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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16화 (21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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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캐기

216.

전종명과 윤선숙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둘 다 선임 교수로 과목을 맡진 않았지만, 게임 시간으로 한 달에 한두 번은 특별 강의를 해 얼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게임 시간으로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전종명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윤선숙의 강의도 3시간 후에 있어 하루에 두 연놈의 대가리를 털 수 있게 됐다.

「이방인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왜?」

「건물도 엄청나게 크고, 공부도 아주 체계적으로 하잖아요. 아틸라 제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에요.」

「제국에도 아카데미가 여러 개 있잖아?」

「있죠. 가본 적은 없지만, 시설이 이렇게 좋진 않다고 들었어요. 건물 몇 개와 강의실 몇 개, 체력 단련실, 운동장 한두 개가 전부에요. 이렇게 크고 넓은 캠퍼스는 없어요.」

「아틸라 제국은 시대적 배경이 중세고, 여기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놔서 그래. 제국도 시간이 지나면 이곳과 같은 시설이 들어설 거야.」

「그때까지 제국이 남아 있을까요?」

「아틸라 제국이 사라져도 세상은 발전해. 언젠가는 아란테스 대륙도 지구처럼 변할 거야.」

「수천 년 동안 이 모습 그대로였어요.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지.」

전종명의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에 청강생으로 숨어든 하연이와 쥬디가 주위를 둘러보며 귓속말로 아틸라 제국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다른 건 변하지 않아도 남녀 차별과 계급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니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기억을 읽은 이방인이 몇 명이나 돼?」

「100명 넘어요.」

「그런데도 그런 말이 나와?」

「언니, 아틸라 제국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꿈같은 세계예요. 차별과 부조리가 판치지만, 그건 사람 사는 세상에선 없어지려야 없어질 수 없는 불변의 원칙이에요. 한쪽만 보고 좋다 나쁘다 판단하면 안 돼요.」

「맞는 말이네. 하지만 너도 우리 세상에 산다면 나처럼 생각할 거야.」

「그렇겠죠.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은 없을 테니까요.」

「그걸 알면서 바뀌길 바라?」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잖아. 그 꿈마저 사라지면 살아갈 힘이 없잖아요. 꿈이라도 열심히 꿔야죠.」

「멋진 말이다. 그런데 너는 그런 꿈 꾸지 않아도 돼. 오빠가 너를 친동생 이상으로 사랑하니까. 내가 질투 날만큼.」

「그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서 자다가도 웃음이 나와요. 그러나 저만 행복하길 바라는 건 너무 양심 없는 행동 같아요.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야죠. 그게 고통이 뭔지 경험한 사람의 자세잖아요.」

「꿈이 너무 원대하다.」

「맞아요. 신도 이룰 수 없는 꿈이에요.」

내 기억을 읽는 순간 쥬디는 NPC 최초로 The Age of Hero가 실제 세상이 아닌 환인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현실 세상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러나 환인의 장난질인지 그 부분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은택과 정치인, 검찰 등 100명이 넘는 이방인의 기억을 읽으며 자신이 사는 세상이 가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충격이 클 줄 알았는데, 충격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는지 온종일 따라다니며 나와 하린이, 하연이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의 기억을 읽으면 그 사람의 지식과 생각까지 모두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컴퓨터 메모리에 필요한 파일을 저장하는 것처럼 기억하는 것만 가능할 뿐 이해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온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며 쉬지 않고 질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세 마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The Age of Hero에서 일생을 산 쥬디가 21세기에서 산 그들의 기억을 제대로 활용하기는 어려웠다.

지식은 자기가 살아가는 공간 안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기계 문명을 살고 있는 우리의 지식은 The Age of Hero에선 대부분 쓸모가 없었다.

마법을 이용해 하늘을 날면 되는데 미쳤다고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비행기를 만들겠는가.

이처럼 현대 과학은 The Age of Hero에선 비상식적인 생각으로 쥬디가 혜안을 통해 알게 된 대다수 지식은 휴지통에 버려야 할 쓰레기였다.

그리고 가치관과 풍습도 너무나 달라 적용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현대는 계급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였고, The Age of Hero는 계급이 확실한 중세 시대였다.

또한,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었고, 종교는 오직 환인 한 명밖에 없었다. 연결 고리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완벽히 동떨어진 사회로 접목시킬 수 있는 풍습도, 가치관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배우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천재를 뛰어넘는 지능의 소유자인 쥬디는 학구열도 엄청나게 높아 흡수한 기억을 분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나날이 똑똑해지고 있었다.

「들어오나 보다. 준비하자.」

「네.」

강의실 앞문이 열리자 웅성대던 학생들이 조용히 입을 닫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교수를 바라봤다.

나이가 60살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젊고 잘생긴 남자가 고급양복을 입고 웃으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전종명입니다. 제 강의에 들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렇게 강의 듣게 돼서 정말 좋아요.”

“사랑해요. 교수님! 꺄악!”

입가에 웃음을 한껏 머금은 전종명이 여학생들에게 인사를 하자 비명과 함께 환호성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쥬디야, 꼴 보기 싫어죽겠는데, 그냥 죽여 버릴까?」

「언니, 큰오빠를 위해 참으세요.」

「참기가 너무 힘들다. 어린 계집애들 보면서 좋아서 실실 쪼개는 것 봐. 그걸 보고 좋다고 소리 지르는 년들도 다 죽여 버리고 싶어.」

「저도 언니와 같은 마음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아니에요.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어요. 참으세요.」

커다란 강의실을 채운 학생은 99%가 여학생이었다. 간혹 보이는 남학생은 여자 친구에게 강제로 끌려온 것으로 전종명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

핸섬한 외모, 유창한 화술, 엄청난 학벌, 빵빵한 재력, 거기다 TV에서도 자주 나오며 인지도도 높아 전종명이 다니는 XXX 대학에선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였다.

「인면수심이란 말 많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자기가 한 짓을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라는 건가?」

「그러니까 오빠에게 그런 짓을 한 거예요.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할 순 없거든요.」

「생각하니까 살심이 솟구쳐서 손까지 떨린다. 그냥 개 값 물고 집에 가자.」

「언니, 정신 차리세요. 실수하면 평생 원망할 거예요.」

「교수님, 질문 있어요. 겨우 이 말 하는데 실수를 해? 내가 바보로 보여?」

「언니, 지금 표정이 어떤지 아세요?」

「어떤데?」

「야이 개새끼야. 이리와. 죽여 버릴 테니까. 손들고 이렇게 말할 표정이에요. 쯔쯔쯔쯔.」

「너 내 마음 읽었지?」

「언니, 거울 한 번 보세요. 지금 표정 보면 세상 사람 누구다 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똑바로 하세요. 오빠 부모님을 알아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우이씌! 잘하면 될 거 아니야.」

작전은 아주 간단했다. 하연이가 손을 들어 전종명의 시선을 끌면 쥬디가 재빨리 일어나 질문을 던지는 척하며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럼 상황 끝이었다. 그러나 전종명의 심지가 쥬디보다 굳건하면 혜안을 튕겨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놈이 여학생들에게 눈웃음을 날리는 모습을 본 순간 그럴 일은 없다는 걸 확신했다.

전종명은 겉으로는 웃음을 띠며 온화한 척하지만, 속마음은 음험해 칼을 감추고 있는 소이장도(笑裏藏刀)형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얼빠진 얼척이에 지나지 않았다. 침만 흘리지 않을 뿐 탐욕이 가득한 눈으로 여학생들의 몸을 더듬는 눈에선 경계의 빛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욕망이 가득한 번들거리는 전종명의 눈을 확인한 순간 하연이와 쥬디는 성공을 확신했다.

“교수님! 교수님! 질문 있어요. 어제 TV에 나오셔서 하신 말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요.”

“어떤 걸 말하는 거지?”

“교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남자는 여자의 거기만 보고, 여자는 남자의 재력만 보는 속물이라고요.”

“내가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제가 분명 들었는데, 아니라고 발뺌하시는 거예요?”

“학생이 잘못 들었나 본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아닌데. 분명 했는데.”

웅성웅성

“야아~ 미쳤어? 왜 있지도 않은 얘기를 하고 그래. 교수님! 죄송해요. 제 친구가 교수님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관심을 끌고 싶어서 없는 얘기를 지어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아 그런 거였어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내가 몽유병에 걸린 상태에서 TV에 출연한 줄 알고요. 하하하하.”

철없는 여학생이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얘기란 게 밝혀지자 안도한 전종명이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하하하하

강의실에 모인 여학생들도 순간 긴장했다가 해프닝이란 걸 알게 되자 전종명을 따라 큰 소리로 웃었다.

“이해해주세요. 워낙 교수님을 사랑하다 보니 그만...”

“당연히 이해해야죠. 사랑은 아름답고 총명한 여학생의 눈도 잠시 멀게 하는 못된 장난꾸러기니까요. 하지만 한 번뿐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어요. 다음부터 관심 끌고 싶으면 좋은 말로 해주세요.”

“역시 교수님은 이해심이 참 넓으세요.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제자를 바른길로 이끄는 선생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학생 여러분?”

“꺄악~ 교수님 멋쟁이.”

“교수님! 사랑해요!!”

- NPC 쥬디가 혜안으로 전종명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 NPC 쥬디가 혜안으로 전종명님의 기억을 훔쳤습니다.

“교수님, 한 가지 더 죄송한 일이 있어요.”

“뭔데 그래요?”

“친구가 교수님 보고 흥분했나 봐요.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어요.”

“급하면 당연히 그래야죠. 다녀오세요.”

“교수님 멋쟁이!”

전종명의 기억을 모조리 읽은 쥬디가 하연이의 손을 잡고 급히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원하는 것을 얻은 이상 강의실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종명의 역겨운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찾았어?”

“네.”

“오빠 부모님 살아계셔? 유모는?”

“윤선숙까지 만난 다음 오빠가 있는 곳에서 말씀드릴게요.”

“심각해?”

“네.”

“알았어.”

쥬디의 표정이 몹시 어둡다는 걸 눈치챈 하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후 윤선숙이 선임 교수로 있는 XX 대학교로 이동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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