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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11화 (2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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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씌우기

211.

“1조 원을 벌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써야 하지 않겠어? 음하하하.”

“그 말이 참말이었네요.”

“무슨 말?”

“벼락부자가 되면 졸부가 된다고 한 말이요. 그 말 오빠를 두고 하는 말이었네요.”

“주지 말까?”

“아니요.”

“그런데 왜 그래?”

“통이 커져도 너무 커지니까 겁나서 그래요.”

“나 혼자 번 돈이 아니잖아. 너 하고 하린이 이렇게 셋이서 같이 고생해서 번 거잖아. 그러면 당연히 너희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지. 그래서 형님에게 드리려는 한 거야.”

“저도 오빠가 왜 집을 주겠다는 것인지 알아요. 그러나 오빠는 자신을 위해 쓴 게 없잖아요. 그러면 너무 불공평해요.”

“앞으로 많이 쓸 거야. 그러니 그렇게 알고 있어.”

“제 의견 묵살하시는 거예요?”

“응.”

“진짜예요?”

“진짜다. 어쩔래? 흐흐흐흐.”

“우이씌.”

하연이가 심통을 부리는 척하는 건 미안해서였다. 하린이와 하연이는 내가 가진 엄청난 운과 영주라는 신분 덕분에 큰돈을 번 것이지 자신들 때문에 번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껏 번 돈을 자기들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벌 돈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린이와 하연이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영주라는 신분 덕을 톡톡히 본 덕분에 엄청난 돈에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능력과 운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큰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뱀파이어 백작 베르니스타의 심장이 숨겨진 보물 지도를 찾지 못했을 것이고, 찾았다고 해도 보물 지킴이에게 맞아 죽어 칭호와 흡혈 스킬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은택을 자살하게 하고, 크로아탄 가문 산적 6,000명을 회유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세라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몽환의 신전에 들어갈 실력도 안 됐을 것이고, 무리해서 들어갔다면 아이템과 능력치만 날렸을 것이다.

또한, 미미의 플레시 골렘 공장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해 토르게르드 마탑의 부탑주 아크메이지 하비에르가 남긴 보물도 얻을 수 없었고,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도 얻지 못해 1조 원을 챙길 꿈도 꾸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은택과 마림 재단을 끝장낼 수 있게 해준 쥬디도 만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하린이와 하연이가 내 곁에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감사한다. 하린이와 하연이를 내게 보낸 준 그 누군가에게. 신을 믿지 않지만, 내 복 때문에 하린이와 하연이가 온 거로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 사랑하게 된 게 운명일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군가의 도움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감사하고 있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에게.

“몇 시간 남았어?”

“1시간 30분이요.”

“아직도 이파전이야?”

“네.”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 가격을 올리는 사람 중 유독 눈에 띄는 두 명이 있었다.

이쪽이 가격을 올리면 저쪽이 맞받아치고, 저쪽에서 가격을 또 올리면 이쪽에서 맞받아치며 두 사람이 가격을 주도적으로 올렸다.

한쪽은 오수파(吴秀波)라는 중국 남자 배우 이름을 쓰는 유저였고, 다른 쪽은 일본 여자 배우 아오이 소라(Aoi Sola)를 이름으로 쓰는 유저로 오수파는 중국인, 아이오 소라는 일본인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매장에서 아이템을 살 때 쓰는 이름은 언제든 바꿀 수 있어 100% 중국인, 일본인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린이와 하연이가 싸움을 붙이며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를 사는 일은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일로 중국인인 척, 일본인인 척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뉴스와 Hero 채널, 유저들 모두 중국과 일본 유저가 경매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얼마까지 올랐어?”

“5,952억 원이요.”

“1조 원은커녕 7,000억 원도 못 찍겠네.”

“7,000억 원이 뉘 집 개 이름이에요? 오빠, 감사할 줄 아셔야죠. 욕심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렇죠.”

“흐흐흐흐.”

“아우 음흉해.”

중국을 싸움에 끌어들이자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어젯밤까지만 해도 1조 원은 무난히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5,000억 원이 넘자 양자대결로 좁혀지며 가격 오르는 속도가 눈에 띄게 확 떨어졌다.

중국과 일본 유저로 의심되는 두 명의 유저가 치열한 눈치싸움에 돌입해 그런 것으로 100만 원 단위로 가격을 찔끔찔끔 올리며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6,000억 원도 미치지 못했다.

아직 1시간 넘게 남아 막판 스퍼트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싸움이 양자대결로 압축돼 1조 원에는 한참 못 미치는 금액에 팔릴 확률이 아주 높았다.

“언니는 어디 갔어?”

“오빠가 이 집 결혼 선물로 준다고 해서 아빠와 엄마, 오빠가 마음이 많이 복잡한가 봐요. 그래서 언니가 설득하려고 집에 갔어요.”

“너무 부담됐나?”

“그럼요. 몇십 만 원짜리 선물도 부담돼서 선뜻 받기가 어려운데, 10억 원이 넘는 집을 주겠다는데 고민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안 그래요?”

“그렇긴 하지.”

“그리고 우리 아빠 아직 돈 잘 벌어요. 오빠에게 손 내밀 만큼 휘청거리지 않는단 말이에요.”

“줘도 난리네.”

“준다고 냉큼 받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 말도 맞네.”

하연이 말이 맞았다. 10억 원이 넘는 집을 주겠다고 하자 상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고 고맙습니다.’하고 받는다면 주는 사람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준다면 수백억 원을 줘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나와 형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조만간 가족이 되지만, 그런다고 피가 섞이는 건 아니라서 10억 원이 넘는 선물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아이템 한 개로 1조 원을 벌게 생겼는데 겨우 10억 원도 못 주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수십조 원을 가진 부자가 친구라고, 친척이라고 선뜻 돈을 주는 일이 있는지.

부자들은 원가 10만 원짜리 제품을 100만 원에 팔 생각은 해도 10원짜리도 허투루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부금을 많이 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유치원생보다 생각이 더 없는 사람이었다.

재벌이 수십, 백억 원씩 기부금은 내는 건 다 주는 이유가 있어서였다. 내는 것의 몇 배를 돌려받거나 세금을 감면받기 위한 행동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부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돈이 너무너무 많아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부자도 남에게는 10원짜리 하나 그냥 주는 법이 없었다.

“정 부담스러우면 지금은 그냥 사는 것으로 하고, 2~3년 후에 넘겨주는 것으로 하면 되잖아.”

“지금 넘겨주나 2~3년 후에 넘겨주나 뭐가 다른데요?”

“2~3년 살면 정들어 자기 집이라는 생각이 들 테니 그때는 부담이 덜하겠지. 어때? 괜찮은 생각 아니야?”

“참신하지만 않지만, 나쁘지는 않네요.”

“이 정도면 잔머리치고 참신한 거야.”

“잔머리가 참신한 거예요?”

“응.”

“말도 안 돼요.”

“내가 그러면 그런 거야. 어디서 하늘 같은 서방님에게 꼬박꼬박 말대꾸야. 볼기 좀 맞아야 정신 차릴래?”

“폭력 남편!”

“억울하면 신고해.”

“우이씌.”

“흐흐흐흐.”

심통인 난 것처럼 입술을 삐죽 내민 하연이를 품에 안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아직 가슴을 만진 적도 없었고, 홀딱 벗은 몸을 본 적도 없었지만, 엉덩이는 볼기를 때린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만져댔다.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으로 보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인데, 나는 엉덩이와 입술부터 탐했다.

그렇다고 떡 주무르듯이 만지며, 은밀한 부위까지 손을 대는 건 아니었다. 하연이는 아직 미성년자라서... 19살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였지만... 아청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아끼고 보호해야 했다.

“오빠, 나 왔어.”

“장인, 장모님이 뭐라고 하셔?”

“정말 고맙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어.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좀 더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한 내가 미안하지.”

“아니야. 오빠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나는 잘 알아. 그래서 더 고마워!”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고마워하는 거 아니야. 그런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만 쓰는 말이야.”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막 부려먹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네?”

“말이 그렇다는 거야. 그런 짓 하면 소박맞는 수가 있어.”

“지금 나를 쫓아내겠다고? 죽고 싶어?”

“미안.”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진짜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집을 선물 받는 건 부담이 매우 크셨는지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하린이가 불려갔을 때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하연이에게 일단 빌려주고 때를 봐서 은근슬쩍 넘겨주자고 말한 것이었다.

“언니, 며칠 안 됐지만, 이 집 오빠와 우리의 첫 집인데, 세 놓기는 그렇잖아. 가구와 전자제품도 모두 새것이고.”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건 싫어. 하지만 엄마와 아빠만 부담스러워하는 게 아니야. 오빠도 난색을 표하고 있어.”

“그래서 오빠가 잔머리를 굴렸어. 일단 빌려주고 차후에 넘겨주는 것으로 하는 건 어떻겠냐고.”

“그것도 싫어할 텐데?”

“세 놓을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맡긴 다음에 2~3년 지난 후에 살살 구슬리면 오빠와 새언니도 혹하고 넘어올 거야.”

“과연 그럴까?”

“지금도 부자지만, 몇 년 후에는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돼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에게 10억 원은 돈도 아니잖아.”

“알았어. 다시 말해볼게.”

하연이 말처럼 몇 년 후에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쪽박을 찬 채 처가살이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전쟁에서 패해 영지를 잃고 아이템까지 빼앗긴다면 순식간에 거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지금까지 벌어둔 돈만 해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살 수 있었고, 전쟁에서 패해 영지를 잃어도 인벤토리에 넣어둔 아이템과 경매장에 올려놓은 아이템은 바닥에 떨구지 않아 거지가 될 확률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꿈을 실현할 수는 없었다. 왕국을 건설한다는 꿈, 그 꿈은 영원히 접게 되는 것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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