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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씌우기
210.
성장형 에픽 아이템은 구경하는 것조차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아이템이었다. 그런 귀한 아이템을 유저들이 무시한다면... 일본 유저들이 무시한 것이지만... 나도 배짱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건의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중에는 희소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껏 그 존재조차 확실시되지 않았던 레전드 아이템은... 내가 한 개 가지고 있지만... 희소성만으로도 5,000억 원의 가치는 충분했다.
거기에 착용 효과 3개와 특수 옵션 1개, 룬 슬롯까지... 본적이 없어 나와 하린이, 하연이 빼고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5,000억 원도 비싼 게 아니었다.
엄청난 공격력과 스탯, 착용 효과를 빼더라도 내가 마나 흡수 룬(Rune)를 장착하고부터 마나 걱정 없이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것만 봐도 가치는 이미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아이템을 생각 없이 달려든 멍청한 우리나라 유저에게 팔 순 없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일본 유저에게 왕창 바가지를 씌워 팔 생각이었다.
그래야 열 받은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한국과 일본만으로 큰 싸움이 안 되면 다른 나라도 끌어들여야지.”
“어디요?”
“중국.”
“중국 유저들이 끼어들까요?”
“일본을 가장 미워하는 나라가 어디야?”
“당연히 우리나라죠.”
“다음은?”
“중국이요.”
“그러니까 끌어들여야지.”
“우리나라 사람만큼 중국인도 일본을 미워하나요?”
“중일전쟁과 난징대학살 몰라?”
“들어는 봤어요. 역사 시간에.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예요?”
“쯔쯔쯔쯔. 공부 좀 해라.”
“나만 모르는 거 아니에요. 우리 반 아이들 다 몰라요. 우리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나라 역사까지 알겠어요.”
“네 말이 맞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겠냐.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 잘못이지.”
아이들이 역사에 관해 잘 모른다면 그건 아이들 잘못이 아니었다. 올바르게 알려주지 못한 어른들 잘못이었다.
그리고 어른들도 역사에 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셨다.
우리 모습을 보라! 안중근 의사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윤봉길 의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세종대왕이 무엇을 만드셨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징대학살 때 30만 명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했어.”
“30만... 미친놈들!”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으로 중국은 무려 1,200만 명이 죽었어.”
“컥!”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륙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만주에 진출했다.
1931년 9월 18일 자작극을 벌인 일본 관동군이 만주 전쟁을 일으켜 만주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다.
1932년 3월 1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푸이를 내세워 괴뢰 정부 만주국을 설립한 일본은 1935년에는 허베이 성에 괴뢰 정부를 세워 화북 지역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이렇듯 쉽게 일본이 만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국공내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일본의 침략 야욕을 깨닫고 내전을 중지하고 국공합작을 통해 관동군에 대항했지만, 내전으로 큰 피해를 본 중국은 힘을 크게 소진해 1937년 8월 4일에 베이징에 이어 12월 13일에는 난징까지 점령당했다.
일본은 중국인의 항일 의지를 꺾고자 난징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2개월 동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30만 명을 학살했다. 이것이 난징대학살이다.
“이 정도면 중국을 끌어들이는데 아무런 문제 없겠지?”
“차고도 넘치네요. 1,200만 명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지난번처럼 하린이와 머리를 맞대고 중국을 끌어들일 묘책을 짜내봐. 잘할 수 있지?”
“걱정하지 마세요. 역사는 몰라도 이간질은 자신 있어요.”
“이간질... 아주 좋은 능력이다.”
“히히히히.”
이간질이 능력이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간질도 머리가 아주 비상해야 할 수 있는 일로, 나 같은 평범한 수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
그런 면에서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처지에선 능력이 아니라 꽁수였다.
“약점 잡을 정치인과 검찰, 언론인 명단은 작성했어?”
“오늘 중으로 끝나요.”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겠네?”
“네.”
“누가 할 거야?”
“제가 할 거예요. 언니는 마틸다 상점 여는 거 도와줘야 해서 시간 없어요.”
“들통나지 않게 조심해.”
“걱정하지 마세요. 변장 도구까지 다 샀어요. 절대 걸리지 않아요.”
“그래도 사람 일이란 게 모르는 거니까 의심 살만한 일이 없도록 열 번, 스무 번 확인하고 해.”
“넵!”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가 경매 마감 60시간을 남기고 경매 시작 가격은 3,000억 원, 즉시 판매 가격은 1조 원으로 판매 조건이 바뀌었다.
60시간을 남기고 가격이 3,125억 원까지 올라가자 5,000억 원에 팔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경매는 눈치 싸움으로 마지막 1시간을 남기고 가격이 급등했다. 이 때문에 최고 경매가가 나올 거라면 많은 사람이 확신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격을 조정하자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인터넷을 가득 채웠다.
5,000억 원이면 세금 10%와 수수로 0.1%를 빼도 4,495억 원으로 일반 서민은 평생 일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그런데 가격을 1조 원까지 올렸으니...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빛나는 타도의 값어치와 희소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라며 편을 들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아이템을 5,000억 원에 파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먹은 건 잘한 일이라고 응원했다.
남의 일로 네티즌들이 서로 자기 말이 옳다며 싸움을 벌일 때 또다시 재미있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중국인이라고 밝힌 유저는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를 일본이 갖게 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 이유를 중일전쟁, 난징대학살, 댜오위다오 열도 분쟁 등을 꼽으며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에게 레전드 아이템을 양보해선 안 된다고 열변을 터했다.
일본명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는 동중국해 남부에 있는 5개의 무인도와 3개의 암초로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타이완 섬과 부속 도서, 펑후 열도를 일본에 할양하며 빼앗긴 섬이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타이완과 펑후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일본이 포기했다.
하지만 댜오위다오 열도는 미국이 위임통치하는 오키나와의 관할 하에 둔 채 중국에 돌려주지 않았다.
1972년 5월 15일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자 일본은 댜오위다오 열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고, 중국과 타이완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강하게 반발했다.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된 건 1969년으로 댜오위다오 열도 주변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매장된 것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양국은 군함과 전투기를 출격시키며 격하게 대립했다. 지금은 미국까지 끼어들어 분쟁이 더욱 격화되는 등 악화일로로 걷고 있었다.
중국 유저들에게 대장장이 무네치카의 빛나는 타도를 사야 한다고 떠들면 코웃음밖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유저들의 분노를 촉발하기 위해 하연이와 하린이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영토 분쟁을 끼워 넣는 것이었다.
중일전쟁과 난징대학살만 해도 중국인의 피가 용솟음치는데, 현재 가장 민감한 댜오위다오 분쟁까지 양념으로 더하자 온종일 서로를 비방하는 글이 인터넷을 가득 채웠다.
“중국 유저로 보이는 아이디가 4,119억 원에 산다고 올렸어.”
“곧바로 일본 유저로 보이는 아이디가 4,200억 원에 산다고 올렸어요.”
“우리나라 유저로 보이는 아이디도 있어?”
“3,548억 원 이후로 사라졌어요.”
“이제야 제대로 싸움이 돌아가네. 흐흐흐흐.”
하린이와 하연이가 올린 글이 도화선이 돼 중국과 일본의 감정싸움으로 번지자 아이템 가격이 쑥쑥 올라갔다.
싸움은 중국과 일본이 하고 돈은 내가 버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부지리(漁父之利)라고 할 수 있었다.
“하연아, 누가 사겠다고 하는지, 가격은 얼만지 30분 단위로 확인해서 알려줘.”
“네, 오빠.”
중국이 사든, 일본이 사든, 대한민국 유저가 사든, 어느 누가 사든 우리는 상관없었다. 돈만 많이 벌면 됐다.
애국심 때문에 이 짓을 한 게 아니었다.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우리나라 유저와 일본 유저를 싸움 붙인 것이고, 더 크게 먹으려고 중국 유저까지 싸움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중국과 일본 유저에게 팔고 싶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고 크게 한탕 하는 김에 외화도 벌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돈이 국내에서 돌면 우리나라 사람 주머니에 들어가게 된다. 나도 이익, 우리나라 사람도 이익으로 이것이 진정한 선순환이었다.
“오빠, 우리 이사는 언제 하는 거예요?”
“경비실과 CCTV, 정문 공사가 끝나려면 2주일은 걸린다고 했어. 공사 끝나면 바로 이사할 거야.”
어제 하린이 사촌 언니 송하정의 도움을 받아 팔당 별장을 107억 원에 낙찰 받았다.
집주인이 부도가 나 경매로 나왔지만,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대금을 치르고 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독수리 경호팀과 도우미 숙소도 완공해야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그러려면 시간이 몇 달 걸릴 줄 알았는데.”
“그거 조립식으로 지을 거라 경비실보다 공사가 빨리 끝날 수도 있어.”
“조립식이면 컨테이너 건물 말하는 거예요?”
“아니. 콘크리트로 짓는 집도 조립식으로 지을 수 있는 게 나와. 바닥 공사하면 금방 지을 수 있어.”
“아! 들어본 것 같네요. 그런데 화재에 취약하고, 냉난방이 잘 안 된다고 하던데?”
“그거야 싸구려 재료를 써서 그런 것이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 것만큼 아주 튼튼하게 지을 수 있어.”
조립식 건물은 재료비와 인건비를 절감하고, 공사 기간도 짧아 공사비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인화성 물질이 많아 끄기가 쉽지 않았고, 수명도 짧고, 진동과 울림도 심하고, 단열과 방음이 잘 안 되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그러나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 누가 시공하느냐, 얼마나 시공에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는 건 비용 때문으로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원한다면 그만큼 돈을 들여야 한다.
“다음 주에 가구하고 전자제품 들여 놔야 해. 언니와 상의해서 배치하고, 이사 날짜도 잡아. 어른들께는 이번 주에 내가 얘기할 테니까.”
“이 집 가구와 전자제품은 어쩌려고요?”
“형님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어?”
“올해 안에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이 집 신혼집으로 쓰라고 해. 가구도 다 새것이니까 따로 살 필요도 없이 몸만 들어와서 살면 되잖아.”
“정말요?”
“응. 아니다. 결혼 선물로 드려야겠다. 어차피 우리가 쓸 일도 없으니까.”
“집을 선물로 준다고요?”
“응.”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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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