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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17화 (21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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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진 진실

217. 밝혀진 진실

전종명과 달리 남녀 비율이 반반인 강의실에 들어선 하연과 쥬디는 윤선숙이 들어올 때까지 한마디로 나누지 않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전종명처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윤선숙이 강의실에 모습을 나타내자 학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했다.

많은 사람이 대중매체의 장난질에 속고 산다. 진실이 아닌 가공된 인물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방송되면 많은 대중이 그 모습을 진실로 믿고 허상에 속아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정의로운 배역을 진짜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으로 한숨이 절로 나오는 행동이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시사프로 등에서 나온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 정치인, 방송인 등 모든 사람의 모습은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90% 이상 가공된 것으로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싶다면 그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과 그보다 못한 사람에게 하는 행동을 봐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신봉해선 안 된다.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대중매체는 특정인에 대한 우상화뿐만 아니라 여론을 특정 계층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방송에서 떠드는 얘기를 그대로 믿고 따랐다.

TV를 바보상자라고 말하는 건 바로 이 때문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걸러낼 힘이 없다면 우리는 윤선숙을 연호하는 학생들처럼 골빈 멍청이로 살아야 한다.

「언니 말이 맞네요. 현실 세상은 The Age of Hero와 아주 많이 다른데,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다를 게 없네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방송과 인터넷에 떠드는 모습을 그대로 믿고 열광하는 저들의 모습, 그게 지금 내가 사는 현실이야. 」

「암담하네요.」

「저 꼴 더는 못 보겠다. 빨리 끝내고 가자.」

「저도 그래요.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시작해요.」

윤선숙이 환호하는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뛰어난 화술과 유모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강의를 시작하자 하연이가 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질문했다.

전종명에게 썼던 방법을 글자 몇 개만 바꿔 재탕한 것으로 이번에도 아주 손쉽게 윤선숙의 기억을 털 수 있었다.

켕기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큰 목소리로 놀랄만한 얘기를 떠들면 화들짝 놀라 쳐다봤다.

윤선숙도 켕기는 많은 여자라 하연이의 허무맹랑한 말에 시선을 집중했고, 쥬디의 사과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음이 뜨거운 커피에 녹는 프림처럼 한순간에 풀어져 혜안에 걸렸다.

- NPC 쥬디가 혜안으로 윤선숙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 NPC 쥬디가 혜안으로 윤선숙님의 기억을 훔쳤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큰오빠,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 듣고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절대 흥분해서도 안 돼요. 약속할 수 있죠?”

“알았어.”

“하린이 언니, 하연이 언니, 언니들도 절대 화내고 소리치면 안 돼요. 그러면 오빠가 더 힘들어져요. 무슨 뜻인지 알죠?”

“응.”

“쥬디야, 오빠가 흥분해서 사고 칠만큼 무서운 얘기야?”

“네.”

“그런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으라고? 나는 그렇게 못해. 안 그래도 두 연놈 얼굴 보면서 화가 끓어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는데, 또 참으라고? 죽어도 못해. 내가 가서 그 연놈들을 지근지근 밟아 죽일 거야.”

“참지 못할 것 같으면 밖에 나가 있으세요. 그게 큰오빠를 돕는 일이에요.”

“야! 내가 남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야 할 얘기잖아. 그런데 나보러 나가 있으라고?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하연아, 쥬디가 하는 말 따를 거면 조용히 앉아서 듣고, 싫으면 나가. 오빠 불편하게 하지 말고.”

“아! 죄송해요. 오빠.”

“괜찮아.”

하연이가 흥분해 화를 내는 이유를 알았다. 내가 분노해 사고 칠 것을 대비해 미리 선수를 치는 것으로 옆에서 대신 화내주면 당사자는 타이밍을 놓쳐 크게 화낼 수가 없었다.

하린이도 그런 하연이의 마음을 몰라 제지한 것이 아니었다. 한 명이 화내고 난리 치면 한 명을 말려야 한다.

어르고 달래는 짓으로 이렇게 하지 않고 둘 다 화를 내면 당사자도 덩달아 흥분해 화를 안 낼 수가 없었다.

하린이의 제지에 하연이가 풀이 죽은 것처럼 연기하며 왼팔에 가슴에 비비며 바짝 달라붙었다.

뭉클한 가슴이 팔을 자극하고, 달콤한 육향이 코를 간지럽혔지만, 작은 욕망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내게 유일한 관심은 쥬디가 할 얘기였다. 하린이와 하연이의 배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돌아와 대학교수가 된 전종명과 윤선숙은 이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둘 다 욕심이 많아 마음속으로는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었지만, 아직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가졌어요. 그 아이의 이름이 전형필이에요.”

“유전자 검사 결과 오빠는 전종명과 윤선숙의 아들이 아니라고 밝혀졌어. 너도 들었잖아?”

“맞아요. 전형필이라 이름 지은 아이는 오빠가 아니에요. 전형필은 진짜 전종명과 윤선숙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어요.”

“무슨 문제?”

“아이가 다운증후군이었어요.”

“헉!”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은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정상인은 염색체가 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 3개였다.

선천적인 기형이라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지적 장애와 함께 눈에 띄는 신체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머리는 정상아보다 작고, 콧날과 얼굴도 납작했다. 눈 가장자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고, 눈 안쪽 가장자리는 접혀 있으며, 미간은 매우 넓었다. 귀는 작고, 혀는 커 입 밖으로 살짝 나와 있었고, 목이 짧고, 손과 발도 작고 짧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선천성 심장질환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호흡기 질환과 소화기 이상, 백혈병의 발병률도 아주 높아 일찍 죽는 일이 잦았다.

“돈이 많아 큰 병원 다니며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을 텐데. 그러면 낳기 전에 의사가 다운증후군이란 걸 알았을 거 아니야?”

“산부인과에서 초음파와 양수검사를 통해 아이가 기형인지 아닌지 확인했어요. 그러나 검사만으로는 아이가 기형인지 아닌지 100% 확신할 수 없어요.”

“그 얘기 나도 들었어. 의사가 몇백 분의 1, 몇천 분의 1 확률로 아이가 기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는 소리.”

몇백 분의 1, 몇천 분의 1이면 감기 걸리거나, 모기에 물려서 죽을 확률보다 훨씬 낮은 확률이었다.

그러나 치사율이 0.1%도 안 되는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고려하면 정말 형편없는 진단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죠. 아이가 다운증후군인지 알았다면 낳지 않았을 테고, 큰오빠가 전종명과 윤선숙의 손에 크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오진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저급한 과학의 한계라고 하는 게 맞겠죠.”

“하아...”

쥬디의 말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의사의 과실이라고 까진 말할 수 없지만, 오진인 것만은 분명했다.

오진으로 인해 내가 전종명과 윤선숙의 아들이 된 것이다. 하늘이 원망스럽고, 땅이 원망스럽고, 병신 같은 의사 새끼를 잡아다 토막을 치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란 걸 알게 된 전종명과 윤선숙은 담당 의사를 찾아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어요. 의사도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어 전종명과 윤선숙의 협박에 크게 당황했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다른 산모 아이와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하는 거였어요.”

“그게 가능해? 부모가 다 지켜보고 있는데.”

“분만이 임박한 산모 중에 혈액형이 일치하고, 보호자도 없는 산모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의사와 간호사만 입을 맞추면 잠든 산모는 아이가 바뀐 줄도 모를 테니까요.”

“나쁜 놈들.”

“21살 앳된 여성이 목표로 정해졌죠. 그분이 오빠 엄마세요. 오빠 엄마는 보호자도 없이 혼자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왔어요.”

“왜?”

“결혼할 남자가 죽었으니까요.”

“다른 가족이 있을 거 아니야.”

“두 분 다 고아였어요.”

“.......”

보호자도 없이 아이를 낳으러 온 어머니를 발견한 의사로 인해 나는 전종명과 윤선숙이 낳은 다운증후군 아이와 바뀌어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됐다.

전종명과 윤선숙이 아이를 바꾼 건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대학교수인 자신들이 선천성 장애아인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한, 사람들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부모라고 뒤에서 놀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남의 아이와 바꿔치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을 낳고 키우는 부모를 마치 범죄자처럼 바라봤다. 장애인을 낳은 건 잘못이 아니었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도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잘난 엄마, 아빠들은 장애인은 시끄럽다는 생각, 남에게 불편을 준다는 생각, 머리가 나빠 나쁜 짓도 서슴없이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아픈 부모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키 크고, 잘생기고, 멋지고, 아름답고, 머리 좋고, 운동도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했다.

장애인을 낳고 싶은 부모는 없었고, 장애를 안고 태어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불쾌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다고 전종명과 윤선숙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가여운 내 어머니께 떠넘겼다.

자식을 버린 것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인데,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로채는 짓까지 했다.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져 억만 겁 동안 고통받아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악독한 범죄였다.

‘나만 버린 게 아니었네. 진짜 자식도 버렸네. 버리는 게 취미인가? 정말 웃기는 연놈이네. 후유~’

“그럴 거면 바꿔치기를 하지 말든지. 오빠를 데려가서 힘들게 하고 또 버리는 건 뭐냐고. 개만도 못한 것들!”

“쥬디야, 그분 이름 알아?”

“몰라요. 그러나 병원은 어딘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찾아봐야 소용없어요.”

“왜?”

“큰오빠를 낳은 그분 오빠를 낳고 10분도 안 돼 돌아가셨어요.”

“뭐라고?”

“몸이 극도로 약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러 왔어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오빠 아버지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 죽자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없어 생활도 매우 곤궁해 뱃속에 든 오빠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지요. 그런 상태에서 오빠를 낳으러 병원에 온 거예요.”

“전종명과 안선숙이 다닌 병원은 아주 비싼 병원일 텐데, 고아인 오빠 엄마가 어떻게 그 병원에 갈 수 있어?”

“동네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어 큰 병원으로 옮긴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오빠가 전종명과 윤선숙을 만나는 일도 없었겠죠.”

“.......”

전종명과 윤선숙의 기억에는 부모님의 이름은 없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 죽었다는 것과 고아라는 것 두 가지뿐으로 이것도 담당 의사가 둘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다.

도와줄 친척 한 명 없던 어머니는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엉망이 됐고, 심한 난산 끝에 큰 병원으로 옮겨져 나를 낳다가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전종명과 윤선숙, 담당 의사에겐 이보다 좋은 조건을 갖춘 산모는 세상에 다시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고아로 아이를 바꿔치기해도 의심할 사람이 없었고, 두 분 모두 돌아가셔 따질 사람도 없어 자신들만 입을 닫으면 비밀이 새어나갈 일이 없었다.

그렇게 놈들의 요구를 완벽하게 갖춘 어머니는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를 낳았다는 오해 속에 세상을 떠났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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