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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44. 부활
“부인께서도 잠시 나가 계십시오.”
“저도요?”
“네.”
“꼭 그래야만 하나요?”
“밑천을 보여드릴 순 없습니다.”
“좋아요. 나가 있죠. 대신 알려드릴 게 있어요. 이 방은 순간이동이 안 돼요. 도망갈 수 없다는 뜻이에요.”
「사실이에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또 있어요. 남편을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거나 이상한 술법으로 현혹하면 그 역시 살아서 이 방을 나갈 수 없어요.”
「이 말도 사실이에요.」
“방법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할 게요. 희언이 없다는 말 깊이 되새기기 바라요. 안 그러면 끔찍한 일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우리를 믿지 않는 눈치에요.」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시푸아 백작 부인은 우리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도 침실에 데려온 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서였다.
백작이 죽는 순간 부인은 모든 걸 잃는다. 권력과 돈은 물론 생명까지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데도 내게 시푸아 백작을 맡긴 것이었다. 나 말고는 누구도 시푸아 백작을 구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니까.
내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나마저 돈만 노리고 온 사기꾼이라면 시푸아 백작도, 레오니 백작 부인도 모두 끝이었다.
“마틸다, 출입문에 붙어서 누가 엿듣는지 보고 있어.”
“네.”
「쥬디야, 백작이 무슨 병인지 확인해봐.」
「네.」
- NPC 쥬디가 혜안을 사용해 시푸아 백작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죽은 듯이 눈을 꼭 감고 있는 시푸아 백작의 몸을 혜안으로 스캔한 쥬디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아냈다.
「루게릭병이에요.」
「루게릭병이면 근육 수축하는 병 아니야?」
「비슷해요.」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매우 희귀한 병이었다.
대뇌 및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파괴되는 병으로 메이저리그에서 2,130개의 연속게임 기록을 보유한 야구선수로 루게릭이 이 병을 진단받고 2년 뒤 사망해 루게릭병으로 불렸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으로 사지의 근력 약화와 근위축, 사지 마비, 언어장애, 호흡 기능 저하로 발병하면 수년 내로 사망하는 매우 무서운 병이었다.
「병에 걸린 지 10년 넘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지? 2~3년이면 죽는다고 들었는데.」
「시푸아 백작의 생명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엄청난 부자잖아. 일반인하고 같은 수준으로 보면 안 되죠.」
「쥬디 네 말이 정답이다.」
발병하면 1년 안에 죽는 병도 누구는 10년 넘게 살았고, 누구는 3개월도 못 살고 죽었다.
이유는 쥬디의 말처럼 돈이었다. 부자는 죽을병에 걸려도 돈의 힘으로 완치하거나, 죽어도 의사가 말한 시한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의사가 말한 시한조차 채우지 못하고 지독한 고통 속에 죽었다.
이유는 하나 치료할 돈이 없어서였다. 일부는 병원이 아닌 집, 길거리, 산, 호수 등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시푸아 백작이 지금까지 산 건 운명일 수도 있고, 레오니 백작 부인의 지극한 정성일 수도 있지만, 돈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쥬디야,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거 있는지 찾아봐.」
「네.」
「으음... 창틀과 등, 문 위에 방을 감시하는 마법의 눈이 하나씩 있어요.」
「그게 전부야?」
「순간이동을 방해하는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져 있고, 방을 보호하는 실드 마법도 벽에 새겨져 있어요.」
“마틸다, 백작 부인께 마법의 눈을 잠시 가리겠다고 말해.”
“네.”
철컥
마틸다가 백작 부인을 만나러 방을 나가자 탁자를 침대 옆에 붙인 다음 품에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을 꺼내 놓았다.
마법의 눈으로 보고 있을 백작 부인을 속이기 위한 행동으로 약병과 책, 스크롤 몇 개를 꺼내놓고 백작의 상태를 살폈다.
「그나마 머리는 나은 편이었네. 팔다리는 유치원생보다 더 가늘고, 비쩍 말랐네. 이러고 10년을 넘게 버텼다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겠다.」
「백작은 지금도 죽고 싶어 해요.」
「저 모습이면 나라도 그러고 싶겠다.」
「저도요.」
시푸아 백작의 몸을 본다면 누구나 죽는 게 낫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수축된 근육으로 인해 몸은 유치원 아이처럼 작아져 뼈만 남았고, 피부도 시커멓게 타들어 가 가냘픈 숨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시녀들이 한 시간마다 몸을 뒤집고, 깨끗한 수건으로 닦고, 통풍을 잘 시켜 등창 난 곳도 없었다.
신관들도 매일 몸에 좋은 마법을 퍼부어 상처 난 곳도 없는 등 형편없는 모습과 비교해 상처는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10년 넘게 이어진 고통은 마음을 피폐하게 했다. 매일 죽고 싶다는 말을 쏟아낼 만큼 백작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권력 정말 무섭네요. 죽었어야 할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있고요.」
「그러게 말이다.」
연명 치료 또는 연명 의료는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행위를 말했다.
가족으로선 부모를,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보낼 수 없어 연명 치료를 했지만, 오랜 시간 고통받는 환자로선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의식이 없다면 그나마 고통이 덜하겠지만,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선 매일 찔러대는 바늘과 몸을 망가뜨리는 약 등으로 죽는 것보다 더욱 참기 힘든 고통을 느꼈고, 병원비에 허리가 휘는 가족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에 자살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이 때문에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도 있었다.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연명 치료를 계속하게 하는 건 인간의 마지막 남은 존엄성마저 해치는 일이었다.
태어나는 건 뜻대로 안 돼도 죽는 순간만큼은 깨끗하게 죽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다.
레오니 백작 부인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연명 치료를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친정을 구하기 위해 매일 끔찍한 고통을 겪는 남편의 짧은 숨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이자 고문이었다.
「정말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게 사람이야. 진실한 사람도 자기 합리화를 하면 그렇게 변하는 거고. 너무 실망할 거 없어. 사람은 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큰오빠와 하린이 언니, 하연이 언니는 안 그래요. 」
「나도 똑같아. 다를 거 없어.」
「그렇지 않아요. 큰오빠는 자기 사람에겐 절대 그러지 않아요.」
「맞아. 내 사람에게만 안 그래. 다른 사람에게는 백작 부인보다 더 야멸차게 굴어. 그게 나야.」
「그건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저도 우리 식구들에게만 착하게 구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래요.」
「그러니 우리가 백작 부인을 욕할 처지가 아니라는 거야.」
「오빠 말이 맞네요.」
‘내가 누굴 욕할 입장이 될까? 게임이라지만, 13조 원도 작다며 아이템과 농노, 작위, 추가 요구까지 바라며 사람을 살리는데. 내가 백작 부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아.’
백작 부인이 남편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짓을 생각하자 욕할 처지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의사는 아니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에... 정확히 말하면 NPC지만... 사리사욕을 앞세워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밑천 단단히 잡겠다며 지랄발광을 떨고 있었다.
백작 부인과 내 행태를 생각하자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생각났다.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만든 의료 윤리강령으로 오랜 세월 의료행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행동 지침이었고, 지금도 의학 교육기관 졸업하는 졸업식에 선서문으로 사용됐다.
선서의 내용은 크게 2부분으로 나뉜다. 의사가 의학도에게, 학생이 스승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제시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종종 TV와 신문에 오르내리는 의사의 맹세로 자기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을 행할 것과 해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 의료를 행하는 전문가로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의사의 99.99%는 졸업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나간 젊은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따라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의사는 젊은 날 진심을 담아 외쳤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어버린 채 돈과 권력을 좇아 양심을 버리고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물건과 출세의 발판으로 보고 치료했다.
이런 행동은 법을 지켜야 할 경찰과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 변호사, 판사가 법을 지키지 않고, 악용하는 것과 같은 짓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게임이라는 이유로 시푸아 백작을 살리고 돈을 버는 내 모습이 예전 TV에서 봤던 어느 대학병원 교수의 모습 같아 씁쓸했다.
“가려도 된대요.”
“저기, 저기, 저기 수건으로 가려.”
“네.”
마탈다에게 마법의 눈이 숨겨진 곳을 알려준 다음 백작이 덮고 있던 이불을 모두 치우고 따뜻한 손길로 생명력을 회복했다.
이거 역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지막까지 보고 있을 백작 부인을 기만하기 위한 쇼였다.
「죽였다가 살릴까?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릴까?」
「큰오빠 시간 많으세요?」
「아니.」
「그럼 죽이세요.」
「그래야겠다.」
이유 없이 NPC를 죽이면 살인자가 된다. 살인자가 되면 엄청난 페널티를 받게 돼 유저들은 NPC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영주였다. 영주는 면책 특권을 갖고 있어 황제만 처벌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해 NPC를 죽여도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유저는 달랐다. 유저는 환인의 보호를 받아 전쟁 또는 정당방위가 아닌 상황에서 죽이면 살인자로 처벌받았다.
예외가 있다면 내 영지에서는 내가 법이자 신으로 유저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해야 할 사람이 나인데 누가 나를 처벌하겠는가?
고로 내 영지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저는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면 유저들을 영지에 유치한다는 원대한 꿈은 물 건너간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왕이 되기 전까진 영지 발전을 위해 간·쓸개 다 빼놓고 유저들에게 와달라고 굽신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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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