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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41화 (2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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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시큐리티(MMS)

241.

“아시는 분 중에 추천해주실 분이 계십니까?”

“올해 옷 벗은 놈 하나 있어. 정보사 중령 출신으로 정보 분석 능력이 아주 뛰어나. 인간성도 믿을만하고.”

“잘 아시는 분입니까?”

“고등학교 동창이야.”

“그러면 아직 옷 벗을 나이는 아니잖습니까?”

“인간성 좋은 놈이 버티기 쉬운 곳이 이 나라에 있다고 생각해? 너 하고 나 이러고 있는 거 보면 몰라?”

“맞는 말씀입니다.”

정보사는 대한민국의 첩보 사령부이자, 국방정보본부 예하 조직인 국군정보사령부(Republic of Korea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KDIC)를 말했다.

북파공작 부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공작 부대 말고도 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부대도 있는 등 군에 관련된 각종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장명석 중령은 제1과인 정보국 정보대 출신으로 정보를 분석하고 다루는 일은 귀신이라고 할 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죽도록 일만 파고드는 성격으로 윗선에 아부할 줄 몰라 계급이 중령에서 멈춘 채 올라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올해 초 정보와 전혀 관련 없는 전투 부대로 발령 나며 군대에서 완전히 버려졌다는 걸 알고 스스로 옷을 벗고 나왔다.

이범석 상사와는 XX고등학교 동창으로 죽마고우까지는 아니었지만,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친한 사이였다.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낚시.”

“백수란 말입니까?”

“그래.”

“그런 유능한 군인을 왜 큰 회사에서 데려가지 않는 겁니까?”

“위에 놈이 자기 명령도 없이 옷을 벗었다고 불같이 화를 냈어. 기업들은 놈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데려다 쓰질 않는 거야. 놈의 눈 밖에 나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나가라고 등 떠밀 때는 언제고, 나가니까 멋대로 나갔다고 화를 내? X새끼! 우리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거지. 그러지 않으면 그따위 짓을 할 순 없을 테니까.”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놈이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언제 만나 뵐 수 있습니까?”

“매일 다니는 낚시터를 알고 있어. 거기 가면 지금도 만날 수 있어.”

“으음... 상사님이 먼저 만나보시고 의사를 타진해 주십시오. 친구니까 제가 끼는 것보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런데 알아둬야 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무진장 깐깐한 성격에 완벽주의자야. 피곤할 수도 있어. 뒤에 가서 내 욕하면 안 돼.“

“남 얘길 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상사님도 그런 유형이잖습니까?”

“나도 그런 편이지만, 그놈은 나보다 열 배는 더 심해. 집에 안 들어가고 일만 해. 그래서 이혼까지 당했어.”

“애는요?”

“없어.”

“사무실 옆에 방 하나 마련해 드리면 되겠군요. 흐흐흐흐.”

“좋은 생각이야. 부려먹기는 아주 좋지. 크크크크.”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까지 내팽개치고 일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목적이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100점, 집에서는 0점인 남편은 합쳐서 50점이 아니었다. 낙제도 아닌 빵점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지만, 두 과목 다 60점은 넘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성립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큰일을 하려면 먼저 가정이 평화로워야 했다. 가정이 불안하면 회사 일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면 가정부터 지켜야 한다. 편안한 가정이 있어야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다.

“상사님, 한 가지 더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인원 채워달라고?”

“네.”

“그건 나보다 그 친구가 잘하니까 그 친구 영입하면 다 해결될 거야.”

“친구 분은 정보를 담당하고, 상사님은 경호를 담당해야 합니다. 분야가 틀립니다.”

“정보사가 정보만 다루는 곳인 줄 알아?”

“저도 정보사가 어떤 곳인지는 압니다. 그래도 상사님의 손발이 되어줄 사람은 상사님 사람으로 채웠으면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 정말 사람 눈물 나게 할래?”

“제가 사장이지만, 저는 죽을 때까지 상사님 부하입니다. 그 점 잊지 말아 주십시오.”

“나쁜 새끼!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네. 나 일하러 간다. 찾지 마.”

“다녀오십시오.”

정말 좋은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범석 상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연이와 하린이, 은하 다음으로 믿는 사람. 이범석 상사는 내가 믿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장명석 중령을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친구인 이범석 상사가 찾아가 얘기하면 바로 넘어올 줄 알았다.

그러나 군대에서 당한 배신의 상처가 팔 병신이 된 나보다 더 컸는지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겠다며 유유자적 낚시만 하다가 죽겠다며 버텼다.

이범석 상사도 고집이라면 절대 지지 않는 성격으로 일주일간 찰거머리같이 따라다니며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며 장명석 중령을 괴롭혔다.

단순하지만 집요한 행동이 먹혔는지, 아니면 진심이 동했는지 일주일 만에 두 손을 든 장명석 중령이 나를 만나 얘기해보고 결정한다며 집에 찾아왔다.

“당신도 나를 쓰다가 버릴 것입니까?”

“네.”

“뭐라고요?”

“중령님이 저를 배신하면 버리는 게 아니라 죽일 겁니다. 그러나 중령님이 저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고 따르겠습니다.”

“내가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끝까지 믿겠다는 말입니까?”

“네.”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중령님이 지휘할 정보팀 구성에 대한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보 보고도 중령님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이렇게 하는데도 믿지 못하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간섭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인원 구성, 시스템 모두 중령님 뜻대로 하십시오. 대신 제가 원하는 정보를 주시면 됩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쥬디가 없었다면 이런 제안을 할 수도 없었다. 쥬디가 있었기에 안심하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범석 상사를 믿기에 이런 제안도 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는다면 그 친구도 믿으려 노력해야 했다. 그게 신뢰였다.

“살면서 이런 제안을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왜 이런 제안을 하십니까?”

“친구의 친구는 친구니까요.”

“친구라.... 좋습니다. 당신이 나를 친구로 믿는다면 나도 당신을 친구로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사장이지만, 나이도 어리고 계급도 한참 아래입니다. 사석에서는 제가라고 편하게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아닙니다. 상사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면 죽을 때까지 상사입니다. 그런 말씀 다시는 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는 구분해야 합니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거 없습니다.”

이범석 상사가 말한 대로 장명석 중령은 앞뒤가 꽉 막힌 원리원칙주의자였다. 앞으로 많이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편했다.

뇌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보다 원칙주의자가 훨씬 좋았다.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일보다는 사리사욕에 관심 많아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지도 못하면서 변명만 늘어놨다.

아주 피곤한 스타일로 이런 사람이 주변에 서너 명만 있어도 화병으로 죽을 수 있었다.

반대로 원리원칙에 충실한 사람은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선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고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대신 아주 깐깐해서 다루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나도 원칙을 지키면 싸울 일이 없어 잔머리 굴리는 놈보다 일하기가 백배는 편했다.

“야! 네가 그러면 나는 뭐가 되냐?”

“좆밥.”

“이런 거지같은 새끼. 너는 친구도 아니야.”

“나도 너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 앞으로 존댓말 해. 그래야 업무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지.”

“뭐라고?”

“못 알아들었어? 친구는 관계는 사적인 일일 때만 써먹으라고 이 새끼야.”

“이런 쌍!”

장명석 중령은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내게 소개해준 이범석 상사조차 업무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할까 봐 미리 거리를 둘 만큼 진정한 관료의 표본이었다.

“장명석을 모모 시큐리티 정보부 총책임자로 임명합니다. 건물을 짓는 일부터, 구조,  인원 구성 및 시스템 구축에 관한 모든 일을 위임합니다.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범석을 모모 시큐리티 경호 및 타격대의 총책임자로 임명합니다. 그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전권을 위임합니다. 평생 제 선임으로, 친구로 남아 주십시오.”

“고맙다. 죽는 그 순간까지 실망시키지 않을게.”

장명석 중령을 포함해 10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모모 시큐리티가 출범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그 말처럼 시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모모 시큐리티를 대한민국 최고, 이 세상 최고로 키울 생각이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첫 번째 사업이기에, 다시는 이런 믿음을 갖고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투자할 생각이었다.

“XXX당 허태영이 김은하 변호사 뒤를 캐고 있습니다.”

“마림 재단 게이트 때문입니까?”

“알고 계셨군요?”

“정보사가 군 관련 정보만 다루지만, 얻어듣는 게 많아 허태영 의원이 죽은 이은택의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김은하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계약 맺은 경호 회사에 인력을 늘려달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바깥출입도 최대한 자제하고요. 그 사이 이범석 상사와 논의해 허태영 의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 밑에 있다가 저 때문에 한직으로 쫓겨난 부하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놈이 무슨 짓을 할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일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본사 건물은 저쪽에 지을 계획입니다. 설계도를 받으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들어올 때 입구에서 본 별장을 쓰십시오. 열흘 전까지 사람들이 쓰던 곳이라 조금만 손보면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필요한 장비가 많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 신청하십시오. 모두 구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필요한 장비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일은 열흘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을 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네.”

장명석 중령은 정보 실장으로 정보 분석과 작전 지시, 상황실 운영을 맡았고, 이범석 상사는 경호 실장으로 정보 수집과 타격, 요인 경호 등을 맡았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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