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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203화 (20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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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탄 가문의 몰락

203.

이탕가 산채를 빠져나온 1만 명 중 살아서 협곡까지 무사히 도착할 인원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세 가문도 바보가 아니라서 크로아탄 가문이 산채를 떠나려 한다는 걸 오래전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도 공격하지 않는 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전공에 눈이 멀어 앞에 나섰다가 큰 피해를 당하면 다른 두 가문에 잡아먹힐 수도 있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가는 적을 공격하는 게 피해는 적고, 성과는 훨씬 많아 크로아탄 가문이 달아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서 싸울 때 큰 피해가 생길 것 같지만, 사실은 싸움에 패해 등을 보이고 도망칠 때 몇 배는 큰 피해를 입었다.

세 가문은 이삭줍기를 하듯이 크로아탄 가문을 손쉽게 처리하겠다는 생각에 그물을 2중, 3중으로 친 채 달아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 출발이라고 했어요?”

“마틸다도 정확한 시간은 몰라. 대충 새벽 3~4시쯤으로 예상하고 있어.”

“달아날 시간도 알려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버려졌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렇지.”

이탕가 산채를 빠져나온 크로아탄 가문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진 하루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훈련받은 군인도 하루에 100km를 이동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총 한 자루만 들고 평탄한 길을 간다면 가능하지만, 군장을 메고 길도 없는 험준한 산길을 통해 100km를 이동하는 건 특수부대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의 NPC들은 가능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산적들은 밤새 쉬지 않고 달릴 수만 있다면 200km도 갈 수 있었다.

게임이라서 가능한 게 아니라 매일 위험한 몬스터와 싸우며 험준한 산을 오르내려 그런 것으로 포위를 뚫을 수만 있다면 하루면 당도할 거리였다.

“크로아탄 백작, 아들 죽었다고 며느리를 버리다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런 말 하면 오빠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언니와 저는 평생 그럴 일은 없겠네요.”

“시부모 없어서 좋아?”

“저야 좋죠. 계셨다면 이렇게 오빠 옆에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

시부모가 없어서 좋으냐고 말한 건 화를 낸 게 아니라 웃으라고 농담한 것이었다. 있으면 더 좋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없어서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하연이가 고민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9살 소녀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자 미안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미안한 마음에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자 하린이가 다가가 하연이를 품에 안았다.

“계셨어도 허락했을 거야. 오빠 보면 알잖아. 두 분 모두 오빠처럼 마음이 착해 널 밀어내지 않았을 거야.”

“내가 마음에 든 건 아니고?”

“내 동생이지만 넌 정말 예뻐. 가끔 엉뚱한 짓을 해서 사람을 당황하게 하지만 애교도 많고. 어른들이 정말 좋아했을 거야.”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언니와 오빠 얘기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하네요. 사실 그동안 오빠 부모님 찾으면 절 쫓아내는 건 아닌지 걱정했거든요.”

“그럴 일 없어. 있다고 해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알고 있어요. 오빠는 절대 저를 버리지 않을 거란 걸요.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볼 거예요.”

“세상 모두가 우리를 욕해도 나는 너와 함께 할 거야.”

“저도 마찬가지예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걸레라고 욕해도 오빠 곁에 있을 거예요. 사랑해요. 오빠!!”

“나도 사랑해!”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린이와 하연이만 행복할 수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하고픈 대로 살 생각이었다.

인생은 두 번 오지 않는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남의 시선 때문에 망칠 순 없었다.

“부모님 찾는 건 진척이 있어요?”

“없어.”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느긋하게 생각하세요. 언젠가는 반드시 찾을 거예요.”

“못 찾아도 돼. 이제 와서 찾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 않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다. 어렵게 찾은 부모가 전종명과 윤선숙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럼 찾지 않는 게,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했다. 그런데도 찾는 건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찾는 것이었다.

친부모를 찾는 일은 이범석 상사 혼자 은밀하게 진행 중이었다. 독수리 경호팀을 총동원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치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못하게 했다.

친부모를 찾는 일이 지지부진한 건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였다. 전종명과 윤선숙은 몸에 좋은 것만 골라 먹고, 피부과도 일주일에 3번씩 다니고, 운동도 열심히 해 40대 후반으로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60살이었다.

23살에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받은 전종명과 윤선숙은 34살에 XX대학교에 초빙돼 교수가 됐고, 이듬해 나를 낳았다... 주워왔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외국에서 데려온 건 분명 아니었다. 국내에서 일을 저지른 건 확실했지만, 26년 전 일이고, 단서도 없어 실마리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단서가 없어 전종명과 윤선숙의 가족과 친척, 친구에게 접근해 알아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종명과 윤선숙의 부모는 15년 전에 죽었고, 형제자매도 없고, 만나는 친척도 없었다.

교수, 언론인, 정치인, 검찰, 재벌 등 많은 사람과 교류했지만, 모두 비즈니스 파트너로 친구라고 할 수도 없어 사생활에 대해선 그들도 아는 게 없었다.

유모를 찾는 것도 내 부모를 찾는 것처럼 길이 보이지 않았다. 유모와 함께 일했던 가정부들을 찾아 그들을 통해 유모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전종명과 윤선숙 빼고는 집에서 일했던 가정부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전종명의 차를 운전한 기사를 간신히 수소문해 찾았지만, 욕설과 반말을 버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관둬 유모에 관해 아는 게 없었다.

강남 아파트에 살 때 경비원을 하던 아저씨는 나이가 많아 5년 전 돌아가셨고, 내가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을 못 했다.

초등학교 1, 2, 3학년 선생님들도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떠났고, 한 분은 알코올 중독에 빠져 과거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디서도 나와 유모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자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이범석 상사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내 과거를 찾아주겠다면서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카오. 카오.“

“어서 자리로 가.”

공중에 떠서 누가 오는지 감시하던 만득이가 급히 내려와 많은 무리가 접근한다고 알려줬다.

레벨이 올라도 몸은 커지지 않았지만, 머리는 좋아지는지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었고, 시키는 것도 아주 잘했다.

이 때문에 먼 곳에서 접근하는 무리가 있는지 경계해야 할 때는 만득이를 공중에 올려놓고 감시했다.

그러나 레벨이 9밖에 안 돼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활용할 수 없어 아직은 큰 도움이 안 됐다.

하린이와 하연이가 황금 가루다의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날아올라 알려준 장소로 날아가자 나도 마리안톤 평양 쪽으로 100m를 거슬러 올라가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벽에 바짝 붙었어.

「오빠, 크로아탄 가문 산적으로 보이는 무리가 빠르게 접근 중이에요.」

「몇 명이나 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00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쫓아오는 무리는 없어?」

「보이지 않아요.」

「간격은 어느 정도 돼?」

「100m 정도요.」

「핵심 인물 위치 파악됐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거기에 마틸다의 시아버지가 있는 것 같아요.」

「3분의 2쯤 지나가면 그때 무너뜨려. 뒤에 있는 놈들은 너희가 알아서 처리하고.」

「네.」

오다가 좀 쉬었는지 예상시간보다 4시간 느린 아침 7시에 놈들이 나타났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흔적을 지운 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틸다의 마음이 크로아탄 가문을 떠났다고 해도 내가 그들을 죽인 걸 알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었다.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상심할 게 분명해 나와 하린이, 하연이만 아는 비밀로 해야 했다.

하지만 영원히 비밀에 부칠 순 없다. 크로아탄 백작과 산적들에게 현상금이 붙어 있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최대한 늦게 알게 해야 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틸다는 나를 벗어날 수 없다.

고아나 다름없어 내 곁을 떠나선 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만간 피를 빨 생각이라 길어도 게임 시간으로 6개월이면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시아버지를 죽이고 크로아탄 가문을 세상에서 지웠다는 걸 알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고 있어요.」

「후드 로브 착용해.」

「네.」

살아남은 NPC가 있으면 우리 정체가 금세 들통 날 수 있었다. 모습을 최대한 가려 정체를 숨겨야 했다.

「5. 4. 3. 2. 1.」

피웅 피웅 피웅 피웅

하린이와 하연이가 관통력 70%가 추가된 래틀의 강철 화살을 상대편 절벽을 향해 연속으로 쏘았다.

충격 화살과 폭발 화살이 연속으로 날아가 절벽 중간을 때리자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것처럼 굉음과 함께 절벽이 무너져 내렸다.

쾅쾅쾅쾅쾅

우르르르릉

“산사태다. 어서 피해. 어서... 으아아악.”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바위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자 지나가던 NPC들이 돌에 깔려 피떡이 되어 죽었다.

“백작님을 보호해라. 백작님을 보호해라.”

“적의 매복이다. 선두는 어서 길을 뚫어.”

놀란 NPC들이 비명을 지르자 책임자로 보이는 40대 중반 장한이 산적들을 지휘해 빠르게 협곡을 빠져 나가려했다.

크로아탄 백작은 후미에 있었다. 아직도 백작이라고 생각하는지 눈에 잘 띄게 백마까지 타고 있었다.

크로아탄 가문은 반역자로 기록돼 노예로 강등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크로아탄 가문은 아직도 자신들을 백작 가문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4시간 늦게 온 건 중간에 쉬어서가 아니라 백마 때문인 게 분명했다.

험한 산기슭을 백마를 타고 오다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말은 평지를 달리 때나 도움이 됐지, 험한 산길은 사람보다 느려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주위에 선 NPC의 모습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것만 봐도 애물단지를 끌고 오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NPC들도 모습이 엉망이긴 마찬가지였다. 검붉은 피의 흔적이 옷에 가득했고, 개중에는 팔과 다리, 머리 등에 붕대를 칭칭 감은 NPC도 있었다.

늙고 병든 1만 4천 명을 미끼로 던져주고도 이곳까지 살아서 온 인원은 1,000명이 조금 넘었다.

데리고 나온 1만 명 중 달랑 1,000명만 살아남은 것으로 늙은 크로아탄 백작 한 명을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

대체 크로아탄 백작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사람이 그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단 말인가?

그가 이 세상을 구할 구원자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내가 없는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멋진 세상에 살고 싶다면 내 목숨부터 지켜야 한다. 그래야 부귀영화도 누리고 아름다운 미녀와 뜨거운 하룻밤도 보낼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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