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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탄 가문의 몰락
201. 크로아탄 가문의 몰락
“엘디아, 누가 괴롭히거나 억울한 일 생기면 언제든 영주성으로 찾아와. 내가 혼내줄 테니까.”
“정말요?”
“그럼.”
“알았어요. 영주님만 믿을게요.”
“사탕이야. 동생들하고 나눠 먹어.”
“야호!”
엘디아만 아픈 게 아니었다. 영지에 온 산적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아주 심했고, 이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작은 상처에도 염증이 생겨 다리와 팔, 손 등이 퉁퉁 부었다.
개중에는 감기가 폐렴으로 도져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등 일부로 이런 사람들만 골라 보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동맹을 맺기로 해놓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와 어린아이들만 보내는 건 짐을 떠넘기겠다는 것이지 서로 협력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명백한 계약 위반으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마틸다가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집이 어떻습니까?”
“정말 좋네요. 소문에 의하면 영주님께서 농노들을 위해 직접 설계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변변치 못한 작은 재주를 부렸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구조가 사람들 살기 정말 편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들어가 봤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다른 영지는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농노를 위해 손수 설계하시고 공짜로 지어주기까지 하시는 영주님의 모습을 보고 존경스러웠어요.”
“과찬이십니다.”
“진심이에요. 영주님 같은 분은 아틸라 제국에 다시는 없을 거예요.”
“많은 영주가 저와 같은 생각은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하는 것뿐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농노들의 집은 1980~90년대 단독주택을 기초로 해서 화장실은 바깥에 두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정확히 말해 설계한 게 아니라 짜깁기를 한 것이었다. 집을 설계할 만한 실력이 안 돼 인터넷에 나와 있는 설계도를 참고해 손본 것뿐이었다.
현대식 주택을 보급하면 좀 더 편했겠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전력질주를 시키는 것만큼 편의시설 차이가 커 30~40년 전 주택에 중세 유럽 스타일을 가미해 2층으로 지어줬다.
경비대 적응 훈련을 마친... 사실은 정신 교육... 산적들도 내 영지의 농노들처럼 집을 한 채씩 주고 집단 농장과 목장에서 일하게 했다.
가구와 주방기구도 모두 구비되어 있는 집은 일곱 식구가 살아도 좁지 않은 크기로 마당에는 채소도 기를 수 있었다.
산채에서 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음식도 좋았고, 일도 크게 힘들지 않자 나를 칭송하는 소리가 매일 영주성까지 들렸다.
덕분에 산적들의 충성도가 최소 50에서 최대 90까지 오르며 업적과 평판 포인트가 20만 점씩 올랐고, 하린이와 하연이도 10만 점씩 받았다.
“제가 그동안 많이 잘못 산 것 같아요.”
“잘못 살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영주님은 저희 가문 산적들도 사람으로 대우해주는데 저는 제가 챙겨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어요. 너무 부끄러워요.”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노력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도 마틸다님의 마음을 이해할 겁니다.”
“늦었어요.”
“늦다니요?”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이들의 마음이 모두 영주님께 넘어갔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아 일시적으로 제게 호감을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크로아탄 가문과 마틸다님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사람 마음은 갈대와 같아요. 한 번 흔들리면 멈추기가 힘들죠. 그리고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요. 이제 이들은 크로아탄 가문에 다시는 충성하지 않을 거예요. 영주님께만 충성할 거예요.”
“지나친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매일 풀죽만 먹던 사람들에게 고기와 빵을 줘보세요. 다시는 풀죽을 먹고 싶지 않죠. 이들이 그래요. 산채에서 죽도록 일해도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영주님 땅에 와서 하루 세 끼를 먹고, 고기와 채소, 밀로 만든 빵까지 먹고 있어요. 꿈에서만 가능했던 일이죠. 제가 그들이라도 다시는 크로아탄 가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거예요.”
마틸다를 싫어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마틸다는 특권층이었지만, 눈과 귀를 닫지 않고 살았다.
산채에 있을 때는 밖에 돌아다니지 않아 크로아탄 가문에 종속된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 몰랐다.
그래서 눈과 귀가 열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다 이곳에 와서 내 영지 농노들이 사는 모습과 가문에 종속된 산적들의 모습을 보며 가문이 그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게 됐다.
마틸다는 산채에 있을 때 크로아탄 가문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가문이라고 생각했다.
200년 전 황위를 찬탈한 황제의 핏줄을 모조리 처단하고 아틸라 제국을 바로 세워 제국민이 행복하게 살게 할 유일한 가문이 크로아탄 가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최악 중의 최악으로 산채의 다른 세 가문보다도 백배는 더 형편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가문이 귀족의 횡포를 피해 이탕가 산으로 숨어든 불쌍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농노로 삼아 호의호식하며 정의를 부르짖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틸다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다.
시아버지와 크로아탄 가문 사람들을 내 영지로 오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농노 증명서를 없애고 간신히 행복을 찾은 사람들을 다시 크로아탄 가문으로 끌어들여 억압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매일 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영주님.”
“예.”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뭘 말입니까?”
“제가 크로아탄 가문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영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묻는 거예요.”
“흐음...”
“이제 말해주세요. 저도 영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알아볼 눈치는 있어요.”
“안다고 하시니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크로아탄 가문의 둘도 없는 좋은 협력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소환된 사람들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아픈 사람들 위주로 보낸 건 참을 수 있습니다. 서로 도와야하는 관계니까요. 그러나 궁핍을 넘어 목숨이 경각에 이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크로아탄 가문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하아...”
“저는 지금도 갈등합니다. 바보처럼 애초에 맺은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를 위해 과감하게 손을 끊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합니다. 마틸다님께 제가 묻고 싶습니다. 마틸다님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을 던지고 지그시 마탈다를 쳐다봤다. 대답을 구했는데, 질문을 던지자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러나 여장부답게 금세 안정을 찾고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던 마틸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크로아탄 가문은 이제 가망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남편이 죽어 대가 끊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남편이 살아 있다고 해도 인심을 잃어 일어설 수 없었을 거예요.”
“인심은 다시 얻으면 됩니다.”
“떠난 인심이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크로아탄 가문은 왜 인심이 떠났는지 그것도 몰라 돌이킬 수도 없고요. 결정적으로 이탕가 산을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아요. 세 가문이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요.”
“피해는 예상하고 있던 일 아닙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더 클 것 같아요. 4,000명 사라진 걸 세 가문도 이미 알아차렸을 거예요. 탈출 징후를 알아차린 이상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탈출시도도 못 해보고 모두 죽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일정을 앞당기면 되잖습니까?”
원래 계획은 크로아탄 가문에 충성하는 산적 10,000명을 내 영지로 보낸 후 건장한 남자 5,000~6,000명만 데리고 몰래 탈출해 내 영지로 오는 것이었다.
나머지 15,000명은 데리고 와봐야 도움이 안 돼 탈출할 때 세 가문에 미끼로 던져주려고 했다.
그런데 중간에 마음이 바뀐 마틸다의 시아버지가 병들고 아픈 여자와 아이 등 쓸모없는 인원만 내게 보냈다.
알짜배기만 데리고 탈출해 내 영지까지 오든지 아니면 중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그런 것으로... 믿으면 그것도 바보지만... 자기 딴에는 깡통을 돌린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소환하는 숫자를 조절해 일정이 늦어지며 마틸다의 시아버지 크로아탄 백작의 잔머리는 엉망이 되어 버린 채 세 가문의 협공을 받기 직전이었다.
크로아탄 가문의 핵심 세력을 없애려고 일부러 그런 것으로 병들고 아픈 사람은 얼마든지 내 영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지만, 배부른 돼지 새끼는 한 마리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일정을 앞당겨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해도 이곳까지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어른들이 무사히 올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시아버님과 크로아탄 가문 어른들이 이곳에 오면 영주님은 어떤 이득이 있죠?”
“이득을 바라서 한 일이 아닙니다. 마틸다님을 위해 한 일입니다.”
“그 말씀 정말 고마워요. 진심이에요. 그러나 영주님은 영지를 책임진 분이세요. 미망인 하나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다는 건 잘못된 판단이세요.”
“압니다. 그래도 저는 제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마틸다님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니까요.”
“정말 바보 같군요.”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에요. 너무 고마워서 한 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거짓말도 자주 하면 실력이 느는 것인지 첫날 어색해 미칠 것 같았는데, 이제는 혓바닥에 빠다를 발라놓은 것처럼 매끈하게 나왔다.
‘이러다 제비 되는 거 아니야?’
“영주님. 제가 말하는 대로 따라주실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럼 영주님의 처지에서 생각하세요. 저는 젖혀두고요. 영주님이 어떤 결정을 하던 저는 따를 거니까요.”
“흐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십니까?”
“네.”
“그 일이 가문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해도요?”
“저는 이미 버려진 몸이에요. 못할 일이 없어요.”
“버려졌다니요?”
“3일 후 새벽에 산채를 떠날 거예요.”
“일주일 후 아니었습니까?”
“날짜가 바뀌었어요. 저도 오늘 알았어요. 남편을 따르던 측근이 제가 안쓰러웠는지 몰래 알려왔어요.”
“착잡하시겠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에요.”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마틸다님의 노력을 저는 잊지 않을 겁니다.”
“고마워요.”
크로아탄 가문에서 마틸다를 버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버리겠지만, 아직은 나와 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서 일이 모두 끝나기 전까진 버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결혼을 목적을 위한 방략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남편이 사라진, 집안이 무너진 여자는 필요 없는 존재였다.
아직 효용가치가 조금은 남아 있어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로 갈지, 어떻게 움직일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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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