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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버린 성과 이름 되찾기!
239.
“상사님 덕분에 잘 처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야 네 덕분에 미국 여행 잘 다녀온 것밖에 없어. 여행 갔다 온 사람에게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니야.”
“가서 잠도 못 주무시고 찾아다닌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었어?”
“옛날 주소 하나 가지고 무작정 가셨습니다. 여럿이 가도 찾기 어려운데, 저 때문에 혼자서 가셨습니다. 안 봐도 그 고생이 얼마나 클지 알 수 있습니다.”
“고마우면 밤에 한우나 구워 먹자. 미국산 쇠고기만 먹었더니 속이 니글거려 죽겠다. 광우병 걸리기 전에 한우로 확 씻어내야겠어.”
“배가 터지도록 구워 드리겠습니다.”
“이왕이면 술도 줘. 비싼 거로. 소독하게.”
“알겠습니다.”
전종명과 윤선숙이 은하가 내민 서류에 서명한 것은 3억 원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나와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들을 바꿔치기한 간호사가 몰래 빼돌린 서류와 증거 때문이었다.
10년 전 연락이 끊긴 간호사를 찾기 위해 이범석 상사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오하이오 주에 클리블랜드 시 외곽에 살고 있던 간호사는 죽은 게 아니었다.
전종범과 윤선숙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픈 척 연기한 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시로 옮긴 것이다.
간호사는 전종명과 윤선숙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운증후군이 걸렸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당한 아이의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챙겼다.
또한, 태어난 시각과 몸무게, 부모 이름이 적힌 서류를 복사해서 빼돌렸고, 아이의 사진까지 찍어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해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받은 3억 원을 들고 미국으로 달아났다.
간신히 간호사의 집을 찾은 이범석 상사는 일주일 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간호사를 설득했다.
이미 26년이 지난 사건이라 처벌할 수 없는 것과 자료를 넘겨주면 3억 원을 주겠다는 당근으로 간신히 간호사를 설득해 죽은 아이의 머리카락과 손발톱, 출생 서류, 사진을 갖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머리카락과 손발톱은 26년이 지났지만, 간호사가 비닐봉지에 여러 겹으로 싼 다음 냉동실에 보관해 손상이 없었다.
26년간 싸여있던 비닐을 벗겨내고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를 하자 전종명과 윤선숙의 아들이란 게 증명됐다.
이틀 전 유전자 검사 결과와 간호사가 복사한 출생기록, 사진을 전종명과 윤선숙에게 보냈다.
그 서류들을 무기로 내가 그들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과 죽은 의사의 실수로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게 했다.
병원 과실로 아이가 바뀌는 일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26년 전에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1992년 경기도 구리의 산부인과에서 간호사의 실수로 아이가 바뀐 일이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다른 사람의 아이가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16년이나 친딸로 키웠다.
딸의 생김새가 부모를 닮지 않아 사람들이 쑤군댔지만, 아이 부모는 혈육이 아닐 거라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딸 혈액형이 부모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출생과정에 강한 의문을 품게 됐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딸이 친딸이 아니란 걸 알게 된 부모는 끈질긴 노력 끝에 간호사의 실수로 아이와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고, 병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판사는 ‘병원 측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로 가족에게 총 7,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우리도 이를 근거로 아버지의 성 박씨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제가라는 이름을 받아낼 계획이었다.
“고생했어.”
“서류에 도장 받아 온 것밖에 없어. 한 것도 없는데 그런 말 들으면 민망해.”
“말이 많은 사람들이잖아. 나 없다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잖아.”
“쓸데없는 거 많이 물어보긴 하더라.”
“뭘 물어봤어?”
“너랑 관계를 물어보더라. 어떤 사이냐고.”
“그래서?”
“친구라고 했어.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더니 애인이냐고 묻더라.”
“뭐라고 했는데?”
“내가 죽도록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런데 네가 받아주지 않아 애태우고 있다는 말도 했고.”
“그런 얘기를 왜 해?”
“배 아프라고.”
“그런 말을 한다고 그들이 왜 배 아파할 것 같아?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야. 관심도 없을 거야.”
“아니. 네 생각과 정반대였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화가 나서 참지를 못했어. 손도 부들부들 떠는 게 한 대 칠 것 같아 겁났어.”
“정말?”
“응. 자기 진짜 자식은 다운증후군에 걸렸고, 죽이기까지 했는데, 너는 변호사인 내가 죽자고 따라다닌다고 했으니 얼마나 약이 오르겠어. 배가 아파서 죽으려고 하더라.”
전종명과 윤선숙은 사람으로 보지 않던 내가 6억 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먹이를 던져주던 애완용 개새끼였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루던 개새끼가 맹수가 되어 돌아왔으니 좋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화딱지가 나서 참기가 힘든데 미모의 변호사가 따라다닌다고 했으니 사촌이 땅 산 것보다 백배는 더 배가 아팠을 것이다.
이해는 했다. 자기 자식은 집에서 빌빌대는데, 옆집 자식은 돈도 많이 벌고, 사회에서 인정까지 받으면 자기 일처럼 좋아하며 손뼉 쳐줄 부모는 없었다.
그러나 이건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성공한 걸 배 아파하기 전에 자신들의 욕망에 눈도 못 뜨고 죽은 자식에게 미안해해야 할 일이었다.
자식을 죽여 놓고 납치해 키운 자식이 잘됐다고 배 아파하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오직 악마만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전종명과 윤선숙은 악마였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자식도 죽이는 악마였다.
“성과 이름 바꾸는데 얼마나 걸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병원이 사라진 게 문제지만, 당시 간호사가 자기 실수로 바뀌었다는 자필 편지도 써줬으니까 법원도 최대한 빨리 처리해줄 거야.”
“한 달이면 돼?”
“개명신청도 1~2개월은 걸려. 못해도 3~4개월은 걸릴 거야.”
“4개월을 더 전형필이라는 이름을 써야 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바뀌는 건 정해진 거야. 지금부터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써도 돼.”
“오빠, 이름 입에 붙으려면 시간 걸리니까 은하 언니 말대로 그렇게 해.”
“저도 찬성이요.”
“알았어.”
전형필이란 이름은 정말 좋은 이름이었다. 이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전종명의 성을 따르는 것과 연놈이 지은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이름을 바꾸겠다는 생각하기 전에는 전형필이라는 이름에 대해 좋다 싫다는 감정이 없었다.
이름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들자 1분 1초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은하를 닦달한 것이었다.
“형필... 미안! 제가야. 이름은 잘 처리됐는데, 골치 아픈 일이 하나 생길 것 같아.”
“골치 아픈 일이라니?”
“XXX당 의원 중에 허태영 의원이라고 있어. 이름 들어봤지?”
“어.”
“그 사람 보좌관 중의 한 명이 며칠 전부터 우리 사무실을 기웃대고 있어.”
“허태영이면 마림 재단 게이트에 연루된 의원이잖아. 맞지?”
“응.”
“검찰 조사로 정신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허태영은 이만철이 아니라 이은택과 이은택 엄마에게 주로 돈을 받았어. 그래서 이만철이 작성한 장부에는 이름이 올라있지 않아. 그리고 이은택과 엄마가 죽어 심증만 있지 증언해줄 증인이 없어 검찰 조사 명단에서도 빠졌어. 무혐의로.”
“그놈 10억 원 넘게 받았는데 무혐의라고?”
“법이 원래 그래.”
“법 한 번 정말 잘 만들었다.”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법은 국회의원이 만드는 건데. 국민이 제대로 뽑지 않은 게 잘못이지 네 잘못 없어.”
“그래도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 잘못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많은 사람이 법에 불만을 느끼고 판사와 검사, 변호사를 욕했다. 그들이 제대로 판결하지 않고, 조사하지 않고, 변론하지 않았다면 욕먹어 마땅하다.
그러나 법에 문제가 있어 불이익을 당했다면 판사와 검사, 변호사를 욕할 게 아니라 법을 만든 국회의원을 욕해야 했다.
정부에서도 시행령을 만들지만, 대부분의 법은 국회의원이 만든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은 국회의원이 불합리한 법을 만든 것이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의원이 자신과 자기 정당, 소수의 권력자, 부자를 위해 일해 그 꼴이 난 것이다.
그러면 누구 잘못인가? 법을 잘못 만든 국회의원 잘못인가? 잘못된 국회의원을 뽑은 지역구 주민 잘못인가? 나는 그 사람을 찍지 않았으니 잘못이 없는 건가? 정치를 등한시한 잘못은 없는 건가?
모든 잘못은 불이익을 당한 그 사람, 국민에게 있었다. 정치에 관심 두지 않아 형편없는 사람이 당선되게 한 국민과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지 않는 국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잘못이었다.
“하연아, 하태영 의원 기록 있는지 확인해 봐.”
“네, 오빠.”
“그런데 왜 네 주변을 얼씬거리는 거야?”
“마림 재단이 공중 분해되기 직전이야. 그 때문에 앙심을 품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걸 거야.”
“마림 재단이 사라지는 것과 놈이 앙심을 품는 게 무슨 상관인데?”
“이은택과 엄마가 죽으며 정치자금 명목으로 받던 많은 돈을 다시는 받을 수 없게 됐잖아. 그게 화가 난 거지.”
“하아... 정말 별 거지 같은 일로 앙심을 다 품네. 그게 잘못된 행동이란 것도 모르는 거야?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은 거야?”
“그러게 말이야. 생각할수록 한심해. 에휴~”
“오빠, 있어요.”
“돌아가면 자료 좀 뽑아줘.”
“네.”
다행히 허태영도 쥬디가 기억을 읽은 놈들 중에 있었다. 쥬디가 기억을 읽은 정치인 35명은 모두 현직 국회의원으로 마림 재단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25명이었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실세가 10명이었다.
“기웃대는 놈이 그놈 한 놈뿐이야?”
“법원에서 우연히 보좌진 얼굴을 봐서 알아본 거야. 우리 사무실을 감시하는 사람이 더 있다고 해도 얼굴을 알지 못해 알 수 없어.”
“집에 돌아가면 이범석 상사님과 논의해 바로 조치 취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
하린이, 하연이, 은하, 나 이렇게 넷이 밥을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전종명과 윤선숙을 만나는 자리에 은하와 둘이서만 오려고 했다.
그러나 하린이와 하연이도 따라오겠다고 강짜를 부려 다른 방에 넣어두고 두 연놈을 만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둘을 만났지만, 밥은 먹어야 해 넷이 오붓하게(?) 밥을 먹었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은하와 기 싸움을 벌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자매라고 느낄 만큼 셋은 바짝 붙어 앉아 밥 먹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칼을 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앞에서 싸우지 않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