있으면 누구나 현실보다 더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린이가 말한 두 곳도 환인이 만든 휴양지로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멋진 경치와 아늑한 침실,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했고, 축제도 끊이지 않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현실 시간으로 오 일 후에 떠나자. 게임 시간으로 이십 일 후니까 그때면 레오니 백작 부인과 관련된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거야.”
“백작 부인 흡혈하는 건 언제 하려고?”
“그건 좀 더 친분을 쌓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까.”
“내 생각에는 약발 떨어지기 전에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런가?”
“큰 감동을 받았을 때는 호감 수치가 낮아도 뭐든 들어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야. 다른 생각 품기 전에 빨리 우리 편 만드는 게 좋아.”
“알았어”
“어디 가는 게 좋을지는 내일 하연이랑 상의해서 말해 줄게. 다 잊고 셋이 신나게 노는 거야.”
“그래.”
영지를 받은 다음 피를 빨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린이 말을 듣고 나자 마음이 바뀌었다.
부활과 흡혈의 약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레오니 백작 부인의 피를 빠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당분간 호감도가 떨어질 일은 없었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시간을 끌어 좋을 게 없었다.
‘나나와 야냐를 데리고 가서 백작 부인의 마음을 풀어놓은 다음, 경호원을 모두 내보내게 하고 피를 빨아야겠다.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피를 빨리면 나나와 야냐처럼 계속 빨리고 싶어 할 거야.’
“오빠, 이제 나가자. 물 식었어.”
“그래.”
욕조 밖으로 나와 물기를 닦고 하린이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갔다. 우리 둘 다 바라고, 고대하던 날로 처음 서로의 몸을 봤을 때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살포시 침대에 하린이를 눕히고 위에 올라탔다. 품에 꼭 안고 입술을 맞추자 아기처럼 달라붙어 혀를 빨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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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