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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진 진실
218.
“쥬디야,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는 어떻게 됐어?”
“죽었어요.”
“언제?”
“큰오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0분도 안 돼서요.”
“왜?”
“의사가 죽였으니까요.”
“흡!”
하린이가 다운증후군에 걸려 고통받고 있을 전종명과 윤선숙의 아이에 관해 물어본 건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전종명과 윤선숙에게 버려져 국가시설에서 불쌍하게 살고 있을 진짜 전형필을 찾아 부모의 품에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놈들이 한 짓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쥬디의 혜안으로 놈들이 저지른 만행을 알아냈다고 말하면 믿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에 걸린 진짜 전형필이 연놈의 자식이란 걸 밝히는 건 증거가 확실해 발뺌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전종명과 윤선숙은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를 없애기 위해 자식을 버린데 이어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능지처참(陵遲處斬)과 오마분시(五馬分屍)로도 연놈의 죄가 사라지지 않았다. 허리를 작두로 자르는 요참에 가마솥에 넣고 삶아 죽이는 팽자, 기름에 튀겨 죽이는 유탕, 산채로 땅에 묻어 죽이는 활매까지 모두 해도 모자랐다.
“큰오빠 어머니가 마지막 힘을 짜내 큰오빠를 세상 밖으로 밀어낸 후 숨을 거두자 의사는 전종명과 윤선숙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다운증후군 아이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요.”
“그래서 전종명과 윤선숙이 아이를 죽이라고 한 거야?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지?”
“언니, 전종명과 윤선숙은 사람이 아니야. 자식을 버리는 것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했어. 그들은 악마야. 이 세상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악마라고!”
하연이 말이 맞았다. 전종명과 윤선숙은 악마였다. 자식을 버린 것만 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데, 죽이기까지 했다.
천륜을 두 번이나 어긴 것으로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져 억만 겁이 지나도록 고통받아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다.
“병원은 아직도 그대로 있어?”
“15년 전에 폐업했어요.”
“나를 바꿔치기한 의사는 어디서 근무하는지 알아?”
“20년 전에 알코올중독으로 죽었어요.”
“죽인 거야? 죽은 거야?”
“양심은 있었는지 그 일이 있고 난 뒤 매일 술에 빠져 살았어요. 그러다 산모와 아이를 죽이는 실수를 했어요. 의사 면허가 취소되고, 소송에 져서 가진 재산까지 모두 잃고 이혼까지 당했어요. 결국, 부랑자로 전락해 거리를 떠돌다가 술에 취해 얼어 죽었어요. 인과응보죠.”
“나쁜 새끼. 아주 잘됐네.”
“간호사는 어디 있어?”
“입을 막기 위해 거금을 준 후 해외로 내보냈어요. 미국 오하이오 주에 클리블랜드 시 외곽에 살고 있는데, 10년 전부터 건강이 매우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연락이 끊겼어요. 죽었을 가능성이 커요.”
“아이고 꼬시다. 남에 가슴에 못질하고도 잘 살 줄 알았겠지? 천만의 말씀이야. 정의는 아직 살아 있어.”
“하아...”
“오빠, 어머니 돌아가신 날짜를 아니까 어디 계신지 찾을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찾을게.”
“저도요.”
“그래. 너희가 알아봐 줘. 난 들어가서 좀 쉴게.”
“같이 있어 줄게.”
“오빠, 저희랑 같이 있어요.”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 이해해줘.”
“그래도 우리가 옆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요 오빠. 이럴 땐 혼자 있는 것보다 같이 있는 게 마음의 위로가 돼요.”
“오래 있지 않을게. 잠시만 혼자 있게 해줘.”
“알았어. 대신 정말 오래 있으면 안 돼.”
“오빠, 빨리 내려오세요. 알았죠?”
“어. 쥬디야! 고생 많았어. 정말 고마워. 오늘 일 절대 잊지 않을게.”
“아니에요. 많은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해요.”
“그렇지 않아. 넌 최선을 다했어. 진심으로 고마워.”
“네.”
하린이와 하연이의 호의를 거절한 채 게임을 빠져나와 3층 침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이처럼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픈 일이 있어도 26살이나 먹은 남자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건 창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놀려도 오늘만은 그러고 있고 싶었다.
이범석 상사가 부모님을 찾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를 썼다.
돌아가신 것부터 아름답게 살고 있는 모습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덧붙이고, 지웠다.
그러면서 마음을 단련했다.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보게 돼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를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그렇게 단련이 되자 쥬디의 입을 통해 전종명과 윤선숙의 만행을 샅샅이 듣고도 화가 나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슴을 억누르는 답답함은 벗어던질 수 없었다. 목구멍까지 무언가가 꽉 들어찬 답답한 느낌.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답답함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전종명과 윤선숙이 내 원수인가?’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해 하나씩 문제를 되짚어갔다. 첫 번째 질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전종명과 윤선숙이 내 원수냐는 것이었다.
전종명과 윤선숙이 나와 다운증후군에 걸린 자신의 아이를 바꿔치기했지만, 어머니를 죽게 한 것은 아니었다.
바꿔치지 않았어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전종명과 윤선숙의 만행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난산 끝에 돌아가신 것이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는 전종명과 윤선숙이 아니었다. 내가 배 속에 있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원수는 전종명과 윤선숙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오히려 고아로 어렵게 자랐을 나를 돌봐준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러면 은인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은인이라고 할 순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병에 걸린 아들을 바꿔치기한 것이지 나를 위해 그런 짓을 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한 번도 애정을 준 적이 없어 키운 게 아니라 사육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헤어지며 준 낡은 아파트 한 채와 쥐꼬리만 한 생활비는 나를 위해 준 게 아니었다.
그들을 위해 준 것이었다. 전종명과 윤선숙은 대외적으로 나를 많이 이용했다. 화목한 가정은 인기 스타를 포장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무기였다.
초일류 강대국 미국을 보라. 대통령 선거에 어김없이 가족이 등장한다. 끌어안고, 뽀뽀하고, 키스하고, 딸이 자기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이해심 많고, 믿을 수 있고, 존경스러운 분이라는 말을 하는 등 온갖 너스레를 떨어댔다. 진실한 부분도 있겠지만, 보여주기 위한 부분도 많았다.
이런 모습은 정치인, 연예인 할 거 없이 대중에게 노출된 사람은 어김없이 하는 짓으로 가장 기초적인 퍼포먼스였다.
대중은 지도자가, 스타가 바른 사람이길 원했다. 그래서 가족을 동원하는 것이다. 가장 만만하고 잘 먹히니까.
전종명과 윤선숙도 그 짓을 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아주 친근한 척 행동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애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나는 저들의 필요에 의해 키워진 애완동물로 이런 행동은 절대 은혜라고 할 수 없다.
영국의 사상가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이렇게 말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 만족한 멍청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따뜻한 집, 비싼 옷, 풍족한 음식보다 아이에게 더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는 풍요로운 물질은 아이를 망치는 것이었다. 그건 은혜가 아니라 죄악이었다.
‘당한 만큼 되돌려줘야 하는 건가? 그런데 내가 당한 게 뭐지? 사랑을 안 준 것 그게 전부 아닌가?’
세 번째는 내가 과연 그들을 벌할 이유가 있는지였다. 아이를 바꿔치기한 것은 맞지만, 어머니를 죽인 건 아니었다.
나를 사육하고 이용한 건 맞지만,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았고, 굶기지도 괴롭히지도 않았다.
내 몸에 멍이 들었거나, 욕한 게 알려지면 화목한 가정 이미지가 깨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지만, 학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자기 자식도 아닌데 애정을 줄 이유도 없었다. 원해서 한 입양이라면 그래선 안 되겠지만, 원해서 한 입양이 아니라서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버려진 것도 다를 게 없었다. 자기 자식도 아닌 나를 17년이나 키워주고, 집까지 주고 버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그때까지 데리고 있고, 낡은 아파트 한 채도 준 것이지만... 버린 걸 절대 말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붙이고 집을 준 것이지... 그 덕분에 죽지 않고 지금껏 살 수 있었다.
전종명과 윤선숙의 죄를 억지로 따진다면 왜 하필 나를 데려다가 그런 짓을 했느냐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유모를 붙여주고 좋은 옷에 좋은 음식, 좋은 집에서 살게 해준 걸 생각하면 갚아야 할 빚이었다.
‘내가 그들을 벌할 수 있을까?’
자식이 다운증후군에 걸렸다는 이유로 남의 자식과 바꿔치기한 전종명과 윤선숙을 벌할 수 없었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진짜 전형필을 죽인 일도 따질 수 없었다. 나는 경찰이 아니다. 검찰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의 사회 구현을 울부짖는 사회 운동가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들을 벌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으로 그들을 벌한단 말인가? 아무런 증거도 남아있지 않은데 어떻게 벌을 준단 말인가?
내가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나라 법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였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그들과 내가 부모 자식이 아니란 게 밝혀져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반대로 그들만 유리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전종명과 윤선숙은 자식이 바뀐 걸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때 알게 됐다고 입을 맞출 것이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것도 모르고 10년 넘게 키우다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할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부부 싸움이 일어났고, 오랜 고민 끝에 이혼하게 됐다고 울먹이며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상처받을까 봐 끝까지 자식이 아니란 걸 숨겼다고 말할 것이다. 낡았지만 아파트도 한 채 주고, 생활비도 줬다는 말과 함께 눈물까지 펑펑 쏟을 게 확실했다.
낳은 정만 있는 게 아니라 기른 정도 있다면서. 그 말에 개·돼지인 대중은 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전종명과 윤선숙를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가 될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전형필이라는 성과 이름을 버리고 친아버지의 성과 원래 내 이름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만 자자. 머리 아플 때는 자는 게 최고야.’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고민이 많으면 잠도 오지 않는다. 2시간 넘게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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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