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214화 (21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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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부

214.

“하린아, 아무도 모르게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알았어.”

“오빠, 이런 일은 드러내고 해야 해요.”

“잘난 척하고 싶지 않아.”

“잘난 척하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기부문화가 개판이에요. 정치인이 만든 재단에는 수백억 원씩 잘만 기부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십 원짜리 하나 주는 것도 벌벌 떠는 인색한 나라예요. 그래서 보여줘야 해요. 기부하는 모습을. 그래야 사람들이 기부가 좋은 일이란 것을 알죠.”

“좋은 말이야. 나도 동감하는 얘기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우리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그래서 이번에는 조용히 하고 싶어.”

“아아 그게 문제군요. 그 생각을 못 했네요.”

“나도 그것만 아니면 공개적으로 하고 싶어. 1,000억 원이나 기부하면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하고 싶진 않거든.”

“그런데 오빠, 1,000억 원 어떻게 몰래 기부할 수 있죠? 수표를 끊으면 은행에서 누군지 알아낼 텐데.”

“나도 그게 걱정이야.”

“오빠 특전사 출신이잖아요. 그것도 직업군인.”

“그게 이거 하고 무슨 상관이야?”

“특전사 임무 중에 민사심리전 등 비정규전 임무도 있다고 했잖아요. 007작전에 버금가는 멋진 작전 하나 만드세요.”

“영화와 현실은 달라. 그리고 몰래 해야 하는 일이라 이범석 상사님께도 도움을 청할 수 없어.”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 판 일은 우리 셋 빼고는 아무도 몰라야 하는 일로 이범석 상사에게 1,000억 원을 옮기는 일을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

“오빠, 오토바이 탈줄 알죠?”

“어, 면허증 있어.”

“그러면 오토바이 한 대 사서 휭하니 갔다 오세요.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그러면 되잖아요.”

“돈 놓고 오면 난리가 날 거야. 그러면 경찰들이 도로와 인근 건물의 CCTV를 다 돌려볼 테고 그러면 번호판이 걸릴 거야.”

“번호판 안 나오게 하는 스프레이 쓰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게 한다고 해도 1,000억 원을 어떻게 은행에서 빼지?”

“시중 은행 다섯 개에 하루에 5,000만 원씩 보내서 현금 지급기로 뽑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1,000억 원을 뽑은 걸 은행도 모를 거예요.”

“설마 5만 원 짜리로 뽑자는 얘기는 아니지?”

“맞아요.”

“컥!”

하루에 2억5,000만 원씩 뽑으면 뽑는 데만 400일 걸린다. 그리고 현금 지급기에 그 돈을 다 뽑으려면 하루에 2~3시간은 소비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1,000억 원을 5만 원짜리로 빼면 200만 장이었다. 그걸 100장씩 묶어도 무려 2만 개였다.

사과박스 한 상자에 5만 원권으로 12억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꽉꽉 눌러 담아도 상자 83개에 0.3개가 더 있어야 했다.

사과박스 84개면 승용차로도 실어 나를 수 없는 숫자로 트럭으로 실어 나르지 않는 한 한 번에 몰래 가져다 놓을 수 없었다.

수표를 갖다 놓으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추적하면 하루도 안 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나눔의 집까지 직접 가져갈 필요 없잖아? 장소를 정해 그곳에서 찾아가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장소가 있어?”

“제삼자명으로 운동장을 하나 빌려. 그리고 거기에 미리 돈을 갖다 놓는 거야. 그런 다음 나눔의 집과 공정한 신문사에 연락해 돈을 찾아가라고 하면 되지.”

“믿어줄까?”

“뭘?”

“그 돈이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

“아아 그게 또 문제네. 기부하기 어렵네.”

“그렇게 말이다. 에휴~”

금액이 크자 몰래 기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100억 원이면 스프레이로 CCTV에 번호판이 찍히지 않게 처리한 다음 내 차에 실어 새벽에 몰래 가져다놓고 오면 됐다.

그러나 금액이 1,000억 원이라 SUV에는 실을 수 없어 트럭을 빌려야 했다. 그러면 신분이 노출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1,000억 원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기부했다고 신문에 나면 정부와 검찰, 경찰이 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 억지를 부려 압수할 수도 있었다.

이거야말로 좋은 일하고 헛짓하는 짓으로 이런 일까지 모두 피하려면 돌머리를 부서지도록 돌려야 했다.

“그런데 오빠, 왜 신분 노출을 그토록 꺼리는 거예요? 이번 일과 마림 게이트 일은 전혀 별개잖아요. 연결 고리가 없고, 엮인 일도 아니라서 오빠 이름이 세상에 알려줘도 크게 문젯거리가 될 게 없잖아요.”

“사람들에게 알릴만큼 잘한 일도 아니잖아.”

“1,000억 원을 기부하는데 잘한 일이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쉽게 벌었잖아. 남들이 알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어.”

“그게 왜 쉽게 번 거예요? 오빠 잠도 못자고 죽도록 뛰어다녀서 번 돈이에요. 절대 쉽게 번 거 아니에요. 저도 알고, 언니도 알고, 환인도 알고, 하늘도 알아요.”

“그건 우리 생각이지. 하루 종일 일해도 5만 원도 못 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 사람들이 들으면 욕해.”

도둑질을 해서 번 돈이 아니었다. 하연이 말처럼 노력해서 번 돈이었다. 그러나 상대적 박탈감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오랜 시간 아르바이트를 해봐서 그들 마음을 잘 안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고 능력이 없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도 없지 없지만, 대부분은 노력해도 안 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재능을 꽃피우지 못해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아이템 한 개를 팔아 1조 원을 벌었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욕부터 나온다.

돈을 쓸 때만 사람들 눈치를 봐선 안 된다. 벌 때도 타인의 기분을 헤아려야 했다. 내가 잘나서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번다는 걸 한시도 잊어선 안 됐다.

“그래도 숨어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떳떳하게 드러내는 게 맞아.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하린이 말이 맞았다. 도둑질해서 번 것도 아닌데 꼭꼭 숨어서 기부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 이름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는 것이 싫다면 금액을 잘게 쪼개서 자주 기부해도 됐다.

그리고 나눔의 집에 전화해 제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그러면 그분들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그렇게 해줄 것이었다.

“그러면 한 달에 5억 원씩 15년간 기부하겠다고 전화해. 대신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알았어.”

1,000억 원 한 번에 주고 싶었다. 이유는 일본에서 받아낸 돈을 뜻깊은 곳에 쓴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일본에도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할머니들을 위해 너희에게 뜯어낸 돈을 쓴다는 것을.

그러나 내 이름이 밝혀지면 영지와 작위까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또한, 쥬디의 존재도 드러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금액을 나눠서 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일 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다니 참담하네. 누구도 건들 수 없는 힘을 키워야해. 그래야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다시는 하지 않지.’

“오빠, 별장 주변 땅 산다고 했잖아요?”

“어.”

“빨리 사는 게 낫지 않아요? 어차피 살 거면.”

“매물로 나온 게 있어?”

“사촌 언니에게 전화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전화해 봐.”

“네.”

별장 주변 땅은 사도 값이 크게 오르지 않아 이익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 건물을 산 것처럼 투기가 목적이 아닌 안전이 목적이라 이익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오빠, 기부할 돈과 땅 살돈 빼고, 나머지는 모두 금화로 바꾼 후 건물 사자.”

“그러면 팔 때 또 세금 붙잖아?”

“내년까지 최소 30%는 오를 거야. 세금 내도 그게 더 이익이야.”

“알았어. 대신 만약을 대비해 일부는 남겨둬. 급한 일 생겼는데, 현금 없으면 그것도 골치니까.”

“500억 원이면 충분하겠지?”

“충분하고도 남지.”

“그럼 300억 원 남겨둘게.”

“어.”

The Age of Hero이 서비스 되고 3년 동안 금화 가격이 꾸준히 오르자 금과 달러, 석유보다 투자할 가치가 더 높다는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랐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투자 목적으로 금화를 샀다. 하지만 게임머니는 진짜 돈이 아니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해 헤지펀드 같은 투기 펀드와 세계적인 부호들은 금화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다 Part 2 : 일곱 용기사와 전쟁의 서막이 패치되고, 얼마 후 인스턴트 던전까지 패치되자 금화 가격이 수직으로 상승하며 관망하던 투기세력들도 금화를 사기위해 몰려들었다.

패치 후 5월 1일까지 10% 올라 110만 원에 거래되던 금화 가격이 2주일 만에 120만 원까지 치솟았다.

너무나 가파른 상승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환인이 금화 가격에 제동을 걸었다.

일인당 거래할 수 있는 금액과 숫자를 제한한 것으로 대한민국 주식시장처럼 상한가를 둔 것이었다.

그동안 환인은 시장 개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해 금화 가격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대로 놔두면 투기 세력에 의해 The Age of Hero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투기 세력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환인이 금화 가격을 떠받칠 거란 전망이 쏟아지며 더욱 많은 자금이 The Age of Hero에 집중됐다.

그래도 다행히 환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상승폭이 크게 꺾여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금화가 오르면 땅값도 덩달아 올라 우리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어 환영해야 할 일이었지만, 금화 가치가 오르는 게 아니라 투기 세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격이 오른 것으로 언제 거품이 빠질지 몰라 장기적으로 전혀 도움이 안 됐다.

투기 세력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돈을 잃을 확률도 많다는 것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는 좋아할 수 없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대한민국 정부는 투기 세력 덕분에 천문학적인 세금이 쏟아져 들어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국민 생활은 티끌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만을 위한 정치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생활이 나아지길 바라는 건 길가다 벼락을 만 번쯤 맞길 바라는 것보다 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오빠, 땅 있대요.”

“얼마나?”

“들어가는 입구와 좌우 땅, 뒤에 있는 임야까지 모두 매물로 나왔어요.”

“주변 땅을 다 판다고?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언니 말로는 그쪽 땅이 상업성이 없어서 10년 넘게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대요. 그래서 땅을 팔려는 사람만 있지, 사려는 사람은 없다고 하네요.”

“오빠, 그때 가다가 봤잖아. 팔당 유원지 지나고부터 음식점도 눈에 띄게 줄어든 거. 우리가 산 별장 들어가는 주변에는 사람도 살지 않았어. 값어치가 전혀 없는 땅이라는 뜻이야.”

“처음 그 땅을 산 사람들은 그 근처가 개발될 거란 소문을 믿고 땅을 샀대요. 그런데 계획이 바뀌면서 돈만 날리게 된 거죠. 그래서 살 사람만 있다면 팔고 나가겠다고 아우성이래요. 자세한 건 1시간 후에 하정 언니가 직접 와서 설명한다고 했어요.”

별장 근처에 땅을 사나는 건 아주 간단하게 처리했다. 하연이 말대로 몇 년간 땅이 팔리지 않아 대리인으로 나선 송하정이 산다고 하자 얼씨구나 하고 싼 가격에 잽싸게 넘겼다.

소문나지 않게 처리해야 바가지를 쓰지 않아 하루 만에 판다고 내놓은 땅을 모두 샀다.

그러자 규모가 8배로 커져 내 영지보다는 한참 작았지만, 세상의 눈을 피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만큼 넓은 땅을 확보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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