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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23화 (2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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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무덤

223. 초라한 무덤

까만 윤기가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의 상급 신관 도로시는 아란이 내 취향에 맞게 만들었는지 눈이 아주 크고,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피가 묻어나올 만큼 붉고 선명했다.

키는 175cm로 큰 편이었고,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는 잘록하며, 다리는 늘씬하게 쭉 뻗었고, 엉덩이는 작으면서도 통통했다.

더군다나 충성심이 100으로 배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갈구하는 성격으로 외로운 밤(?)까지 책임져줄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흠잡을 곳이 한 곳도 없는 완벽한 몸매로 8등신 미녀였다.

“아란이가 오빠 취향에 정확히 맞췄네요. 엉덩이 큰 여자 싫어하는 것도 완벽하게 꿰뚫고 있고요. 마음에 들죠?”

“어.”

“좋아도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언니와 제 기분이 좋겠어요?”

“그런가?”

“알면서 일부러 이러는 것 봐. 정말 못 됐어.”

“흐흐흐흐.”

개인적으로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애플힙이라고 말하는 작고 통통한 엉덩이를 좋아했다.

집착이라고 할 만큼 좋아하는 편으로 예쁜 엉덩이만 보면 만지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하린이와 하연이의 엉덩이를 시도 때도 없이 더듬는 건 그 때문이었다. 둘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예쁜 엉덩이를 갖고 있어 참으려고 해도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르는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거나 탐내진 않았다. 나는 내 것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내 것만 탐했다.

도로시가 내 것이란 생각이 들자 하얀 신관복에 숨어 있는 엉덩이를 만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마음만 그럴 뿐 몸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NPC를 건드려도 된다고 했지만, 앞에서 노골적으로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기분 상하지 않게 은밀하게 하라는 것으로 도로시의 하얀 신관복을 들추고 엉덩이를 만졌다가는 아구창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영주님!”

“네.”

“저는 어디서 지내야 하죠?”

“신전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싫어요. 혼자 있는 거 너무 무서워요. 영주님 옆에 있게 해주세요. 제발요오~”

“그.그건...”

“그래 주실 거죠? 환인님이 말씀하셨어요. 모모님은 착하고 다정다감한 분이라고. 그리고 애교 많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요. 많이 사랑해 주실거죵! 호호호호홍~”

“컥!”

“누군 좋겠어. 충성도 100짜리 애첩이 생겨서.”

“언니, 그뿐만 아니야. 인류 최초로 신관을 애첩으로 뒀잖아. 그것도 무려 상급 신관을.”

“하아...”

‘신관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애첩을 보냈네. 하린이와 하연이에게 엿 먹으라는 거야 뭐야? 아란! 다음에 만나기만 해봐. 작은 날개를 확 뽑아 다시는 날 수 없게 해줄 테니까. 아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상사님! 여기 오빠 어머니 무덤 맞아요?”

“맞아.”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냥 황량한 숲이잖아요.”

“상사님! 뼛가루를 함에 담아 한 곳에 묻어놓지도 않나요?”

“무연고자나 다름없어 화장 후 이곳에 뿌렸어.”

“무연고자 아니잖아요?”

“친척도 없고, 연락되는 곳도 없었어. 그러니 무연고자로 처리할 수밖에.”

“그래도 유골함에 넣어 땅에 묻어줄 순 있잖아요?”

“잠시 묻어두기도 하는데, 1년 후에는 파내서 다 뿌려. 묻어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형필이 어머니도 그렇게 뿌렸을 거야.”

“가족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정말 너무 하네요. 흐윽...”

“너무 잔인해요. 죽은 것도 억울한데, 무덤조차 없는 거 너무 잔인해요. 흑흑흑.”

“그러게 말이다. 휴우~”

“하아...”

이범석 상사가 열흘 동안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닌 덕분에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화장터 뒤 황량한 산이었다. 어머니는 가족이나 주소, 신분, 직업 등을 알 수 없는 무연고자는 아니었지만, 고아로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 거둬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어디 보육원 출신인지 큰 병원으로 옮기기 전 수술 동의서에 써 놨다면 보육원에서 어머니 유골함을 모셔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조차 할 정신이 없어 무덤도 남기지 못하고 한 줌 흙이 되어 사라졌다.

“하린아. 여기 땅 살 수 있는지 알아봐. 땅 사게 되면 공원을 조성해.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편안한 공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게.”

“아니야.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면 돼. 너무 번잡하면 어머니가 싫어하실 거야.”

“알았어.”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곳은 예전에는 화장터였지만, 지금은 쓰러져가는 건물만 남은 을씨년스러운 황무지였다.

공원을 만들려는 것은 어머니의 혼백이 이곳을 떠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새로 묘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뼛가루조차 남아있지 않아 묘를 만들어도 그곳으로 어머님이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공원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어머니 이름을 딴 공원을 만들어 혼백이라도 위로하고 싶어서.

“상사님, 보육원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남양주야. 팔당 집에서 멀지 않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보러 갈 수 있다니 다행이군요.”

이범석 상사가 어머니를 찾는 동안 하린이와 하연이 몰래 가족이 없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봤다.

화장 후 뼛가루를 잠시 보관했다가 어머니처럼 뿌려버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보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충격에 대비했지만,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무덤도 없는 황량한 산을 보자 망치로 가슴을 얻어맞은 것처럼 답답했다.

그리고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내리누르는 기분이 들며 심장이 돌에 눌려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고,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했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양팔에 매달려 엉엉 울어대는 하린이와 하연이는 바닥에 쓰러져 탈진하도록 울 것이다.

무덤도 없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쌍했지만, 내게는 하린이와 하연이가 더 소중했다.

쥬디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 크게 가슴에 와 닿진 않았다.

드라마에서 부모를 찾으면 주인공이 감정이 복받쳐 엉엉 울었다. 그러나 현실은 약간의 울림... 나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다.

품에 한 번 안겨보지도 못한 채 26년을 모르고 살았다. 애정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관계만으로 생기는 건 아니다.

같이 밥 먹고, 울고, 웃고, 추억을 쌓으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겐 부모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생겼을 때 주위에 돌봐 줄 핏줄 하나 없는 천애 고아였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뻐했을 모습과 아버지의 죽음에 좌절했을 어머니의 모습, 병원에 나를 낳으러 왔을 때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남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화장장이 있던 터를 사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피로 이어진 천륜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상상으로 만든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하연아, 차 트렁크에 가면 유골함 있어. 그만 울고 그것 좀 가져다줘.”

“흑흑흑. 네.”

“유골함은 언제 샀어?”

“사흘 전에.”

“왜 말 안 했어?”

“그냥.”

하연이가 가져온 하얀 도자기로 된 유골함에 흙을 담았다. 26년이란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뼛가루는 이곳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 무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누가 아는가? 내가 움켜쥔 한 줌의 흙 속에 어미니 뼛가루가 들어 있을지? 그런 마음으로 주변을 돌며 흙을 조금씩 긁어모아 유골함에 담았다.

“오빠, 내가 안고 갈게.”

“그래.”

흙이 가득 찬 유골함을 하린이에게 넘겨줬다. 군대 있을 때 사고로 동기 한 명이 죽었다.

그 녀석도 나처럼 가족이 없어 먹고 살기 위해 특전사에 지원했다. 그러다 훈련 중 폭우에 유실된 지뢰를 밟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녀석의 유골함을 들어줄 가족도, 친구도 없어 동기인 내가 유골함을 가슴에 품고 국립묘지까지 갔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이었다. 녀석의 유골함을 가슴에 품고 국립묘지에 도착하자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화장하고 남은 녀석의 뼈를 부수고 긁어모아 담은 유골함은 활활 타오르는 난로만큼이나 뜨거웠다.

온기라곤 전혀 없는 차가운 어머니의 유골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차가운 유골함을 하린이가 자신의 온기로 품으려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하린이에게 순순히 넘겨줬다.

화장장이 있던 경기도 고양시에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남양주의 하늘빛 보육원은 지은 지 20년이 넘는 낡은 건물로 원생 수가 50명이 안 되는 작은 보육원이었다.

그러나 생긴 지 50년이 넘는 유서 깊은 보육원으로 50살이 넘은 원장 할머니와 보육교사 3명, 자원봉사자 수십 명의 힘으로 운영하는 사립 보육원이었다.

이범석 상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재정이 넉넉하진 않지만, 원장 할머니가 아이들을 자식처럼 키워 하늘빛 보육원을 거쳐 간 아이들은 범죄에 빠지는 일이 다른 보육원의 10분의 1도 안 됐다.

“이 무덤이에요.”

“감사합니다.”

“장성한 아들이 찾아와 준 게 더 고마운 일이에요.”

“일찍 못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찾아온 것만 해도 정말 고마워요.”

하늘빛 보육원 건물 뒤 작은 땅에 아버지가 묻혀계셨다. 가로세로 1m도 안 되는 작은 돌에 아버지 이름 박창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원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네.”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돌은 내가 예쁘게 꾸며서 올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

“감사합니다.”

하린이가 몸에 품어 따뜻해진 어머니 김아름의 유골함을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옆에 묻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러나 두 분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게 뛰어놀던 이곳 하늘빛 보육원에 같이 잠들어 있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초라하지만, 이곳에 묻어드리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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