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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26화 (22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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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226.

“올라가 계십시오. 뼛조각 하나 흘리지 않고 고이 모셔가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린이가 인터넷으로 알아낸 묘지 이장 업체에 들려 상황을 설명하고 모레 아침 일찍 유모의 관을 팔당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돈을 넉넉하게 주자 지관을 구하는 것도 알아서 처리해줬고, 이장도 최대한 신경 써서 하겠다며 머리가 땅에 닿을 듯 굽실댔다.

“김상호 상사와 박무윤 상사 보내서 감시할 테니까 마음 푹 놓고 있어.”

“제가 가야 하는데, 영지 일 때문에..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네 덕분에 우리 다 먹고살고 있어. 그리고 이 일이 남의 일이냐? 우리 식구 일인데 당연히 같이 해야지.”

“고맙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네.”

사장의 설명을 듣고도 유모 시신이 훼손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자 이범석 상사가 김상호 상사와 박무윤 상사를 보내 이장 업체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겠다고 했다.

내가 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영지 일로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었다. 그 사정을 알고 이범석 상사가 먼저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내 일이 아니라, 우리 일, 자기 일이라고 말했다. 나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이장은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끝났다. 이장 업체 사장이 새벽부터 작업을 서둘러 9시도 안 돼 별장에 도착했다.

함께 온 지관이 별장 뒷산 중턱의 양지바른 곳이 가장 좋다며 자리를 정해줬다. 지관 말한 대로 앞이 탁 트여 팔당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자리였다.

이곳이라면 유모도 답답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지관이 정한 자리에 묘를 쓰기로 했다.

자리가 정해지자 이장 업체 직원들이 신속하게 땅을 파고 시신을 안치한 후 봉분을 쌓았다.

전문가들답게 비석을 세우고, 상돌을 놓고, 잔디를 입히는데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하린이가 고생했다고 말하며 약속했던 금액보다 200만 원을 더 주자 사장이 또다시 땅에 머리가 닿을 듯 인사한 후 돌아갔다.

“이제 이곳에서 편히 쉬세요. 제가 잘 모실게요.”

“저희도 매일 찾아뵐게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형필씨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무덤에 술을 붓고 절을 올린 후 감사인사를 드렸다. 하고 싶은 말이 가슴이 가득했지만, 말은 아낄수록 좋았다.

가슴에 담아두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실천하려 노력할 때 아름다운 것이었지, 입 밖으로 뱉어낸 후 지키지 못한다면 말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

“오빠, 이제 내려가. 수정이 기다려.”

“알았어.”

유모의 묘를 이장하는 날 우리도 집을 팔당으로 옮겼다. 우리가 살 2층집은 일주일 전에 이미 가구와 전자 제품 배치가 모두 끝났고, 이범사 상사와 경호팀 직원들이 머물 숙소는 이틀 전에 공사가 끝났다.

경비실과 정문, CCTV 공사도 어제 공사를 마쳐 어젯밤 하린이네 식구에게 사정을 말하고 유모 묘 이장 시간에 맞춰 팔당으로 오게 됐다.

아직 도우미를 구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지만, 음식 잘하는 하린이와 부지런한 하연이, 다현이네가 있어 차차 구해도 됐다.

집을 옮긴 것 외에도 기쁜 소식이 몇 가지 더 있었다. 하나는 어머니 문병을 갔다가 칼에 찔린 수영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 치만 옆에 찔렸어도 저세상으로 갈 뻔했던 수영이는 흉터도 거의 남지 않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암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도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잘 돼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다현와 민지, 수영, 연아를 괴롭혔던 소송도 모두 끝났다. SUN 엔터테인먼트는 이은택과 엮이며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SUN 엔터테인먼트를 편을 든 히어로걸스 멤버 아리와 진아, 선아, 주하 때문에 다현이와 민지, 수영, 연아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잡년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다 이은택이 저지른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며 SUN 엔터테인먼트가 다현과 민지, 수영, 연아를 스폰서로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리고 얼마 후 검찰이 마림 재단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과정에서 의혹이 사실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이은택의 비서와 수행원들의 입을 통해 밝혀진 사실로 이은택이 히어로걸스를 마림 재단 전속 모델로 기용하는 조건으로 멤버 전체를 넘기라고 했고, 손익계산을 따진 SUN 엔터테인먼트 사장과 실장이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이 소식이 매스컴을 타자 SUN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이 바닥을 쳤다. 열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한가를 때리자 반 토막도 넘게 떨어졌다.

또한, 히어로걸스를 버리고 차세대 주자로 선택한 11인조 다국적 여성 아이돌 그룹 핑크 루비까지 XXX 기업 부회장과 성상납에 휘말리며 SUN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와 연기자 전원이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장과 실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이 회사 컴퓨터와 장부, 서류 등을 압수 수색하자 회사 돈 수십억 원을 빼돌린 게 드러났고, 세금도 100억 원 넘게 탈세한 것이 들통나며 주주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어 조만간 공중 분해될 수도 있었다.

궁지에 몰린 SUN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형량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히어로걸스 전속 계약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해지했고,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했다.

이로써 2~3년은 끌 것으로 예상했던 히어로걸스 소송은 4개월 만에 끝나는 행운이 찾아왔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모두 오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네가 노력한 거야. 나는 조금 거든 거고.”

“그렇지 않아요. 오빠 아니었으면 엄마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희도 영원히 몸 파는 년으로 누명을 뒤집어쓴 채 살았을 거고요. 죽을 때까지 오빠 은혜 잊지 않을 거예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갚을 거예요.”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몸이나 어서 완쾌해 연예계 복귀할 준비나 해.”

“저희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요?”

“너희 실력 최고라는 거 모르는 사람 없어. 찾아보면 있을 거야. 미리부터 걱정할 거 없어.”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 바닥이 워낙 지저분해서...”

“안 그런 곳 없어.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아.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알았어요. 열심히 노력할게요.”

성상납이 거짓이란 것과 돈 때문에 탈퇴한 게 아니란 것이 밝혀졌지만, 다현이와 민지, 수영, 연아가 연예계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 바닥도 끼리끼리 해먹는 동네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있을 거라, 그런 일을 문제 삼는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완전히 찍힌 것으로 다현이네처럼 반기를 드는 연예인을 기획사는 데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안 되면 오빠가 하나 차려줄 거야. 언니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연습만 열심히 하면 돼.”

“오빠가 연예기획사를 차린다고?”

“응.”

“오빠, 하연이 말 정말이에요?”

“본전 뽑으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안 그래?”

“고마워요. 오빠. 정말 고마워요.”

“오빠, 사랑해요!”

하연이의 입방정에 다현이를 필두로 민지와 수영, 연아가 덮치듯 달려들어 끌어안고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냈다.

고개를 숙이며 말해도 될 것으로 끌어안고 하는 건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어떻게든 내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안 떨어져? 셋 셀 동안 안 떨어지면 연예 기획사만 날아가는 게 아니야. 이 집에서도 영원히 쫓겨날 줄 알아.”

“미안해. 하린아! 우리가 너무 좋아서 그랬어. 절대 다른 뜻은 없었어. 정말이야.”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어디서 약을 팔아?”

“히히히히. 눈치챘어?”

“죽고 싶냐?”

“잘못했어.”

하린이의 서슬 퍼런 눈빛에 바짝 주눅이 든 다현이와 민지, 수영, 연아가 재빨리 내게서 떨어지며 백기를 흔들었다.

그녀들도 안다. 이 집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린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다음이 동생 하연이라는 것을.

나는 꼴등으로 넘버원인 하린이와 넘버투인 하연이의 심기를 절대 건드려선 안 됐다. 그랬다가는 쫓겨나는 것은 물론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영특한 다현이와 민지, 수영, 연아는 나를 잡으면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내게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하린이와 하연이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아 그럴 틈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가고, 물길을 막아도 연어는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하린아, 아리와 진아, 선아, 주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은하 언니에게 물어봤는데, 위증죄를 받게 될 것 같다고 했어.”

“형량이 얼마나 되는데?”

“잠시만. 여기 있다. 형법 제152조에 따라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나와 있어.”

“5년이나?”

“너무 걱정할 거 없어. SUN 엔터테인먼트 사장과 실장이 협박해서 한 일이라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날 거라고 했어. 그것보다는 대중의 차가운 시선이 아리와 진아, 선아, 주하를 더 힘들게 할 거야.”

“구제해줄 방법은 없을까?”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누굴 구제하겠다는 거야? 너희부터 구제해. 다른 사람 신경 쓸 때 아니야.

“네 말이 맞다. 우리가 지금 다른 사람 걱정할 처지가 아니지. 하아...”

다현이의 말에 하린이가 한 소리 톡 쏘아붙였다. 소송이 시작됐을 때 다현이와 민지, 수영, 연아를 가장 괴롭게 했던 건 차가운 대중의 시선도, SUN 엔터테인먼트와 마림 재단의 지저분한 여론몰이도 아니었다.

수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한 친구이자 멤버인 아리와 진아, 선아, 주하의 배신이었다.

이범석 상사와 은하의 도움을 받아 숙소를 빠져나올 때 숙소에 남은 아리와 진아, 선아, 주하가 자신들과 다른 길을 갈 거란 건 알았다.

그러나 SUN 엔터테인먼트와 이은택이 시키는 대로 거짓 증언까지 할 가라곤 생각도 못 했다.

히어로걸스 멤버 8명은 오랜 시간 함께 고생하며 친자매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었다.

의견이 엇갈려 싸울 때도 있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떠들었다.

그런 친구들이라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아리와 진아, 선아, 주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돈 때문에 다현이와 민지, 수영, 연아가 그룹을 탈퇴했다고 기자회견을 열였다.

그것도 모자라 스폰서 제안도 받은 적이 없었다며 일방적으로 회사 편을 들었다. 그 모습에 다현이네는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언니들도 참 대단하다. 그 꼴을 당하고도 그년들을 걱정하다니 날개 잃은 천사가 여기들 있었네.”

“걔들도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잖아. 협박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잖아.”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그런데 이거 알아요? 언니들 집 나올 때 남는다고 한순간 그때 그년들 언니들 버린 거야. 완전히.”

“하아...”

“그리고 또 한 가지 회사가 어떻게 나올지 그것도 그년들은 알고 있었을 거야. 몰랐다고 하면 바보지. 언니들도 대충은 생각했을 거 아니야? 어떻게 나올지. 내 말이 틀려?”

“아니. 맞아.”

“더 웃기는 건 지금도 반성하고 있지 않을 거란 거지. 열심히 언니들 욕하면서 자기들은 잘못 없다고 말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도 걱정이 돼?”

“걱정한 건 아니고, 처한 상황이 불쌍해서...”

“아직도 그러네. 그런 약한 마음으로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정말 걱정이다.”

“무슨 뜻인지 잘 알았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하연이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에 다현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민지와 수영이, 연아도 하연이의 말에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눈빛을 빛내며 그런 일을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일도,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는 일도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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