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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다.
232.
머리를 잘려야 죽는 트롤도 다진 고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자 재생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
화염으로 태워죽이고 군주 스킬로 포를 떠 죽이자 순식간에 숫자가 200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이 모습을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죽어라 달아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도발을 사용하자 멍청한 트롤들은 언제 겁을 먹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불새. 살기 파동. 검은 회오리.’
쾅쾅쾅쾅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알아서 스킬에 몸을 맡긴 트롤들이 어육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트롤의 피
등급 : 재료 아이템
트롤의 피는 재생력이 매우 뛰어나 생명력 회복 물약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됨
내구도 : 100/100
생명력 : 0
사용 효과 : 가공하지 않고 마시면 아무런 효과가 없음
사용 제한 : 없음
1,100마리를 잡았지만, 이번에도 고급 아이템 1개와 트롤의 피 31개를 얻은 게 전부였다.
그나마 트롤의 피가 개당 은화 30개에 팔려 31개면 금화 9개가 넘어 1,000만 원 넘게 벌었다.
그러나 경매장에서 산 입장권은 가격이 무려 금화 30개로 1,0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도로시, 환인의 자비.”
“네.”
“세라, 피 좀 주고 가.”
“얼마든지요.”
아그작
꿀꺽꿀꺽
“하윽. 기분 좋아.”
- NPC 세라의 피를 마셨습니다. 피의 갈증이 해소됐습니다.
- NPC 세라가 상태 이상 효과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무기력증으로 인해 60분 동안 모든 능력이 50% 감소합니다. 60분간 치유 스킬을 사용해도 생명력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 30분간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30% 증가합니다.
- 30분간 NPC 세라의 공격력 30%를 차용합니다.
도로시와 아라치가 아닌 세라의 피를 마신 건 인스턴트 던전에 데리고 들어온 NPC 중 세라의 공격력이 가장 높아서였다.
세라는 후방 지원형 마법 몬스터로 근접 공격력은 매우 낮았지만, 마법 공격력은 61레벨 보스 몬스터답게 매우 강했다.
그런데도 빌빌대는 건 지원형이라 몽환술과 수면 마법을 빼면 이렇다 할 공격 스킬이 없어서였다.
“큰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해요.”
“이것만 해도 충분해.”
“중첩이라도 되면 좋을 텐데.”
“그러면 완전히 사기지.”
“사기면 어때요. 강하면 그만이지.”
“그 말도 맞긴 하다.”
중첩은 스킬이 더해지는 것으로 리히테나 검술 중 삼연타처럼 연속으로 찌르면 데미지가 늘어나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흡혈은 중첩이 안 됐다. 열 명의 피를 연속해서 빨아도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효과는 30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피를 빤 대상의 공격력 30%를 차용해 레이첼의 피를 마지막에 빨면 십 단위 공격력이 오르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상점에서 스킬을 사 배우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지만, 세라는 바탕이 몬스터로 상점에서 구입한 스킬을 배울 수 없었다.
도우미 아란이가 쥬디의 능력을 앗아가는 게 미안해 NPC로 바꿔준 것으로 상점에서 파는 스킬, 몬스터를 잡고 얻는 스킬도 배울 수 없었다. 오직 레벨을 올려 새로운 스킬을 각성하는 것 이외에는 스킬을 배울 수 없었다.
“모두 고생했어. 먼저 가서 씻고 쉬고 있어.”
“예, 영주님!”
“도로시, 쥬디, 세라, 레이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 미미, 아라치, 아더, 아서 파티에서 추방!”
파티 추방이라는 말과 동시에 도로시와 쥬디, 세라, 레이첼, 아이린, 아만다, 에밀리, 엠마, 미미, 아라치, 아더, 아서가 집무실로 돌아갔다.
80레벨 보스 몬스터를 잡을 자신이 있었지만, 놈이 광역 스킬을 사용하면 NPC가 죽을 수도 있었다.
NPC는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로 유저와 달리 던전에서 죽어도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위험하게 데리고 있지 않고 집무실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위험할 때 추방해도 됐지만,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 전장이라 아까운 부활을 던전에서 낭비할 순 없었다.
“이제 마음 푹 놓고 싸워요.”
“무슨 소리야?”
“NPC들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 제대로 싸울 수가 없잖아요. 오빠는 안 그래요? 저만 그런가요? 오빠가 가장 많이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 면이 없지 않지.”
“그것 봐요. 그러니 이제 마음 푹 놓고 싸워요.”
“그래.”
하연이 말처럼 NPC들을 데리고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오면 신경 써야 할 일이 몇 배는 많아져 머리가 아팠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력을 소비하게 하는 일은 실수로 NPC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NPC를 키워야 영지의 힘이 커지고, 강력한 보스 몬스터도 사냥할 수 있어 이 짓을 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사서 고생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 고생이 1년, 2년 후에는 엄청난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귀찮고,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 했다.
- 8라운드 80레벨 인간형 보스 몬스터 불사의 붉은 트롤 넬투가 나타났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넬투는 신장이 4m로 인간형 몬스터 중 가장 큰 편에 속하는 오우거 발데리온과 덩치는 차이가 컸지만, 신장은 비슷했다.
몸 색깔은 파랗고, 머리카락 색은 붉고, 멧돼지처럼 기다란 엄니가 튀어나온 마른 체형의 트롤(Troll)은 요툰헤임에 살던 거인들이 신과의 전쟁에서 패해 멍청한 괴물이 됐다는 전설을 간직한 몬스터였다.
팔다리가 매우 길고, 곤봉을 능숙하게 다루며, 재생력이 매우 뛰어나 웬만한 상처는 금세 아무는 것이 특징으로 오크, 고블린과 같은 높은 번식력은 없어 개체수는 많지 않았다.
특이하게 넬투를 비롯한 저주받은 붉은 트롤과 타락한 붉은 트롤은 머리색처럼 몸도 피처럼 붉었다.
“하연아,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이놈 공략법 올라온 거 있는지 알아봐.”
“잠시만요.”
탁탁탁탁
“없어요.”
게임 중에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하연이가 재빨리 어둠의 상인 사이트에 접속해 불사의 붉은 트롤 넬투를 검색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넬투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80레벨 보스 몬스터 공략법은 엔간해선 찾을 수가 없었다.
공략한 사냥팀이 거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정보 누출을 걱정해 공략 방법과 영상을 올리지 않는 것도 찾기 어려운 이유였다.
“하린아, 녹화해둬. 다음에 필드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알았어.”
“오빠, 공략법 알아낸 다음에 사이트에 팔아먹어요. 80레벨 보스면 못해도 1억 원은 줄 거예요.”
“우리 모습 나와서 안 돼.”
“얼굴 모자이크 처리하면 되잖아요.”
“무기와 방패가 보이잖아.”
“그것도 검은색으로 칠하면 되죠.”
“스킬은 어떻게 하려고?”
“아! 그게 문제네요.”
1억 원을 벌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지만, 동영상을 팔면 밑천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
조만간 피 튀기는 전쟁이 시작될 텐데, 무기와 스킬, 전투 패턴이 적에게 알려지면 목을 길게 빼고 죽여 달라는 것과 같았다.
힘들이지 않고 돈 벌 수 있는 기회였지만, 더 큰 걸 생각하면 깔끔하게 포기해야 했다.
“어그로 끌면 그때부터 좌우에서 견제해.”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간단하게 작전을 설명한 후 불사의 붉은 트롤 넬투를 향해 달려가며 도발을 사용했다.
- 80레벨 악마형 보스 몬스터 불사의 붉은 트롤 넬투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도발에 걸린 넬투의 방어력이 10% 하락했습니다. 흥분한 넬투가 모모님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연속으로 도발을 사용해 어그로를 왕창 끈 다음 신속하게 우측으로 빠지며 놈을 가장 넓은 중앙으로 유인했다.
중앙으로 넬투를 유인한 후 번개같이 바람 가르기를 사용해 잔상을 남기며 다가가 가슴을 찌르고 지나가자 피가 팍 튀었다.
가슴이 50cm 넘게 찢어지자 놀란 넬투가 등에 메고 있던 기다란 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팍
- 80레벨 보스 몬스터 불사의 붉은 트롤 넬투가 피의 권역을 사용했습니다. 붉은빛이 도달하는 범위에선 넬투의 생명력과 마나 회복력이 500%로 증가합니다. 또한, 넬투를 뺀 모든 생명체는 1초에 생명력 100을 흡수당합니다. 흡수당한 생명력은 넬투가 흡수합니다.
보스가 트롤이라 잡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명력을 흡수하고, 회복력까지 5배나 올려주는 요상한 막대기를 사용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더 큰 문제는 피의 권역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붉은빛이 지팡이를 중심으로 반경 100m나 돼 놈을 공격하려면 피의 권역에 들어가야만 했다.
피의 권역 밖에서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100m 거리에서 쏜 화살과 스킬을 맞을 만큼 넬투는 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재생력과 회복력을 5배나 높여주는 막대기를 고려하면 상처를 입혀도 금세 회복할 게 뻔해 아까운 스태미나만 날리는 짓이었다.
“오빠, 저놈 버티기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
“무슨 몬스터가 버티기를 해요?”
“나도 모르지.”
놈을 끌어내기 위해 피의 권역 밖에서 도발을 사용했다. 도발을 쓰면 밖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토템 지팡이의 영향인지 도발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놈도 싸울 생각이 없는지 기다란 토템 지팡이 앞에 서서 딴청을 피우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좌우에서 화살로 놈을 공격해. 그사이 지팡이를 없앨게.”
“알았어.”
“네, 오빠.”
피융 피융 피융 피융
쒸우웅 쒸우웅 쒸우웅 쒸우웅
하린이와 하연이가 피의 권역 밖에서 충격 화살과 폭발 화살을 연속으로 쏘아대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그리고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와 폭발음도 함께 들려왔다.
펑펑펑
쾅쾅쾅
넬투가 좌우에서 날아든 화살을 양손을 벌려 막자 시선이 내게서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쏠렸다.
넽투가 틈을 보이자 전력을 다해 바람 가르기를 연속으로 사용해 지팡이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퍽
티잉
지팡이와 블레이드가 부딪치자 강한 울림과 함께 블레이드가 튕겨 나왔다. 피의 권역이 발동되며 강력한 결계가 지팡이를 감싸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레전드 아이템인 블레이드가 힘없이 튕겨 나올 순 없었다.
그러나 쉽게 부술 수 있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반경 100m에 달하는 지역에 마법을 발현하는 지팡이를 칼질 한 방에 부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상대를 깔봐도 너무 깔본 것이다.
전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두려움이었지만, 자만심 또한 두려움만큼 경계해야 했다.
자신감은 두려움을 없애는데 도움을 줬지만, 자만심은 목숨을 잃는데 도움을 주는 무서운 병원균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