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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
250.
“하연아, 이리와.”
“네, 오빠.”
“오빠 믿지?”
“네.”
“너는 오빠만 믿으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없어.”
“알았어요.”
하연이도 하린이처럼 품에 꼭 안아준 다음 찐하게 입을 맞췄다. 평생 동거인으로 남겠지만, 하린이와 하연이 둘 다 똑같이 사랑할 것이다.
둘 중 누구도 더 많이 사랑하지 않고, 덜 사랑하지 않고 공평하게, 온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할 것이었다.
‘은하가 많이 섭섭해 하겠네.’
은하를 생각하자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 결혼 소식을 들으면 큰 충격에 실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은하는 여전히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악용하는 것 같아 그만두게 하고 싶었지만,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은하 아니면 믿을 수 있는 변호사도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더욱 나쁜 건 은하를 전적으로 믿으면서도 잘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건 너무 속 보이는 짓이라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세상에 나만큼 나쁜 놈이 있을까? 지옥에 가야 한다면 나부터 가야 할 거야. 나쁜 새끼!’
“은하 언니 걱정하는 거라면 하지 않아도 돼.”
“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은하 언니 오빠하고 나하고 결혼할 거 전부터 알고 있었어.”
“아는 것과 실제 하는 것은 달라.”
“다르지 않을 거야.”
“다르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니 우리 결혼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언니 성격 알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결혼했는데 왜 포기를 안 해?”
“언니 오빠 없으면 못 살아. 그러니 절대 포기할 수 없지.”
“......”
하린이의 말에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6년 넘게 나 하나만 생각하며 버틴 은하였다.
결혼한다고 포기할 성격이 아니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곁을 맴돌며 돌아오기만 기다릴 것이다.
은하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얌전하고 부드러운 여자지만, 속은 강철보다 단단해 한 번 결심하면 절대 바꾸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랑 헤어진 후 다시 만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해 3학년 때 고시에 합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시에 합격하고도 다른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를 찾았다. 하린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회가 오기만 묵묵히 바라고 있었다.
나와 하린이의 결혼은 은하에겐 잠시 찾아온 장애일 뿐 극복하지 못한 난관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기로 했어.”
“뭘 포기해?”
“오빠가 은하 언니 만나는 거 인정하겠다고. 만나. 아무 때나.”
“제정신으로 하는 얘기야?”
“응. 나만 승낙한 거 아니야. 하연이도 승낙했어.”
“둘 다 미쳤구나.”
“남들은 만나지 못하게 해도 몰래 만나는데, 오빠는 만나라고 하는데 왜 화를 내고 그래?”
“나는 은하 만날 생각한 적도 없고, 만날 생각도 없어. 나는 너희 둘만 해도 벅차. 은하까지 감당할 수 없어.”
“은하 언니 죽는 꼴 보고 싶어?”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내 말대로 해. 우리 결혼하고 한 달쯤 후에 언니 집에 들일 거야. 사무실도 하남시로 옮길 거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짓이야.”
“아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나는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오빠는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면 돼.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하아...”
하린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전적으로 날 위해서였다. 날 위한 게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남편 한 명에 여러 명의 여자가 함께 사는 이슬람 국가에서도 아내들끼리 다퉈 집안이 난장판이 되는 일이 잦았다.
나와 하린이, 하연이, 은하가 사는 곳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었다.
일부일처만 법으로 허용하는... 이 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판사의 손에 든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황당하게도...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넓은 땅을 사고, 담장을 높이 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법을 피하기 위해.
하린이, 하연이와 함께하기 위해선 외부인의 침입을 철저하게 막아야했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독수리 경호팀과 입이 무거운 도우미... 쥬디의 혜안을 통해 가려낸 도우미... 몇 명만 들어오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언젠가는 나와 하린이, 하연이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자매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은하까지 들어오면 더욱 빠르게 소문이 퍼질 것이다.
은하는 마림 재단 게이트와 이은택 뺑소니 사건으로 대중에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타 변호사에 인권 변호사로도 이름이 높아 방송출연제의도 수시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처럼 집에 머무는 게 아니라 매일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해야 해 찌라시 언론과 파파라치의 공격목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면 팔당 땅이 누구 땅인지, 누구 집인지, 나와의 관계 등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무조건 말려야 한다. 말려야 우리가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 다 황소고집으로 날 위한 일이라면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은하를 곁에 두는 걸 날 위한 일이라고 자매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은하가 한 일을 생각하면 자매 생각이 옳았다.
그러나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결연한 눈으로 의지를 불태우는 하린이와 하연이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오빠가 무슨 말을 해도 언니와 저 지금은 아무 말도 듣지 않아요. 그러니 그만 고민하고 스킬이나 사러 가요.”
“그러자.”
하연이 말처럼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귀에 못을 박고 있는 사람에게 떠드는 건 짜증만 나는 일이었다.
이럴 땐 잠시 시간을 두고 얘기하는 게 나았다. 평소 차분한 사람도 흥분한 상태에선 남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은 다음 얘기해야 한다. 그러면 귀를 열고 상대의 얘기를 들었다. 황소고집인 하린이와 하연이가 그런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하린이는 히든 클래스 바람의 궁수 세 번째 직업 스킬 마파람을 샀고, 하연이는 귀궁의 두 번째 스킬 흉신을 샀다.
바람의 궁수 직업 스킬
마파람(초급 0/200) : 자신과 파티원 3명의 치명타 확률 5% 증가
귀궁 직업 스킬
흉신(초급 0/200) : 치명타 확률 5% 증가
하린이는 이제 스킬 두 개만 사면 직업 스킬 구매가 끝났다. 그러나 하연이는 이제 두 개를 사 앞으로 사야 할 스킬이 여덟 개나 남았다.
나도 서브 클래스 스킬을 하나도 사지 않아 평판 포인트를 모아야 했지만, 마음에 드는 보조 직업을 언제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당분간 전력을 빠르게 올릴 수 있는 강화석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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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하신 대로 호수 남쪽에도 농노들이 살 집을 짓기 위해 터 닦는 공사를 일주일 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규모를 3배 늘려서 2만 명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도록 해.”
“2만 명이요?”
“어.”
“농노가 또 들어오는 겁니까?”
“그래.”
“언제 들어옵니까?”
“빠르면 한 달.”
“한 달 만에 2만 명이 살 집을 짓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드 골렘 세 마리를 붙여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지어. 그때까지 완공 안 되면 천막에서 잠시 재우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영주님. 2만 명이 살 집을 지으면 호숫가 주변 농토가 모두 사라집니다.”
“황색 오크가 살던 지역 개간이 다음 달이면 끝난다고 하지 않았어?”
“예, 그렇습니다.”
“농지가 늘어나는데 뭐가 문제야?”
“개간이 끝나는 시기와 파종 시기가 맞지 않아 작물을 심으려면 최소 넉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호숫가 주변 농토는 작물을 한 번 추수한 다음 집을 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식량이 많이 모자랍니다.”
“식량은 내가 사 올 테니까 공사 시작해. 시간 없어.”
“알겠습니다.”
골드 드래곤 크리사오르의 팔찌에 최대 5,000kg을 수납할 수 있어 전처럼 식량을 사 나르는 일은 큰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아서와 아더 등 NPC에게 밀이 잔뜩 든 포대를 들게 한 후 강제 소환하면 하루에 수백ton도 옮길 수 있었다.
다니엘이 집 짓는 시기를 늦추자고 한 건 호숫가 주변에 2만 명이 살 집을 지으면 농지를 크게 잠식당해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어서였다.
황색 오크 서식지 개간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한 달이면 작물을 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간이 끝나면 여름작물 파종 시기가 한 달이나 지나 겨울작물부터 심어야 했다.
동쪽과 동남쪽의 펑거스 숲을 정리하며 목장을 포함해 농지가 4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인구도 3배 이상 늘어나 식량이 풍족한 상태가 아니었다.
조르주 준 남작이 있을 때보다 생산량도 크게 늘어나 남는 곡물을 레오 상점에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자급자족 수준을 간신히 넘긴 상태였다.
그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호숫가 주변 농지를 주택가로 바꾸는 건 레오니 백작 부인이 한 달 내로 주변 영지를 내게 주기로 해서였다.
남쪽의 칼 구스타프 남작은 농노가 2,000명밖에 안 됐지만, 서쪽 토리노 강 너머 곤잘레스 남작은 15,000명이 넘었고, 그 너머 짤츠 남작은 13,000명, 북쪽 노포크 남작도 10,000명이나 있었다.
곤잘레스 남작의 영지는 우리 영지보다 1.5배 큰 영지로 동쪽 최대 도시인 크바시르로 가기 위해선 근처 영지들이 필히 거처야 할 만큼 요충지로 물산이 풍부해 남작 영지 중에서 가장 부유했다.
곤잘레스 남작 영지 너머 짤츠 남작의 영지도 큰 도로가 나 부유한 영지 중 하나였고, 북쪽 노포크 영지는 국경수비대에 식량과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영지로 황제 직영지에 가까운 영지라 농노가 많았다.
다 합치면 37,000명으로 이들 중 절반만 내 영지로 이동해도 앞서 들어온 5,000명을 더하면 3만 명이 넘어 2만 명이 살 집을 새로 지어야 했다.
농노 37,000명을 모두 내 것으로 계산한 건 농노는 땅에 종속된 노예로 땅을 넘겨준다는 건 농노도 함께 넘겨주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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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