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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19화 (2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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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보다 큰 보상

219. 손실보다 큰 보상

하린이와 하연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겠다며 이범석 상사와 함께 병원이 있던 곳으로 갔다.

큰소리를 뻥뻥 치고 나갔지만, 돌아가신 날짜와 병원 이름, 위치밖에 몰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주민 센터에서 사망증명서를 확인해 어디 묻혀 있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에 관한 기록을 찾으면 아버지가 누군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전종명과 윤석숙은 아이를 바꿔치기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어머니의 이름조차 알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이용하면서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은 것으로 이기주의 끝이 어디 인지 보여주는 쓰레기들이었다.

놈들의 무관심과 15년 전 병원이 폐업하며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 병원이 있던 곳에 간다고 해도 소득이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하린이와 하연이가 병원에 가는 걸 말리지 않았다.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기에 나에 대한 자매의 사랑은 너무나 깊었다.

도움이 안 돼도 무언가 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범석 상사에게 자매를 부탁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하나 있었다. 이범석 상사가 사람 찾는 일은 도가 튼 전문가라 인맥을 총동원하면 어머니를 찾게 될 것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괜찮다. 1년이 걸리든, 5년이 걸리든 찾기만 하면 된다.

마음이 조급하다면 1분 1초가 억겁처럼 느껴지겠지만, 답답함은 있어도 조바심은 없었다.

26년간 버림받고 살았다. 이제 와서 부모의 정에 굶주린 아이처럼 날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찾아도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시간이 걸려도 찾기만 하면 된다. 찾아 부모님 무덤에 술 한 잔 부으면 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모모님.”

“어 너는 도우미 아란?”

“기억하고 계셨네요. 몰라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어떻게 너를 잊겠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1등 공신인데.”

“영지와 일곱 가지 혜택은 제가 드린 게 아니에요. 환인님이 주신 거예요. 저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아요. 저에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환인님을 볼 수 없으니 너에게 대신 감사해야지. 안 그래?”

“그 말도 맞네요. 호호호호.”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요.”

“잘 지냈다니 다행이다.”

“모모님도 좋아 보여서 정말 다행이에요.”

게임에 접속하자 도우미 요정 아란이 집무실에 나타난 반갑게 인사했다. 도우미 요정 아란은 3주년 기념 이벤트로 영주에 당첨됐을 때 나를 찾아온 도우미 요정이었다.

The Age of Hero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일주일 동안 곁에 머물며 영지를 관리하는 법과 소소한 팁을 알려준 고마운 요정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다시는 못 본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을 논의하기 위해 찾아왔어요.”

“중요한 일? 다른 유저에게 가야 할 영지를 나에게 잘못 전달한 거야?”

“그런 건 아니에요.”

“깜짝 놀랐네.”

“썰렁하기는...”

“그럼 무슨 일로 온 건데?”

“NPC 쥬디 일로 왔어요.”

“흐음...”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네요?”

“쥬디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안다면 누구나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너무 덤덤하게 말씀하시네요. 더 미안하게.”

“네가 왜 미안해? 지나치게 쥬디를 이용한 내 잘못이지.”

쥬디 일로 왔다는 아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쥬디를 없애거나, 능력을 삭제할 줄 알았는데, 나랑 안면이 있는 아란을 보내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동안 쥬디를 이용해 많은 일을 했다. 게임 안에서만 사용해야 할 쥬디의 혜안을 게임 밖에까지 사용했다.

환인도 못 본 척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내가 만든 것이다. 모두 내 탓으로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환인님도 고심 끝에 어쩔 수 없이 이런 결정을 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충분히 이해해.”

“고마워요. 이해해주셔서.”

“쥬디를 어떻게 할 거야? 죽이는 건 아니지?”

“그런 일은 없어요.”

“그럼?”

“혜안 능력을 줄이는 쪽으로 결론이 났어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지 않고 결정 사항을 통보했다. The Age of Hero는 환인이 만든 세상으로 유저에게 물어볼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쥬디의 혜안은 버그가 아니었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일 뿐이었다.

그걸 과도하게... 원칙에 어긋나게... 이용했지만, 버그를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버그를 이용한 것이 아닌 만큼 쥬디에겐 잘못이 없었다.

“얼마나 줄일 건데?”

“최대 10일까지만 엿보는 것으로 조정할 거예요.”

“쥬디 잘못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알아요.”

“평생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열흘로 줄이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알아요.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선물?”

“원하는 것을 말해보세요. 들어드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모두 들어드릴게요.”

“쥬디의 능력을 선물 따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선물을 정하지 않고 모모님께서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려는 거예요.”

환인이 쥬디의 혜안을 현실에 사용한 것을 문제 삼아 쥬디를 없애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상을 넘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고 했다. 특혜를 넘어 특권이라고 해도 될 만큼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렇다고 주는 대로 넙죽 받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상대가 내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려 한다면 나도 그에 어울리는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 그것이 협상이자, 거래였다.

“범위라는 게 정확히 어디까지인데?”

“에픽 이상의 아이템을 달라거나, 땅을 달라거나, 돈을 달라거나, 신에 필적할 능력과 스킬을 달라는 건 안 돼요. 왜 안 되는지 모모님도 그 정도는 아시죠?”

“몰라.”

“밸런스가 붕괴되기 때문이에요. 밸런스가 깨지면 언젠가는 모모님도 그 여파를 받게 될 거예요. 균형을 지켜야 해요. 그래야 The Age of Hero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아란이 말이 맞았다. 한 유저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면 게임이 망한다.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절망의 나라처럼 유저들은 희망을 잃고 게임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먼치킨(Munchkin)이 된 유저도 결국 손해를 보게 된다. 지나친 경쟁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적당한 경쟁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혼자 모든 걸 갖기 원한다면 PC에서 혼자 즐기는 롤플레잉게임(Role Playing Game)을 하면 된다.

치트키를 마구 써대며 게임을 진행하면 순식간에 세계를 정복하고, 드래곤과 7대 악마, 대천사도 죽이고 신이 될 수 있었다.

“언제까지 말해야 하는 거야?”

“지금요.”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많은 걸 해드리고 싶지만, 저에게 주어진 권한은 이게 전부예요. 이해해주세요.”

아란이 환인이고, 환인이 아란이었다. 더 넓게 보면 모든 NPC와 몬스터가 환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나와 말하는 상대는 아란이 아니라 환인이다. 좋게 말할 때 수용해야지 계속 튕기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쥬디의 능력만 줄어들 수도 있었다.

튕기는 것도 정도가 있다. 그게 협상의 묘였다. 상대가 협상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선물은 총 몇 가지야?”

“혜안 능력 스킬이 워낙 독보적인 능력이니까 네 개까지 들어드릴게요. 대신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한 번에 요구하면 숫자는 줄어들 수 있어요. 명심하세요.”

“으음... 첫 번째로 부활 능력을 줘.”

“NPC요? 아니면 유저요?”

“둘 다.”

“그건 안 돼요. 하나만 고르세요.”

“그럼 NPC를 골라야겠지. 유저는 죽지 않는 존재니까.”

유저가 죽으면 엄청난 페널티를 안게 되지만, 영원히 죽는 건 아니라서 게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NPC는 자체 부활 능력이 없어... 100레벨 보스 몬스터 중에는 죽어도 한 번은 부활하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있음... 죽으면 다시는 살릴 수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두 번은 못 살려요. 딱 한 번이에요.”

“죽고 시간이 얼마나 경과한 NPC까지 살릴 수 있어?”

“그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주 좋은 질문을 해주셨네요. 하마터면 1,000년 전에 죽은 NPC도 살릴 수 있게 해드릴 뻔했네요.”

“헉!”

“30일로 하죠. 그 정도면 괜찮죠?”

“좋은 걸 알려줬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을 줘야지.”

“뭐요?”

“내가 살려낸 NPC는 영원히 내게 충성하게 해줘.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게.”

“그건 안 돼요. 그러면 모모님이 황제를 죽인 다음 살리면 아틸라 제국이 모모님 손에 넘어가잖아요. 아주 엉큼하시네요.”

“그건 또 눈치챈 거야? 아깝다. 몰래 넘어갈 수 있었는데.”

“저 바보 아니거든요.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아요.”

“그럼 80으로 하자.”

“50으로 하죠. 그것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충성도... 호감도와는 조금 달라도 상대를 좋아하고 따르는 마음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음... 50은 상대에게 깊은 호감을 나타내는 수준으로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상대는 10 정도라고 봐야 해 50이면 절대 낮은 수치가 아니었다.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최소 80은 넘어야 하지만, 50이면 바닥은 깔고 가는 것으로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세라는 NPC야? 몬스터야?”

“원래는 몬스터지만, 모모님이 끔찍이 아끼니까 NPC로 해드릴게요.”

“병든 NPC를 살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살리자마자 죽는 거야?”

“나이가 많아 자연사(自然死)한 NPC는 5년, 질병으로 죽은 NPC는 나이가 40살 이전이면 20년, 50살이면 15년, 60살 이상이면 10년을 더 사는 것으로 해드릴게요.”

“칼이나 마법에 맞아 죽은 NPC는?”

“그들도 마찬가지예요.”

“20살에 죽은 NPC에게 고작 20년을 더 살라고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못해도  70살은 살 텐데, 50년은 줘야지.”

“농노 평균 수명이 언제부터 70이었죠? 제가 알기엔 50이 안 되는 거로 아는데.”

“내 영지는 그렇게 할 거야. 반드시. 기필코.”

“에휴~ 알았어요. 외인사(外因死) 또는 변사(變死)로 죽은 NPC는 70살을 수명으로 보고, 죽은 나이만큼 뺀 후 살 수 있게 해드릴게요. 됐죠?”

“고마워.”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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